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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所以載舟,亦所以覆舟,民猶水也,君猶舟也 /雨水節中候鴻雁北來菜花杏花風5日(陰1/16)丙午

solpee 2021. 2. 27. 17:38

《唐紀13 太宗 貞觀 17》 (癸卯, 643)

 

 

 ⑥. 윤6월, 4일에 황상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짐은 태자를 세우면서부터 사물을 만나면 이에 교혼하였는데, 그가 밥 먹는 것을 보게 되면 바로 이르기를, '너가 농사를 짓는 어려움을 안다면 항상 이러한 밥을 갖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고, 그가 말 타는 것을 보면 바로 이르기를, '네가 그것이 수고하는 것과 편안하게 하는 것을 알아서 그 힘을 다 없애지 않는다면 항상 이것을 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고,

 ⑥. 閏月,辛亥,上謂侍臣曰︰「朕自立太子,遇物則誨之,見其飯,則曰︰『汝知稼穡之艱難,則常有斯飯矣。』〈《書‧無逸》曰︰惟不知稼穡之艱難,乃逸。〉見其乘馬,則曰︰『汝知其勞逸,不竭其力,則常得乘之矣。』〈顏淵曰︰昔造父巧於使馬,造父不窮其馬力,是造父無佚馬也。〉

 

 그가 배를 타는 것을 보면 바로 이르기를,'물은 배를 띄우는 것이지만 역시 엎어버리기도 하는 것인데 백성들은 물과 같고 임금은 배와 같다.' 라고 하였소.

 見其乘舟,則曰︰『水所以載舟,亦所以覆舟,民猶水也,君猶舟也。』〈《孔子家語》之言。〉

 

 그가 나무 아래에서 쉬는 것을 보면 이르기를, '나무는 먹줄을 가쳐서 올바로 되고, 국주는 간언으로부터 성스럽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소."

 見其息於木下,則曰︰『木從繩則正,后從諫則聖。』」〈《書‧說命》之言。

 

 

 ⑧.설연타의 진주 가한이 그의 조카인 돌리 설을 시켜서 폐물을 바치고 말 5만 필· 소와 낙타 1만 두· 양 10만 마리를 헌납하였다. 13일에 돌리 설이 음식물을 헌상하니 황상이 상사전에 나아가서 여러 신하들에게 향연을 베풀면서 10부악을 진설하니 돌리 설은 두 번 절하고 축수하는 술을 올렸고, 하사한 재물도 아주 후하였다.

 ⑧. 薛延陀眞珠可汗〈可,從刊入聲。汗,音寒。〉使其姪突利設來納幣,獻馬五萬匹,牛、橐駝萬頭,羊十萬口。庚申,突利設獻饌,〈饌,皺戀翻,又皺皖翻。〉上御相思殿,〈按褚遂良疏云︰「御幸北門,受其獻食。」則相思殿蓋在玄武門內。〉大饗羣臣,設十部樂,〈增樂爲十部,見一百九十五卷十四年。〉突利設再拜上壽,賜賷甚厚。

 

 글필하력(우교위장군)이 말씀을 올렸다.

 "설연타는 더불어 결혼할 수 없습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내가 이미 그들에게 허락하였는데 어찌 천자가 되어 식언을 할 수 있겠는가?"

 글필하력이 대답하였다.

 契苾何力上言︰「薛延陀不可與婚。」〈上,時掌翻。契,欺訖翻。苾,毗必翻。〉上曰︰「吾已許之矣,豈可爲天子而食言乎!」何力對曰︰

 

 "신은 폐하께서 갑자기 그들을 잘라 버리시기를 바라지 않지만, 바라건대 또 그 일을 지연시키십시오. 신이 듣건대 옛날에는 친영의 예라는 것이 있었는데, 만약에 설이만에게 칙령을 내려서 친영을 하게 한다면 비록 경사에까지 오지는 않는다고 하여도 역시 영주까지는 와야 할 것인데, 저들은 반드시 감히 오지 않을 것이니 거절하는데 명분을 갖게 할 것입니다. 설이남은 성격이 강하고 흉포하여 이미 성혼이 되지 않게 되면 그 부하들은 다시 두 마음을 품게 될 것이고, 불과 1~2년 만에 반드시 병들어 죽을 것이며, 두 아들이 서는 것을 가지고 다툰다면 앉아서도 그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臣非欲陛下遽絕之也,願且遷延其事。臣聞古有親迎之禮,若敕夷男使親迎,〈迎,魚敬翻。〉雖不至京師,亦應至靈州;彼必不敢來,則絕之有名矣。夷男性剛戾,旣不成婚,其下復攜貳,〈復,扶又翻。〉不過一二年必病死,二子爭立,則可以坐制之矣!」

 

 황상이 이를 좇아서 마침내 진주 가한의 사자를 불러서 친영하게 하고, 이어서 장차 영주에 행차하여 그와 더불어 만나기로 한다는 조서를 발표하였다.

 진주 가한은 크게 기뻐하고 영주로 가려고 하였는데, 그 신하들이 간하였다.

 "만약에 구류되면 이를 후회하여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진주가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당의 천자는 성스러운 덕을 가졌다고 하는데 내가 몸소 가서 그를 볼 수 있다면 죽어도 한스러움이 없을 것이다. 또 사막의 북쪽에는 반드시 주군이 있어야 할 것인데, 내가 가는 것을 결정하였으니, 다시 많은 말을 하지 마시오."

 上從之,乃徵眞珠可汗使親迎,仍發詔將幸靈州與之會。眞珠大喜,欲詣靈州,其臣諫曰︰「脫爲所留,悔之無及!」眞珠曰︰「吾聞唐天子有聖德,我得身往見之,死無所恨,且漠北必當有主。我行決矣,勿復多言!」

 

 황상이 사자를 세 번 보내어 그들이 헌납한 여러 가지 가축을 받았다. 설연타에는 원래 창고와 마구간이 없었는데, 진주 가한이 여러 부에서 징발하여 거둬들여 가지고 왕복 1만 리를 가는데 길에는 모래밭을 건너면서 물과 풀이 없어서 소모되어 죽는 것이 곧 반이 되었고, 기한을 놓치고 오지 못하였다.

 의논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빙례를 치르는 재물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그들과 통혼을 한다면 장차 융적들로 하여금 중원에 있는 나라를 가볍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니, 황상은 마침내 조서를 내려서 그들의 혼인을 끊는다고 하고, 영주로 가는 것도 중지하면서 세 번 보낸 사신도 뒤쫓아서 돌아오게 하였다.

 上發使三道,受其所獻雜畜。薛延陀先無庫廐,眞珠調斂諸部,〈復,扶又翻。使,疏吏翻;下三使同。畜,許救翻。調,徒釣翻。斂,加贍翻。〉往返萬里,道涉沙磧,無水草,〈磧,七迹翻。〉耗死將半,失期不至。議者或以爲聘財未備而與爲婚,將使戎狄輕中國,上乃下詔絕其婚,停幸靈州,追還三使。

 

 저수량이 상소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설연타는 한갓 俟斤(총사령관)인데 폐하께서 사막의 요새를 탕평하여 만 리가 쓸쓸해졌고, 나머지 오랑캐들이 물결치듯 달아나니 추장이 필요하게 되어 새서와 鼓纛(고는 북 독은 깃발)으로 세워서 가한을 만들었습니다.

 근래에 다시 넓은 사사로움을 내려주셔서 그들에게 혼인할 것을 허락하셨는데, 서쪽으로는 토번에게 알리고, 북쪽으로는 아사나사마(동돌궐)에게도 효유하였으며, 중국의 어린 아이들도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褚遂良上疏,以爲「薛延陀本一俟斤,〈良上,時掌翻。俟,渠之翻。〉陛下盪平沙塞,萬里蕭條,〈謂平突厥也,塞北皆沙磧,故曰沙塞。〉餘寇奔波,須有酋長,璽書鼓纛,立爲可汗。〈見一百九十三卷二年。酋,慈由翻。長,知兩翻。璽,斯氏翻。纛,徒到翻。〉比者復降鴻私,許其姻媾,〈比,毗至翻。復,扶又翻。見上卷十六年。〉西告吐蕃,〈吐,從暾入聲。〉北諭思摩,中國童幼,靡不知之。

 

 북문에 나가셔서 그들이 헌납한 식사를 받으시고 여러 신하들과 사방에서 온 이적들이 연회를 하면서 종일토록 즐겼습니다. 모두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여 한 명의 딸을 앆시지 않으신다고 말하니, 무릇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은덕을 품지 않겠습니까? 지금 하루아침에 물러나려는 뜻이 생기고 고쳐서 후회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신은 국가를 위하여 이처럼 명성잇는 소문을 애석하게 여기는데, 돌아본 것이 아주 적지만 잃는 것은 특별히 많으며, 혐의하는 틈이 이미 생기면 반드시 변경에 걱정거리가 만들어집니다.

 御幸北門,受其獻食,羣臣四夷,宴樂終日。〈樂,音洛。〉咸言陛下欲安百姓,不愛一女,凡在含生,孰不懷德。今一朝生進退之意,有改悔之心,臣爲國家惜茲聲聽;〈爲,于僞翻。〉所顧甚少,所失殊多,〈少,詩沼翻。〉嫌隙旣生,必搆邊患。

 

 저 나라는 속임을 당하였다는 화를 쌓아둘 것이고, 이쪽 백성들은 약속을 어겼다는 부끄러움을 가슴에 품을 것이니, 아마도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복종시키고, 병사들을 훈육하는 것이 못됩니다. 폐하께서 천하에 군림하신 지 17년 동안 어진 은혜를 가지고 서민들을 연결하셨고 믿음과의로움으로 융이들을 어루만지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이를 어기는 것은 처음에 좋고 끝도 좋게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애석합니까?

 彼國蓄見欺之怒,此民懷負約之慚,恐非所以服遠人,訓戎士也。陛下君臨天下十有七載,〈載,子亥翻。〉以仁恩結庶類,以信義撫戎夷,莫不欣然,負之無力,〈此二語考之《舊書‧褚遂良傳》亦是如此,然其意義難於強解。或曰︰「力」,當作「益」;言負延陀之約爲無益也。〉何惜不使有始有卒乎!〈卒,子恤翻。〉

 

 무릇 영사 이북에서는 부락은 계산할 일이 없어서, 중국이 이들을 죽인다고 하여도 끝내 다할 수가 없었으니 마땅히 덕을 가지고 그들을 품어주어 악한 짓을 하는 자는 이적에 있지 중화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신의를 잃는 사람은 저쪽에 있지 이쪽에 있지 않게 한다면 堯·舜·禹·蕩도 폐하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황상은 듣지 않았다.

 夫龍沙以北,部落無算,〈匈奴庭謂之龍城,無常處,故沙幕因謂之龍沙。〉中國誅之,終不能盡,當懷之以德,使爲惡者在夷不在華,失信者在彼不在此,則堯、舜、禹、湯不及陛下遠矣!」上不聽。

 

 이때에 대부분의 신하들은 말하였다.

 "국가는 이미 그에게 혼인할 것을 허락하고 그의 빙례에 따른 예물을 받았으니 융적들에게 신의를 잃어서 다시금 변경지대에 걱정거리를 생기게 해서는 안됩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是時,羣臣多言︰「國家旣許其婚,受其聘幣,不可失信戎狄,更生邊患。」上曰︰

 

 "경들은 모두 옛 것을 알면서 지금의 것을 모르고 있소. 옛날 한 초기에 흉노들이 강하였고 중국은 약하였으니, 그러므로 자녀들을 꾸미고 금과 비단을 덜어내어 그들에게 먹여 주었던 것이니, 일의 적당함을 얻은 것이오. 지금 중국은 강하고 융적들은 약하여서 나의 보병 1천으로 흉노의 기병 수만을 칠 수 있으니, 설연타가 납작 엎드려서 고개를 조아리는 것은 오직 내가 바라는 바이고 감히 거만하지 못한  새로이 군장이 되었는데, 여러 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와 같은 종족이 아니어서 중국의 세력을 빌어서 그들을 위엄으로 복종시키고자 하는 것뿐이오.

 「卿曹皆知古而不知今。昔漢初匈奴強,中國弱,故飾子女,捐金絮以餌之,得事之宜。今中國強,戎狄弱,以我徒兵一千,可擊胡騎數萬,〈騎,奇寄翻。〉薛延陀所以匍匐稽顙,惟我所欲,不敢驕慢,以新爲君長,雜姓非其種族,欲假中國之勢以威服之耳。〈匍,薄乎翻。匐,蒲北翻。稽,音啓。種,章勇翻。〉

 

 저들 동라(울란바토르)·복골(몽골 동부)·회흘( 몽골 허린걸) 등의 10여개 부에는 병사가 각기 수만인데 힘을 나란히 합쳐서 이를 공격하면 즉각적으로 파멸시킬 수 있으나 감히 발동하지 않는 까닭은 중국이세웠던 연고요, 지금 딸을 그에게 처로 삼게 한다면 저들은 스스로 큰 나라의 사위라는 것을 믿을 것이니 여러 가지 잡다한 성을 가진 사람들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는가?

 彼同羅、僕骨、回紇等十餘部,〈紇,下沒翻。〉兵各數萬,幷力攻之,立可破滅,所以不敢發者,畏中國所立故也。今以女妻之,彼自恃大國之壻,雜姓誰敢不服!

 

 융적이란 얼굴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짐승같아서 어느 날 아침에 조금이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반드시 돌아서서 깨물어서 해를 입힐 것이오. 지금 내가 그들과의 혼사를 잘라 버려서 그드의 에물을 받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잡다한 성을 가진 족속들은 내가 그를 포기하였다는 것을 알아서 얼마 자나지 않아서 장차 오이처럼 나뉠 것이니 경들은 이것을 기억하시오."

 戎狄人面獸心,一旦微不得意,必反噬爲害。今吾絕其婚,殺其禮,〈妻,七細翻;下可妻同。殺,所界翻。〉雜姓知我棄之,不日將瓜剖之矣,卿曹第志之!」〈瓜剖,猶瓜分也。志,猶記之。〉

 

 사마광이 말한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먹는 것을 없애고, 군사를 없앨 수는 있지만 신의는 저버릴 수는 없다. 고 하였다. 당 태종은 설연타에게 처로 삼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살펴보고 알았다면 처음에 그에게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하였는데, 이미 그것을 허락해 놓고 마침내 다시 강하다는 것을 믿고 신의를 버리고 이를 거절하였으니, 비록 설연타를 멸망시켰다고 하여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왕 된 사람이 말을 하고 명령을 내면서는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臣光曰︰孔子稱去食、去兵,不可去信。〈見《論語》。去,羌呂翻。〉唐太宗審知薛延陀不可妻,則初勿許其婚可也;旣許之矣,乃復恃強棄信而絕之,〈復,扶又翻。〉雖滅薛延陀,猶可羞也。王者發言出令,可不愼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