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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時之務,實爲長勤[sānshízhīwù,shíwèizhǎngqín]세 계절을 힘쓴 결과/霜降節初候豺乃祭獸2日(陰9/8)庚子.

solpee 2020. 10. 24. 10:31

《南北朝 齊紀2 武 永明 4年》〈丙寅, 486年

 

 ⑳. 이 해에 위는 중서학을 국자학으로 바꾸었다. 주와 군을 나누어 설치하였는데, 모두 38주로 25주가 하남에 있었고, 13주가 하북에 있었다.

 ⑳. 是歲,魏改中書學曰國子學。〈魏先置中書博士及中書學生,今改曰國子學,從晉制也。〉分置州郡,凡三十八州,二十五在河南,十三在河北。〈河南二十五州,青、南青、兗、齊、濟、光、豫、洛、徐、東徐、雍、秦、南秦、梁、益、荊、涼、河、沙,時又置華、陝、夏、岐、班、郢,凡二十五。河北十三州,司、幷、肆、定、相、冀、幽、燕、營、平、安,時又置瀛、汾,凡十三。蕭子顯曰︰雍、涼、秦、沙、涇、華、岐、河、西華、寧、陝、洛、荊、郢、北豫、東荊、南豫、西兗、東兗、南徐、東徐、青、齊、濟、光二十五州在河南,相、汾、懷、東雍、肆、定、瀛、朔、幷、冀、幽、平、司等十三州在河北。〉

 

《南北朝 齊紀2 武 永明 5年》〈丁卯, 487年

 

 ②. 봄, 정월, 2일에 예장왕 소억을 대사마로 삼고, 경릉왕 소자량을 사도로 삼았으며, 임천왕 소영·위장군 왕검·중군장군 왕경칙에게는 나란히 개부의동삼사를 덧붙여주었다. 소자량이 기실 범운을 군수로 삼자고 계문을 올리니, 황제가 말하였다.

 "소문에 그가 늘 서로 농지거리를 한다고 하지만, 짐이 다시 끝까지 법으로 추궁하지 않고 그를 너그럽게 용서하니 멀리하라."

 ②. 戊子,以豫章王嶷爲大司馬,竟陵王子良爲司徒,臨川王映、衞將軍王儉、中軍將軍王敬則並加開府儀同三司。子良啓記室范雲爲郡,上曰︰「聞其常相賣弄,朕不復窮法,當宥之以遠。」復,扶又翻。

 

 소자량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범운은 움직일 때면 규범대로 가르쳤는데, 간한 편지들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마침내 주문을 가져오게 하니 무릇 100여 지로, 말씨가 모두 간절하고 곧았다. 황상이 탄식하며 소자량에게 말하였다.

 "범운이 이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바야흐로 너를 보필하도록 하지 어찌 군수로 보내야 한단 말이냐?"

 子良曰︰「不然。雲動相規誨,諫書具存。」遂取以奏,凡百餘紙,辭皆切直。上歎息,謂子良曰︰「不謂雲能爾;方使弼汝,何宜出守!」守,式又翻。

 

 문혜태자가 일찍이 동전에 나가 수확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여러 빈객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것을 베는 것 또한 볼 만하다."

 무리들이 모두 말하였다.

 "예,예"

 文惠太子嘗出東田觀穫,時太子作東田於東宮之東,綿亙華遠,壯麗極目。又《齊紀》︰太子立樓館於鍾山下,號曰東田。顧謂衆賓曰︰「刈此亦殊可觀。」衆皆曰︰「唯唯。」唯,于癸翻。

 

 범운이 홀로 말하였다.

 "세 계절 동안 힘쓰는 일은 실제로 오랫동안 부지런히 한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이 몹시 힘들고 어려운 것을 아시고, 하루 아침의 잔치로 일락함을 자랑해서는 아니 됩니다."

 雲獨曰︰「三時之務,實爲長勤三時之務,謂春耕、夏耘、秋穫也。伏願殿下知稼穡之艱難,無徇一朝之宴逸!」

 

 ⑪. 9월 13일에 위에서 조서를 내려 起部(상서성 공사감독기구)에서 처리하는 아무런 이로움도 없는 것을 철폐하고 피륙을 짜지 않는 사람들을 궁에서 내보냈다. 겨울 10월 26일에 또한 조서를 내러 상방에서 비단에 수를 놓는다든지 비단에 무늬를 넣는 장인들을 없애게 하고, 사민이 만들고자 하면 이를 맡기고 금지함이 없었다.

 ⑪. 九月,【嚴︰「九月」改「冬十月」。】辛未,魏詔罷起部無益之作,起部掌百工之事。《書》曰︰百工起哉。出宮人不執機杼者。冬,十月,【嚴︰「冬十月」改「十一月」。】丁未,又詔罷尚方錦繡、綾羅之工;四民欲造,任之無禁。四民,士、農、工、商也。

 

 이때 위에는 오랫동안 특별한 일이 없어서 부의 창고는 쌓은 것이 가득 찼다. 조서를 내려 御府에 있는 여러 가지의 용기, 太僕(황제 마필 담당)에 있는 수레용구, 궁궐 내의 창고에 있는 활과 화살 그리고 칼과 자물쇠 가운데 8/10을 모두 내보내도록 하였고, 궁궐 밖에 잇는 창고의 의물(의복)과 증포(비단) 그리고 사광(실과 솜) 가운데 쓰도록 보내진 것이 아니면 절반 이상을 백사를 비롯하여 아래로 공과 상과 皁隸(하인과 종)에 이르기까지 나누어주었는데, 6鎭의 변경에 있는 수자리까지 이르도록 하였고, 경기 안에 있어서는 鰥·寡·孤·獨·貧·癃에 이르도록 나누어 주었는데 모두 차이를 두었다.

 是時,魏久無事,府藏盈積。詔盡出御府衣服珍寶、太官雜器、太僕乘具、內庫弓矢刀鈐十分之八,藏,徂浪翻。乘,繩證翻。鈐,與鉗同,其廉翻,刃也。唐有玉鈐衞。外府衣物、繒布、絲纊繒,慈陵翻,帛也。纊,苦謗翻。纊,絮也。非供國用者,以其太半班賚百司,下至工、商、皁隸,逮于六鎭邊戍,畿內鰥、寡、孤、獨、貧、癃,皆有差。劉熙《釋名》曰︰無妻曰鰥;憂悒不能寐,目常鰥鰥然。其字從魚,魚目常不閉。無夫曰寡;寡,倮也,倮然單獨也。無父曰孤;孤,顧也,顧望無所瞻見也。無子曰獨;獨,鹿也,鹿鹿無所依也。無財曰貧。疲病曰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