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騎虎之勢[qí hǔ zhī shì]/冬至節仲候麋角解初日(陰11/12)癸卯

solpee 2020. 12. 26. 05:36

《南北朝 陳紀8 宣帝 太建 12年》 (庚子, 580)

 

 

 ⑪. 주의 楊后는 성품이 유순하고 온화하여 투기하지 않으니 네 황후와 嬪과 御 등이 모두 경애하여 그녀를 우러러 보았다. 천원의 혼미함과 난폭함이 더욱 심해져서 기뻐하거나 분노함에서 정도에 어긋났으며, 일찍이 황후를 견책하며 그녀에게 죄를 더하려고 하였다. 황후는 나아가고 머무는 것이 상세하고 여유로움이 있고 말씨와 얼굴빛이 꺾이지 않자 천원이 크게 화를 내며 드디어 황후에게 죽음을 내려 책임을 지고 자결하도록 압박하였는데, 황후의 어머니 독고씨가 합문에 도달하여 사죄를 올리고 머리를 땅에 박으며 피를 흘리니 그런 연후에야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⑪. 周楊后性柔婉,不妬忌,四皇后及嬪、御等,咸愛而迎之。〈嬪,內官九嬪也。嬪,婦也,能行婦道者也。御,侍也,進也,進御於君者也。嬪,毗賓翻。〉天元昏暴滋甚,喜怒乖度,嘗譴后,欲加之罪。后進止詳閑,辭色不撓,〈譴,詰戰翻。詳,審也,諦也。閑,暇也,習也。撓,曲也,又動亂也。撓,女巧翻,又女敎翻。〉天元大怒,遂賜后死,逼令引訣,〈《漢書》多作「引決」,謂引分自裁也。訣,別也。令,力丁翻。〉后母獨孤氏〈獨孤氏,信之女也。〉詣閤陳謝,叩頭流血,然後得免。

 

 황후의 아버지인 대전의 양견은 지위와 명망이 융중해지자 천왕이 그를 시기하여 일찍이 이로 인하여 화를 내며 황후에게 말하였다.

 "반드시 너의 가문을 멸족시킬 것이다."

 이어서 양견을 소환하고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얼굴빛이 변하면 즉시 그를 죽여라."

 后父大前疑堅,位望隆重,天元忌之,嘗因忿謂后曰︰「必族滅爾家!」因召堅,謂左右曰︰「色動,卽殺之。」

 

 양견이 도착하였는데, 신색이 태연자약하자 마침내 중지하였다.

 내사 상대부 정역이 양견과 더불어 젊었을 떄에 함께 공부를 하였는데, 양견의 상모와 의표가 기이하여서 마음을 기울여 서로 교분을 맺었다. 양견이 이미 황제에게 시기를 받게 되자 속으로 스스로 편안해 하지 못하여 일찍이 영항에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정역에게 말하였다.

 "오랫동안 번지로 나가기를 원한 것은 공께서 알고 잇는 바이니, 바라건대 조금이라도 유념하여주시오."

 정역이 말하였다.

 "공의 덕망을 가지고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오게 하였소. 많은 복을 구하려고 하는데 어찌 감히 잊겠소? 삼가 그것을 말하겠소."

 堅至,神色自若,乃止。內史上大夫鄭譯,與堅少同學,〈少,詩照翻。〉奇堅相表,〈相,息亮翻。〉傾心相結。堅旣爲帝所忌,情不自安,嘗在永巷,〈永巷,宮中長巷。〉私於譯曰︰〈身事不敢昌言之,故曰私。〉「久願出藩,公所悉也,〈出藩,謂出補外藩。悉,諳究也。〉願少留意!」〈少,詩沼翻。〉譯曰︰「以公德望,天下歸心。欲求多福,豈敢忘也!〈鄭譯被寵於天元爲如何,天元無恙而與楊堅於宮中私言,至及於此,小人傾覆,何可託邪!〉謹卽言之。」

 

 천원이 장차 정역을 파견하여 침략하려 하자, 정역이 원수를 요청하였다. 천원이 말하였다.

 "경의 생각은 어떠하오?"

 대답하였다.

 "만약 강동을 평정한다면 스스로 외척이나 중신이 아니면 진수하고 위무할 수 없으니 수공으로 하여금 떠나게 하시고, 또한 수양총관으로 삼아서 군사업무를 감독하게 하십시오."

 천원이 그것을 좇았다. 5일에 양견을 양주총관으로 삼고, 정역으로 하여금 군사를 징발하여 수양에 모이게 하였다. 장차 떠나려고 할 때에 마침 양견에게 발에 병이 생겨 결과적으로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天元將遣譯入寇,譯請元帥。〈帥,所類翻。〉天元曰︰「卿意如何?」對曰︰「若定江東,自非懿戚重臣,〈懿,專久而美也,大也。〉無以鎭撫,可令隨公行,〈以楊爵稱之。〉且爲壽陽總管以督軍事。」天元從之。己丑,以堅爲揚州總管,使譯發兵會壽陽。〈壽陽屬南則爲豫州,屬北則爲揚州。〉將行,會堅暴有足疾,不果行。〈先無此疾而忽有此疾曰暴。暴,猝暴也。〉

 

 10일 밤중에 천원은 법가를 준비하여 천흥궁에 행차하였고, 11일에 불예하여 돌아갔다. 소오정인 박릉 사람 유방은 평소에 교활하게 아첨하여 천원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어정 중대부 안지의와 더불어 나란히 가까이하고 신임을 받았다. 천원이 유방과 안지의를 불러 와내에 들어오게 하고 후사를 부탁하고자 하엿으나, 천원이 벙어리가 되어 다시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유방이 정제는 너무 어리다고 보고, 양견이 황후의 부친이며 두터운 명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드디어 영내사 정역·어식대부 유구·내사대부인 두릉 사람 위오·어정하사인 조나 사람 황보적과 더불어 양견을 이끌어내어 정사를 보좌하도록 모의하였으나, 양견이 굳게 사양하며 감히 맡지 않았는데, 유방이 말하였다.

 甲午夜,天元備法駕,幸天興宮;乙未,不豫而還。〈還,音旋,又如字。〉小御正博陵劉昉,素以狡諂得幸於天元,〈杜佑曰︰周御正屬天官。御正,中大夫,五命。小御正,下大夫,四命。昉,分罔翻。猝,古巧翻,猾也。〉與御正中大夫顏之儀並見親信。天元召昉、之儀入臥內,欲屬以後事,天元瘖,不復能言。〈寢室謂之臥內。屬,之欲翻。瘖,於今翻。復,如字,又扶又翻。〉昉見靜帝幼沖,〈沖,亦幼也。周成王率稱「沖人」、「沖子」。〉以楊堅后父,有重名,遂與領內史鄭譯、〈鄭譯以內史上大夫領內史。〉御飾大夫柳裘、〈周置御飾大夫,掌御飾;其御服又置司服掌之。〉內史大夫杜陵韋謩、〈杜陵,漢、晉皆屬京兆,後隋併入京兆大興縣,其地在隋、唐長安城南。謩,與謨同。〉御正下士朝那皇甫績〈朝那縣,屬安定郡。後周下士,二命。〉謀引堅輔政,堅固辭,不敢當;昉曰︰

 

 "공께서 만약 맡으시려거든 신속히 이를 결정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나 유방이 스스로 맡을 것이오."

 양견은 마침내 이를 좇으며 조서를 받고 금중에서 모시고 간병한다고 하였다. 유구는 유염의 손자이다.

 「公若爲,速爲之;不爲,昉自爲也。」堅乃從之,稱受詔居中侍疾。裘,惔之孫也。〈柳惔,柳元景之從孫,世隆之子,世仕江南。江陵陷,柳氏入關中,遂臣於周。惔,徒甘翻。〉

 

 이날에 황제가 죽었다. 비밀에 붙이고 발상을 하지 않았다. 유방과 정역은 조서를 고쳐서 양견을 총지중외병마사로 하였다. 안지의는 황제의 뜻이 아님을 알고 거절하며 좇지 않앗다. 유방 등이 조서를 기초하고 서명을 마친 다음 안지의에게 가서 이어서 서명을 하도록 하였으나, 안지의(안지추의 동생)가 성난 소리로 말하였다.

 是日,帝殂。〈年二十二。殂,祚乎翻。〉祕不發喪。昉、譯矯詔以堅總知中外兵馬事。〈《考異》曰︰《周‧帝紀》︰「乙未,帝不豫,還宮,詔堅入侍疾。丁未,追五王入朝。己酉,大漸,昉、譯矯制以堅受遺輔政。是日,帝崩。」按堅以變起倉猝,故得矯命當國。若自乙未至己酉,凡十五日,事安得不泄!今從《隋‧帝紀》。〉顏之儀知非帝旨,拒而不從。昉等草詔署訖,逼之儀連署,之儀厲聲曰︰

 

 "주상께서 승하하시고 사자는 너무 어리니 아형의 책임은 마땅히 종실의 영재에게 있어야 하오. 바야흐로 지금 조왕이 가장 나이가 많으니 중임을 기탁하기에 합당하오. 공 등은 조정의 은전을 온전히 받았으므로 마땅히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은하려는 생각을 하여야 하는데,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또한 신기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줄 수 있겠소? 나 안지의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고, 돌아가신 황제를 기망할 수는 없소."

 「主上升遐,〈《記‧曲禮》︰告喪曰天王登假。鄭玄曰︰登,上也;假,已也。上已者,言若仙去云耳。登,猶升也。假,與遐同,音霞。〉嗣子沖幼,〈靜帝時年八歲。〉阿衡之任,〈商相伊尹輔太甲,稱阿衡。孔安國《傳》曰︰阿,倚;衡,平。〉宜在宗英。〈才過人曰英。宗英,宗室之中其才過人者。〉方今趙王最長,以親以德,合膺重寄。〈趙王,謂趙王招,於靜帝諸大父行中,其年最長。長,知兩翻。膺,當也。〉公等備受朝恩,〈朝,直遙翻。〉當思盡忠報國,柰何一旦欲以神器假人!〈《老子》︰天下神器,爲者敗之,執者失之。《註》云︰大寶之位,是天地神明之器,故不可以力爲也。又曰︰國之利器,不可以授人。〉之儀有死而已,不能誣罔先帝。」

 

 유방 등이 굴복하지 않을 것을 알고 마침내 안지의를 대신하여 서명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여러 위관들이 이미 칙령을 받고 아울러 양견의 통제를 받았다.

 양견은 친왕들이 밖에서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천금공주를 장차 돌궐로 시집을 보내는 것을 핑계로 하여 조왕·진왕·월왕·대왕·승왕의 다섯 왕을 징소하고 입조하게 하였다.

 昉等知不可屈,乃代之儀署而行之。諸衞旣受敕,並受堅節度。〈周自左‧右宮伯至左‧右羽林、游擊,皆諸衞官也。〉

堅恐諸王在外生變,以千金公主將適突厥爲辭,徵趙、陳、越、代、滕五王入朝。〈五王就國,見上卷上年。厥,九勿翻。朝,直遙翻。〉

 

 양견이 부절과 옥새를 찾으니, 안지의가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천자의 물건으로 스스로 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재상께서 무슨 까닭으로 그것을 찾으십니까?"

 양견이 몹시 화가 나서 끌어내도록 명령하고 장차 그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백성들의 명망 때문에 내쳐서 서변군 태수로 삼았다.

 堅索符璽,〈符,謂兵符。璽,謂天子六璽。索,山客翻。璽,斯氏翻。〉顏之儀正色曰︰「此天子之物,自有主者,宰相何故索之!」〈索,山客翻,〉堅大怒,命引出,將殺之;以其民望,出爲西邊郡守。〈「西邊」,恐當作「西疆」。《五代志》︰臨洮郡合川縣,後周置,仍立西疆郡。《考異》曰︰《北史‧鄭譯傳》,「之儀與宦者謀引大將軍宇文仲輔政。仲已至御坐,譯知之,遽率開府楊惠及劉昉、皇甫績、柳裘俱入。仲與之儀見譯等,愕然,逡巡欲出,隋文因執之。於是矯詔復以譯爲內史上大夫。明日,隋文爲丞相,拜譯柱國府長史。」按之儀若爾,豈復得全!今從《之儀傳》。〉

 

 23일에 궁상을 발표하엿다.

..............중략.................

 丁未,發喪。靜帝入居天臺,罷正陽宮。〈置正陽宮見上卷上年。〉大赦,停洛陽宮作。〈治洛陽宮見上卷上年二月。〉庚戌,尊阿史那太后爲太皇太后,李太后爲太帝太后,〈靜帝祖母也。〉楊后爲皇太后,朱后爲帝太后,〈靜帝嫡母、生母也。〉其陳后、元后、尉遲后並爲尼。〈皆不以德選,以色進者也。尼,女夷翻。〉以漢王贊爲上柱國、右大丞相,〈贊,靜帝叔父也。周人上右。相,息亮翻。〉尊以虛名,實無所綜理。以楊堅爲假黃鉞、左大丞相,秦王贄爲上柱國。百官總己以聽於左丞相。〈孔子曰︰君薨,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朱熹曰︰各總攝己職以聽也。余謂若此者必有伊、周之臣而後可。〉

堅初受顧命,〈顧命始於周成王。孔安國曰︰臨終之命曰顧命。余謂顧命者,言天子登遐,若回顧而有所言也。陸德明曰︰顧,工戶翻。〉使邗國公楊惠〈邗,音寒,又古寒翻。〉謂御正下大夫李德林曰︰「朝廷賜令總文武事,經國任重。今欲與公共事,必不得辭。」德林曰︰「願以死奉公。」堅大喜。始,劉昉、鄭譯議以堅爲大冢宰,譯自攝大司馬,昉又求小冢宰。〈後周置小冢宰,上大夫也,六命。按《爾雅》︰冢,大也。鄭玄曰︰冢,大之上也。冢宰之上不宜加小字,故《周官》止曰小宰。昉,分罔翻。冢,知隴翻。〉堅私問德林曰︰「欲何以見處?」〈處,昌呂翻。〉德林曰︰「宜作大丞相、假黃鉞、都督中外諸軍事,不爾,無以壓衆心。」〈如昉、譯之言,大冢宰雖六官之長,然猶與諸公等夷。德林所言,則宇文泰所以輔魏者也。不爾,猶言不如此也。相,息亮翻。壓,於甲翻。〉及發喪,卽依此行之。以正陽宮爲丞相府。

時衆情未壹,〈言周之朝臣未盡歸心於堅。〉堅引司武上士盧賁置左右。〈賁,扶分翻。〉將之東宮,〈正陽宮,本東宮也。〉百官皆不知所從。堅潛令賁部伍仗衞,〈仗衞,執仗而宿衞之兵也,盧賁以司武上士統之。楊堅潛令賁,此舉爲如何?〉因召公卿,謂曰︰「欲求富貴者宜相隨。」〈觀堅此言,則其夙心可知矣。〉往往偶語,欲有去就,賁嚴兵而至,衆莫敢動。出崇陽門,〈崇陽門,周宮城之東門。〉至東宮,門者拒不納,賁諭之,不去;瞋目叱之,〈瞋,昌眞翻。〉門者遂卻,堅入。賁遂典丞相府宿衞。〈盧賁遂爲楊堅私人矣。〉賁,辯之弟子也。〈盧辯,與蘇綽共定後周官制者也。〉以鄭譯爲丞相府長史,〈長,知兩翻。〉劉昉爲司馬,李德林爲府屬,〈丞相府有掾有屬。〉二人由是怨德林。

內史下大夫勃海高熲〈按《隋書》︰高熲自云勃海蓨人。熲,古迥翻。〉明敏有器局,習兵事,多計略,堅欲引之入府,〈引之入丞相府爲官屬。〉遣楊惠諭意。〈楊惠,堅族子也。堅初秉周政,欲引時才,故率使之諭意。堅旣受禪,封觀王,改名雄。〉熲承旨,欣然曰︰「願受驅馳。縱令公事不成,熲亦不辭滅族。」乃以爲相府司錄。〈司錄,總錄一府之事。令,力丁翻。相,息亮翻。〉

時漢王贊居禁中,每與靜帝同帳而坐。劉昉飾美妓進贊,〈妓,渠綺翻,女樂也。〉贊甚悅之。昉因說贊曰︰「大王,先帝之弟,時望所歸。孺子幼沖,豈堪大事!〈說,輸芮翻。孺子,謂靜帝。〉今先帝初崩,人情尚擾。王且歸第,待事寧後,入爲天子,此萬全計也。」贊年少,〈少,詩照翻。〉性識庸下,以爲信然,遂從之。

 

 양견은 선제의 가혹한 정치를 변혁시키고 더욱 관대하게 하여 옛날의 법률을 삭제하고 생략하여 《刑書要制》를 작성하고 주청하여서 이것을 시행하였는데, 몸소 근검하고 절약하니, 안팎의 사람들이 이것을 기뻐하였다.

 堅革宣帝苛酷之政,更爲寬大,删略舊律,作《刑書要制》,奏而行之;躬履節儉,中外悅之。〈賈誼曰︰寒者利裋褐,飢者甘糟糠;天下之嗷嗷,新主之資也。古之得天下,必先有以得天下之心,雖姦雄挾數用術,不能外此也。更,工衡翻。〉

 

 양견이 밤중에 태사 중대부(천문 역수 담당) 유계재를 불러서 물었다.

 "나는 용렬하지만 텅 빈 마음으로 이 고명을 받았소. 하늘의 때와 사람이 할 일에 대하여 경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오?"

 유계재가 말하였다.

 "하늘의 도는 자세허고도 미묘하여 뜻을 살피기가 어렵습니다. 가만히 생가건대 사람이 할 일을 가지고서 그것을 점친다면 부명의 징조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저 유계재가 설령 안된다고 말해도 공께서는 어찌 다시 기산과 영수의 일(요가 허유에게 선양, 허유가 기산으로 도망하고 영수에서 귀를 씻음)을 할 수 있겠습니까?"

 堅夜召太史大夫庾季才,〈太史掌天文曆數。周制︰太史中大夫,屬春官,五命。〉問曰︰「吾以庸虛,〈庸,言身無所能;虛,言胸中無所有;謙辭也。〉受茲顧命。天時人事,卿以爲何如?」季才曰︰「天道精微,難可意察。竊以人事卜之,符兆已定。〈符,讖也,證也,驗也。兆,龜坼文也,又人事之兆朕也。〉季才縱言不可,公豈復得爲箕、潁之事乎!」〈司馬貞曰︰堯讓天下於許由,由遂逃於箕山,洗耳於潁水。復,扶又翻,又音如字。〉

 

 양견이 아무 말없이 오래 있다가 말하였다.

 "진실로 그대의 말과 같도다."

 독고부인 또한 양견에게 말하였다.

 "대사가 이미 이리하여 기호지세이므로 반드시 내려올 수 없을 것이니 이를 힘쓰십시오."

 堅默然久之,曰︰「誠如君言。」獨孤夫人亦謂堅曰︰「大事已然,騎虎之勢,必不得下,勉之!」〈獨孤夫人,堅妃也。騎虎而下,必爲所噬。〉

 

 양견은 상주총관 울지형의 지위와 명망에서 평소 존중받고 있어서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을까 두려워하여 울지형의 아들인 위안공 울지돈으로 하여금 조서를 받들어 그를 불러서 장례에 참석하게 하였다. 28일에 상주국 위효관을 상주총관으로 삼았고, 또한 소사도 질렬장차를 상주 자사로 삼고 먼저 업으로 가게 하였고, 위효관도 이어서 따라갔다.

 堅以相州總管尉遲迥位望素重,恐有異圖,〈相,息亮翻。尉,紆勿翻。〉使迥子魏安公惇奉詔書召之會葬。〈魏安郡公。《五代志》,武威郡昌松縣有後魏魏安郡。註詳見後。〉壬子,以上柱國韋孝寬爲相州總管;又以小司徒叱列長义爲相州刺史,〈叱列,虜複姓,出於拓跋氏西部,後爲周之戚里。〉先令赴鄴;孝寬續進。〈鄴,相州總管治所。〉

 

 진왕 우문순이 당시 제주에서 진수하고 있었는데, 양견이 문정상사 최팽으로 하여금 그를 부르게 하였다. 최팽이 두 기병을 데리고 전사에 가서 머무르면서 사람을 보내어 우문순을 불렀다. 우문순이 도착하자, 최팽은 좌우의 사람들을 물리고 은밀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청하고 드디어 그를 붙잡아서 쇠사슬로 묶고 이어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陳王純時鎭齊州,〈純就國於濟南。濟南郡,齊州也。〉堅使門正上士崔彭徵之。〈門正,掌門關啓閉之節及出入門者。〉彭以兩騎往止傳舍,〈騎,奇寄翻。傳,張戀翻。〉遣人召純。純至,彭請屛左右,密有所道,〈屛,必郢翻。道,言也。〉遂執而鎖之,因大言曰︰

 

 "진왕은 죄가 있어서 조서를 내려 들어와서 조현하도록 징소하였으니, 좌우의 사람들은 문득 움직이지 마라."

 그를 좇던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물러갔다. 최팽은 최해의 손자이다.

 6월에 다섯 명의 친왕들이 모두 장안에 도착하였다.

 「陳王有罪,詔徵入朝,左右不得輒動!」其從者愕然而去。〈朝,直遙翻。從,才用翻。〉彭,楷之孫也。〈崔楷死職見一百五十一卷梁武帝大通元年。〉

六月,五王皆至長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