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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生身死,所不憾也(태자를 낳고 죽더라도 유감스럽지 않다)/庚子立冬節初候水始氷3日(陰9/24)丙辰

solpee 2020. 11. 9. 04:56

《南北朝 梁紀3 武 天監 9 (庚寅, 510)

 

 ③. 3월 14일에 북위 황제의 아들 원후가 태어났다. 원후의 어머니 호충화는 임경 사람이고, 아버지 호국진은 무시백을 세습하였다. 호충화가 처음 선발되어 액정궁으로 들어가니, 같은 항렬의 사람들이 이전의 일을 가지고 그녀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③. 三月,丙戌,魏皇子詡生。【章:十二行本「生」下有「大赦」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詡母胡充華,臨涇人,充華,晉武帝制。宋明帝時以婕妤、充華等五職位亞九嬪,蕭齊之世,位列九嬪。臨涇縣,自漢以來屬安定郡。詡,況羽翻。 父國珍襲武始伯。《隋志》,金城郡狄道縣,後魏置武始郡。 充華初選入掖庭,同列以故事祝之︰【章:十二行本「之」下有「曰」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

 

 "바라건대 여러 왕과 공주는 낳지만, 태자는 낳지 마라."(당시 북위 풍습에 태자를 낳으면 외척의 발호를 예방하기 위하여 그 생모를 죽였다.)

 호충화가 말하였다.

 "첩의 뜻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니, 어찌 자기 한 몸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나라에 후사가 없도록 하겠는가?"

 「願生諸王、公主,勿生太子。」充竹華曰:「妾之志異於諸人,柰何畏一身之死而使國家無嗣乎!」

 

 임신하게 되자, 같은 항렬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달아나라고 권하였으나, 호충화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고 사사로이 스스로 맹서하였다.

 "만약 다행스럽게 남자아이를 낳는다면, 차례에 따라서 마땅히 맏이가 될 것이니, 남자가 태어나고 내 몸은 죽더라도 유감스러울 것이 없다."

 이미 그리하고서 원후를 낳았다.

 及有娠,同列勸去之,娠,音身。去,羌呂翻。 充華不可,私自誓曰:「若幸而生男,次第當長,長,丁丈翻,今知兩翻;下漸長同。 男生身死,所不憾也。」旣而生詡。

 

 이보다 먼저 위 황제는 자주 황제의 아들을 잃고 나이도 점차 들게 되자, 더욱 깊고 신중하게 보호하여 양가 출신 중에서 아이를 키우기에 적당한 사람을 뽑아서 乳保(保=母)로 삼아 별궁에서 양육하도록 하고 황후와 호충화는 모두 접근할 수 없게 하였다.

 先是,魏主頻喪皇子,先,悉薦翻。喪,直浪翻。 年漸長,深加愼護,擇良家宜子者以爲乳保,乳母、保母也。 養於別宮,皇后、充華皆不得近。近,其靳翻。

 

《南北朝 梁紀3 武 天監 11 (壬辰, 512)

 

 ⑥. 겨울, 10월 18일에 위에서 황제의 아들 원후를 세워서 태자로 삼았는데, 처음으로 그 생모를 죽이지 않았다. 상서우복야 곽조를 영태자소사로 삶았다. 곽조는 일찍이 위 황제를 따라서 동국으로 갔는데, 노란색 참외를 가슴에 품고 가서 태자를 받들자, 당시 조서에 응대하려고 좌우에 있던 조도궁이 황제의 신임을 받았는데, 곽조가 몰래 그를 섬기니 당시 사람들은 그를 '도궁복야' 또는 '황편소사'라고 불렀다.

 ⑥. 冬,十月,乙亥,魏立皇子詡爲太子,始不殺其母。爲後胡后亂魏張本。 以尚書右僕射郭祚領太子少師。祚嘗從魏主幸東宮,懷黃㼐以奉太子;㼐,扶田翻。《博雅》,白㼐,瓜屬。此黃㼐,又一種也。 時應詔左右趙桃弓深爲帝所信任,祚私事之,時人謂之「桃弓僕射」、「黃㼐少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