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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德於天下:덕을 천하에 넓게 펼치다./立春節(23:59)初候東風解凍迎春風5日(陰12/26)丙戌

solpee 2021. 2. 4. 16:39

《唐紀8 太宗 貞觀 元》 (丁亥, 627)

 

 

 

 ㉛. 어떤 사람이 진왕부의 옛날 병사들에게는 의당 전부 무직을 주고 추가로 들여다가 숙위하게 하라고 말씀을 올렸다. 황상이 그에게 말하였다.

 "짐은 천하를 집안으로 삼고 있으니, 오직 현명하면 주는데, 어찌하여 옛날병사 이외는 모두 믿을 수 없는 사람인가? 너의 이러한 생각은 짐의 덕을 천하에서 넓히는 것이 아니다."

 ㉛. 或上言秦府舊兵,宜盡除武職,追入宿衞。上,時掌翻。上謂之曰︰「朕以天下爲家,惟賢是與,豈舊兵之外皆無可信者乎!汝之此意,非所以廣朕德於天下也。」

 

 

 

 ㉜. 황상이 공경들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禹는 산을 뚫고 물을 다스렸는데 백성들이 비방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이익을 같이 하려 하였던 연고이다.  진의 시황제가 궁실을 지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원망하고 배반하였던 것은 다른 사람들을 병들게 하여 자기를 이롭게 하려고 하였던 연고이다.

 ㉜. 上謂公卿曰︰「昔禹鑿山治水而民無謗讟者,與人同利故也。〈治,直之翻。〉秦始皇營宮室而人怨叛者,病人以利己故也

 

 무릇 아름답고 진기한 것은 진실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만약 이를 멋대로 하고 그치지를 아니한다면 위태롭고 망하는 일이 곧바로 닥칠 것이다. 짐이 하나의 전각을 지으려고 하는데 재료는 이미 갖추어져 있지만 秦을 거울삼아서 중지한다. 왕공 이하의 사람들은 의당 짐의 이 뜻을 몸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서 20년간 풍속은 소박하였고 의복에는 비단에 수를 놓은 것이 없게 되어 공사 간에 부유화게 되었다.

 夫靡麗珍奇,固人之所欲,〈夫,音扶。〉若縱之不已,則危亡立至。朕欲營一殿,材用已具,鑒秦而止。王公已下,宜體朕此意。」由是二十年間,風俗素朴,衣無錦繡,公私富給。

 

 

 

 ㉞. 황상이 시신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서역의 상인인 호인이 아름다운 구슬을 얻어서 몸을 갈라서 이를 숨겼다는데 이러한 일이 있었는가?"

 시신들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저들이 구슬을 아끼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비웃는다. 관리가 뇌물을 받으면 법에 걸려드는 것과 제왕이 사치와 욕심을 좇다가 나라를 망치는 것이 저 호족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㉞. 上謂侍臣曰︰「吾聞西域賈胡得美珠,剖身以藏之,〈賈,音古。〉有諸?」侍臣曰︰「有之。」上曰︰「人皆知〈【章︰十二行本「知」下有「笑」字;乙十一行本同;張校同,云無註本亦無。】〉彼之愛珠而不愛其身也;吏受賕抵法,與帝王徇奢欲而亡國者,何以異於彼胡之可笑邪!」〈賕,音求。邪,音耶。〉

 

 위징이 말하였다.

 "옛날에 노의 애공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건망증이 있었는데, 집을 옮기면서 그 처를 잊어버렸다.'고 하였더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는데, 걸과 주는 바로 자기의 몸조차 잊어버렸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그렇소. 짐은 공과 더불어 의당 힘을 합하여 서로 도와주면 거의 사람들의 웃음거리는 면할  수 있을 것이오."

 魏徵曰︰「昔魯哀公謂孔子曰︰『人有好忘者,徙宅而忘其妻。』孔子曰︰『又有甚者,桀、紂乃忘其身。』亦猶是也。」〈好,呼到翻。忘,巫放翻。〉上曰︰「然。朕與公輩宜戮力相輔,庶免爲人所笑也!」

 

 

 

 ㉟. 청주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모의한 사람이 있었는데, 주현에서 그 곁가지 무리들을 체포하여 잡아 가둔 사람이 감옥에 가득하니, 전중시어사인 안희 사람 최인사에게 조서를 내려서 그들을 다시 조사하게 하였다. 최인사가 도착하여 손발을 묶었던 형구를 모두 제거하고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며 뜨겁게 목욕을 하게하여 그들에게 너그럽게 하고, 그 수괴에 해당하는 사람10여 명을 연좌 시켰는데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이를 석방하였다. 돌아와서 보고하자 칙사가 장차 가서 이들을 판결하게 하였다.

 ㉟. 青州有謀反者,州縣逮捕支黨,收繫滿獄,詔殿中侍御史安喜崔仁師覆按之。〈曹魏時,蘭臺遣御史二人居殿中,伺察姦非,遂稱殿中侍御史;唐從七品下,掌朝廷供奉之儀式。安喜縣,屬定州,漢爲盧奴、安險二縣地,章帝改爲安喜,慕容垂改安喜爲不連,後魏復曰安喜;後齊廢盧奴縣入安喜,隋改曰鮮虞,唐復曰安喜。〉仁師至,悉脫去杻械,〈去,羌呂翻。杻,女九翻。〉與飲食湯沐,寬慰之,止坐其魁首十餘人,餘皆釋之。還報,敕使將往決之。〈此時敕使非官,官凡奉敕出使者則謂之敕使。使,疏吏翻。〉

 

 대리시 소경인 손복가가 최인사에게 말하였다.

 "족하께[서 되돌려 공평하게 한 사람이 아주 많은데, 사람의 마음이란 누가 살기를 욕심내지 않겠소? 아마도 같이 움직였던 무리가 죽음을 면한 것을 보고 마음으로 달게 받으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며 족하를 위하여 깊이 걱정합니다."

 大理少卿孫伏伽謂仁師曰︰「足下平反者多,〈少,始照翻。反,音翻。〉人情誰不貪生,恐見徒侶得免,未肯甘心,深爲足下憂之。」〈爲,于僞翻;下不爲、竊爲同。〉

 

 최인사가 말하였다.

 "무릇 옥사를 처리할 때에는 마땅히 공평함과 용서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하여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자신이 죄를 받지 않을 것을 도모하여 그 억울한 것을 알고도 풀어주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아둔하고 부족하고 잘못하여 놓아준 경우가 있다면 나 한 몸으로 열 명의 죄수가 죽을 것과 바꾸려는 것인데 역시 바라는 것입니다."

 仁師曰︰「凡治獄當以平恕爲本,豈可自規免罪,〈規,圖也。治,直之翻。〉知其冤而不爲伸邪!〈邪,音耶。〉萬一闇短,誤有所縱,以一身易十囚之死,亦所願也。」

 

 손복가가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칙사가 도착하게 되어 다시 여러 죄수들을 신문하니 모두가 말하였다.

 "최공은 공평하고 관대하여 일애는 억울하게 된 사람이 없으니 청컨대 속히 죽게 해 주십시오."

 한 사람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伏伽慚而退。及敕使至,更訊諸囚,皆曰︰「崔公平恕,事無枉濫,請速就死。」無一人異辭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