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淮堰(회하의 제방)/立冬節 中候地始凍初日(陰9/27)己未

solpee 2020. 11. 11. 14:49

《南北朝 梁紀4 武 天監 15 (丙申, 516)

 

 ⑦. 여름, 4월에 회언이 완성 되었는데, 길이가 9里, 밑바닥 너비가 140丈, 윗면의 너비가 45丈, 높이가 20丈이었고, 거류(키버들)나무로 심어져 있었으며, 군사기지가 그 위에 열을 지어 있었다.(南朝의 一丈은 258cm)

 ⑦. 夏,四月,淮堰成,長九里,下廣一百四十丈,上廣四十五丈,高二十丈,樹以?柳,長,直亮翻。廣,古曠翻。高,居號翻。?柳,柜柳也。軍壘列居其上。

 

 어떤 사람이 강현(양 도독회상제군사)에게 말하였다.

 "4개의 강(長,珠,淮,漢)은 하늘이 조절하므로써 그 기를 베푸는 것이기에 오랫동안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강의 밑바닥을 뚫어서 동쪽으로 물을 댄다 해도, 흐르는 물결이 느리게 간다면 방죽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或謂康絢曰:「四瀆,天所以節宣其氣,不可久塞,《國語》,周太子晉曰:「古之長民者,不墮山,不崇藪,不防川,不竇澤。夫山,土之聚也;藪,物之歸也;川,氣之導也;澤,水之鍾也。天地成而聚於高,歸物於下,疏爲川谷以導其氣,陂塘汚庳以鍾其美。」塞,悉則翻。若鑿湬東注,則游波寬緩,堰得不壞。」

 

 강현이 마침내 강의 밑바닥을 열어서 동쪽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다. 또 반간을 위에 멋대로 풀어놓고 말하였다.

 "양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강의 밑바닥을 여는 것이지, 들판에서 싸우는 것은 두려워 하지 않는다."

 소보인은 그것을 믿고서 산을 5丈 깊이로 뚫어서, 강의 밑바닥을 열어 북쪽으로 물을 댔는데,  물은 밤낮으로 나누어 흘렀으나 오히려 줄지 않았기애 위의 군대는 마침내 그만두고 돌아갔다. 물이 미친 곳은 회하를 끼고 사방 수백 리였다.

 絢乃開湬東注。又縱反間於魏曰:「梁人所懼開湬,不畏野戰。」蕭寶寅信之,鑿山深五丈,開湬北注,水日夜分流猶不減,丁度《集韻》:湬,與湫同,將由翻。間,古莧翻。深,式浸翻。魏軍竟罷歸。水之所及,夾淮方數百里。

 

 이숭은 협석의 수자리 사이에 부교를 놓고, 또 팔공산의 동남부에 위창성을 쌓아서 수양성이 무너지는 것을 대비하였는데, 거주하는 백성들은 흩어져서 산등성이나 고개로 갓고, 그 물은 맑고 투명하여서 허리를 구부려 가옥과 무덤을 보면 아래에 물체들이 분명하였다.

 李崇作浮橋於硤石戍間,又築魏昌城於八公山東南,以備壽陽城壞,居民散就岡隴,山脊爲岡,高丘爲隴。其水清徹,俯視廬舍冢墓,了然在下。

 

 애초에, 방죽은 서주의 경내에서 시작되었는데, 자사 장표자가 선언하기를 자기가 반드시 그 일을 관장하겠다고 말하였고, 이미 그러하였으나, 강현이 다른 관직을 가지고 와서 이 일을 감독하면서 만들자, 장표자는 대단히 부끄럽게 여겼다. 얼마 후에 장표자에게 칙서를 내려서 강현의 통제를 받게 하니, 장표자는 마침내 강현이 위와 왕래한다고 참소하였고, 황상이 비록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 일이 끝났다고 하여 강현을 돌아오라고 불렀다.

 初,堰起於徐州境內,浮山在鍾離郡界,梁置徐州於鍾離。刺史張豹子宣言,謂己必掌其事;旣而康絢以他官來監作,監,古銜翻。豹子甚慙。俄而敕豹子受絢節度,豹子遂譖絢與魏交通,上雖不納,猶以事畢徵絢還。絢還則堰壞矣。

 

 ⑬. 강현이 이미 돌아가고 나서 장표자는 회언을 다시 수리하지 않았다. 9월 13일에 회하가 갑자기 물이 불어나서 방죽이 무너지니,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아서 300리까지도 들렸고, 회하 연변에 있는 수자리와 촌락에 있던 10여만 명이 모두 물에 휩쓸려 바다로 들어갔다.

 ⑬. 康絢旣還,張豹子不復脩淮堰。九月,丁丑,淮水暴漲,堰壞,其聲如雷,聞三百里,聞,音問。緣淮城戍村落十餘萬口皆漂入海。

 

 애초에, 위인들은 회언을 걱정하여, 임성왕 원징을 대장군·대도독남토제군사로 삼아서 병사 10만을 챙겨서 장차 서주로 나와서 방죽을 공격하려 하였지만, 상서우복야 이평(淮堰 또는 浮山堰을 공격한 적이 있다)이 '병력을 빌리지 않아도 끝내는 마땅히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너졋다는 소식을 듣고 태후는 대단히 기뻐하며 이평에게 아주 후하게 상을 주었고, 원징은 마침내 가지 않았다.

 初,魏人患淮堰,以任城王澄爲大將軍、大都督南討諸軍事,勒衆十萬,將出徐州來攻堰,尚書右僕射李平以爲「不假兵力,終當自壞。」及聞破,太后大喜,賞平甚厚,澄遂不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