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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군 3만 가호를 유주로 이주시키다./秋分節初候雷始收聲5日(陰8/10)壬申

solpee 2020. 9. 26. 20:48

南北朝 宋紀4 文帝 元嘉 9年》〈壬申, 432年

 

 ⑲. 연의 석성 태수 이숭 등 10개 군이 위에 항복하였다. 위의 주군이 그 백성 3만 명을 징벌하여 주위에 해자를 파게하고 화룡을 지켰다. 이숭은 이적의 아들이다.

 ⑲. 燕石城太守李崇等十郡降于魏。石城縣,前漢屬右北平,燕分置石城郡。魏眞君八年,置建德郡於白狼,以石城爲縣,屬焉。降,戶江翻。魏主發其民三萬穿圍塹以守和龍。崇,績之子也。李績見一百卷晉穆帝升平四年。塹,七豔翻。

 

 8월에 연왕이 수만 명으로 하여금 나가서 싸우게 하였는데, 위의 창려공 탁발구 등이 공격하여 그를 격파하니 죽은 사람이 만여 명이었다. 연의 상서 고소가 1만여 호를 거느리고 강호고를 지켰는데, 9일에 위의 주군이 고소를 공격하여 그의 목을 베었다. 평동장군 하다라가 대방(요령 의현)을 공격하고, 무군대장군인 영창왕 탁발건이 건덕(금주)을 공격하고, 표기대장군인 낙평왕 탁발비가 기양을 공격하여 탈취하였다.

 八月,燕王使數萬人出戰,魏昌黎公丘等擊破之,「公丘」之下當有漏字。死者萬餘人。燕尚書高紹帥萬餘家保羌胡固;帥,讀曰率。辛巳,魏主攻紹,斬之。平東將軍賀多羅攻帶方,撫軍大將軍永昌王健攻建德,驃騎大將軍樂平王丕攻冀陽,皆拔之。

 

 9월 14일에 위의 주군이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돌아가 영구·성주·요동·낙랑·대방·현토의 여섯 군의 백성 3만 가호를 유주로 이주시켰다.

 연의 상서인 곽연이 연왕에게 위에 정성껏 딸을 바쳐 보내고 부용국이 될 것을 요청하라고 권하였다. 연왕이 말하였다.

 "전에 틈새가 벌어져 있었고, 분노를 맺게 된 것이 이미 깊은데 항복하여 귀부하는 것은 죽음을 가지러 가는 것이니, 지킬 뜻으로 다시 도모하는 것만 못하다."

 九月,乙卯,魏主引兵西還,徙營丘、成周、遼東、樂浪、帶方、玄菟六郡民三萬家於幽州。《五代志》曰:後魏置營州於和龍城,領建德、冀陽、遼東、樂浪、營丘等郡,龍城、大興、永樂、帶方、定荒、石城、廣都、陽武、襄平、新昌、平剛、柳城、富平等縣。蓋燕國自慕容以來,分置郡縣於遼西,其後或省或併,爲郡爲縣,皆不可考;如玄菟郡亦當置於遼西也。驃,匹妙翻。騎,奇寄翻。樂浪,音洛琅。菟,同都翻。

燕尚書郭淵勸燕王送款獻女於魏,乞爲附庸。燕王曰:「負釁在前,結忿已深,降附取死,不如守志更圖也。」釁,許覲翻。降,戶江翻。

 

 위의 주군이 화룡을 포위하였을 때 숙위하는 병사들은 대부분 전선에 있어서 행궁에는 사람이 적었다. 운중의 진장 주수지가 남방 사람과 더불어 위의 주군을 기습해서 살해하고 그 기회에 화룡으로 들어갔다가 배를 타고 남으로 돌아갈 것을 도모하였는데, 이를 관군장군 모수지에게 알렸으나 모수지가 따르지 않아 마침내 중지하였다.

 魏主之圍和龍也,宿衞之士多在戰陳,陳,與陣同。行宮人少。雲中鎭將朱脩之謀與南人襲殺魏主,因入和龍,深海南歸;以告冠軍將軍毛脩之,毛脩之不從,乃止。少,詩沼翻。將,卽亮翻。冠,古玩翻。

 

 이미 이렇게 하고나서 일이 발각되어 주수지는 연으로 달아났다. 위인이 자주 연을 정벌하자 연왕은 주수지를 파견하여 남쪽으로 가서 구원을 요청하게 하였다. 주수지는 바다를 통해 동래에 이르러 마침내 건강으로 돌아왔고, 황문시랑을 제수 받았다.

 旣而事泄,朱脩之逃奔燕。魏人數伐燕,數,所角翻。燕王遣脩之南歸求救。脩之汎海至東萊,遂還建康,拜黃門侍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