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牝雞之晨,唯家之索:새벽에 암탉이 울면 가운이 막힌다./大寒節末後水澤腹堅(저수지 어ㄹ음이 굳는다.)山礬(검은재나무)風5日(陰12/18)戊寅

solpee 2021. 1. 29. 14:06

《唐紀7 高 武德 9》 (丙戌, 626)

 

 

 ㉗. 6월 12일에 우문사급을 태자첨사로 삼고, 장손무기와 두여회를 좌서자로 삼고, 고사렴과 방현령을 우사자로 삼고, 우세남을 중사인으로 삼고, 저량을 사인르로 삼았으며, 요사렴을 선마로 삼았다. 제왕의 봉국에서 관장하는 금과 비단 그리고 집기들을 모두 울지경덕에게 하사하였다.

 ㉗. 戊辰,以宇文士及爲太子詹事,長孫無忌、杜如晦爲左庶子,高士廉、房玄齡爲右庶子,尉遲敬德爲左衞率,程知節爲右衞率,虞世南爲中舍人,褚亮爲舍人,〈尉,紆勿翻。率,所律翻。東宮門下坊,左庶子二人,正四品上。掌侍從贊相,駮正啓奏,皇太子出則版奉外辨中嚴,入則解嚴;凡令書下,則畫諾覆審,留所畫以爲案,更寫印署注令諾送詹事府典書坊。右庶子二人,正四品下。中舍人正五品上,舍人正六品上。舍人掌行令書、令旨及表啓之事。太子通表如人臣之禮。宮臣上太子,大事以牋,小事以啓,其封題皆曰「上右春坊」。通事舍人開封以進,其事可施行者,皆下於坊,舍人開,庶子參詳之,然後進;不可者則否。蓋門下坊猶上臺之門下省,典書坊猶上臺之中書省,唐初仍隋制也。龍朔改門下坊爲左春坊,典書坊爲右春坊。〉姚思廉爲洗馬。〈洗,悉薦翻;下同。〉悉以齊王國司金帛什器賜敬德。〈唐制︰親王國有國司,置國尉、國丞,掌判國司、勾稽、監印事。〉

 

 애초에, 선마 위징은 항상 태자 이건성에게 일찍이 진왕을 제거하라고 권고하였는데, 이건성이 실패하고 나서 이세민이 위징을 불러서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우리 형제들을 이간질하였느냐?"

 무리들은 이 때문에 위험스러워서 두려워하였지만 위징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대답하였다.

 "먼저 돌아가신 태자가 일찍이 저 위징의 말을 좇았더라면 반드시 오늘과 같은 화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세민은 평소에 그의 재주를 중하게 생각하였던 터라 얼굴을 고치고 그에게 예의를 차리고 끌어서 첨사주부로 삼았다. 역시 왕규와 위징을 수주에서 불러서 모두 간의대부로 삼았다.

 初,洗馬魏徵常勸太子建成早除秦王,及建成敗,世民召徵謂曰︰「汝何爲離間我兄弟!」衆爲之危懼,〈間,古莧翻。爲,于僞翻。〉徵舉止自若,對曰︰「先太子早從徵言,必無今日之禍。」世民素重其才,改容禮之,引爲詹事主簿。〈詹事主簿,從七品上,掌印檢、勾稽府事。〉亦召王珪、韋挺於巂州,〈去年六月,王珪等流巂州。巂,音髓。〉皆以爲諫議大夫。

 

 이세민은 명령하여 금원에 있던 매와 사냥개를 풀어 주고, 사방에서 공헌하는 것을 없애며, 백관들은 각기 치도를 진술하는 것을 들으며, 정령이 간단하고 엄숙하게 하니 안팎에서 크게 기뻐하였다.

 굴골통을 섬동도 행대 좌복야로 삼아 낙양에서 진수하게 하였다.

 익주 행대인 복야 두궤와 행대인 상서 위운기, 곽행방이 협조하지 아니하였다. 위운기의 동생인 위경검과 종죽들이 대부분 이건성을 섬겼는데, 이건성이 죽자 두궤는 위운기가 이건성과 함께 반란하였다고 무고하여 그를 잡아서 목을 베었다. 곽행방은 두려워서 도망하여 경사로 달아났는데, 두궤가 그를 쫓아갔으나 따라잡지 못하였다.

 世民命縱禁苑鷹犬,罷四方貢獻,聽百官各陳治道,〈治,直吏翻。〉政令簡肅,中外大悅。

以屈突通爲陝東道行臺左僕射,鎭洛陽。〈陝,失冉翻。〉

益州行臺僕射竇軌與行臺尚書韋雲起、郭行方不協。雲起弟慶儉及宗族多事太子建成,建成死,軌誣雲起與建成同反,收斬之。行方懼,逃奔京師,軌追之,不及。

 

 

 ㊵. 8월 8일에 제를 내려서 태자에게 황제의 자리를 전하였는데, 태자가 굳게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9일에 태종이 동궁의현덕전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천하를 사면하였고, 관내와 포주, 예주, 우주, 태주, 정주의 여섯 주에 2년간의 租(토지세)와 調(物稅)를 면제하여 주고 그 나머지는 1년간의 역을 면제해 주었다.

 ㊵. 癸亥,制傳位於太子;太子固辭,不許。甲子,太宗卽皇帝位於東宮顯德殿,赦天下;關內及蒲、芮、虞、泰、陝、鼎六州免二年租調,自餘給復一年。陝,失冉翻。調,徒弔翻。復,方目翻。

 

 

 ㊸. 21일에 비 장손씨를 황후로 삼았다. 황후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고, 갑자기 일이 있어도 반드시 예법을 좇았는데, 황상이 진왕이었을 때에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과 더불어 틈새가 생겼지만 황후는 고조를 받들어 섬겼으며 비빈들에게 그들의 틈새를 봉합하여 내조를 아주 잘하였다.

 ㊸. 丙子,立妃長孫氏爲皇后。〈長,知兩翻。〉后少好讀書,造次必循禮法,〈少,詩照翻。好,呼到翻。造,七到翻。〉上爲秦王,與太子建成、齊王元吉爲隙,后奉事高祖、承順妃嬪,〈嬪,毗賓翻。〉彌縫其闕,甚有內助。

 

 중궁에서 올바른 자리에 있게 되자 절약하고 검소한 것에 힘쓰고 복장과 타는 것은 소용되는 것만을 가질 뿐이었다. 황상이 깊이 그를 존중하여 일찍이 기와 더불어 상을 주고 벌을 주는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황후가 말하였다.

 "'암탉이 아침에 울면 오직 집안이 다 끝난다.'고 하였으니, 첩은 여자인데 어찌 감히 정치적인 일에 참여하여 들어 보겠습니까?"

 굳게 그에 관하여 물었지만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及正位中宮,務存節儉,服御取給而已。上深重之,嘗與之議賞罰,后辭曰︰「『牝雞之晨,唯家之索,』〈《書‧牧誓》引古人之言。索,蘇各翻,盡也。〉妾婦人,安敢豫聞政事!」固問之,終不對。

㊹己卯,突厥進寇高陵。〈厥,九勿翻。高陵縣,漢屬馮翊,唐屬京兆,在長安東北七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