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矯性齊美[jiǎoxìngqíměi]성격을 교정하여 아름답게 되다./ 秋分節初候雷始收聲3日(陰8/8)庚午日

solpee 2020. 9. 23. 17:47

南北朝 宋紀2 文帝 元嘉 6年》〈乙巳, 429年

 

 ①. 봄, 정월에 왕홍이 상주를 올려 주·녹에서해직시켜 달라고 빌며 팽성왕 유의강에게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황제가 우대하는 조서를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20일에 유의강을 시중·도독양남 서연삼주제군사·사도·녹상서사·영남서주자사로 삼았다. 왕홍과 유의강이 두 부에서 똑같이 보좌하는 사람을 두고 군사를 관리하게 하였으며 함께 조정의 정치를 보필하게 하였다. 왕홍은 이미 병이 많아서 또 대권을 멀리 버리고자 ㅗ하여 매번 유의강을 추대하고 사양하니, 이로 말미암아 유의강이 안팎의 업무를 전적으로 총괄하였다.

 ①. 春,正月,王弘上表乞解州、錄,以授彭城王義康,州、錄,揚州及錄尚書事也。帝優詔不許。癸丑,以義康爲侍中、都督揚‧南徐‧兗三州諸軍事、司徒、錄尚書事、領南徐州刺史。武帝永初二年,加京口之徐州曰南徐,淮北之徐州但曰徐。南徐領南東海、南琅邪、晉陵、義興、南蘭陵、南東莞、臨淮、淮陵、南彭城、南清河、南高平、南平昌、南濟陰、南濮陽、南泰山、濟陽、南魯郡等郡。弘與義康二府並置佐領兵,共輔朝政。佐,參佐也,所謂佐吏。朝,直遙翻。弘旣多疾,且欲委遠大權,每事推讓義康;遠,于願翻。推,吐雷翻。由是義康總內外之務。爲義康專擅致禍張本。

 

 또 무군장군인 강하왕 유의공을 도독형상등팔주제군사·형주자사로 삼고, 시중 유담을 남만교위로 삼아 부·주의 업무를 대행하게 하였다.황제가 유의공에게 편지를 보내 그에게 훈계하며 말하였다.

 "천하의 일은 어려우며 국가의 일이 중요하니 비록 수성이라고 말하여도 실상은 또한 아직 쉽지 아니하다. 흥성과 쇠태·안정과 위기는 우리들에게 달려있을 뿐이니 어찌 왕업을 생각해 탐구하지 아니하고 지워진 짐을 크게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又以撫軍將軍江夏王義恭爲都督荊‧湘等八州諸軍事、荊州刺史,夏,戶雅翻。以侍中劉湛爲南蠻校尉,行府州事。帝與義恭書,誡之曰:「天下艱難,家國事重,雖曰守成,實亦未易。隆替安危,在吾曹耳,豈可不感尋王業,大懼負荷!感念致王業之艱難而尋繹爲治之理也。《傳》曰:其父析薪,其子不克負荷。易,以豉翻。荷,下可翻,又音如字。

 

 그대의 성품은 편협하고 급하여 뜻하는 바가 막히게 되어도 그를 반드시 실행하고자 하며, 있지 아니한 것에 뜻을 두어도 사물을 쫓아서 달라지는 것인데, 이것은 가장 잘못된 일이니, 의당 잘라내고 억누르도록 생각해야만 한다. 위청은 사대부를 예로써 대우하고 소인에게는 은덕을 베풀어주었고, 서문·안우는 성격을 교정하여 나란히 아름답게 되었고, 관우·장비는 편협하게 일을 맡겨 똑같이 폐해를 가져왔으니, 실행하여 일을 거행할 때에는 깊이 이것을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汝性褊急,志之所滯,其欲必行;滯,疑也,積也。褊,方緬翻。意所不存,從物回改;此最弊事,宜念裁抑。衞青遇士大夫以禮,與小人有恩;西門、安于,矯性齊美西門豹性剛急,常佩韋以自緩。董安于性寬緩,常佩弦以自警。關羽、張飛,任偏同弊;事見六十九卷魏文帝黃初二年。行己舉事,深宜鑒此!

 

 만약 사태가 오늘과 다르게 된다면 후사가 어리고 몽매하니, 사도는 마땅히 주공의 일을 맡아야 하고, 너는 삼가 순종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천하의 안정과 위태로움은 너의 두 사람에게서 결정될 뿐이다.

  너는 한 달에 사사로이 금전을 소비함이 30만을 넘지 말아야 하며, 만약 이보다 더 절약할 수 있다면 더욱 아름답다. 西楚의 부사는 대략 잘 알고 있는 바로써 계산해보건대 마땅히 반드시 고칠 것은 없고 나날이 다른 것을 추구하여라.

 若事異今日,嗣子幼蒙,陸德明曰:蒙,稚也。司徒當周公之事,汝不可不盡祗順之理。爾時天下安危,決汝二人耳。

汝一月自用錢不可過三十萬,若能省此,益美。西楚府舍,略所諳究,諳,烏含翻。計當不須改作,日求新異。江左謂荊州爲西楚。

 

 무릇 옥사를 신문하는 것은 대부분 당시에 결정해야 하며 거꾸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우니 이것은 실제로 곤란하고, 신문하는 날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비우고 최대한 널리하며 신중히 하여 기쁨과 노함을 남에게 덧붙여서는 안 된다. 능히 선한 것을 선택하여 이를 따를 수 있게 되면 아름다움은 스스로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며 뜻을 오로지하여 스스로 결정하여 혼자서 결단한 것이 똑똑했다고 자랑해서는 안 된다.

 凡訊獄多決當時,難可逆慮,此實爲難;至訊日,虛懷博盡,愼無以喜怒加人。能擇善者而從之,美自歸己;不可專意自決,以矜獨斷之明也!斷,丁亂翻。

 

 이름과 그릇은 의당 깊이 삼가고 아껴야 하니 망령스럽게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되고, 친근한 사람에게 작위를 하사할 때에는 더욱 헤아려서 판단해야만 한다. 나는 좌우의 사람들에게 비록 은덕을 적게 내렸으나 만약에 외부에서 논하는 것을 들으면 그릇되었다고 하지는 않는다.

 귀함으로써 타인을 능멸하면 타인은 복종하지 아니하고, 위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면 다른 사람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쉽게 할 수 잇는 일일 뿐이다.

 名器深宜愼惜,不可妄以假人;昵近爵賜,尤應裁量。吾於左右雖爲少恩,昵,尼質翻。量,音良。少,詩沼翻。如聞外論不以爲非也。

以貴凌物,物不服;以威加人,人不厭;此易達事耳。易,以鼓翻。

 

 성락과 유희는 의당 지나쳐서는 안 되고, 도박과 음주, 고기잡이와 사냥은 일체 하지 마라. 자신을 받들어 제공되는 쓸 것들은 모두 절도가 있어야 하며, 기이한 의복과 이상한 그릇은 의당 흥하고 성장하게 해서는 안 된다.

 聲樂嬉遊,不宜令過;蒲酒漁獵,一切勿爲。蒲,樗蒲也。供用奉身,皆有節度,奇服異器,不宜興長。長,丁丈翻;今知兩翻。

 

 또 의당 자주 좌사를 끌어들여 만나보아야 한다. 서로 만나는 것을 자주 하지 않으면 그들과 내가 친해지지 않고, 친하지 아니하면 사람의 마음을 다 얻을 수 잇는 이유가 없으니, 인정을 다하지 아니하면 다시 무엇으로 무리들의 일을 알 수 있겠는가!"

 又宜數引見佐史。「佐史」當作「佐吏」,晉、宋之間,藩府率謂參佐爲佐吏。數,所角翻;下同。相見不數,則彼我不親;不親,無因得盡人情;人情不盡,復何由知衆事也!」詳觀宋文帝此書,則江左之治稱元嘉,良有以也。復,扶又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