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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之於正道,不可少頃離也, 不可跬步失也.: 정도에서 잠시라도 떨어져서도 안 되고 반걸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立冬節末候雉入大水爲蜃3日(陰10/5)丙寅

solpee 2020. 11. 19. 16:51

《南北朝 梁紀11 武 中大通 3 (辛亥, 531秊)

 

 ⑩. 여름 4월 6일에 소명태자 소통이 죽었다.(31세)

 태자가 성인의 의복을 착용하면서부터 황상은 바로 조정의 정사를 살피고 관장하도록 시켰는데, 백관이 올리는 업무가 태자 앞에 쌓이고 맡겨지면 태자는 잘못된 것을 분별하였고, 가을철의 터럭 같은 것이라도 반드시 가렸으나 다만 명령하여 개정하게 하였으며 조사하여 탄핵을 덧붙이지 않앗으며, 송사를 평등하게 결단하여 대부분 온전히 방면하였고 너그럽게 용서하여 무리를 화합시켰으며, 기뻐하고 화를 내는 것을 안색에 드러내지 않았다.

 ⑩. 夏,四月,乙巳,昭明太子統卒。太子自加元服,天監十四年,太子加元服。上卽使省錄朝政,省,悉景翻。朝,直遙翻。百司進事,塡委於前,太子辯析詐謬,秋毫必睹,但令改正,不加按劾,劾,戶槪翻,又戶得翻。平斷法獄,多所全宥,寬和容衆,喜慍不形於色。

 

 책을 일고 문장을 짓기를 좋아하였고 훌륭한 인재를 끌여들여 가까이 하고 상을 주고 아끼는데 싫증내는 일이 없었고, 궁궐을 나간 지 20여 년 동안에 소리와 음악을 기르지 않았다.

 好讀書屬文,斷,丁亂翻。好,呼報翻。屬,之欲翻。引接才俊,賞愛無倦;出宮二十餘年,言自禁中出居東宮也。不畜聲樂。

 

 장마와 폭설 때마다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보내어 민간 마을을 두루 돌게 하였고 가난한 사람을 살펴서 구제하였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공손하여 동궁에서 비록 한가롭게 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 항상 서쪽을 향하였고, 저녁에 부름을 받아 들어가야 할 때면 자리를 바르게 하고 새벽까지 이르렀다.

 每霖雨積雪,遣左右周行閭巷,視貧者賑之。行,下孟翻。賑,之忍翻。此所謂好行小惠也。天性孝謹,在東宮,雖燕居,坐起恆西向,必西向者,不敢背上臺也。恆,戶登翻。謹,居忍翻。或宿被召當入,隔夜爲宿。被,皮義翻。危坐達旦。

 

 누워서 병을 잃게 되자 황제께 우려를 끼칠까 두려워하고 칙령을 내려 물으면 번번이 스스로 힘을 들여 편지를 썼다. 죽게 되자 조정과 재야가 놀라고 건강에 거주하는 남여들이 궁문으로 달려갔으며 도로에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及寢疾,恐貽帝憂,敕參問,輒自力手書。言帝出敕候問,太子輒力疾手書,自爲奏答。及卒,朝野惋愕,建康男女,奔走宮門,號泣道路。卒,子恤翻。朝,直遙翻。惋,烏貫翻。愕,五各翻。奔,甫門翻。走,音奏。號,戶刀翻。

 

 ⑰. 애초에 소명태자는 그의 어머니인 정귀빈을 장례지내면서 사람을 보내어 묘지 중에서 길한 곳을 찾도록 하였다. 어떤 사람이 환관 유삼부에게 뇌물을 주어 팔 땅을 찾았고 만약 3백만 전을 받으면 유삼부에게 백만 전을 주겠다고 말하였다.

 ⑰. 初,昭明太子葬其母丁貴嬪,〈普通七年,丁貴嬪卒。〉遣人求墓地之吉者。或賂宦者俞三副求賣地,云若得錢三百萬,以百萬與之。

 

 유삼부가 은밀히 황상에게 상주하여 말하였다.

 "태자가 얻은 땅은 지금의 땅이 황상께 길한 것만 못합니다."

 황상은 노쇠하였고 시기가 많아 즉시 그 땅을 팔도록 명령하였다. 장례가 끝나자 어떤 도사가 말하였다.

 "이 땅은 장자에게 이롭지 않은데, 만약 엽승하면 혹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三副密啓上,言「太子所得地不如今地於上爲吉。」〈今地,謂求賣之地也。〉上年老多忌,卽命市之。葬畢,有道士云:「此地不利長子,若厭之,〈長,知兩翻。厭,一協翻,又於琰翻;下厭禱同。〉或可申延。」〈申,寬也。〉

 

 마침내 밀랍으로 만든 거위와 여러 물건을 묘 옆 장자의 위치에 묻었다. 궁감인 포막지와 위아는 처음에 모두 태자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포막지가 나중에 위아에게 소외당하자 마침내 은밀히 상주문을 올려 말하였다.

 "위아는 태자를 위하여 엽승과 기도를 하였습니다."

 황상이 사람을 파견하여 조사하고 파내어 보니 과연 거위 같은 물건을 얻자 크게 놀라서 곧 그 일을 캐내려고 하니 서면이 굳게 간하여 중지하고 다만 도사를 주살하였다.

 乃爲蠟鵝及諸物埋於墓側長子位。宮監鮑邈之、魏雅初皆有寵於太子,〈《五代志》,梁制,東宮有外監殿局、內監〈殿局〉。宮監者,卽唐內直局之職也,龍朔二年改監曰內直郎。〉邈之晚見疏於雅,乃密啓上云:「雅爲太子厭禱。」上遣檢掘,果得鵝物,大驚,將窮其事,徐勉固諫而止,但誅道士。

 

 이로 말마암아 태자는 죽을 때가지 부끄러워하였고 화를 내었으며 스스로 밝힐 수 없었다. 죽게 되자 황상은 그의 장자이고 남서주 자사인 화용공 소환을 징소하여 건강에 오도록 하고, 그를 세워 후사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그가 이전의 일을 원망하고 있어서 미루기를 오래하다 끝내 세우지 않고 21일에 진수하는 곳으로 돌려보냈다.

 由是太子終身慚憤,不能自明。及卒,上徵其長子南徐州刺史華容公歡至建康,欲立以爲嗣,銜其前事,猶豫久之,卒不立,〈卒,子恤翻。〉庚寅,遣還鎭。〈史因帝不立孫,究言事始。嗚呼!帝於豫章王綜、臨賀王正德,雖犯惡逆,猶容忍之,至於昭明被讒,則終身銜其事,蓋天奪其魄也。爲昭明子詧仇視諸父張本。〉

 

 신 광이 말하였다.

 "군자는 정도에서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안 되고 반걸음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소명태자의 어질고 효성스러움과 무제의 자애로움을 가지고서도 한 번 미워하고 의심하는 흔적에 물들자 자신은 걱정하며 죽고 그 죄는 후손에게 미쳣는데, 길한 것을 찼다가 흉한 것을 얻고 씻어낼 수 없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허황된 인사와 기이하고 사악한 술수를 군자는 멀리합니다."

 臣光曰:君子之於正道,不可少頃離也,〈少,詩沼翻。離,力智翻。〉不可跬步失也。〈跬,窺婢翻。〉以昭明太子之仁孝,武帝之慈愛,一梁嫌疑之迹,身以憂死,罪及後昆,求吉得凶,不可湔滌,可不戒哉!〈湔,將仙翻。〉是以詭誕之士,奇邪之術,君子遠之。〈奇,居宜翻,異也。遠,于願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