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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희의 세 딸/霜降節中候草木黃落4日(음9/15)丁未

solpee 2020. 10. 28. 11:06

《南北朝 齊紀6 明 建武 3年》〈丙子, 496年

 

 ⑤. 2월, 13일에 위에서 조서를 내렸다.

 "기내에 거주하는 70세 이상 노인들은 暮春(3월 즉 늦봄)에 경사에서 노인들을 봉양하는 전례에 참가하라."

 3월 3일에 화림원에서 여러 신하들과 國老(늙어 퇴임한 공무원)·庶老(국로 외 노인)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조서를 내렸다.

 ⑤. 2月, 丙午,魏詔︰「畿內七十已上,暮春赴京師行養老之禮。」三月,丙寅,宴羣臣及國老、庶老於華林園。詔︰

 

 "국로로 黃耉 이상인 사람들애게는 중산대부·군수를 임시로 주고, 耆年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급사중·현령을 임시로 준다. 서로에게는 곧바로 군수·현령을 주는데, 각각 鳩杖(반점이 있는 비둘기는 음식을 먹을 때 목이 메지 않는다 하여 건강의 상징으로 지팡이 머리에 비둘기 머리를 새겼다.)과 의상도 하사한다."

 「國老,黃耇已上,假中散大夫、郡守;耆年已上,假給事中、縣令;庶老,直假郡、縣;各賜鳩杖、衣裳。」熊氏曰︰國老,謂卿大夫致仕者。庶老,謂士也。皇氏曰︰庶老,兼庶人在官者。毛萇曰︰黃,黃髮也;耇,老艾也。陸德明曰︰耆,至也,言至老境也。《漢儀》︰仲秋之月,縣道皆按戶比民年︰始七十者授以玉杖,餔之糜粥;八十者禮有加。賜玉杖長九尺,端以鳩鳥爲飾。鳩者,不噎之鳥也,欲老人不噎。耇,音苟。「郡縣」之下當有逸字。

 

 

 ⑫. 가을 7월, 위에서 황후 풍씨를 폐출하였다. 애초에, 문명태후가 그 가문을 귀중하게 하려고 풍희의 두 딸을 간택하여 액정에 넣었는데, 그 한 사람은 일찍 죽었고, 그 다른 한 사람은 효문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병이 들어서 친정으로 돌아간 뒤에 비구니가 되었다.

 ⑫. 秋,七月,魏廢皇后馮氏。初,文明太后欲其家貴重,簡馮熙二女入掖庭︰其一早卒;其一得幸於魏主,未幾,有疾,還家爲尼。

 

 태후가 죽고 나자, 황제는 풍희의 어린 딸을 세워서 황후로 삼았다. 이미 그러고 나서 그 언니의 병이 쾌유하자, 황제가 그녀를 생각하여 다시 궁궐로 맞아들여서 좌소의에 임명하니, 황후에 대한 총애가 점차 쇠퇴하여지게 되었다.

 及太后殂,帝立熙少女爲皇后。幾,居豈翻。少,詩照翻。旣而其姊疾愈,帝思之,復迎入宮,拜左昭儀,后寵浸衰。

 

 소의는 스스로 나이가 많고 또 먼저 궁궐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여 첩으로서의 예의를 좇지 않았다. 황후가 자못 부끄럽고 원망스러워하자, 소의가 이어서 그녀를 참소하여 그녀를 쫓아낸 것이다. 황후는 원래 덕성과 지조가 있었는데, 마침내 요광사에 거주하면서 수련하고 계행을 실천하는 비구니가 되었다.

 昭儀自以年長,且先入宮,不率妾禮。復,扶又翻。長,丁丈翻,今知兩翻。率,循也。后頗愧恨,昭儀因譖而廢之。爲後昭儀爲后及不終張本。后素有德操,遂居瑤光寺爲練行尼。練行,謂修練戒行也。瑤光寺在洛陽宮側。行,下孟翻。

 

 

 ⑬. 효문제가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서 22일부터 24일까지 음식을 먹지 않았더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중서성으로 가서 알현하기를 요청하였다. 황제는 숭허루에 머물면서 사인을 보내어 사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 이유를 물었다. 예주 자사 왕숙이 대답하였다.

 ⑬. 魏主以久旱,自癸未不食至于乙酉,羣臣皆詣中書省請見。帝在崇虛樓,武帝永明九年,魏移道壇於桑乾之陰,改曰崇虛寺。此蓋遷洛後建崇虛樓於禁中,齋戒則居之。見,賢遍翻。遣舍人辭焉,且問來故。舍人,卽中書舍人。問其所以來請見之故。豫州刺史王肅對曰︰

 

 "지금 사방의 근교에는 비가 내려서 이미 촉촉이 적셔있으나, 오직 경성만 미미할 뿐입니다. 가난한 백성들조차 아직 한 끼를 거르지 않앗는데, 폐하께서 3일 동안이나 식사를 멈추시니, 신들은 황공하여 다시는 정붙이고 살 땅이 없습니다."

 황제가 사인을 시켜서 그 말에 응답하였다.

 「今四郊雨已霑洽,獨京城微少。細民未乏一餐而陛下輟膳三日,臣下惶惶,無復情地。」少,詩沼翻。復,扶又翻。帝使舍人應之曰︰

 

 "짐은 며칠 동안 먹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느낌이 없다. 근래 안팎에서 귀한 사람 천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사방에서 비가 내렸다고 말하지만, 짐은 그들이 서로 마음을 너그럽게 갖게 하도록 하는 것이지 아직은 반드시 사실은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오. 바야흐로 장차 사자를 보내어 그것을 보도록 하였는데, 과연 그렇지 않으면, 짐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마땅히 몸으로써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허물을 막을 따름이다."

 그날 저녁에 큰비가 내렸다.

 「朕不食數日,猶無所感。比來中外貴賤,皆言四郊有雨,比,毗至翻。朕疑其欲相寬勉,未必有實。方將遣使視之,使,疏吏翻。果如所言,卽當進膳;如其不然,朕何以生爲,當以身爲萬民塞咎耳!」塞,悉則翻。是夕,大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