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屋漏在上,知之在下!집이 새는 것은 지붕인데 아는 것은 밑에 있는 사람!/小雪節 末候閉塞成冬2日(陰10/19)庚辰

solpee 2020. 12. 3. 09:10

《南北朝 梁紀13 武 大同 元 (乙卯、535)

 

 ⑧. 발해 세자 고징이 고환의 첩인 정씨와 통정하였는데, 고환이 돌아오자 한 명의 비녀가 이를 알리고 두 명의 비녀가 입증자였는데, 고환이 고징에게 100대의 장을 쳐서 그를 유폐시키고, 누비 또한 단절시키고 만날 수 없게 하였다. 고환이 위 경종의 황후 이주씨를 받아들이고 총애하여 아들 고유를 낳자, 고환이 그를 세우려고 하였다.

 ⑧. 勃海世子澄通於歡妾鄭氏,〈歡封勃海王,以澄爲世子。〉歡歸,〈歸自襲稽胡。〉一婢告之,二婢爲證;歡杖澄一百而幽之,婁妃亦隔絕不得見。歡納魏敬宗之后爾朱氏,有寵,生子浟,〈浟,夷周翻。〉歡欲立之。

 

 고징이 사마자여에게 구원해주기를 요청하였다. 사마자여는 들어가서 고환을 보고는 거짓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하고서 누비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고환이 그 까닭을 물었다. 사마자여가 말하였다.

 "사마소난이 또한 저 사마자여의 첩과 통정하였는데, 이 일은 바로 가려서 덮을 수 있습니다. 비는 왕과 머리카락을 매어 부인이 되었고, 항상 부모의 가재를 가지고 왕을 받들었는데, 왕께서 회삭에서 장형의 형벌을 받아 등에는 온전한 피부가 없었지만, 왕비가 밤과 낮으로 받들어 모셨고, 뒤에갈적을 피하여 함께 병주로 도주하였으나 빈곤해지자, 왕비는 마시로 불을 지폈고, 스스로 가죽신을 지었으니, 그 은의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澄求救於司馬子如。子如入見歡,僞爲不知者,請見婁妃;歡告其故。子如曰︰「消難亦通子如妾,此事正可掩覆。〈難,乃旦翻。覆,敷又翻。〉妃是王結髮婦,常以父母家財奉王;〈程正叔曰︰古人言「結髮爲夫婦」,如言「結髮事君」,「結髮戰匈奴」,只言初上頭時也,豈謂合髻子邪!按《婁妃本傳》︰妃少見歡在城上執役,慕之,使婢通意。又數致私財,使以聘己,父母不得已而許焉。〉王在懷朔被杖,背無完皮,妃晝夜供侍;後避葛賊,〈葛賊,謂葛榮也。〉同走幷州,貧困,妃然馬矢〈然,與燃同。〉自作靴;〈《隋志》︰靴,胡履也。取便於事,施於戎服。〉恩義何可忘也!

 

 부부가 서로 마땅한 일을 하니 딸들은 지존의 배필이 되었고, 아들은 대업을 계승하였습니다. 또한 누영군장군의 공훈은 어찌 흔들림이 있겠습니까? 한 여자는 풀과 같이 여길 것인데 하물며 비첩의 말이야 꼭 믿을 것은 아니겠지요!"

 고환이 이어서 사마자여로 하여금 다시 그를 국문하게 하였다. 

 夫婦相宜,女配至尊,〈妃二女,長配孝武帝,次配孝靜帝。〉男承大業。〈謂澄爲世子也。〉且婁領軍之勳,何宜搖動!〈妃弟昭時爲領軍將軍。〉一女子如草芥,況婢言不必信邪!」歡因使子如更鞫之。

 

 사마자여가 고징을 보고 그를 질책하여 말하였다.

 "사나이가 무슨 생각으로 위엄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오?"

 이어서 두 비녀에게 그 말을 돌이키도록 가르치고, 고발한 사람을 위협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게 하고, 마침내 고환에게 계문을 올렸다.

 "과연 헛된 말이었습니다."

 고환이 크게 기뻐하며 누비와 고징을 불렀다. 누비는 멀리서 고환을 보고 한 걸음 걷고 한 번 머리를 조아렸고, 고징 또한 절을 올리며 또 나아가니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눈물을 흘렸고, 다시 처음과 같이 되었다.

 子如見澄,尤之曰︰「男兒何意畏威自誣!」因敎二婢反其辭,〈反,音翻。〉脅告者自縊,〈縊,於賜翻,又於計翻。〉乃啓歡曰︰「果虛言也。」歡大悅,召婁妃及澄。妃遙見歡,一步一叩頭,澄且拜且進,父子、夫婦相泣,復如初。〈復,扶又翻。〉

 

 고환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말하였다.

 "우리 부자관계를 온전하게 한 사람은 사마자여이로다."

 그에게 황금 30근을 하사하였다.

 歡置酒曰︰「全我父子者,司馬子如也!」賜之黃金百三十斤。

 

《南北朝 梁紀13 武 大同 2 (丙辰、536)

 

 ⑭. 상서우승인 고성 사람 강자사가 봉사를 올려서 정치의 득실을 대단히 심하게 말하였는데, 5월 3일에 조서를 내려서 말하였다.

 "옛 사람들의 말에 '집이 새는 것은 위에 있는데 이것을 아는 것은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 짐에게 과실이 있어도 스스로 깨달을 수 없었는데, 강자사 등이 봉사로 말한 것을 상서는 때때로 조사를 첨가하고, 백성들에게 좀먹는 근심이 있다면 마땅히 신속하고도 상세하게 아뢰도록 하라."

 ⑭. 夏,四月,尚書右丞考城江子四上封事,極言政治得失,上,時掌翻。治,直吏翻。五月,癸卯,詔曰︰「古人有言,『屋漏在上,知之在下。』朕有過失,不能自覺,江子四等封事所言,尚書可時加檢括,於民有蠹患者,宜速詳啓!」江子四所上封事,必不敢言帝崇信釋氏,而窮兵廣地適以毒民,用法寬於權貴而急於細民等事,特毛舉細故而論得失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