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顏見遠의 順死/霜降節末候蟄蟲咸俯4日(陰9/20)壬子

solpee 2020. 11. 4. 09:35

《南北朝 梁紀1 武帝 天監 元年〈壬午, 502

 

 ⑪. 2월, 제 화제가 고숙에 도착하여, 28일에 조서를 내려서 양에게 황제의 자리를 선양하였다.

 ⑪. 2月, 齊和帝至姑孰,丙辰,下詔禪位于梁。

 

 ⑭. 여름, 4월 3일에 선덕태후가 명령하였다.

 "서쪽에서 조서가 도착하였는데, 황제께서는 이전의 시대를 법도로 삼아서 신기를 양에게 공손히 선양한 것이니 다음날 아침에 임헌하여 사신을 파견하여 옥새와 인수를 공손히 주고 미망인인 나는 별궁으로 돌아가겠다."

 ⑭. 夏,四月,辛酉,宣德太后令曰:「西詔至,齊和帝雖已至姑孰,其地猶在建康之西,故曰西詔。帝憲章前代,憲章前代者,以前代爲法度也。敬禪神器于梁,明可臨軒明,謂明旦也。遣使恭授璽紱,未亡人歸于別宮。」古者君薨,其夫人在者自稱未亡人。使,疏吏翻。璽,斯氏翻。紱,音弗。

 

 4일에 책서를 내려서 겸태보인 상서령 왕량 등으로 하여금 황제의 옥새와 인수를 받들고 양의 궁전에 가도록 하였다. 8일에 양왕이 남교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고쳤다.(梁 武帝 39歲 蕭衍 天監元秊, 齊 和帝 中興2年 7世 24年 亡. 北魏 景明 3年, 柔然汗國 太安 13年)

 이날 형 蕭懿를 추증하여 승상으로 삼고 장사왕에 책봉하고 시호를 宣武라고 하며 장례는 晉의 안평헌왕의 고사에 의거하게 하였다.

 壬戌,發策,遣兼太保、尚書令亮等奉皇帝璽紱詣梁宮。亮,王亮也。丙寅,梁王卽皇帝位于南郊,大赦,改元。始改元天監。是日,追贈兄懿爲丞相,封長沙王,諡曰宣武,葬禮依晉安平獻王故事。懿爲東昏侯所殺,葬不成禮,今依晉葬安平王孚禮葬之。

 

 9일에 화제를 받들어서 파릉왕으로 삼고 고숙에 궁을 두며 우대하는 예절은 모두 제 초기를 모방하였다. 선덕태후를 받들어서 제 문제의 비로 하며 왕황후를 파릉왕의 비로 하였다. 제 시대에 왕과 제후가 받았던 영지와 관작은 모두 등급을 내리고 봉국은 없앴지만 오직 송의 여음왕은 삭제되는 예에 넣지 않았다.(난제의 의하여 송을 빼앗긴 劉準을 말하며, 三恪之禮, 즉 선왕 존중 예를 갖춘 것)

 丁卯,奉和帝爲巴陵王,宮于姑孰,優崇之禮,皆倣齊初。〈倣齊奉汝陰王之禮。〉奉宣德太后爲齊文帝妃,王皇后爲巴陵王妃。齊世王、侯封爵,悉從降省,〈降者,王降公,公降侯。省者,除其封國。省,所梗翻。〉唯宋汝陰王不在除例。〈備三恪也。〉

 ............................................하략.........................................

 追遵皇孝爲文皇帝,廟號太祖;皇妣爲獻皇后。〈《考異》曰:《南史》云五月追尊。今從《梁書》。〉追諡妃郗氏曰德皇后。〈東昏侯永元元年,郗氏卒于襄陽。郗,丑之翻。〉封文武功臣車騎將軍夏侯詳等十五人爲公、侯。〈騎,奇寄翻。〉立皇弟中護軍宏爲臨川王,南徐州刺史秀爲安成王,雍州刺史偉爲建安王,〈雍,於用翻。〉左衞將軍恢爲鄱陽王,荊州刺史憺爲始興王;以宏爲揚州刺史。

丁卯,以中書監王亮爲尚書令,相國左長史王瑩爲中書監,吏部尚書沈約爲尚書僕射,長兼侍中范雲爲散騎常侍、吏部尚書。

 

 ⑯. 10일에 파릉왕이 죽었다. 이때에 황상은 남해군을 파릉국으로 만들고, 왕을 옮겨서 그곳에 살게 하려고 하였다. 심약이 말하였다.

 "고금의 일은 다르니 魏武(曹操)가 말한바 '헛된 명예를 그리워하여 실제 재앙을 받아서는 안된다.'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내 측근인 정백금을 파견하여 고숙에 가서 生金(정련되지 않은 황금 이를 먹으면 죽는다.)을 왕에게 드리도록 하니, 왕이 말하였다.

 "내가 죽는데, 금까지 기다릴 것 없고 醇酒면 족하다."

 마침내 마시고 깊이 취하자 정백금이 다가가서 摺殺(접살;꺽어죽임)하였다.

 ⑯. 戊辰,巴陵王卒。時上欲以南海郡爲巴陵國,徙王居之。沈約曰:「古今殊事,魏武所云『不可慕虛名而受實禍。』」沈約夢齊和帝劍斷其舌,天之報應固不爽也。上頷之,乃遣所親鄭伯禽詣姑孰,以生金進王,王曰:「我死不須金,醇酒足矣。」乃飲沈醉;沈,持林翻。伯禽就摺殺之。時年十五。摺,落合翻。

 

 왕이 형주를 진수할 때에 낭야 사람 안견원을 녹사참군으로 삼았었는데, 황제에 즉위하고 나자 치서시어사·중승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윽고 황제를 선양하자 안견원이 음식을 며칠 굶다가 죽었다.

 王之鎭荊州也,琅邪顏見遠爲錄事參軍,及卽位,爲治書侍御史兼中丞,〈治,直之翻。〉旣禪位,見遠不食數日而卒。〈史言齊臣以死殉和帝者僅一顏見遠。〉上聞之曰:「我自應天從人,〈曰從人者,避皇考順之諱也。〉何預天下士大夫事,而顏見遠乃至於此!」〈此言不可以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