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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賊[yǒu zéi ]도적이야!/小寒節仲候鵲始巢地山謙山茶(冬柏)風4日(陰12/1)辛酉

solpee 2021. 1. 12. 15:47

《隋紀7 大業 12》 (丙子, 616)

 

 

 ③. 3월, 上巳日(3월의 첫 번째 巳일을 上巳 또는 三巳일이라 했다. 삼국 위진 이후에 3.3일로 고정됨. 이날 물가에서 제사지내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곡수에서 제사지내고 놀이를 즐겼다.)에 황제는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서쪽 정원의 물 위에서 술을 마셨는데, 학사 두보에게 《水飾圖經》을 찬술하게하고, 옛날에 물에서 하던 놀이 72개를 채록하도록 명령하고,  조산대부 황곤을 시켜서 나무로 그것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기녀가 젓는 배와 술자리가 있는 배를 가지고 그 사이로 들어가자 사람과 물건이 스스로 움직여서 살아있는 것과 같게 하고, 종경과 아쟁 그리고 비파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③. 三月,上巳,帝與羣臣飲於西苑水上,命學士杜寶撰《水飾圖經》,采古水事七十二,使朝散大夫黃袞以木爲之,間以妓航、酒船,〈朝,直遙翻。散,悉亶翻。間,古莧翻。妓,渠綺翻。航,戶郎翻。〉人物自動如生,鍾磬箏瑟,能成音曲。

 

 

 ⑤. 이름,4월 1일에 대업전의 서원에 불이 났는데, 황제는 도적이 일어난 것으로 여기고 놀라 달아나 서쪽 정원으로 들어가 풀 사이에 숨었다가 불이 진정되자 마침내 돌아왔다. 황제는 8년 이후부터 매일 밤에 잠을 자다가 항상 놀라서 두근거리며 '도적이야'고 말하여 몇 명의 부인으로 하여금 흔들고 쓰다듬도록 하고서야 마침내 잠을 잘 수 있었다.

 ⑤. 夏,四月,丁巳,大業殿西院火,帝以爲盜起,驚走,入西苑,匿草間,火定乃還。〈還,從宣翻,又如字。〉帝自八年以後,每夜眠恆驚悸,〈恆,戶登翻。悸,其季翻,心動也。〉云有賊,令數婦人搖撫,乃得眠。

 

 

 ⑧. 10일에 황제가 경화궁에서 반딧불을 찾아오도록 하여 몇곡을 얻었는데, 밤에 밖으로 나가 산에서 놀고 반딧불을 놓아주니 빛이 가파른 골짜기에 두루 퍼졌다.

 ⑧. 壬午,〈【張︰「壬午」作「甲午」。】〉帝於景華宮徵求螢火,得數斛,夜出遊山,放之,光遍巖谷。〈《考異》曰︰吳兢《貞觀政要》︰「貞觀八年,上謂侍臣曰︰『人君之言不可容易,隋煬帝幸甘泉宮,怪無螢火,敕云︰「捉取少多,於宮照夜。」所司遽遣數千人採拾,送五百轝於宮側。小事尚爾,況其大乎!』」今從《隋書》。〉

 

 

 ⑨. 황제가 시신에게 도적에 관하여 물으니,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이 말하였다.

 "점차 적어집니다."

 황제가 말하였다.

 "종래에 비해 적어진 것이 어느 정도인가?"

 대답하였다.

 "10분의 1입니다."

 납언 소위가 몸을 당겨 기둥에 숨었는데 황제가 불러서 앞으로 나오게 하고 묻자, 대답하였다.

 "신이 맡은 바가 아니어서 많고 적은 것을 다 알지 못하나 다만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⑨. 帝問侍臣盜賊,左翊衞大將軍宇文述曰︰「漸少。」帝曰︰「比從來少幾何?」對曰︰「不能什一。」納言蘇威引身隱柱,帝呼前問之,對曰︰「臣非所司,不委多少,〈委,悉也。少,詩沼翻。〉但患漸近。」

 

 황제가 말하였다.

 "무엇을 말하는가?"

 소위가 말하였다.

 "다른 날에는 도적이 장백산(산동 추현남부)을 점거하였지만 지금은 가까이 사수(하남형양서북)에 있습니다. 또 지난날에 있었던 조세와 전부 그리고 부역하던 정남은 지금 모두 어디에 ㅜ있습니까? 어찌 그 사람들이 모두 변화하여 도적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래 도적에 관한 주문을 보건대, 모두 사실대로 하지 않아 드디어 지원하는 계책에서 빠뜨려 때에 맞추어 자르고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또 옛날에 안문(산서대현)에서 요동 정벌을 철수하는 것을 허락하시고 지금 다시 징발하니 도적이 무엇으로 잠잠해지겠습니까?"

 황제는 기뻐하지 않고 해산하였다.

 帝曰︰「何謂也?」威曰︰「他日賊據長白山,今近在汜水。〈《隋志》,汜水縣屬滎陽郡,舊曰成皋,開皇十八年,改曰汜水。汜,音似。〉且往日租賦丁役,今皆何在!豈非其人皆化爲盜乎!比見奏賊皆不以實,〈比,毗至翻。〉遂使失於支計,不時翦除。又昔在鴈門,許罷征遼,今復徵發,〈復,扶又翻。〉賊何由息!」帝不悅而罷。

 

 얼마 후 5월 5일에 백관이 대부분 진귀한 완구를 헌상하였는데, 소위 혼자서 《尚書》를 헌상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참소하였다.

 "《尚書》에는 《五子之歌》가있는데 소위의 속마음이 매우 불손합니다."

 황제는 더욱 화를 냇다. 얼마 지나서 황제가 소위에게 고리를 정벌하는 일을 묻자, 소위는 황제가 천하에 도적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어서 대답하였다.

 "이번 전쟁에서 바라건대 군사를 징발하지 않고 다만 여러 도적들을 사면하면 자연히 수십만을 얻을 수 있으니, 그들을 파견하여 동쪽을 정벌하십시오. 저들은 죄를 면제받은 것을 기뻐하며 다투어 공로를 세우기에 힘쓸것이니, 고리를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황제가 채택하지 않았다.

 尋屬五月五日,〈屬,之欲翻。〉百僚多饋珍玩,威獨獻《尚書》。或譖之曰︰「《尚書》有《五子之歌》,威意甚不遜。」〈言威以帝逸豫盤遊不知返,將至失邦,如夏太康也。尚,而亮翻。孔安國曰︰以其上古之書,謂之《尚書》。〉帝益怒。頃之,帝問威以伐高麗事,〈麗,力知翻。〉威欲帝知天下多盜,對曰︰「今茲之役,願不發兵,但赦羣盜,自可得數十萬,遣之東征。彼喜於免罪,爭務立功,高麗可滅。」〈麗,力知翻。〉帝不懌。

 

 소위가 나가자 어사대부 배온이 상주하였다.

 "이것은 대단히 불손한 것입니다. 천하의 어느 곳에 허다한 도적이 있다는 것입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이 노혁은 간사한 것이 많아서 도적을 가지고서 나를 협박하는구나! 그 입을 때리고 싶으나 또 다시 숨기고 참는다."

 威出,御史大夫裴蘊奏曰︰「此大不遜!天下何處有許多賊!」帝曰︰「老革多姦,〈《蜀志》︰彭羕詆劉備曰︰「老革荒悖!」《註》云︰老革,皮色枯瘁之形。羕罵備爲老革,猶言老兵也。帝引此語。〉以賊脅我!欲批其口,且復隱忍。」〈批,蒲鱉翻,又普迷翻。復,扶又翻。〉

 

 배온이 황제의 속마음을 알고 하남에 사는 평민인 장행본을 파견하여 상주하게 하였다.

 "소위는 예전에 고양(정주)에서 사람 선발하는 일을 관장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관직을 멋대로 주고 돌궐을 두려워하여 경사로 돌아오기를 청하였습니다."

 황제는 조사하도록 시켜서 옥사가 이루어지자 조서를 가지고 소위의 죄상을 하나하나 들추어내고 제명하여 서민으로 삼도록 하였다. 그 뒤로 한 달이 넘어서 다시 소위가 돌궐과 더불어 몰래 불구ㅖ한 짓을 도모한다고 상주한 사람이 있었고, 그 일을 배온에게 내려 보내어 처리하도록 시켰는데, 배온은 소위를 사형에 처하였다. 소위는 스스로 밝힐 방법이 없자 다만 생각을 꺾고 사과할 따름이었다. 황제는 그를 측은히 여기고 석방하며 말하였다.

 "차마 바로 죽이지 못하겠다."

 아울러 그의 자손 3세대는 모두 제명되었다.

 蘊知帝意,遣河南白衣張行本〈《隋志》︰洛州河南郡,大業二年移都,改曰豫州。〉奏︰「威昔在高陽典選,〈謂九年從帝自遼東還高陽時。選,宣戀翻。〉濫授人官;畏怯突厥,請還京師。」〈事見上卷上年。厥,九勿翻。〉帝令按驗,獄成,下詔數威罪狀,〈數,所具翻。〉除名爲民。後月餘,復有奏威與突厥陰圖不軌者,〈復,扶又翻。厥,九勿翻。〉事下裴蘊推之,蘊處威死。〈下,遐嫁翻。處,昌呂翻。〉威無以自明,但摧謝而已。帝憫而釋之,曰︰「未忍卽殺。」幷其子孫三世皆除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