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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의 跋扈와 죽음/立冬節末候雉入大水爲蜃3日(陰10/5)丙寅

solpee 2020. 11. 19. 16:36

《南北朝 梁紀10 武 中大通 2 (庚戌, 530秊)

 

 ⑪. 위 이주영은 비록 밖의 번부에 있었으나 멀리서 조정을 통제하였고, 친한무리들을 심어 황제의 좌우에 벌려놓아서 동정을 살펴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모두 알았다. 황제는 비록 이주영에게 통제를 받았으나 성품이 정사에 근면하고 조석으로 게으르지 않아서 자주 소송사건을 직접 살폈고 억울한 송사를 처리하였는데, 이주영이 그 소식을 듣고서 기뻐하지 않았다.

 ⑪. 魏爾朱榮雖居外藩,遙制朝政,〈朝,直遙翻。〉樹置親黨,布列魏主左右,伺察動靜,大小必知。〈伺,相吏翻。〉魏主雖受制於榮,然性勤政事,朝夕不倦,數親覽辭訟,理冤獄,〈數,所角翻。〉榮聞之,不悅。〈史言魏主不能養晦。〉

 

 ...중략...

 帝又與吏部尚書李神儁議清治選部,〈治,直之翻。選,須絹翻;下同。〉榮嘗關補曲陽縣令,〈據《榮傳》,卽上曲陽縣也,漢、晉屬常山郡,後魏屬中山郡。關補者,先補授而後關吏部。《五代志》:趙州鼓城縣,舊曰曲陽。劉昫曰:漢上曲陽縣,隋改曰恆陽,唐元和十五年,復曰曲陽。趙州之曲陽,下曲陽也。〉神儁以階懸,不奏,〈言階級相去懸絕,其人不應補爲縣令。〉別更擬人。榮大怒,卽遣所補者往奪其任;神儁懼而辭位,榮使尚書左僕射爾朱世隆攝選。榮啓北人爲河南諸州,帝未之許;太宰天穆入見面論,〈見,賢遍翻。〉帝猶不許。天穆曰:「天柱旣有大功,爲國宰相,若請普代天下官,恐陛下亦不得違之,如何啓數人爲州,遽不用也!」帝正色曰:「天柱若不爲人臣,朕亦須代;如其猶存臣節,無代天下百官之理。」榮聞之,大恚恨,曰:「天子由誰得立!今乃不用我語!」

爾朱皇后性妬忌,屢致忿恚。帝遣爾朱世隆語以大理,〈恚,於避翻。語,牛倨翻。大理,謂事理之大致也。〉后曰:「天子由我家置立,今便如此;我父本卽自作,今亦復決。」〈決,判也,謂天下事有判決也。復,扶又翻。〉世隆曰:「止自不爲,〈「止」當作「正」。〉若本自爲之,臣今亦封王矣。」

帝旣外逼於榮,內逼皇后,恆怏怏不以萬乘爲樂,〈恆,音常。怏,於兩翻。乘,繩正翻。樂,音洛;下同。〉唯幸寇盜未息,欲使與榮相持。及關、隴旣定,告捷之日,乃不甚喜,謂尚書令臨淮王彧曰:「卽今天下便是無賊。」彧見帝色不悅,曰:「臣恐賊平之後,方勞聖慮。」帝畏餘人怪之,還以他語亂之曰:「然。撫寧荒餘,〈荒餘,謂兵荒之餘民也。〉彌成不易。」〈易,以豉翻。〉榮見四方無事,奏稱「參軍許周勸臣取九錫,臣惡其言,已斥遣令去。」榮時望得殊禮,故以意諷朝廷,帝實不欲與之,因稱歎其忠。

榮好獵,〈惡,烏路翻。好,呼報翻。〉不捨寒暑,列圍而進,令士卒必齊壹,雖遇險阻,不得違避,一鹿逸出,必數人坐死。有一卒見虎而走,榮謂曰:「汝畏死邪!」卽斬之,自是每獵,士卒如登戰場。嘗見虎在窮谷中,榮令十餘人空手搏之,毋得損傷,死者數人,卒擒得之,〈魏道武帝因搏熊而謝于栗磾,爾朱榮反是,嗜殺人者烏能定天下邪!卒,音子恤翻。〉以此爲樂,其下甚苦之。太宰天穆從容謂榮曰:〈樂,音洛。從,千容翻。〉「大王勳業已盛,四方無事,唯宜脩政養民,順時蒐狩,〈禮,春蒐、夏田、秋獮、冬狩。杜預曰:蒐,索擇取不孕者。苗,爲苗除害也。獮,殺也;以殺爲名,順秋氣也。狩,圍守也;冬物畢成,獲則取之,無所擇也。〉何必盛夏驅逐,感傷和氣?」榮攘袂曰:「靈后女主,不能自正,推奉天子,乃人臣常節。葛榮之徒,本皆奴才,乘時作亂,譬如奴走,擒獲卽已。頃來受國大恩,未能混壹海內,何得遽言勳業!如聞朝士猶自寬縱,今秋欲與兄戒勒士馬,校獵嵩高,令貪汙朝貴,入圍搏虎。〈朝,直遙翻。〉仍出魯陽,歷三荊,悉擁生蠻,北塡六鎭,〈杜佑曰:北荊州,今卽伊陽縣;東荊州,後改曰淮州,今淮安郡;荊州,今南陽郡。余按榮言出魯陽,則已越伊陽而南矣。《五代志》:舂陵郡,後魏置南荊州。當以此足三荊之數。生蠻,謂諸蠻戶之未附於魏者。六鎭叛亂,鎭戶荒殘,故欲塡之。〉回軍之際,掃平汾胡。〈稽胡皆居汾州界,謂之汾胡。〉明年,簡練精騎,分出江、淮,蕭衍若降,乞萬戶侯;〈騎,奇計翻。降,戶江翻。乞,丘計翻,與也。〉如其不降,以數千騎徑渡縛取。然後與兄奉天子,巡四方,乃可稱勳耳。今不頻獵,兵士懈怠,安可復用也!」〈懈,七隘翻。復,扶又翻。〉

城陽王徽之妃,帝之舅女;侍中李彧,延寔之子,帝之姊壻也。徽、彧欲得權寵,惡榮爲己害,日毀榮於帝,勸帝除之。帝懲河陰之難,〈河陰之難,事見一百五十二卷。惡,烏路翻。難,乃旦翻。〉恐榮終難保,由是密有圖榮之意,侍中楊侃、尚書右僕射元羅亦預其謀。〈元羅,叉之弟也。〉

會榮請入朝,欲視皇后㝃乳,〈㝃,與免同,又音晚。師古曰:免乳,爲產子也。乳,人喻翻。《唐韻》曰:子母相解曰免。〉徽等勸帝因其入,刺殺之。〈刺,七亦翻。〉唯膠東侯李侃晞、濟陰王暉業言:「榮若來,必當有備,恐不可圖。」〈濟,子禮翻。〉又欲殺其黨與,發兵拒之。帝疑未定,而洛陽人懷憂懼,中書侍郎邢子才之徒已避之東出,〈邢劭,字子才,避魏主兄彭城王劭諱,故以字行。《本傳》云:少時有避,遂不行名。〉榮乃遍與朝士書,相任去留。中書舍人溫子昇以書呈帝,帝恆望其不來,〈恆,戶登翻。〉及見書,以榮必來,色甚不悅。子才名劭,以字行,巒之族弟也。〈邢巒事魏宣武帝,屢經將領,有功。《考異》曰:《北史》邢巒卷首排目云「族孫臧、劭」,而卷中乃云「巒叔祖祐,祐從子虯,虯子臧、劭」。《魏書》亦云「巒從祖祐」。然則臧、劭乃巒族弟,非族孫也。〉時人多以字行者,舊史皆因之。

武衞將軍奚毅,建義初往來通命,〈事見一百五十二卷大通二年。〉帝每期之甚重,然猶以榮所親信,不敢與之言情。毅曰:「若必有變,臣寧死陛下,不能事契胡。」〈爾朱氏,契胡種也。契,欺訖翻。〉帝曰:「朕保天柱無異心,亦不忘卿忠款。」〈款,誠也。〉

爾朱世隆疑帝欲爲變,乃爲匿名書自牓其門云:「天子與楊侃、高道穆等爲計,欲殺天柱。」取以呈榮。榮自恃其強,不以爲意,手毀其書,唾地曰:「世隆無膽。誰敢生心!」榮妻北鄕長公主亦勸榮不行,〈榮妻非元氏也,以榮功封北鄕長公主。《考異》作「鄕郡長公主」,《註》曰:《北史‧世隆傳》作「北鄕郡公主」,今從《魏‧帝紀》。按《考異》作「鄕郡長公主」是也,《通鑑》作「北鄕長公主」,傳寫之誤耳。《五代志》:上黨郡鄕縣,石勒置武鄕郡,後魏去「武」字爲鄕郡。證以魏收《志》無北鄕郡,則從鄕郡爲是。唾,吐臥翻。長,知兩翻。〉榮不從。

 

 이달에 이주영은 4,5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서 병주를 떠낫는데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주영이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말하고 또는 '천자는 반드시 이주영을 도모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9월에 이주영이 낙양에 도착하니 황제는 곧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태재 원천목이 병주에 있었기 때문에 후환이 될까 두려워하여서 차마 발동하지 못하고 아울러 원천목을 불렀다.

 是月,榮將四五千騎發幷州,〈將,卽亮翻。騎,奇計翻。〉時人皆言「榮反」,又云「天子必當圖榮。」九月,榮至洛陽,〈《考異》曰:《魏‧帝紀》曰:「辛卯,榮、天穆自晉陽來朝。」按《北史》,九月初,榮至京,十五日天穆至。是月甲戌朔,辛卯乃十八日,非也。〉帝卽欲殺之,以太宰天穆在幷州,恐爲後患,故忍未發,幷召天穆。

 

 어떤 사람이 이주영에게 알려 말하였다.

 "황제가 이를 도모하려고 합니다."

 이주영이 곧 이 내용은 갖추어서 상주문을 올리니, 황제가 말하였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역시 왕이 나를 해하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어찌 그것을 믿겠소?"

 이에 이주영은 스스로 의심하지 않고 매번 들어가서 황제를 알현할 때마다 시종은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고, 모두 빈 몸으로 병장기를 가지지 않으니, 황제가 멈추려고 하였는데, 성양왕 원희가 말하였다.

 "설령 반란을 일으키지 않아도 역시 어떻게 참을 수 있겠으며, 하물며 그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는 경우임에야?"

 有人告榮云:「帝欲圖之。」榮卽具奏,帝曰:「外人亦言王欲害我,豈可信之!」於是榮不自疑,每入謁帝,從人不過數十,〈從,才用翻。〉又皆挺身不持兵仗。〈挺,徒頂翻,直也。〉帝欲止,城陽王徽曰:「縱不反,亦何可耐,〈耐,忍也。〉況不可保邪!」

 

 ...중략...

 先是,長星出中台,掃大角;恆州人高榮祖頗知天文,榮問之,對曰:「除舊布新之象也。」〈三台,中台上星爲諸侯三公。大角者,天王座也。《傳》曰:彗所以除舊布新。先,悉薦翻。恆,戶登翻。〉榮甚悅。榮至洛陽,行臺郎中李顯和曰:「天柱至,那無九錫,安須王自索也!〈李顯和蓋爲幷、肆九州行臺郎中,時從榮至洛陽。索,山客翻。〉亦是天子不見機。」都督郭羅察曰:「今年眞可作禪文,〈河陰之難,榮已募朝士作禪文,故羅察云然。郭羅察,卽郭羅剎。〉何但九錫!」參軍褚光曰:「人言幷州城上有紫氣,何慮天柱不應之!」榮下人皆陵侮帝左右,無所忌憚,故其事皆上聞。〈皆上,時掌翻。〉

奚毅又見帝,求間,〈求間,卽請間也。〉帝卽下明光殿與語,知其至誠,乃召城陽王徽及楊侃、李彧告以毅語。榮小女適帝兄子陳留王寬,榮嘗指之曰:「我終得此壻力。」徽以白帝,曰:「榮慮陛下終爲己患,脫有東宮,必貪立孩幼,〈孩,何開翻。〉若皇后不生太子,則立陳留耳。」

 

 황제가 꿈속에서 손으로 칼을 잡고 스스로 열 손가락을 베어서 떨어뜨렸는데, 이를 싫어하여 원휘와 양간에게 알리자, 원휘가 말하였다.

 "독사가 손을 물면 장사는 팔목을 꺾는데, 손가락을 베는 것도 역시 이러한 부류로서 곧 길하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帝夢手持刀自割落十指,惡之,〈惡,烏路翻。〉告徽及楊侃,徽曰:「蝮蛇螫手,壯士解腕,〈螫,音釋。腕,烏貫翻。〉割指亦是其類,乃吉祥也。」

 

 ...중략...

 戊子,天穆至洛陽,帝出迎之。榮與天穆並從入西林園宴射,榮奏曰:「近來侍官皆不習武,陛下宜將五百騎出獵,因省辭訟。」〈將,卽亮翻。騎,奇計翻。省,悉井翻。〉先是,奚毅言榮欲因獵挾天子移都,〈先,悉薦翻。〉由是帝益疑之。

辛卯,帝召中書舍人溫子昇,告以殺榮狀,幷問以殺董卓事,子昇具道本末。帝曰:「王允若卽赦涼州人,必不應至此。」〈董卓、王允事見六十卷漢獻帝初平三年。〉良久,語子昇曰:〈語,牛倨翻。〉「朕之情理,卿所具知。死猶須爲,況不必死,吾寧爲高貴鄕公死,不爲常道鄕公生!」〈謂曹魏高貴鄕公欲誅司馬昭,不克而死,常道鄕公禪位于晉而生也。〉帝謂殺榮、天穆,卽赦其黨,皆應不動。應詔王道習曰:「爾朱世隆、司馬子如、朱元龍特爲榮所委任,具知天下虛實,謂不宜留。」徽及楊侃皆曰:「若世隆不全,仲遠、天光豈有來理!」〈爾朱仲遠時鎭徐州,天光時鎭關、隴。〉帝亦以爲然。徽曰:「榮腰間常有刀,或能狼戾傷人,〈「狼」,當作「很」,《孟子》樂歲粒米狼戾,猶言狼藉也,非此義。〉臨事願陛下起避之。」乃伏侃等十餘人於明光殿東。其日,榮與天穆並入,坐食未訖,起出,侃等從東階上殿,〈上,時掌翻。〉見榮、天穆已至中庭,事不果。

壬辰,帝忌日;癸巳,榮忌日。〈親喪之日爲忌日,《禮》曰:忌日不樂。〉甲午,榮暫入,卽詣陳留王家飲酒,極醉,遂言病動,頻日不入。帝謀頗泄,世隆又以告榮,且勸其速發,榮輕帝,以爲無能爲,曰:「何怱怱!」

預帝謀者皆懼,帝患之。城陽王徽曰:「以生太子爲辭,榮必入朝,因此斃之。」帝曰:「后懷孕始九月,可乎?」〈朝,直遙翻。孕,以正翻。〉徽曰:「婦人不及期而產者多矣,彼必不疑。」帝從之。

 

 25일에 황제는 군사를 광명전 동쪽 담에 숨기고서 황제의 아들이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원휘를 보내어 급히 말을 달려 이주영의 저택에 가서 이를 알리도록 하였다. 이주영은 바야흐로 상당왕 원천목과 놀이를 하던 중이었는데, 원휘는 이주영의 모자를 벗기고 기쁘게 춤추며 빙빙 돌고 아울러 궁전 내의 문무백관이 소리를 전하며 급히 가니, 이주영은 마침내 그것을 믿고서 원천목과 함께 조정에 들어갔다.

 戊戌,帝伏兵於明光殿東序,聲言皇子生,遣徽馳騎至榮第告之。〈騎,奇計翻。〉榮方與上黨王天穆博,徽脫榮帽,懽舞盤旋,〈唐李太白詩云:「脫君帽,爲君笑。」脫帽懽舞,蓋夷禮也。〉兼殿內文武傳聲趣之,〈趣,讀曰促。〉榮遂信之,與天穆俱入朝。

 

 황제는 이주영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얼굴색이 변하였다. 중서사인 온자승이 말하였다.

 "폐하의 얼굴색이 변하였습니다."

 황제는 술을 계속 마셨다. 황제는 온자승에게 명령하여 사면하는 글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미 다 만들어지자 그것을 가지고서 나가다가 밖에서 들어오는 이주영과 만났는데, 이주영이 물었다.

 "이것은 무슨 문서인가?"

 온자승은 얼굴색이 변하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칙령입니다."

 이주영은 받아서 살피지 않고 들어갔다. 황제는 동쪽 담 아래에서 서쪽을 향하여 앉았고, 이주영과 원천목은 어죄의 서북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앉았다.

 帝聞榮來,不覺失色,中書舍人溫子昇曰:「陛下色變。」帝連索酒飲之。〈酒能變貌,又能張膽,故連索飲之。索,山客翻。〉帝令子昇作赦文,旣成,執以出,遇榮自外入,問:「是何文書?」子昇顏色不變,曰「敕」,榮不取視而入。帝在東序下西向坐,榮、天穆在御榻西北南向坐。

 

 원휘가 들어오고, 비로소 한 번 절하니 이주영은 괄로소경 노안·전어 이간희 등이 칼을 뽑아가지고 동쪽 문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즉시 일어나서 어좌를 향하여 달려가는데, 황제가 먼저 무릎 아래에 칼을 가로 뉘어 놓았다가 마침내 손수 그를 찌르자 노안 등이 어지럽게 찍으니, 이주영과 원천목은 동시에 모두 죽었다.

 徽入,始一拜,榮見光祿少卿魯安、典御李侃晞等抽刀從東戶入,〈漢九卿惟正卿一人,魏高祖太和十一年始各置少卿一人。典御,嘗食典御也。少,詩沼翻。〉卽起趨御座,〈趣,七喻翻。〉帝先橫刀膝下,遂手刃之,安等亂斫,榮與天穆同時俱死。

 

 이주영의 아들인 이주보재와 거기장군 이주양도 등 30명은 이주영을 따라서 궁전에 들어왔는데, 역시 복병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황제는 이주영의 홀을 얻었는데, 그 위에는 몇 개의 계문이 있었고, 모두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남길 사람과 제거할 사람이었으며, 그의 심복이 아닌 사람은 다 내보낼 곳에 있으니, 황제가 말하였다.

 "그 놈이 만약 오늘을 넘겼다면 끝내는 제어할 수 없었겠다."

 榮子菩提及車騎將軍爾朱陽覩等三十人從榮入宮,亦爲伏兵所殺。〈菩,薄乎翻。〉帝得榮手版,上有數牒啓,皆左右去留人名,非其腹心者悉在出限,〈出,不使在帝左右。〉帝曰:「豎子若過今日,遂不可制。」

 

 이에 안팎으로 기뻐하고 떠들썩하였는데, 그 소리가 낙양성에 찼다. 문무백관이 들어와서 축하하였다. 황제는 창합문에 올라서 조서를 내리고서 크게 사면하였으며, 무위장군 해의와 전 연주 자사인 최연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서 북중에서 진수하도록 하였다.

 於是內外喜譟,聲滿洛陽城。百僚入賀。帝登閶闔門,下詔大赦,遣武衞將軍奚毅、前燕州刺史崔淵將兵鎭北中。〈燕,因肩翻。將,卽亮翻。〉

 

 ...하략...

 是夜,〈【章:甲十一行本「夜」下有「爾朱世隆奉」五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北鄕長公主帥榮部曲,焚西陽門,出屯河陰。〈西陽門,卽洛陽城西明門也。〉

衞將軍賀拔勝與榮黨田怡等聞榮死,奔赴榮第。時宮殿門猶未加嚴防,怡等議卽攻門,勝止之曰:「天子旣行大事,必當有備,吾輩衆少,何可輕爾!〈少,詩沼翻。〉但得出城,更爲他計。」怡乃止。及世隆等走,勝遂不從,〈《考異》曰:《周書》及《北史》云:「勝復從世隆至河橋,勝以爲臣無讎君之義,遂勒所部還都,莊帝大悅。」今從《魏書》。〉帝甚嘉之。朱瑞雖爲榮所委,而善處朝廷之間,〈朱瑞,本榮之行臺郎中也。榮定魏主於洛陽,以瑞爲黃門侍郎兼中書舍人。處,昌呂翻。〉帝亦善遇之,故瑞從世隆走而中道逃還。

榮素厚金紫光祿大夫司馬子如,榮死,子如自宮中突出,至榮第,棄家,隨榮妻子走出城。世隆卽欲還北,子如曰:「兵不厭詐,今天下恟恟,唯強是視,〈恟,許勇翻。〉當此之際,不可以弱示人,若亟北走,恐變生肘腋。〈腋,音亦。〉不如分兵守河橋,還軍向京師,出其不意,或可成功。假使不得所欲,亦足示有餘力,使天下畏我之強,不敢叛散。」世隆從之。己亥,攻河橋,擒奚毅等,殺之,據北中城。魏朝大懼,遣前華陽太守段育慰諭之,〈魏分漢中之沔陽、西縣置華陽郡,以其地在華山之南也。朝,直遙翻。華,戶化翻。〉世隆斬首以徇。

魏以雍州刺史爾朱天光爲侍中、儀同三司。〈雍,於用翻。〉以司空楊津爲都督幷‧肆等九州諸軍事、驃騎大將軍、幷州刺史,兼尚書令、北道行臺,經略河、汾。〈驃,匹妙翻。騎,奇計翻。〉

榮之入洛也,以高敖曹自隨,禁於駝牛署;〈爾朱榮誘拘高敖曹,事見一百五十二卷大通二年。〉榮死,帝引見,勞勉之。〈見,賢遍翻。勞,力到翻。〉兄乾自東冀州馳赴洛陽,〈魏孝昌末,葛榮作亂,高翼聚衆河、濟間,魏因置東冀州,以翼爲刺史。蓋因劉宋先置冀州於河、濟間,而置東冀州以別河北之冀州也。翼,乾之族也。按後以高翼爲乾之父。〉帝以乾爲河北大使,〈使,疏吏翻。〉敖曹爲直閤將軍,使歸,招集鄕曲爲表裏形援。帝親送之於河橋,〈敖曹兄弟歸鄕里,路當東出,河橋在洛城北,帝不應送之於此,「河橋」二字,意必有誤。〉舉酒指水曰:「卿兄弟冀部豪傑,能令士卒致死,京城儻有變,可爲朕河上一揚塵。」乾垂涕受詔,敖曹援劍起舞,誓以必死。〈爲,于僞翻;下亦爲、吾爲、爲陛下同。援,于元翻。〉

冬,十月,癸卯朔,世隆遣爾朱拂律歸〈《考異》曰:《魏書》無拂律歸名,《伽藍記》有之。按爾朱度律時在世隆所,或者拂律歸卽度律也。〉將胡騎一千,皆白服,來至郭下,索太原王尸。〈榮迎立敬宗,封太原王。將,卽亮翻。騎,奇計翻。索,山客翻。〉帝升大夏門望之,〈洛陽城北有大夏、廣莫二門。夏,戶雅翻。〉遣主書牛法尚謂之曰:「太原王立功不終,陰圖釁逆,〈釁,許覲翻。〉王法無親,〈言法在必行,雖親無赦也。〉已正刑書。罪止榮身,餘皆不問。卿等若降,官爵如故。」拂律歸曰:「臣等隨太原王入朝,忽致冤酷,今不忍空歸。願得太原王尸,生死無恨。」因涕泣,哀不自勝,〈勝,音升。〉羣胡皆慟哭,聲振城邑。帝亦爲之愴然,遣侍中朱瑞齎鐵券賜世隆。世隆謂瑞曰:「太原王功格天地,赤心奉國,長樂不顧信誓,枉加屠害,〈魏敬宗本封長樂王。樂,音洛。〉今日兩行鐵字,何足可信!〈行,戶剛翻。〉吾爲太原王報讎,終無降理!」瑞還,白帝,帝卽出庫物置城西門外,募敢死之士以討世隆,一日卽得萬人,與拂律歸等戰於郭外。拂律歸等生長戎旅,〈長,知兩翻。〉洛陽之人不習戰鬬,屢戰不克。甲辰,以前車騎大將軍李叔仁爲大都督,帥衆討世隆。

戊申,皇子生,大赦。以中書令魏蘭根兼尚書左僕射,爲河北行臺,定、相、殷三州皆稟蘭根節度。〈相,悉亮翻。〉

爾朱氏兵猶在城下,帝集朝臣博議,皆恇懼不知出。通直散騎常侍李苗奮衣起曰:〈朝,直遙翻。恇,去王翻。散,悉亶翻。騎,奇寄翻。〉「今小賊唐突如此,朝廷有不測之憂,正是忠臣烈士效節之日。臣雖不武,請以一旅之衆爲陛下徑斷河橋。」〈杜預曰:五百人爲一旅。斷,丁管翻。〉城陽王徽、高道穆皆以爲善,帝許之。乙卯,苗募人從馬渚上流乘船夜下,去橋數里,縱火船焚河橋,倏忽而至。爾朱氏兵在南岸者,望之,爭橋北渡,俄而橋絕,溺死者甚衆。苗將百許人泊於小渚以待南援,〈溺,奴狄翻。將,卽亮翻;下同。〉官軍不至,爾朱氏就擊之,左右皆盡,苗赴水死。帝傷惜之,贈車騎大將軍、儀同三司封,河陽侯,諡曰忠烈。世隆亦收兵北遁。丙辰,詔行臺源子恭將步騎一萬出西道,楊昱將募士八千出東道以討之,〈募士,卽洛城西門外所募者也。〉子恭仍鎭太行丹谷,築壘以防之。〈《水經註》:丹水出上黨高都縣故城東北阜下,東南流注于丹谷。《晉書‧地道記》曰:縣有太行關,丹溪爲關之東谷,塗自此去,不復由關矣。行,戶剛翻。《考異》曰:《伽藍記》云:「源子恭、楊寬領步騎三萬鎭河內。」今從《魏書》。〉世隆至建州,〈慕容永分上黨置建興郡,魏眞君元年省,和平五年復置郡,永安中,罷郡,置建州,治高都城,領高都、長平、安平、恭寧郡。據《五代志》:建州卽唐澤州之地。〉刺史陸希質閉城拒守,世隆攻拔之,殺城中人無遺類,以肆其忿,唯希質走免。

詔以前東荊州刺史元顯恭爲晉州刺史,〈魏孝昌中置唐州,建義元年改曰晉州,治白馬城,領平陽、西河、南絳、北絳、永安、北五城、定陽、西平城、(三字衍。)敷城、河西、五城、冀氏、義寧郡。〉兼尚書左僕射、西道行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