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태자 이승건의 반란/ 雨水節中候鴻雁北來菜花杏花風3日(陰1/14)甲辰

solpee 2021. 2. 24. 05:12

《唐紀13 太宗 貞觀 17》 (癸卯, 643)

 

 

 ⑤. 2월 12일에 태자첨사 장량을 낙주도독으로 삼았다. 후군집은 '스스로 공로를 세웠으나 리에게 내려 보냈다.'고 생각하여 원망하며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 장량이 나아가서 낙주도독이 되자 후군집이 그를 자극하여서 말하였다.

 "어느 사람이 배쳑하였는가?"

 장량이 말하였다.

 "공이 아니면 누구겠소?"

 후군집이 말하였다.

 "나는 한 나라를 평정하고 왔다가 집채 만한 진노를 만났는데, 어찌 우러러 쫓아낼 수 있겠소?"

 이어서 소매를 잡아 끌면서 말하였다.

 "울적하면 특별히 즐겨 살아가지는 못하오. 공이 반란을 할 수 있겠소? 공과 더불어 반란 하리다."

 ⑤. 壬辰,以太子詹事張亮爲洛州都督。侯君集自以有功而下吏,〈見上卷十四年。下,遐嫁翻。〉怨望有異志。亮出爲洛州,君集激之曰︰「何人相排?」亮曰︰「非公而誰!」君集曰︰「我平一國來,逢嗔如屋大,〈嗔,昌眞翻。〉安能仰排!」因攘袂曰︰「鬱鬱殊不聊生!公能反乎?與公反!」

 

 장량이 비밀리에 보고하였다. 황상이 말하였다.

 "경과 후군집은 모두 공신인데 말을 할 때에 옆에 다른 사람이 없었고, 만약에 리에게 내려 보내도 후군집은 반드시 복종하지 아니할 것이오. 이와 같다면 일을 알 수 없으니, 경은 또한 말을 하지 마시오."

 후군집을 대우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亮密以聞。上曰︰「卿與君集皆功臣,語時旁無他人,若下吏,君集必不服。如此,事未可知,卿且勿言。」待君集如故。

 

 

 ①. 여름 4월 1일에 홀간승기는 변고가 있음을 올리면서 태자가 모반을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장손무기·방현령·소우·이세적에게 칙령을 내려서 대리시·중서성·문하성과 함께 참여하여 이를 국문하게 하였더니, 반란의 형태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황상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장차 이승건을 어떻게 해야 하오?"

 여러 신하들이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는데, 통사사인 내재가 나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을 잃지 않고 태자가 天年을 다할 수 있다면 훌륭합니다."

 황상이 이를 좇았다. 내재는 내호아의 아들이다.

 ①. 夏,四月,庚辰朔,承基上變,告太子謀反。〈觀,古玩翻。上,時掌翻。〉敕長孫無忌、房玄齡、蕭瑀、李世勣與大理、中書、門下參鞫之,〈唐制︰凡國之大獄,三司詳決。三司,謂給事中、中書舍人與御史參鞫也。今令三省與大理參鞫,重其事。長,知兩翻。瑀,音禹。〉反形已具。上謂侍臣︰「將何以處承乾?」〈處,昌呂翻。〉羣臣莫敢對,通事舍人來濟進曰︰「陛下不失爲慈父,太子得盡天年,則善矣!」上從之。濟,護兒之子也。〈來護兒,隋將也,死於宇文化及之難。〉

 

 6일에 조서를 내려서 태자인 이승건을 서인으로 하고 우령군부에 유폐하게 하였다. 황상은 한왕 이원창의 죽음을 면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굳게 다투어 마침내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끝내게 하고, 그의 어머니와 처와 아들을 용서하였다.

 乙酉,詔廢太子承乾爲庶人,幽於右領軍府。上欲免漢王元昌死,羣臣固爭,乃賜自盡於家,而宥其母、妻、子。〈元貞母,孫嬪。〉

 

 이안엄·조절·두하 등이 모두 엎어져 죽었다. 조서자 장현소· 우서자 조홍지· 영호덕분 등은 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모두 죄에 걸려서 면직되어 서인이 되었다. 첨사 우지녕은 자주 간언을 하였으므로 홀로 수고하였다는 칭찬을 받았다. 홀간승기는 우천부의 절충도위가 되고 평극현공으로 작위를 받았다.

 侯君集、李安儼、趙節、杜荷等皆伏誅。左庶子張玄素、右庶子趙弘智、令狐德棻等以不能諫爭,皆坐免爲庶人。〈令,音零。棻,符分翻。爭,讀曰諍。〉餘當連坐者,悉赦之。詹事于志寧以數諫,獨蒙勞勉。〈數,所角翻。勞,力到翻。〉以紇干承基爲祐川府折衝都尉,爵平棘縣公。〈《唐志》︰岷州有祐川府。《隋志》︰岷州臨洮縣,後周置祐川郡。唐蓋因周郡名以爲府也。〉

 

 후군집이 잡혔는데, 하란초석이 다시 궁궐에 가서 그 일을 알리니, 황상이 후군집을 끌어내어 말하였다.

 "짐은 도필리로 하여금 공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 하오. 그러므로 스스로 공을 국문하는 것뿐이오."

 후군집은 처음에 승인하지 않았다. 하란초석을 끌어다가 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진술하게 하고, 또 이승건에게 보내며 왕래한 것을 가지고 그에게 펼쳐 보이게 하니, 후군집이 말이 궁색해지자 마침내 자복하였다.

 侯君集被收,〈被,皮義翻。〉賀蘭楚石復詣闕告其事,〈復,扶又翻。〉上引君集謂曰︰「朕不欲令刀筆吏辱公,故自鞫公耳。」君集初不承。引楚石具陳始末,又以所與承乾往來啓示之,君集辭窮,乃服。

 

 황상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후군집은 공로를 세웠으니, 그의 목숨을 구걸하려고 한다면 가능하겠소?"

 여러 신하들은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황상이 후군집에게 말하였다.

 "공과 길게 결별하겠소."

 이어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후군집도 역시 스스로를 땅에 던졌고 마침내 저자에서 그를 참수하였다. 후군집은 형벌을 받게 되자 형의 집행을 감독하는 장군에게 말하였다.

 上謂侍臣曰︰「君集有功,欲乞其生,可乎?」〈乞,如字,匄也。〉羣臣以爲不可。上乃謂君集曰︰「與公長訣矣!」因泣下。〈泣,淚也。〉君集亦自投於地,遂斬之於市。君集臨刑,謂監刑將軍曰︰

 

 "나 후군집이 차질을 빚은 것이 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번저에서 폐하를 섬기면서 두 나라를 쳐서 빼앗았으니, 한 명의 아들을 온전하게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여 주기를 비오."

 황상은 그의 처와 아들을 용서하고 영남으로 귀양보냈다. 그 집안을 적몰하면서 두 명의 미인을 잡았는데, 어려서부터 사람의 젓을 마셔서 다른 것을 먹지 않았다.

 「君集蹉跌至此!〈監,古銜翻。蹉,七何翻。跌,徒結翻。〉然事陛下於藩邸,〈上在藩時,引君集入幕府,數從征伐。〉擊取二國,〈謂吐谷渾、高昌也。〉乞全一子以奉祭祀。」上乃原其妻及子,徙嶺南。籍沒其家,得二美人,自幼飲人乳而不食。

 

 애초에, 황상이 이정으로 하여금 후군집에게 병법을 가르치게 하였더니, 후군집이 황상에게 말하였다.

 "이정이 장차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황상이 그 연고를 물었더니, 이정이 대답하였다.

 "이정은 다만 신에게 그 조략한 것을 가르치고 그 정치한 것을 숨기니, 이로써 압니다."

 황상이 이정에게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이는 후군집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므로 신이 가르치는 바로는 충분히 사이를 제압할 것인데, 군집이 굳게 신이 가지고 있는 술책을 다 요구하는 것은 반란하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初,上使李靖敎君集兵法,君集言於上曰︰「李靖將反矣。」上問其故,對曰︰「靖獨敎臣以其粗而匿其精,〈粗,讀與麤同,倉乎翻。〉以是知之。」上以問靖,靖對曰︰「此乃君集欲反耳。今諸夏已定,〈夏,戶雅翻;下同。〉臣之所敎,足以制四夷,而君集固求盡臣之術,非反而何!」

 

 강하왕 이도종이 일찍이 조용히 황상에게 말하였다.

 "후군집의 뜻은 크지만 지혜는 작으니 스스로 작은 공로를 자부하면서 방현령과 이정의 아래에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비록 이부상서가 되더라도 그 뜻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신이 보건대 반드시 장차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후군집의 재주와 그릇으로는 또한 무엇을 하여도 못하겠소! 짐이 어찌 중요한 지위를 아끼겠소! 다만 아직 차례가 되지 않았을 뿐인데 어찌 미리 헤아려서 망령되게 시기하는 두 마음을 생기게 하시오?"

 후군집이 반란으로 주살되기에 이르자, 황상이 이도종에게 말하였다.

 "과연 경의 말대로요."

 이안엄의 아버지는 나이가 아흔 살 남짓이어서 황상이 그것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노비를 내려주어 그를 봉양하게 하였다.

 江夏王道宗嘗從容言於上曰︰〈從,千容翻。〉「君集志大而智小,自負微功,恥在房玄齡、李靖之下,雖爲吏部尚書,未滿其志。以臣觀之,必將爲亂。」上曰︰「君集材器,亦何施不可!朕豈惜重位,但次第未至耳,豈可億度,〈朱子曰︰億,未見而意之也。度,徒洛翻。〉妄生猜貳邪!」及君集反誅,上乃謝道宗曰︰「果如卿言。」

李安儼父,年九十餘,上愍之,賜奴婢以養之。

 

 태자 이승건이 이미 죄를 얻고 나자, 위왕 이태가 매일 들오와서 시봉하였는데, 황상이 대면하고서 태자로 세우겠다고 하락하였으며, 잠문본과 유기도 역시 그것을 권고하였지만 장손무기는 굳게 진왕 이치를 세우라고 청하였다. 황상이 시신에게 말하였다.

 "어제 청작이 내 품에 들어와서 말하기를, '신이 오늘에야 처음으로 폐하의 아들이 될 수 있으니 마침내 다시 탄생한 날입니다. 신에게 한 아들이 잇는데, 신이 죽는 날에 마땅히 폐하를 위하여 그를 죽이고 자리를 진왕에게 전하겠습니다.'라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누가 그 자식을 아끼지 않겠소! 짐은 그가 이와 같이 하는 것을 보고 아주 그를 가련하게 생각하였소!"

 太子承乾旣獲罪,魏王泰日入侍奉,上面許立爲太子,岑文本、劉洎亦勸之;長孫無忌固請立晉王治。〈請立嫡也。〉上謂侍臣曰︰「昨青雀投我懷云︰『臣今日始得爲陛下子,乃更生之日也。〈泰,小字青雀。〉臣有一子,臣死之日,當爲陛下殺之,〈爲,于僞翻。〉傳位晉王。』人誰不愛其子,朕見其如此,甚憐之。」]

 

 간의대부 저수량이 말하였다.

 "폐하의 말씀은 크게 실수하셨습니다. 바라건대, 살피고 생각하시어 그르치지 마십시오. 어찌 폐하께서 만세가 지난 다음에 위왕이 천하를 점거하고 나서 그의 아들을 죽이고 진왕에게 자리를 전해 주는 일이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먼저번에 이승건을 세워서 태자로 삼고, 다시 위왕을 총애하시니, 예의와 순서가 이승건보다 지나치게 되어서 오늘날의 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의 일은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니 충분히 거울이 될 만합니다. 폐하께서 지금 위왕을 세우신다면 먼저 진왕을 조치하시기를 바라며,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안전할 수 있을 뿐입니다."

 諫議大夫褚遂良曰︰「陛下言大失。願審思,勿誤也!安有陛下萬歲後,魏王據天下,肯殺其愛子,傳位晉王者乎!〈殺子而立弟,非人情也。褚遂良探其心術之微而言之。〉陛下日者旣立承乾爲太子,復寵魏王,〈復,扶又翻;下復何同。〉禮秩過於承乾,以成今日之禍。前事不遠,足以爲鑒。陛下今立魏王,願先措置晉王,始得安全耳。」〈遂良此語,亦以激帝。〉

 

 황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어서 일어나서 궁궐로 들어갔다.

 위왕 이태는 황상이 진왕 이치를 세울까봐 두려워하여서 그에게 말하였다.

 "너와 이원창은 잘 지내는데 이원창이 이번에 실패하였으니, 걱정거리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치는 이로 말미암아서 안색이 달라진 것이 드러났다. 황상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연고를 물으니, 이치가 마침내 상황을 알리자, 황상이 어루만지면서 비로소 이태를 세우겠다는 말을 한 것을 후회하였다.

 上流涕曰︰「我不能爾。」因起,入宮。魏王泰恐上立晉王治,謂之曰︰「汝與元昌善,元昌今敗,得無憂乎?」治由是憂形於色。上怪,屢問其故,治以乃狀告;上憮然,〈憮,文甫翻。〉始悔立泰之言矣。上面責承乾,承乾曰︰「臣爲太子,復何所求!但爲泰所圖,時與朝臣謀自安之術,〈朝,直遙翻。〉不逞之人遂敎臣爲不軌耳。今若泰爲太子,所謂落其度內。」

 

 황상이 이승건을 마주하고서 나무라니, 이승건이 말하였다.

 "신이 태자였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였겠습니까? 다만 이태가 도모하려는 것 때문에 때로는 조정의 신하들과 스스로 편안하게 하려는 술책을 도모하였고, 좋지 않은 사람들이 드디어 신에게 불궤한 짓을 하도록 가르쳤을 뿐입니다. 지금 만약에 이태를 태자로 삼는다면 이른바 그가 의도한 속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승건이 폐위되고 나서 황상이 양의전에 나갔는데, 여러 신하들이 모두 나갔다. 다만 장손무기·방현령·이세적·저수량을 남아있게 하고 말하였다.

 承乾旣廢,上御兩儀殿,〈按《唐六典》,兩儀殿在太極殿之後,蓋古之內朝也,常日視朝而聽事焉。〉羣臣俱出,獨留長孫無忌、房玄齡、李世勣、褚遂良,謂曰︰

 

 "나의 세 아들과 한 명의 동생이 한 짓이 이와 같으니, 나의 마음은 진실로 의지할 곳이 없소."

 이어서 스스로 침상에 몸을 던지니 장손무기 등이 다투어 앞으로 나아가서 부축하여 붙잡았는데, 황상은 또한 패도를 꺼내어 스스로를 찌르려고 하니, 저수량이 칼을 빼앗아서 진왕 이치에게 주었다.

 장손무기가 황상이 바라는 것을 말하여 달라고 요청하니, 황상이 말하였다.

 "나는 진왕을 세우고 싶소."

 「我三子一弟,所爲如是,〈三子,謂齊王祐、太子承乾、魏王泰;一弟,謂漢王元昌。〉我心誠無聊賴!」因自投于牀,無忌等爭前扶抱;上又抽佩刀欲自刺,〈刺,七亦翻。〉遂良奪刀以授晉王治。無忌等請上所欲,上曰︰「我欲立晉王。」

 

 장손무기가 말하였다.

 "삼가 조서를 받들겠습니다. 다른 논의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이 바라건대 그를 목 베게 하여 주십시오."

 황상이 이치에게 말하였다.

 "너의 외삼촌이 너를 허락하였으니, 의당 절하며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이치는 이어서 그에게 절하였다. 황상이 장손무기 등에게 말하였다.

 "공 등은 이미 나의 뜻에 동의하였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논의하는 것이 어떠한지 모르겠구려."

 대답하였다.

 "진왕은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천하가 마음을 의탁하고 있는 지 오래 되었으니, 빌건대 페하께서 시험적으로 백관들을 불러서 물어 보시고 만약에 같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신은 폐하께 만 번 죽을죄를 진 것입니다."

 無忌曰︰「謹奉詔;有異議者,臣請斬之!」上謂治曰︰「汝舅許汝矣,宜拜謝。」治因拜之。上謂無忌等曰︰「公等已同我意,未知外議何如?」對曰︰「晉王仁孝,天下屬心久矣,〈屬,之欲翻。〉乞陛下試召問百官,有不同者,臣負陛下萬死。」

 

 황상이 마침내 태극전으로 나아가서 문무관원 가운데 6품 이상을 소집하고 말하였다.

 "이승건은 패역하였고, 이태는 또한 음흉하고 사나웠으니, 모두 세울 수가 없다. 짐이 여러 아들 가운데 뽑아서 뒤를 잇게 하려는데 누가 좋겠는가? 경들이 분명하게 이를 말해 주시오."

 무리들이 시끄럽게 소리 지르듯 말하였다.

 "진왕이 어질고 효성스러우니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합니다."

 황상이 기뻐하였다

 이날에 이태는 100여 명의 기병이 좇게 하고서 영안문에 도착하였는데 문사에게 그 기병들을 다 물리치게 하고 이태를 이끌어서 숙정문으로 들어오게 하고서 북원에 유폐시켰다.

 上乃御太極殿,〈西內正門曰承天門,正殿曰太極,太極之後曰兩儀殿。《六典》:朔望御太極殿視朝,蓋古之中朝也。〉召文武六品以上,謂曰︰「承乾悖逆,〈悖,蒲內翻,又蒲沒翻。〉泰亦凶險,皆不可立。朕欲選諸子爲嗣,誰可者?卿輩明言之。」衆皆讙呼曰︰「晉王仁孝,當爲嗣。」〈讙,與諠同。〉上悅。是日,泰從百餘騎至永安門;〈《六典》:太極宮城南面三門,中曰承天,東曰長樂,西曰永安。〉敕門司盡辟其騎,〈辟,音闢。《六典》:門下省有城門郎四人,掌京城、皇城宮殿諸門開闔之節;置門僕八百人,分番上下。〉引泰入肅章門,幽於北苑。〈程大昌曰︰太極宮之北有內苑,以其在宮北,故亦曰北苑。苑之北門曰啓運門,又北卽禁苑,禁苑廣矣。〉

 

 7일에 조서를 내려서 진왕 이치를 세워서 황태자로 삼고, 승천문루에 나아가서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사흘 동안 포하게 하였다. 황상이 시신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만약 이태를 세웠다면 태자의 자리는 경영을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태자가 도리를 잃고, 번왕이 틈을 엿본다면 두 사람을 모두 버릴 것이다. 여러 자손에게 이를 전하여 영원히 후대의 법으로 삼으라. 또한 이태가 세워지면 이승건과 이치도 모두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이치가 세워지면 이승건과 이태는 모두 걱정이 없을 것이다."

 丙戌,詔立晉王治爲皇太子,御承天門樓,赦天下,酺三日。〈治,直吏翻。酺,薄乎翻。〉上謂侍臣曰︰「我若立泰,則是太子之位可經營而得。自今太子失道,藩王窺伺者,皆兩棄之,〈伺,相吏翻。〉傳諸子孫,永爲後法。且泰立,〈【章︰十二行本「立」下有「則」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承乾與治皆不全;治立,則承乾與泰皆無恙矣。」〈恙,余亮翻。〉

 

 사마광이 말한다.

 "당 태종은 천하라는 큰 그릇을 그가 아끼는 사람에게 사사로이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화란의 근원을 막았으니, 멀리를 꾀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臣光曰︰唐太宗不以天下大器私其所愛,以杜禍亂之原,可謂能遠謀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