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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瀛州/大寒節中後征鳥厲疾(새매 전성기)蘭花風初日(陰12/13)癸酉

solpee 2021. 1. 25. 18:14

《唐紀5 高 武德 4》 (辛巳, 621)

 

 

 59. 황상은 진왕의 공로가 커서 전 시대의 관직으로서는 모두 그에 걸맞게 부르기에는 부족하여 특히 천책상장을 두고 지위는 왕공들의 위에 있게 하였다. 겨울 10월에 이세민을 천책상장으로 삼고, 영사도·陝東道 대행대 상서령으로 하고 식읍을 2만 호로 늘려주고, 여전히 천책부를 열고 관속을 두게 하였다.

 59. 上以秦王〈【章︰十二行本「王」下有「世民」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功大,前代官皆不足以稱之,特置天策上將,位在王公上。冬,十月,以世民爲天策上將,領司徒、陝東道大行臺尚書令,增邑二萬戶,〈唐爵九等,王食邑萬戶;今倍之。陝,失冉翻。〉仍開天策府,置官屬。〈天策府置長史、司馬各一人,從事中郎二人,並掌通判府事。軍諮祭酒二人,謀軍事,贊相禮儀,應接賓客。典籤四人,掌宣傳導引之事。主簿二人,掌省覆敎命。錄事二人,記室參軍事二人,掌書疏表啓,宣行敎命。功、倉、兵、騎、鎧、士六曹參軍各二人,參軍事六人。〉

 

 제왕 이원길을 사공으로 삼았다. 이세민은 국내가 차차 평정되자 마침내 궁궐의 서쪽에 관을 열고 사방에서 문학하는 선비를 불러들이고, 나아가서 왕부에 속한 두여회, 기실 방현령, 우세남, 문학 저량과 요사렴, 주부 이현도, 참군 채윤공, 설원경, 안상시, 자의전첨인 소욱, 천책부 종사중랑 우지녕, 군자좨주 소세장, 기실 설수, 창조 이수소, 국자조교 육덕명, 공영달, 신도 사람 개문달 송주총관부 호조인 허경종으로 나아가 가르치게 하고, 아울러 본래의 관직을 가지고 문학관 학사로 삼고, 3번으로 나누어 날을 바꾸어 가며 일직과 숙직을 하게하고, 진기한 음식을 공급하였는데, 은혜와 예우가 아주 후하였다.

 以齊王元吉爲司空。世民以海內浸平,乃開館於宮西,延四方文學之士,出敎以王府屬杜如晦、記室房玄齡、虞世南、文學褚亮、姚思廉、主簿李玄道、參軍蔡允恭、薛元敬、顏相時、諮議典籤蘇勗、天策府從事中郎于志寧、軍諮祭酒蘇世長、記室薛收、倉曹李守素、國子助敎陸德明,孔穎達,信都蓋文達、宋州總管府戶曹許敬宗,〈諸王出命稱敎。相,息亮翻。蓋,古盍翻。〉並以本官兼文學館學士,〈《考異》曰︰《舊書》,參軍薛元敬承許敬宗下。今從《太宗實錄》。諮議典籤蘇勉,《舊書》作軍諮典籤,今從《實錄》。宋州總管府戶曹許敬宗,《舊書‧褚亮傳》作著作佐郎攝記室。《敬宗傳》,擬漣州別駕。今從《實錄》。〉分爲三番,更日直宿,〈更,工衡翻。〉供給珍膳,恩禮優厚。

 

 이세민이 조알하거나 공사를 처리하고서 한가한 틈을 내어 번번이 관에 와서 여러 학사들을 이끌고 문적을 토론하였는데, 혹 밤중이 되어 마침내 자기도 하였다. 또 고직 염입본으로 하여금 모습을 그리게 하고 저랑이 찬사를 지어 18학사라고 불렀다. 사대부 가운데 그 선발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당시의 사람들이 '登瀛州'라고 하였다. 채윤공은 채대보의 조카이며, 설원경은 설수의 조카이고, 안상시는 안사고의 동생이며, 염입본은 염비의 아들이다.

 世民朝謁公事之暇,輒至館中,引諸學士討論文籍,〈朝,直遙翻。論,盧昆翻。〉或夜分乃寢。又使庫直閻立本圖像,〈庫直,隸親事府。〉褚亮爲贊,號十八學士。士大夫得預其選者,時人謂之「登瀛州。」〈自來相傳海中有三神山,蓬萊、方丈、瀛洲,人不能至,至則成仙矣,故以爲喻。〉允恭,大寶之弟子;〈蔡大寶輔後梁主蕭詧。〉元敬,收之從子;〈從,才用翻。〉相時,師古之弟;〈顏師古以碩學名。〉立本,毗之子也。〈閻毗以巧思事隋煬帝。〉

 

 애초에, 두여회는 진왕부의 병조였는데, 잠시 후에 섬주장사로 승진하였다. 그때에 왕부의 먹료들은 대부분 외직에 보임되었으므로 이세민은 이를 걱정하였다. 방현령이 말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애석해 할 것이 없습니다마는 두여회에 있어서만은 제왕을 보좌할  만한 인재이니, 대왕께서 사방을 경영하시려고 하신다면 두여회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세민이 놀라서 말하였다.

 "공의 말이 없었더라면 거의 그를 잃을 뻔 하였소,"

 즉시 주문을 올려서 진왕부의 소속으로 삼았다.

 初,杜如晦爲秦王府兵曹參軍,俄遷陝州長史。〈陝,失冉翻。長,知兩翻。〉時府僚多補外官,世民患之。房玄齡曰︰「餘人不足惜,至於杜如晦,王佐之才,大王欲經營四方,非如晦不可。」世民驚曰︰「微公言,幾失之。」〈幾,居依翻。〉卽奏爲府屬。

 

 방현령과 더불어 항상 이세민을 좇아서 정벌하였고, 유악에서 모의에 참여하였고, 군대 안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두여회는 물흐르듯 해결하였다. 이세민이 군사를 격파하고 성을 함락시킬 때마다 제장과 보좌하는 사람들은 보화를 다투어 빼앗았지만 방현령은 홀로 사람을 골라 뽑아다가 막부로 데려왔다. 또 장수나 보좌하는 사람들 가운데 용기와 지략이 있는 사람은 방현령이 반드시 깊이 연관관계를 만들어 놓고 이세민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게 하였다. 이세민은 매번 방현령으로 하여금 들어가거 일에 관하여 상주하게 하니, 황상이 감탄하며 말하였다.

 "방현령은 내 아이를 위하여 일을 진술하였는데 비록 1천 리가 떨어져 있다 하여도 모두가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것 같구나!"

 與玄齡常從世民征伐,參謀帷幄,軍中多事,如晦剖決如流。世民每破軍克城,諸將佐爭取寶貨,玄齡獨收采人物,致之幕府。又將佐有勇略者,玄齡必與之深相結,〈將,卽亮翻。〉使爲世民盡死力。〈爲,于僞翻;下同。〉世民每令玄齡入奏事,上歎曰︰「玄齡爲吾兒陳事,雖隔千里,皆如面談。」

 

 이현도는 일찍이 이밀을 섬기며 기실이 되었는데, 이밀이 패배하자 관속들은 왕세충의 포로가 되니, 죽을까 두려워하여 모두가 새벽이 될 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홀로 이현도만은 자고 일어나는 것이 태연작약하였는데,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는 것인데, 걱정한다고 면할 수 잇는 것은 아니다."

 무리들이 그의 견식과 담량에 탄복하였다.

 李玄道嘗事李密爲記室,密敗,官屬爲王世充所虜,懼死,皆達曙不寐。獨玄道起居自若,曰︰「死生有命,非憂可免!」衆服其識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