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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 무제의 면피와 사마광의 평론/小雪節 末候閉塞成冬4日(陰10/21)壬午

solpee 2020. 12. 5. 06:06

《南北朝 梁紀15 武 大同 11 乙丑、545)

 

 주문을 아뢰자 황상은 크게 화를 내며 주서를 면전으로 불러 입으로 칙서를 주어서 하침을 꾸짖었다. 대체적으로 지적하여 단언하였다.

 啓奏,上大怒,召主書於前,口授敕書以責琛。〈蕭子顯曰︰自齊建武以來,詔命不關中書,專出舍人省。四省,謂之四戶。其下有主書令史,舊用武官,末改文吏,人數無員,莫非左右要密。〉大指以爲︰

 

 "짐이 천하를 소유한 지 40여 년인데, 공거가 바른 말을 하여 날마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겪었고, 진술한 일들이 경과 더불어 다르지 않아 매번 힘들이며 바쁘게 고생을 하지만 다시 이를 증가시키니 헛갈리고 곤혹스럽다. 경은 스스로 용렬한 사람과 같이하여 겨우 이름 자나 얻으려고 길거리에서 널리 알리며 말하기를, '나는 일에 관하여 상주하였는데 한스럽게도 조정에서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찌하여 나누어 구별하여 드러내놓지 않는가?

 「朕有天下四十餘年,公車讜言,日關聽覽,〈讜,多曩翻。讜言,善言也,直言也。〉所陳之事,與卿不異,每苦倥偬,〈倥,康董翻。偬,作孔翻。倥偬,困苦也,不暇給也。〉更增惛惑。卿不宜自同闒茸,〈闒,吐盍翻。傇,而隴翻。闒茸,不肖也,劣也。〉止取名字,宣之行路,言『我能上事,恨朝廷之不用。』何不分別顯言︰

 

 즉, 어떤 자사가 제멋대로 포악하게 하며, 어떤 태수가 잔혹하게 탐하며, 상서·난대에 있는 어떤 사람이 간악하고 교활하며, 사신으로 낚시질하고 사냥하는 사람은 또한 성명이 무엇인가? 빼앗아서 준 사람은 누구인가? 그 일을 명백히 말하면 주살하거나 내쫓고 다시 재능 있는 어진 사람을 가릴 것이다.

 某刺史橫暴,〈上,時掌翻。別,彼列翻。橫,戶孟翻。〉某太守貪殘,〈守,式又翻。〉尚書、蘭臺某人姦猾,使者漁獵,並何姓名?〈使,疏吏翻。〉取與者誰?明言其事,得以誅黜,更擇材良。

 

 또 선비와 백성들이 마시고 먹는 것이 지나치다고 하였는데, 만약 더욱 엄하게 금지시킨다면 비밀스런 방이나 담이 둘러쳐진 집은 어찌 알 수가 있는지를 말하라. 만약에 집집마다 찾고 조사하면 아마도 더욱 가혹하고 시끄러움이 늘어날 것이다. 만약에 조정을 지적한 것이라면 나는 이러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예날에는 제사의 재물로 쓰기 위하여 짐승을 잡았지만 오랫동안 잡아 죽이지 않았고, 조정에서 같이 모이기라도 하면 채소뿐이었으며, 만약 다시 이것도 줄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귀뚜라미(蟋蟀:詩經 唐風)라는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又,士民飲食過差,若加嚴禁,密房曲屋,云何可知?儻家家搜檢,恐益增苛擾。若指朝廷,我無此事。昔之牲牢,久不宰殺,〈《周禮》︰王膳用六牲,謂馬、牛、羊、豕、犬、雞也。又曰︰王曰一舉,鼎十有二。《註》曰︰殺牲盛饌曰舉;鼎十有二,牢鼎九、陪鼎三。帝事佛,乃不宰殺。〉朝中會同,菜蔬而已;若復減此,必有《蟋蟀》之譏。〈《詩‧唐‧蟋蟀》,刺晉僖公儉不中禮。朝,直遙翻。復,扶又翻。〉

 

 만약 공덕을 쌓는 일(佛事)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두 정원에서 나온 식물이고 하나의 호박을 변화시켜 수십 종류로 만들었고 하나의 나물을 변화시켜 수십 가지의 맛을 네게 한 것이어서, 변화를 시켜서 많은 것을 만들었으니, 어찌 일에 손해를 끼친 것인가! 나는 스스로 공적으로 여는 잔치가 아니면 나라의 음식을 먹지 않는 일을 여러 해를 거쳐 왔는데, 또한 궁중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르러서도 역시 나라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무릇 건물을 세우고 짓는 것에서는 재관이나 국장이 관계하지 않았으며 모두 물자를 주고 부려서 일을 이루었다.

 若以爲功德事者,〈帝以供佛、供僧,設無遮、無礙會爲功德事。〉皆是園中之物,變一瓜爲數十種,〈種,章勇翻。〉治一菜爲數十味;〈治,直之翻;下同。〉以變故多,何損於事!我自非公宴,不食國家之食,多歷年所;乃至宮人,亦不食國家之食。〈帝奄有東南,凡其所食,自其身以及六宮,不由佛營,不由神造,又不由西天竺國來,有不出於東南民力者乎?惟不出於公賦,遂以爲不食國家之食。誠如此,則國家者果誰之國家邪!〉凡所營造,不關材官及以國匠,〈此自文其營造塔寺之過耳。材官將軍,屬少府卿。國匠者,官給其俸廩以供國家之用者。大匠卿,掌土木之工。〉皆資雇借以成其事。

 

 용감한 것과 비겁한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탐욕과 청렴도 각각 쓰임이 있지만 또 조정이 그들을 돕거나 덮어 감쌀 것이 아니다. 경은 조정이 어그러졋다고 하면서 또한 스스로 그것을 고소하게 여기지만 마땅히 어그러지게 된 이유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경이 이르기를, '마땅히 이를 이끌어서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짐은 30여 년 동안을 방실에서 떨어져 있으면서(房事를 멀리함) 거처에는 단지 하나의 침상만 놓고 사는데, 조각하거나 장식한 물건을 궁에 들여오지 않았고, 살아가면서 술을 마시지도 않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 때문에 조정의 곡연(음란한 연회)에서는 음악을 연주하지 아니하였는데 이는 여러 현명한 사람들이 눈으로 보았던 바이다.

 勇怯不同,貪廉各用,亦非朝廷爲之傅翼。〈爲,于僞翻。傅,讀曰附。〉卿以朝廷爲悖,乃自甘之,當思致悖所以!〈悖,蒲妹翻。〉卿云『宜導之以節儉』,朕絕房室三十餘年,至於居處不過一牀之地,雕飾之物不入於宮;受生不飲酒,不好音聲,所以朝中曲宴,未嘗奏樂,此羣賢之所見也。

 

 짐은 3경에 나가 일을 처리하면서 일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일이 적으면 오전에 마칠 수가 있었고, 일이 많으면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서야 바야흐로 식사를 하였으며, 하루에 항상 한 끼를 먹었고 낮에도 그러하였고 밤에도 그러하였다. 옛날에 허리둘레가 10둘레를 넘었는데 지금은 마르고 줄어들어 겨우 2척여인데, 예전의 허리띠가 아직도 있으니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다.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하엿는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朕三更出治事,隨事多少,事少午前得竟,〈孔穎達曰︰雜比曰音,單出曰聲。竟,畢其事也。處,昌呂翻。好,呼到翻。更,工衡翻。朝,直遙翻。少,詩沼翻。〉事多日昃方食,日常一食,若晝若夜;昔要腹過於十圍,〈要,讀曰腰。〉今之瘦削纔二尺餘,舊帶猶存,非爲妄說。爲誰爲之?救物故也。〈爲誰之爲,于僞翻;下手爲同。〉

 

 경은 또한 말하기를, '百司들이 일을 아로지 앟은 것이 없지만 거짓말을 다투어 하며 진급하기를 요구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밖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올리지 않도록 하게 한다면 누가 그 임무를 주관하겠는가? 오로지 그것을 맡길 사람을 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말하라! 옛 사람이 이르기를, '오로지 듣기만 하면 간사함이 생겨나고(호해와 조고) 홀로 임무를 맡으면 어지러운이 일어난다(원후와 왕망).'고 하였다. 진의 2세는 조고에게 맡겼고, 원후는 왕망에게 넘겨주어서 사슴을 말이라고 불렀으니 또한 본받을 수가 있단 말인가?

 卿又曰『百司莫不奏事,詭競求進』,今不使外人呈事,誰尸其任!〈尸,主也。〉專委之人,云何可得?古人云︰『專聽生姦,獨任成亂,』〈漢鄒陽之言。〉二世之委趙高,元后之付王莽,〈趙高事見《秦紀》,王莽事見《漢紀》。〉呼鹿爲馬,又可法歟?

 

 경이 말하기를, '터럭을 불어서 하자를 찾아낸다.'고 하였는데 다시 이런 사람은 누구인가? '살을 파내듯이 이치를 따진다.'고 하엿는데 다시 이것은  어떤 일인가? 治·署·邸·肆 등 가운데 어떤 것을 마땅히 없애야 하며 어떤 것을 줄여야 하는가? 어느 곳에 짓는 건물이 급하지 않은 것인가? 어느 곳에서 거두고 요구하는 것을 늦출 수가 있는가? 각각 그 일을 끄집어내어 갖추어서 아뢰어라!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를 강하게 하는 술책과 백성을 쉬게 하고 부역을 줄이는 마땅함을 아울러서 마땅히 구체적으로 열거하라! 만약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는다면 이는 조정을 속인 것이다. 거듭 아뢰는 것을 듣고자 하니 마땅히 다시 살피며 두루 보고 그것을 상서에게 맡겨서 차례대로 해내로 내려 보내어 모두 오로지 새로운 아름다움이 다시 오늘에도 볼 수 있게 하라."

 卿云『吹毛求疵』,復是何人?『擘肌分理』,復是何事?〈復,扶又翻;下當復、復見、敢復同。〉治、署、邸、肆等,何者宜除?何者宜減?何處興造非急?何處徵求可緩?各出其事,具以奏聞!富國強兵之術,息民省役之宜,並宜具列!若不具列,則是欺罔朝廷。倚〈【章︰十二行本「倚」作「佇」;乙十一行本同;孔本同。】〉聞重奏,〈倚,側也。側者,傾待之義,如側耳、側身、側席之類。重,直龍翻。〉當復省覽,付之尚書,班下海內,〈省,悉景翻。下,遐嫁翻。〉庶惟新之美,復見今日。」

 

 하침은 단지 사과만 하엿을 뿐이었고 감히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황상은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자애로우며 공손하고 검소하였으며 학문을 널리 익혔고 글을 잘 지엇으며, 음양·복서·騎射·聲律·草隸·圍碁에서 정밀하고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사를 보는 데에도 부지런하여 겨울에도 4경이 끝나면 곧바로 일어나 일을 보면서 추위를 무릅쓰며 붓을 잡아 피부가 얼어서 터졌다.

 琛但謝過而已,不敢復言。

上爲人孝慈恭儉,博學能文,陰陽、卜筮、騎射、聲律、草隸、圍碁無不精妙。〈騎,奇寄翻。〉勤於政務,冬月四更竟,〈夜分五更,每更至五點而竟。〉卽起視事,執筆觸寒,手爲皴裂。〈皴,七倫翻,皮細起也。〉

 

 천감 연간에는 석씨의 법을 채용하면서 오랫동안 재계하며 생선과 고기를 끊었고,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서도 채소국·현미밥을 먹었을 뿐이었고, 어떤 때 일이 번거롭기라도 하여서 정오가 지나면 다만 양치질만 하고 넘겼다. 몸에는 베옷을 입었으며 목면으로 만든 검은 장막을 사용하였고 관 하나를 가지고 3년을 쓰고 이불 하나로 2년을 썼는데 후궁에 있는 귀비 이하의 사람들은 옷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하였다. 성품이 술을 마시지 않았고 종묘의 제사·커다란 향연과 여러 불법에 따른 일이 아니면 음악을 연주한 적이 없었다.

 自天監中用釋氏法,長齋斷魚肉,〈斷,音短。〉日止一食,惟菜羹、糲飯而已,〈糲,盧達翻。糲者,粗而不鑿也。〉或遇事繁,日移中則嗽口以過。〈日移中,日過中也。「嗽」,當作「漱」,滌口也,音先奏翻。過,謂度日也。〉身衣布衣,木緜皁帳,〈木綿,江南多有之,以春二三月之晦下子種之。旣生,須一月三薅其四旁;失時不薅,則爲草所荒穢,輒萎死。入夏漸茂,至秋生黃花結實。及熟時,其皮四裂,其中綻出如綿。土人以鐵鋌碾去其核,取如綿者,以竹爲小弓,長尺四五寸許,牽弦以彈緜,令其勻細。卷爲小筩,就車紡之,自然抽緒,如繅絲狀,不勞紉緝,織以爲布。自閩、廣來者,尤爲麗密。方勺曰︰閩、廣多種木綿,樹高七八尺,葉如柞,結實如大菱而色青,秋深卽開露,白綿茸然。土人摘取,去殼,以鐵杖捍盡黑子,徐以小弓彈令紛起,然後紡績爲布,名曰吉貝;今所貨木綿,特其細緊者耳。當以花多爲勝,橫數之得百二十花,此最上品。海南蠻人織爲巾,上出細字雜花卉,尤工巧,卽古所謂白疊巾。身衣,於旣翻。〉一冠三載,一衾二年,〈載,子亥翻,亦年也。〉後宮貴妃以下,衣不曳地。性不飲酒,非宗廟祭祀、大饗宴及諸法事,未嘗作樂。〈法事,謂奉佛爲梵唄。〉

 

 비록 어두운 방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의관을 다듬었고 조그만 곳에 앉아 있거나 아주 더워도 소매를 걷어 올린 적이없고 궁정 안의 작은 신하 환관을 대하면서도 마치 큰 손님을 만나는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사인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州牧·군수들 대부분이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차지하고 사신들은 郡縣을 간섭하며 어지럽게 하였다. 또 가까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소인들에게 일을 맡기니, 자못 가혹하게 살피는 일로 다치게 하엿으며, 많은 불탑과 사묘를 만들어서 공사 간에 비용을 들게 하였다. 강남이 오랫동안 안정되엇으나 풍속이 사치하고 화려하였으니 이런 까닭으로 하침이 아뢰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황상은 그가 사실을 건드린 것을 싫어하였고 그러므로 화를 낸 것이다.

 雖居暗室,恆理衣冠,小坐、盛暑,未嘗褰袒,〈小坐,宮中便坐也。恆,戶登翻。坐,徂臥翻。〉對內豎小臣,如遇大賓。然優假士人太過,牧守多浸漁百姓,使者干擾郡縣。又好親任小人,〈守,式又翻。使,疏吏翻。好,呼到翻。〉頗傷苛察;多造塔廟,公私費損。江南久安,風俗奢靡,故琛啓及之。上惡其觸實,〈惡,烏路翻。〉故怒。

 

 사마광이 평론하였다.

 "양 고조가 不終하였는데, 당연하도다! 무릇 인군이 듣고 받아들이는데 잇어서의 실수란 자질구레하고 번잡한 데 있으며, 신하가 대신할 대책을 바치는 데서의 병통은 번잡하고 자질구레한 데 있습니다. 이리하여서 명군이 지켜야 하는 도리는 만기의 근본을 통제하는 것이며, 충신이 아뢰는 커다란 본질은 군주의 마음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니, 그러므로 몸을 힘들게 하지 않아도 멀리서 공을 세워 거두어들이고 말을 간략하게 하여도 이로움이 큰 것입니다.

 臣光曰︰梁高祖之不終也,宜哉!夫人君聽納之失,在於叢脞;〈孔安國曰︰叢脞,細碎無大略。馬融曰︰叢,總也。脞,小也。陸德明曰︰脞,倉果翻;徐音鎖。〉人臣獻替之病,在於煩碎。是以明主守要道以御萬機之本,忠臣陳大體以格君心之非,故身不勞而收功遠,言至約而爲益大也。

 

 무릇 하침의 간언을 살피건대, 아직은 절실하고 곧음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고조가 이미 분명하게 놀라 크게 화를 낸 것은 그의 단점을 지키고 그의 장점을 자랑한 것인데, 탐욕스럽고 포악한 주동자의 이름을 캐묻거나 번다하게 쓰는 비용의 조목을 묻는 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지고 곤란하게 하여 반드시 궁색한 말을 하도록 꾸짖은 것입니다.

 觀夫賀琛之諫未〈【章︰十二行本「未」上有「亦」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至於切直,而高祖已赫然震怒,護其所短,矜其所長;詰貪暴之主名,〈詰,去吉翻。〉問勞費之條目,困以難對之狀,責以必窮之辭。

 

 스스로 푸성귀 반찬의 검소함을 가지고 대단한 품덕이라 여기고, 해가 기울도록 힘써 일하여 지극한 다스림으로 여겼으니, 군주의 도리가 이미 갖추어져 잇고 다시 더할 것이 없다 한 것이니 여러 신하들이 바르게 충고하여도 들추어내어 듣고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으니, 그 박의 간절하고 올바름을 말한 것이 하침이 한 것보다도 지나칠 것인데 누가 감히 나아가 말하겠습니까?

 自以蔬食之儉爲盛德,日昃之勤爲至治,〈昃,阻力翻。治,直吏翻。〉君道已備,無復可加,〈復,扶又翻。〉羣臣箴規,舉不足聽。如此,則自餘切直之言過於琛者,誰敢進哉!

 

 이로 말미암아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이 앞에 머무르고 있는데도(朱异、周石珍) 보지 않았고 커다란 계책이 뒤집혀 바뀌어도 알지 못하니 이름이 더럽혀지고 몸이 위태로워졌으며 방국이 뒤집히고 제사가 끊어져서 영원히 가엾게 여기며 비웃음을 듣는 바가 되었으니, 어찌 불쌍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由是姦佞居前而不見,〈謂朱异、周石珍輩也。〉大謀顚錯而不知,〈謂納侯景,復與東魏和也。〉名辱身危,覆邦絕祀,爲千古所閔笑,豈不哀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