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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침략 후유증/驚蟄節初候桃始花菜花桃花風4日(陰1/25)乙卯

solpee 2021. 3. 7. 05:17

《唐紀14 太宗 貞觀 20》 (丙午, 646)

 

 

 ③. 2월 2일에 황상이 병주를 출발하였다. 3월 7일에 거가가 경사에 돌아왔다. 황상이 이정에게 말하였다.

 "나는 천하의 무리를 가지고도 작은 이적에게 곤란을 받앗으니 왜 그러한가?"

 이정이 말하였다.

 "이것은 이도종이 풀어줄 것입니다."

 황상은 돌아보면서 강하왕 이도종에게 물었더니, 주필산에 있을 때에 텅 빈 틈을 타서 평양을 빼앗아야 한다고 하였던 것을 갖추어 진술하였다. 황상이 슬퍼하며 말하였다.

 "당시에는 총총망망하여 나는 기억을 못한다."

 ③. 二月,乙未,上發幷州。三月,己巳,車駕還京師。〈幷州至京師一千三百六十里。〉上謂李靖曰︰「吾以天下之衆困於小夷,何也?」靖曰︰「此道宗所解。」〈解,戶買翻。〉上顧問江夏王道宗,具陳在駐驆時乘虛取平壤之言。上悵然曰︰「當時匆匆,吾不憶也。」〈是役也,不唯不用乘虛取平壤之策,乘勝取烏骨之策亦不用也。〉

 

 

 

 ④. 황상의 병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오로지 보양만 하려고 하였는데, 8일에 군사와 국가의 기밀에 관한 것을 나란히 황태자에게 위임하여 처결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이에 태자는 하루건너 한 번씩 동궁에서 정치에 관한 사무를 보고 받았고,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들어와서 약과 음식 먹는 것을 시중들면서 옆을 떠나지 아이하였다.

 ④. 上疾未全平,欲專保養,庚午,詔軍國機務並委皇太子處決。於是太子間日聽政於東宮,旣罷,則入侍藥膳,不離左右。〈處,昌呂翻。間,古莧翻。離,力智翻。〉

 

 황상이 태자에게 잠시 나아가서 놀라고 명령하였으나 태자는 사양하고 나가기를 원치 아니하였고, 황상은 마침내 침전의 옆에 별원을 설치하고 태자로 하여금 그곳에 살게 하였다. 저수량이 태자를 열흘에 한 번씩 동궁으로 돌아가게 하여서 사부와 더불어 도의를 이야기 하게 해달라고 청하니 이를 좇았다.

上命太子暫出遊觀,太子辭不願出;上乃置別院於寢殿側,使太子居之。褚遂良請遣太子旬日一還東宮,與師傅講道義;從之。

 

 황상이 일찍이 미앙궁에 행차하였는데 벽장(경호원에 의한 교통통제)이 이미 지나갔는데, 홀연히 풀 속에서 한 사람이 횡도를 차고 있는 것이 발견되어 이를 나무랐더니, 말하였다.

 "벽장이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서 감히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벽장을 하는 사람도 보지 아니하여서 드디어 엎드려 감히 움직이지 아니하였습니다."

 上嘗幸未央宮,辟仗已過,〈辟仗者,衞士在駕前攘辟左右,止行人,所謂陳兵清道而後行也。辟,音闢。〉忽於草中見一人帶橫刀,〈橫刀者,用皮襻帶之,刀橫掖下。〉詰之,〈詰,去吉翻。〉曰︰「聞辟仗至,懼不敢出,辟仗者不見,遂伏不敢動。」

 

 황상이 갑자기 이끌고 돌아와서 태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사실이 소문이 퍼져 나가면 몇 사람은 죽어야 할 것이니, 너는 뒤에서 신속하게 그를 놓아서 보내라."

 또 일찍이 腰輿를 타고 있는데, 三衛(親, 勳, 翼衛의 宿衛: 親衛는 외척들의 자재, 勳衛는 공훈관의 자재, 翼衛는 자사의 자재로 구성)의 위사가 어의를 잘못하여 스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두려워서 얼굴색이 변하였다. 황상이 말하였다.

 "이 사이에는 어사가 없으니 나는 너에게 죄를 주지 않겠다."

 上遽引還,顧謂太子︰「茲事行之,則數人當死,汝於後速縱遣之。」又嘗乘腰輿,〈腰輿,令人舉之,其高至腰。〉有三衞誤拂御衣,〈親衞、勳衞、翊衞,謂之三衞。〉其人懼,色變。上曰︰「此間無御史,吾不汝罪也。」

 

 

 

 ⑦. 4월 6일에 遼州도독부와 巖州를 철폐하였다.

 *고리의 반격에 의하여 패퇴하였다는 통감필법이다. 즉 국경이 고리 침략 이전으로 되었다는 말이다.

 ⑦. 戊戌,罷遼州都督府及巖州。〈伐高麗所得二州。〉

 

 

 

 ⑨. 5월 23일에 고리왕 고장과 막리지 개금(연개소문)이 사자를 파견하여 사죄하고 아울러 두 명의 미녀를 헌상하니 이를 돌려보냈다. 金은 蘇文이다. 蓋는 앞에 淵을 피휘한 것이다.

 ⑨. 五月,甲寅,高麗王藏及莫離支蓋金遣使謝罪;〈使,疏吏翻;下同。〉幷獻二美女,上還之。金,卽蘇文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