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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梁의 경제 소방지가 진패선에게 양위하다/大雪節中候虎始交2日(陰10/29)庚寅

solpee 2020. 12. 12. 15:32

 

《南北朝 陳紀1 武帝 永定 元年》 (丁丑, 557)

 

 

 ㉝. 겨울, 10월 13일에 陳公의 작위를 올려서 왕으로 삼았다. 6일에 양의 황제가 진에게 선양하였다.(502년 송으로부터 탈취한 후 4황제 56년 만에 선양이라는 명목으로 빼앗김)

 ㉝. 冬,十月,戊辰,進陳公爵爲王。辛未,梁敬帝禪位于陳。〈梁天監元年受禪,四主,五十六年而亡。

 

 ㉟. 陳霸先이 중서사인 유사지로 하여금 선맹장군 심각이 군사를 챙겨가지고 입궁하게 하고, 양의 주군을 호송하여 별궁으로 가게하였다. 심각은 문을 밀치고 들어가서 왕(진패선)을 알현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며 말하였다.

 "저 심각은 몸소 이미 소씨를 섬겨왔는데, 오늘 차마 이러한 것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분수로 보아 죽음을 받을 뿐이며, 결단코 명령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㉟. 陳王使中書舍人劉師知引宣猛將軍沈恪勒兵入宮,衞送梁主如別宮,〈陳受禪後,國之政事並由中書省,有中書舍人五人,分掌二十一局,各當尚書諸曹,並爲上司,總國內機要,尚書唯聽受而已。劉師知,陳王所親任者也。宣猛將軍,班第九。〉恪排闥見王,叩頭謝曰︰「恪身經事蕭氏,〈侯景園臺城,恪爲右軍將軍、東土山主,以拒戰功封東興縣侯。〉今日不忍見此。分受死耳,〈分,扶問翻。〉決不奉命!」

 

 왕이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다시는 압박하지 않고, 고쳐서 탕주(직탕도독) 왕승지로 그를 대신하게 하였다. 10일에 왕이 남교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궁궐로 돌아와서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고쳤다. 양의 경제를 받들어서 강음왕으로 하고, 양의 태후를 태비라고 하였으며, 황후를 비라고 하였다.

 王嘉其意,不復逼,〈復,扶又翻。〉更以盪主壬僧志代之。〈盪主,主驍銳跳盪之兵,猶北齊之直盪都督也。盪,徒朗翻,又吐浪翻。〉乙亥,王卽皇帝位于南郊,還宮,大赦,改元。〈始改元爲永定。〉奉梁敬帝爲江陰王,梁太后爲太妃,皇后爲妃。

 

 급사황문시랑 채경력을 비서감·겸중서통서사인으로 삼았다. 이때의 정사는 모두가 중서성에서 말미암아서 21국을 설치하였는데, 각기 상서의 각조에서 담당하였으며 나라의 기밀인 중요한 것을 총괄하고 상서에서는 오직 듣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以給事黃門侍郎蔡景歷爲祕書監、兼中書通事舍人。是時政事皆由中書省,置二十一局,各當尚書諸曹,總國機要,尚書唯聽受而已。〈史言蔡景歷委寄之重。〉

 

 

 ㊱. 11일에 황상(진패선)이 종산에 행차하여 장제묘에서 제사를 지냈다. 15일에 황상이 부처의 치아를 두모택에서 출토하였으며, 무차대회를 배설하여 황제가 친히 궁궐 앞에 나가서 膜拜(막배:佛拜)하였다.

 ㊱. 丙子,上幸鍾山,祠蔣帝廟。庚辰,上出佛牙於杜姥宅,〈齊初,僧統法獻於烏纏國得佛牙,常在定林上寺,梁天監末,爲攝山慶雲寺沙門慧興保藏。慧興將終,以屬弟慧志。承聖末,慧志密送于帝。至是乃出之。〉設無遮大會,帝親出闕前膜拜。〈膜拜,胡禮拜也。膜,莫湖翻。〉

 

 

 ㊲. 16일에 황제의 아버지 진문찬을 추존하여 경황제라 하고 묘호를 태조라 하였으며, 황비 동씨를 안황후라고 불렀고,  이전의 부인이었던 전씨를 추존하여 소황후라고 하고, 세자인 진극을 효희태자라고 하며, 부인인 장씨를 세워서 황후로 삼았다. 장후는 오정 사람이다.

 ㊲. 辛巳,追尊皇考文讚〈【張︰「讚」作「瓚」。】〉爲景皇帝,廟號太祖,皇妣董氏曰安皇后,追立前夫人錢氏爲昭皇后,〈帝先娶同郡錢仲方女,早卒,〉世子克爲孝懷太子,立夫人章氏爲皇后。章后,烏程人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