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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孫皇后 /立春節末候魚上冰 望春風 初日(陰1/2)壬辰

solpee 2021. 2. 13. 09:12

《唐紀10 太宗 貞觀 10》 (丙申, 636)

 

 

 ⑧. 장손황후의 성품은 어질고 효성스럽고 검소하고 책읽기를 좋아하여 항상 황상과 조용히 예의을 상의하고 토론하였고, 이어서 대신할 정책을 바치니 도와주는 것이 넓고 많았다.

 황상은 혹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궁인들을 나무라거나 화를 내면 황후는 또 겉으로 화를 냈지만 스스로 미루어 묻겠다고 하고서 이어서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다가 황상의 화가 풀리는 것을 기다려서 천천히 심리하니 이로 말미암아서 궁궐 안에서는 형벌을 주는 것이 억울하고 남용되는 일이 없었다.

 ⑧. 長孫皇后性仁孝儉素,好讀書,常與上從容商略古事,〈好,呼到翻。從,千容翻。〉因而獻替,裨益弘多。上或以非罪譴怒宮人,后亦陽怒,請自推鞫,因命囚繫,俟上怒息,徐爲申理,由是宮壼之中,刑無枉濫。

 

 예장공주가 일찍이 그의 어머니를 잃자 황후가 거두어 이를 길렀는데 자애로운 것이 자기가 난 사람보다 더하였다. 비빈 이하의 사람에게 질병이 있으면 황후는 친히 어루만져서 살펴주고 자기의 약과 먹을 것을 끊고 그에게 보태어주니 궁궐 안에서는 아끼고 높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豫章公主早喪其母,后收養之,慈愛逾於所生。〈豫章公主,上女也,後下嫁唐義識。爲,于僞翻。壼,苦本翻。喪,息浪翻。〉妃嬪以下有疾,后親撫視,輟己之藥膳以資之,宮中無不愛戴。

 

 여러 아들을 훈계하면서 항상 겸손하고 검소한 것을 우선으로 하게 하였는데, 태자의 유모인 수안부인이 일찍이 황후에게 이야기하여 동궁의 그릇과 쓸 것이 적다고 하며 이를 더해 줄 것을 주청하였다. 황후는 허락하지 않고 말하였다.

 "태자가 되어서 걱정할 일은 덕을 세우지 못하고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지 어찌 그릇과 쓸 것이 없을까 걱정하는가?"

 訓諸子,常以謙儉爲先,太子乳母遂安夫人〈唐制,太子乳母封郡夫人。睦州,遂安郡。〉嘗白后,以東宮器用少,請奏益之。〈少,詩沼翻。〉后不許,曰︰「爲太子,患在德不立,名不揚,何患無器用邪!」

 

 황상이 병을 얻어서 여러 해를 낫지 않았는데, 황후는 옆에서 모시고 받들면서 밤낮으로 옆을 떠나지 않았다. 항상 옷의 허리 춤에 독약을 매달아 가지고 있으면서 말하였다.

 "만약에 불휘한 일이 있게 된다면 의로 보아 혼자 살지 않겠다."

 황후는 평소에 기침병이 있었는데 전년에 황상을 좇아서 구성궁에 행차하면서 시소 등이 밤중에 변고가 있음을 알리자 황상은 갑옷을 입고 합문으로 나아가서 상황을 물었는데 황후는 병을 안고서 좇으니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그치라고 하자, 황후가 말하였다.

 "황상께서 이미 떨고 놀랐는데, 내가 어찌 마음으로 스스로 편안 하겠는가?"

 이로 말미암아서 병이 드디어 심하여졌다.

  上得疾,累年不愈,后侍奉,晝夜不離側。〈離,力智翻。〉常繫毒藥於衣帶,曰︰「若有不諱,義不獨生。」后素有氣疾,前年從上幸九成宮,柴紹等中夕告變,上擐甲出閤問狀,后扶疾以從,〈擐,音宦;從,才用翻。〉左右止之,后曰︰「上旣震驚,吾何心自安!」由是疾遂甚。

 

 태자가 황후에게 말하였다.

 "의약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 병이 낫지 않으니 상주하여 죄지은 사람을 사면하고 다른 사람을 구제하고 도에 귀의하여 두루 명복을 얻도록 청하십시오."

 황후가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니 지혜와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망령되이 구하여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사면한다는 것은 나라의 큰일인데 자주 내릴 수는 없다. 도교와 석교는 이단의 가르침이고 나라를 좀 먹고 백성들을 병들게 하니 모두 황상께서 평소에 하시지 않은 것인데, 어찌 내가 부녀자로서 황상으로 하여금 하시지 않던 것을 하게 하겠는가? 반드시 네 말대로 해야 할 것이라면 나는 빨리 죽는 것만 못하다."

 太子言於后曰︰「醫藥備盡而疾不瘳,〈瘳,丑留翻。〉請奏赦罪人及度人入道,庶獲冥福。」后曰︰「死生有命,非智力所移。若爲善有福,則吾不爲惡;如其不然,妄求何益!赦者國之大事,不可數下。〈數,所角翻。〉道、釋異端之敎,蠹國病民,皆上素所不爲,柰何以吾一婦人使上爲所不爲乎!必行汝言,吾不如速死!」

 

 태자는 감히 주청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방현령에게 말하였고, 방현령이 황상에게 아뢰니 황상이 이를 애달프게 생각하여 그를 위하여 사면령을 내리려고 하였으나 황후가 굳게 이를 중지시켰다.

 병이 위독하게 되자 황상과 결별하였다. 이때에 방현령은 견책을 받아서 집에 돌아가 있었는데, 황후가 황제에게 말하였다.

 太子不敢奏,私以語房玄齡,〈語,牛倨翻。〉玄齡白上,上哀之,欲爲之赦,〈爲,于僞翻。〉后固止之。

及疾篤,與上訣。時房玄齡以譴歸第,后言於帝曰︰

 

 "방현령이 폐하를 섬긴 지 오래 되었는데,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꼼꼼하여 기이한 꾀와 비밀스런 계책이라도 일찍이 드러내어 누설한 일이 없으니, 진실로 커다란 연고가 없다면 바라건대 그를 버리지 마십시오. 첩의 본래 집안은인연이 葭莩(가부:한미한 가문이 혼인으로 좋아짐)하여서 녹을 받는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으며, 이미 덕을 가지고 천거 받은 것이 아니니 쉽게 넘어지고 위태롭게 될 것이어서 그 자손들로 하여금 보전하게[ 하려면 신중하여 권력의 요직에 그들을 두지 말고, 다만 외척으로 봉조청으로 만족할 것압나다.

 「玄齡事陛下久,小心愼密,奇謀祕計,未嘗宣泄,茍無大故,願勿棄之。妾之本宗,因緣葭莩以致祿位,〈《漢書》曰︰非有葭莩之親。張晏曰︰葭,蘆葉也。莩,葉裏白皮也。晉灼曰︰莩,葭裏之白皮也。皆取喻於輕薄也。師古曰︰葭,蘆也。莩者,其筩中白皮至薄者也。葭莩喻著。莩,音孚。張言葉裏白皮,非也。〉旣非德舉,易致顚危,欲使其子孫保全,愼勿處之權要,但以外戚奉朝請足矣。〈以無忌之賢不能自保,則后之所慮爲深遠矣。易,以豉翻。處,昌呂翻。朝,直遙翻。〉

 

 첩은 살아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이 되지 못하였으니 죽어서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될 것인데, 바라건대 구릉을 만드는 것 때문에 천하를 수고롭게 하고 소비하지 말고 다만 산을 이용하여 분묘를 만들고 그릇은 질그릇과 목기만을 사용할 뿐입니다. 이어서 폐하께 바라건대 군자를 가까이 하시고 소인을 멀리 하시며 충성스러운 간언을 받아들이시고, 참소하고 간특한 말을 막으며 부역을 일으키는 일을 줄이시고 유람하거나 사냥하는 것을 중지하면, 첩은 구천에 매몰되더라도 진실로 한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妾生無益於人,不可以死害人,〈用《記‧檀弓》成子高語意。〉願勿以丘壟勞費天下,但因山爲墳,器用瓦木而已。仍願陛下親君子,遠小人,納忠諫,屛讒慝,省作役,止遊畋,〈遠,于願翻。屛,必郢翻。〉妾雖沒於九泉,誠無所恨

 

 자녀들은 반드시 오지 말게 하는데 그들의 슬픔을 보면 헛되이 사람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합니다."

 이어서 옷 속에 있는 독약을 가져다 황상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첩은 폐하께서 불예하시는 날 죽음으로써 승여를 좇겠다고 맹세하였는데, 여후와 같은 지경을 당할 수는 없을 뿐이었습니다."

 21일에 입정전에서 붕어(36세)하였다.

 兒女輩不必令來,見其悲哀,徒亂人意。」因取衣中毒藥以示上曰︰「妾於陛下不豫之日,誓以死從乘輿,不能當呂后之地耳。」〈呂氏事見《漢紀》。乘,繩證翻。〉己卯,崩于立政殿。〈閣本《太極宮圖》︰東上閤門之東有萬春殿,萬春殿之東有立政殿。《唐六典》︰太極殿之北有兩儀殿,兩儀殿之東曰萬春殿。兩儀之左曰獻春門,獻春門之左曰立政門,其內曰立政殿。〉

 

 황후는 일찍이 예부터 부인들의 득실을 채집하여 《女則》 30권을 지었으며, 또 일찍이 한의 명덕마후(후한 2대 명제의 황후)가 외척을 눌러 물리칠 수 없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조정에서 귀하고 번성하게 한 것을 논박하는 글을 저술하여  다만 그 수레가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이 용과 같은 것을 경계하였는데,  이것이 그들의 화와 실패하게 된 근원을 열어 준 것이어서 그러한 끄트머리의 흐름을 막으려고 한 것이었다.

 后嘗采自古婦人得失事爲《女則》三十卷,又嘗著論駮漢明德馬后以不能抑退外親,使當朝貴盛,徒戒其車如流水馬如龍,〈見四十六卷漢章帝建初二年。駮,北角翻。朝,直遙翻。〉是開其禍敗之源而防其末流也。

 

 붕어하게 되자 궁궐에 있는 관사에서 《女則》과 아울러 이를 상주하니, 황상이 이르 보고 비통해 하며 가까운 신하들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황후의 이 책은 충분히 백세를 내려가면서 모범이 될 만하오. 짐은 천명을 알지 못하여 무익한 슬픔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만 궁궐에 들어와서는 다시는 규간하는 말을 듣지 못하ㅣ게 되어 하나의 훌륭한 보좌관을 잃엇으니, 그러므로 품은 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을 뿐이오."

 마침내 방현령을 불러서 다시 그의 작위를 회복시켰다.

 及崩,宮司幷《女則》奏之,〈唐內職,有宮正,糾?失。彤史,記功書過。《六典》,尚儀局有司籍二人,掌經史敎學。奏《女則》者,蓋司籍也。〉上覽之悲慟,以示近臣曰︰「皇后此書,足以垂範百世。朕非不知天命而爲無益之悲,但入宮不復聞規諫之言,〈復,扶又翻;下今復同。〉失一良佐,故不能忘懷耳!」乃召房玄齡,使復其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