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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歡의 勝利와 孝武帝 登極 / 立冬節末候雉入大水爲蜃5日(陰10/7)戊辰

solpee 2020. 11. 20. 20:55

《南北朝 梁紀11 武 中大通 4 (壬子, 532秊)

 

 ⑧. 2월 26일에 위 안정왕은 경종의 시호를 추증하여 武懷황제로 하엿고, 29일에 고환을 승상·주국대장군·태사로 삼았으며, 3월 2일에 고징을 표기대장군으로 삼았다. 13일에는 안성왕이 백관을 인솔하고 업에 들어가 살았다.

 ⑧. 辛亥,魏安定王追諡敬宗曰武懷皇帝,〈朗旣禪位,孝武帝封爲安定王。〉甲子,以高歡爲丞相、柱國大將軍、太師;三月,丙寅,以高澄爲驃騎大將軍。丁丑,安定王帥百官入居於鄴。〈帥,讀曰率。〉

 

 이주조와 이주세륭 등은 서로 시기하였으나 이주세륭은 말을 낮추고 후한 예절로 이주조를 타일렀고, 그로 하여금 낙양에 가도록 하여 오직 원하는 대로 하고, 또 절민제에게 이주조의 딸을 받아들여 황후로 삼도록 요청하니, 이주조는 마침내 기뻐하고 이주천광·이주도률과 더불어 다시 서약을 하고 서로 친목을 회복하였다.

 爾朱兆與爾朱世隆等互相猜阻,世隆卑辭厚禮諭兆,欲使之赴洛,唯其所欲,又請節閔帝納兆女爲后;兆乃悅,幷與天光、度律更立誓約,復相親睦。

 

 곡사춘이 몰래 하발승에게 말하였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이주씨를 원망하고 미워하나 우리들은 그에게 채용되어서 멸망하는 것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그를 도모함만 못하오."

 하발승이 말하였다.

 "이주천광과 이주조는 각기 한 지방을 점거하고 있어서 그들을 다 제거하려고 하는것은 매우 어렵고, 그를 제거하는 것을 다하지 않으면 반드세 후환이 될 것인데, 어찌하오?"

 斛斯椿陰謂賀拔勝曰:「天下皆怨毒爾朱,而吾等爲之用,亡無日矣,不如圖之。」勝曰:「天光與兆各據一方,欲盡去之甚難,去之不盡,必爲後患,柰何?」

 

 ...중략...

 椿曰:「此易致耳。」乃說世隆追天光等赴洛,共討高歡。〈復,扶又翻。去,羌呂翻。說,式芮翻。〉世隆屢徵天光,天光不至,使椿自往邀之,曰:「高歡作亂,非王不能定,豈可坐視宗族夷滅邪!」天光不得已,將東出,問策於雍州刺史賀拔岳,〈賀拔岳自岐州遷刺雍州。雍,於用翻。〉岳曰:「王家跨據三方,〈兆北據幷、汾,天光西奄關、隴,仲遠擅命徐、兗,是跨據三方。〉士馬殷盛,高歡烏合之衆,豈能爲敵!但能同心戮力,往無不捷。若骨肉相疑,則圖存之不暇,安能制人!如下官所見,莫若且鎭關中以固根本,分遣銳師與衆軍合勢,進可以克敵,退可以自全。」天光不從。閏月,壬寅,天光自長安,兆自晉陽,度律自洛陽,仲遠自東郡皆會於鄴,衆號二十萬,夾洹水而軍,〈《水經註》:洹水逕鄴城南。洹,于元翻。〉節閔帝以長孫稚爲大行臺,總督之。

高歡令吏部尚書封隆之守鄴,癸丑,出頓紫陌,〈《水經註》:漳水東出山過鄴,又北逕祭陌西。戰國之世,俗巫爲河伯娶婦,祭於此陌。田融以爲紫陌。趙建武十一年,造紫陌浮橋於水上。〉大都督高敖曹將鄕里部曲王桃湯等三千人以從。〈將,卽亮翻;下同。從,才用翻。〉歡曰:「高都督所將皆漢兵,恐不足集事,欲割鮮卑兵千餘人相雜用之,何如?」敖曹曰:「敖曹所將,練習已久,前後格鬬,不減鮮卑。今若雜之,情不相洽,勝則爭功,退則推罪,〈推,吐雷翻。〉不煩更配也。」

庚申,爾朱兆帥輕騎三千夜襲鄴城,叩西門,不克而退。壬戌,歡將戰馬不滿二千,步兵不滿三萬,衆寡不敵,乃於韓陵爲圓陳,〈《五代志》:鄴縣有韓陵山。杜佑曰:在相州安陽縣東北。陳,讀曰陣。〉連繫牛驢以塞歸道,〈塞,息則翻。〉於是將士皆有死志。〈將,卽亮翻。〉兆望見歡,遙責歡以叛己,歡曰:「本所以勠力者,共輔帝室。今天子何在?」兆曰:「永安枉害天柱,我報讎耳。」〈敬宗年號永安,故以稱之。〉歡曰:「我昔聞天柱計,汝在戶前立,豈得言不反邪!〈對兩軍發其陰謀,以正爾朱之罪。〉且以君殺臣,何報之有!今日義絕矣。」遂戰。歡將中軍,高敖曹將左軍,歡從父弟岳將右軍。〈將,卽亮翻。從,才用翻。〉歡戰不利,兆等乘之,岳以五百騎衝其前,別將斛律敦收散卒躡其後,敖曹以千騎自栗園出橫擊之,兆等大敗,賀拔勝與徐州刺史杜德於陳降歡。〈陳,音陣同。〉兆對慕容紹宗撫膺曰:「不用公言,以至於此!」〈謂紹宗諫兆使歡統州鎭兵而兆不用也。〉欲輕騎西走,〈自鄴西走歸晉陽。〉紹宗反旗鳴角,〈徐廣《車服儀制》曰:角,前代書記所不載,或云本出羌、胡,以驚中國之馬。杜佑曰:大角,卽後魏簸邏迴是也。〉收散卒成軍而去。兆還晉陽,仲遠奔東郡。〈秦置東郡,晉改爲濮陽國,後復曰東郡,治滑臺城。〉爾朱彥伯聞度律等敗,欲自將兵守河橋,〈將,卽亮翻。〉世隆不從。

 

 이주도률·이주천광이 곧 낙양으로 가려고 하는데, 대도독 곡사춘이 도독 가현도·가현지에게 말하였다.

 "지금 이주씨를 먼저 잡지 않으면 우리들은 죽어도 건질 만한 것이 없소."

 마침내 뽕나무 아래에서 맹서를 하고 두 배의 속도로 길을 가서 먼저 돌아올 것을 약속하였다. 이주세륭은 그의 외병참군 양숙연으로 하여금 북중으로 달려가서 패배한 병사들을 살피고 가려서 차례대로 받아들였다. 곡사춘이 도착하였으나 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자 마침내 양숙연을 거짓으로 설득하며 말하였다.

 度律、天光將之洛陽,大都督斛斯椿謂都督賈顯度、賈顯智曰:「今不先執爾朱氏,吾屬死無類矣。」乃夜於桑下盟,約倍道先還。世隆使其外兵參軍陽叔淵〈【章:甲十一行本「淵」下有「單騎」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馳赴北中,〈北中,卽北中郎府城,在河橋北岸。〉簡閱敗卒,以次內之。〈內,讀曰納。〉椿至,不得入城,乃詭說叔淵曰:〈說,式芮翻。〉

 

 "이주천광의 부하는 모두 서쪽 사람이며 낙양을 크게 약탈하고 도읍을 장안으로 옮기려고 하니 의당 우선 나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대비하여야 한다."

 양숙연이 그 말을 믿었다. 여름 4월 초하루 갑자일에 곡사춘 등이 들어가 황하대교를 점거하고 이주씨와 함께 하던 무리를 다 죽였다. 이주도률·이주천광이 이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마침 큰 비가 주야로 그치지 않아서 병사와 말은 지쳐 쓰러졌으며 화살을 쏠 수 없어서 드디어 서쪽으로 달아나 유파진에 이르렀으나 사람들에게 사로잡혀서 곡사춘이 있는 곳으로 송치되었다.

 「天光部下皆是西人,聞欲大掠洛邑,遷都長安,宜先內我以爲之備。」叔淵信之。夏,四月,甲子朔,椿等入據河橋,盡殺爾朱氏之黨。度律、天光欲攻之,會大雨晝夜不止,士馬疲頓,弓矢不可施,遂西走,至灅陂津,爲人所擒,送於椿所。〈灅陂津在河橋西,亦曰雷波,卽爾朱兆犯洛帥騎踏淺涉渡之處。灅,力水翻。〉

 

 곡사춘은 행대인 장손추로 하여금 낙양에 가서 상황을 상주하도록 하고, 따로 가현지·장환을 파견하여 기병을 인솔하고 이주세륭을 암습하여 그를 잡았다. 이주언백은 이 당시에 금중에서 당직 중이었고, 장손치는 신호문에서 계문을 진술하였다.

 "고환이 의로운 공적을 이미 떨쳤으니, 이주씨를 주살하기를 청하옵니다."

 절민제가 사인 곽숭으로 하여금 이주언백에게 알리자 이주언백이 어지럽게 밖으로 달아났으나 사람들에게 잡혀서 이주세륭과 함께 창합문 밖에서 목이 베였고, 그 수급을 이주도률·이주천광과 함께 나란히 고환에게 보내었다.

 椿使行臺長孫稚詣洛陽奏狀,別遣賈顯智、張歡帥騎掩襲世隆,執之。〈帥,讀曰率。騎,奇計翻。〉彥伯時在禁直,長孫稚於神虎門啓陳:「高歡義功旣振,請誅爾朱氏。」節閔帝使舍人郭崇報彥伯,彥伯狼狽走出,爲人所執,與世隆俱斬於閶闔門外,送其首幷度律、天光於高歡。

 

 ...중략...

 節閔帝使中書舍人盧辯勞歡於鄴,〈勞,力到翻。〉歡使之見安定王,辯抗辭不從,歡不能奪,乃捨之。辯,同之兄子也。〈盧同始附元叉以進。〉

辛未,驃騎大將軍、行濟州事侯景降於安定王,以景爲尚書僕射、南道大行臺、濟州刺史。〈濟,子禮翻。降,下江翻;下同。〉

爾朱仲遠來奔。仲遠帳下都督喬寧、張子期自滑臺詣歡降。歡責之曰:「汝事仲遠,擅其榮利,盟契百重,許同生死。〈契,約也。重,直龍翻。〉前仲遠自徐州爲逆,汝爲戎首;〈謂前年仲遠舉兵向洛時也。〉今仲遠南走,汝復叛之。〈復,扶又翻。〉事天子則不忠,事仲遠則無信,犬馬尚識飼之者,〈飼,祥吏翻。〉汝曾犬馬之不如!」遂斬之。

爾朱天光之東下也,留其弟顯壽鎭長安,召秦州刺史侯莫陳悅欲與之俱東。

 

 하발악은 이주천광이 반드시 패배할 것을 알고 후막진열을 남겨두어 함께 이주현수를 죽여서 고환에게 호응하려고 하였으나 계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우문태가 하발악에게 말하였다.

 賀拔岳知天光必敗,欲留悅共圖顯壽以應高歡,計未有所出。宇文泰謂岳曰:

 

 "지금 이주천광은 오히려 가깝고 하막진열은 아직은 반드시 두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니 만약 이것을 알리면 그가 놀라고 두려워할 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후막진열이 비록 장수 중에 우두머리이나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없으니 만약 우선 그의 무리를 설득하면 반드시 사람들이 남으려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후막진열은 전지하여도 이주씨가 정한 기한을 놓치게 되고 물러나도 인심이 변하여 동요될까 두려워할 것인데, 이것을 틈탓서 후막진열에게 유세하면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今天光尚近,悅未必有貳心,若以此告之,恐其驚懼。然悅雖爲主將,不能制物,〈將,卽亮翻。〉若先說其衆,必人有留心;悅進失爾朱之期,退恐人情變動,乘此說悅,事無不遂。」

 

 하발악은 크게 기뻐하고 즉시 우문태로 하여금 후막진열의 군대에 들어가 유세하도록 하니 후막진열은 드디어 하발악과 함께 장안을 습격하였다. 우문태가 경무장한 기병을 인솔하고 선봉이 되자 이주현수는 성을 버리고 달아났는데, 뒤를 쫓아 화음에 이르러 그를 사로잡았다. 고환은 하발악을 관서대행대로 삼고, 하발악은 우문태를 행대좌승으로 삼아 영부사마로 하였으며, 엄무는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에게 맡겼다.

 岳大喜,卽令泰入悅軍說之,悅遂與岳俱襲長安。〈岳爲雍州刺史,本治長安,蓋天光東下,使之出捍西北也。〉泰帥輕騎爲前驅,顯壽棄城走,追至華陰,擒之。〈帥,讀曰率。騎,奇計翻。華,戶化翻。〉歡以岳爲關西大行臺,〈《考異》曰:《北史》:「薛孝通爲中書郎,以『關中險固,奏、漢舊都,須預謀鎭遏以爲後計,縱河北失利,猶足據之。』節閔帝深以爲然,問:『誰可任者?』孝通與賀拔岳同事天光,又與周文帝有舊,二人並先在關右,並推薦之。乃超授岳督岐‧華‧秦‧雍諸軍事、關西大行臺、雍州牧,周文帝爲左丞,孝通爲右丞,齎詔書馳驛入關,授岳等同鎭長安。後天光敗於韓陵,節閔遂不得入關,爲齊神武幽廢。」按天光尚在,節閔安敢除岳鎭關中!今從《魏書》。〉岳以泰爲行臺左丞,領府司馬,事無巨細皆委之。

 

 ...중략...

 爾朱世隆之拒高歡也,使齊州行臺尚書房謨募兵趣四櫝,〈四瀆,津名,在臨濟縣。《水經註》,河水東北流四瀆津,津西側岸臨河有四瀆祠,以其自河入濟、自泗入淮、自淮達江,水徑周流,故有四瀆之名。趣,七喻翻。〉又使其弟青州刺史弼趣亂城,揚聲北渡,爲掎角之勢。〈掎,居蟻翻。〉及韓陵旣敗,弼還東陽,聞世隆等死;欲來奔,數與左右割臂爲盟。帳下都督馮紹隆,素爲弼所信待,說弼曰:「今方同契闊,〈數,所角翻。說,式芮翻。《詩‧擊鼓》曰:死生契闊。毛萇《註》曰:契闊,勤苦也。契,苦結翻。〉宜更割心前之血以盟衆。」弼從之,大集部下,披胸令紹隆割之,紹隆因推刃殺之,〈推,吐雷翻。〉傳首洛陽。

丙子,安東將軍辛永以建州降於安定王。

 

 18일에 안자왕이 망산에 도착하였다. 고환은 안정왕과 소원하여서 복야 위란근으로 하여금 낙양에 있는 관료들을 위로하고 타이르도록 하엿고, 또 절민제의 사람됨을 관찰하여 다시 그를 받들려고 하였다. 위란근은 황제가 정신이 고상하고 밝기 때문에 나중에 통제하기 어려울까 두려워하여서 고건 형제와 황문시랑 최릉과 함께 고환에게 황제를 폐하도록 권하였다.

 辛巳,安定王至邙山。高歡以安定王疏遠,〈章武王太洛,文成之子,獻文之季弟也。太洛生融,融生安定王,於孝明帝緦麻親也,故以爲疏遠。魏收《書》,章武王太洛,景穆之子,以彬爲後,彬子融。審爾,則愈疏遠矣。〉使僕射魏蘭根慰諭洛邑,且觀節閔帝之爲人,欲復奉之。〈復,扶又翻。〉蘭根以帝神采高明,恐於後難制,與高乾兄弟及黃門侍郎崔㥄共勸歡廢之。〈㥄,力膺翻。〉

 

 고환이 백관을 모아놓고 마땅히 세워야 할 사람을 물었으나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태복인 대 사람 기무준이 절민제가 현ㅁ병하다고 크게 칭찬하고 의당 사직을 주관하여야 한다고 하자 고환이 흔쾌히 그것을 옳다고 여겼다. 최릉이 불쾌한 안색을 드러내며 말하였다.

 "만약 현명한 것을 말한다면 우리 고왕을 스스로 기다렸다가 대위에 올라야 하였을 것입니다. 광릉이 이미 역적 오랑캐에게 추대되었는데 어찌 오히려 천자가 되겠습니까? 만약 기무준의 말을 좇는다면 대왕의 군대는 어떻게 의로운 거사라고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고환은 드디어 절민제를 승훈불사에 유폐하였다.

 歡集百官問所宜立,莫有應者,太僕代人綦毋儁盛稱節閔帝賢明,宜主社稷,歡欣然是之。㥄作色曰:「若言賢明,自可待我高王,徐登大位。廣陵旣爲逆胡所立,〈節閔帝本廣陵王。〉何得猶爲天子!若從儁言,王師何名義舉?」歡遂幽節閔帝於崇訓佛寺。

 

 고환이 낙양에 들어가자 곡사춘이 하발승에게 말하였다.

 "지금 천하의 일은 나와 그대에게 있을 따름인데 만약 먼저 다른 사람을 제압하지 않으면 곧 다른 사람에게 제압될 것이오. 고환이 막 왔으니 그를 도모하는 것은 어렵지 않소."

 하발승이 말하였다.

 "그가 이때에 공로를 세웠으니, 그를 해치는 것은 상서롭지 않소. 근래 며칠 밤을 고환과 함께 묵었는데 그는 옛날에 품엇던 생각을 설명하고 아울러 대형에게 은정을 아주 많이 느끼고 있었는데, 어찌 그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오?"

 곡사춘이 마침내 중지하였다.

 歡入洛陽,斛斯椿謂賀拔勝曰:「今天下事,在吾與君耳,若不先制人,將爲人所制。高歡初至,圖之不難。」勝曰:「彼有功於時,害之不祥。比數夜與歡同宿,〈比,毘至翻。〉且〈【章:甲十一行本「且」作「具」;乙十一行本同;孔本同。】〉序往昔之懷,兼荷兄恩意甚多,〈荷,下可翻,古以儋負爲義,故以受任爲荷,受恩爲荷,而感恩者亦曰荷。〉何苦憚之!」椿乃止。〈史言賀拔勝有才武而無遠識,高歡能以姦詐玩弄時輩而悅其心。斛斯椿者小有才,反覆人也,其圖歡之志固在孝武帝未立之前矣。〉

 

 고환은 여남왕 원열이 고조의 아들이므로 그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그가 고아폭하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멈추었다.

 이 당시에 여러 왕들은 대부분 달아나 숨었으며, 상서좌복야인 영양왕 원수는 원희의 앋르이었는데 농가에 숨었다. 고환은 그를 세우려고 곡사춘으로 하여금 그를 찾도록 하였다. 곡사춘이 원수가 가까이하는 원외산기시랑인 태원 사람 왕사정을 보고 평양왕이 있는 곳을 물으니, 왕사정이 말하였다.

 歡以汝南王悅,高祖之子,召欲立之,聞其狂暴無常,乃止。〈《考異》曰:《魏書‧悅傳》云:「神武令人示意。悅旣至,清狂如故,動爲罪失,不可扶立,乃止。」按悅時猶在梁境,比召至洛,往返幾日。蓋神武聞其所爲而止耳。〉

時諸王多逃匿,尚書左僕射平陽王脩,懷之子也,〈廣平王懷,高祖之子;脩於孝明帝從兄弟也。〉匿於田舍。歡欲立之,使斛斯椿求之。椿見脩所親員外散騎侍郎太原王思政,問王所在,思政曰:

 

 "묻는 뜻을 알아야합니다."

 곡사춘이 말하였다.

 "추대하여 천자로 세우려고 한다."

 왕사정은 마침내 그곳을 말하였다. 곡사춘이 왕사정을 좇아 원수를 만나자 원수는 안색이 변하며 왕사정에게 말하였다.

 "나를 팔 수는 없겠지?"

 말하였다.

 "아닙니다."

 말하였다.

 "감히 이를 보증하겠는가?"

 말하였다.

 "형태를 다양하게 바꾸는데 어찌 보증할 수있습니까?"

 「須知問意。」椿曰:「欲立爲天子。」思政乃言之。椿從思政見脩,脩色變,謂思政曰:「得無賣我邪?」曰:「不也。」曰:「敢保之乎?」曰:「變態百端,何可保也!」

 

 곡사춘이 급히 고환에게 알렸다. 고환은 400명의 기병을 파견하여 원수를 영접하고 솜털로 만든 장막 안으로 들어가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설명하는데 눈물이 떨어져 옷소매를 적시니, 원수가 덕망이 적은 것을 가지고 사양하자, 고환은 두 번 절하였으며 원수 또한 절을 하였다.

 椿馳報歡。歡遣四百騎迎脩入氈帳,〈騎,奇計翻。氈帳,胡夷酋帥所居,漢人謂之穹廬。〉陳誠,泣下霑襟,脩讓以寡德,歡再拜,脩亦拜。

 

 고환이 밖으로 나가 의복과 탈 것을 준비하고 더운 목욕물을 바쳤으며 밤새도록 엄격히 경비하였다. 어둑한 새벽에 문무백관이 채찍을 쥐고서 조현하였고 곡사춘으로 하여금 권진표(황제의 자리로 나아가는 표문)를 받들도록 하였다. 곡사춘이 휘장의 문으로 들어가 몸을 굽혀 머리를 늘이고 감히 앞으로 가지 못하자 원수는 왕사정을 시켜서 표문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을 살피고서 말하였다.

 歡出備服御,進湯沐,達夜嚴警。〈嚴爲警備也。〉昧爽,〈孔安國曰:昧,冥。爽,明;早旦。馬曰:昧,未旦也。陸德明曰:爽,謂早旦也。〉文武執鞭以朝,〈軍中不能備朝服,故執鞭以爲敬。朝,直遙翻。〉使斛斯椿奉勸進表。椿入帷門,磬折延首而不敢前,〈張守節曰:磬折,謂曲體揖之,若石磬之形曲折也。磬形皆中屈垂兩頭,言人屈腰則似也。〉脩令思政取表視之,曰:

 

 "짐이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내 안정왕으로 하여금 조책을 만들어 자리를 선양하도록 하였다.

 25일에 효무제는 낙양성 동쪽 외곽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대도 시대의 옛 제도를 사용하여 검은색 양탄자로 일곱 명을 씌웠는데, 고환이 그 중의 한 명이었다.

 「便不得不稱朕矣。」〈《書》曰:天位艱哉。又曰:毋安,厥位惟危。雖天人樂推,神器歸屬,賢君處此之時,慄慄乎懼其不勝也。平陽王視勸進表而發此言,驕滿之氣溢出於肝鬲之上,君子以是知其不能終。〉乃爲安定王作詔策而禪位焉。〈爲,于僞翻。〉

戊子,孝武帝卽位於東郭之外,〈帝諱脩,字孝則,廣平武穆王懷之第三子也。東郭,洛城東郭也。〉用代都舊制,以黑氈蒙七人,歡居其一,

 

 황제는 양탄자 위에서 서쪽을 향하여 하늘에 절하기를 마치고 들어가 태극전을 오르자 신하들이 조현하고 축하하였고, 창합문에 올라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태창으로 고쳤다. 고환을 대승상·천추대장군·태사로 삼고 정주 자사를 세습하도록 하였다. 27일에 고징에게 시중·개부의동삼사를 덧붙여 주었다.

 帝於氈上西向拜天畢,入御太極殿,〈魏自孝文帝用夏變夷,宣武、孝明卽位皆用漢、魏之制,今復用夷禮。〉羣臣朝賀,〈朝,直遙翻;下同。〉升閶闔門大赦,改元太昌。以高歡爲大丞相、天柱大將軍、太師,世襲定州刺史。庚寅,加高澄侍中、開府儀同三司。

 

 ...하략...

 初,歡起兵信都,爾朱世隆知司馬子如與歡有舊,自侍中、驃騎大將軍出爲南岐州刺史。歡入洛,召子如爲大行臺尚書,朝夕左右,參知軍國。廣州刺史廣寧韓賢,〈魏收《志》:廣寧郡屬朔州,領石門、中川二縣。《五代志》,馬邑郡善陽縣,後齊置朔州及廣寧郡。〉素爲歡所善,歡入洛,凡爾朱氏所除官爵例皆削奪,唯賢如故。

以前御史中尉樊子鵠兼尚書左僕射,爲東南道大行臺,與徐州刺史杜德追爾朱仲遠;仲遠已出境,遂攻元樹於譙。

丞相歡徵賀拔岳爲冀州刺史,岳畏歡,欲單馬入朝。行臺右丞薛孝通說〈說,式芮翻。〉岳曰:「高王以數千鮮卑破爾朱百萬之衆,誠亦難敵。然諸將或素居其上,或與之等夷,屈首從之,勢非獲已。今或在京師,或據州鎭,高王除之則失人望,留之則爲腹心之疾。且吐萬人雖復敗走,〈爾朱兆,字吐萬人。〉猶在幷州,高王方內撫羣雄,外抗勍敵,〈勍,其京翻。〉安能去其巢穴,與公爭關中之地乎!今關中豪俊皆屬心於公,〈屬,之欲翻。〉願效其智力。公以華山爲城,黃河爲塹,〈華,戶化翻。塹,七豔翻。〉進可以兼山東,退可以封函谷,〈後漢王元說隗囂曰:「元請以一丸泥爲大王東封函谷關。」〉柰何欲束手受制於人乎!」言未卒,〈卒,子恤翻。〉岳執孝通手曰:「君言是也。」乃遜辭爲啓而不就徵。

壬辰,丞相歡還鄴,送爾朱度律、天光於洛陽,斬之。

五月,丙申,魏主酖節閔帝於門下外省,〈年三十五。西魏諡帝曰節閔。〉詔百司會喪,葬用殊禮。〈加九旒、鑾輅、黃屋、左纛、班劍百二十人,蓋其禮特異於諸王之喪耳。〉

以沛郡王欣爲太師,趙郡王諶爲太保,〈諶,世壬翻。〉南陽王寶炬爲太尉,長孫稚爲太傅。寶炬,愉之子也。〈京兆王愉亦孝文帝之子。〉丞相歡固辭天柱大將軍,戊戌,許之。己酉,清河王亶爲司徒。

侍中河南高隆之,本徐氏養子,丞相歡命以爲弟,恃歡勢驕公卿,南陽王寶炬毆之,曰:「鎭兵何敢爾!」〈魏遷洛陽,北人留居北鎭者率隸尺籍,故詈之曰鎭兵。毆,烏口翻。〉魏主以歡故,六月,丁卯,黜寶炬爲驃騎大將軍,歸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