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矯誣之說,不近人情[jiǎowūzhīshuō, bùjìnrénqíng]/秋分節(22:30)初候雷始收聲(우뢰소리 거둠)初日(陰8/6)戊辰日

solpee 2020. 9. 22. 14:48

南北朝 宋紀1 營陽王 景平 元年》〈癸亥, 423年

 

 ㉗. 11월, 6일 魏 태종이 조하였다.9일에 세조가 즉위(拓跋嗣가 32세로 殂하고, 拓跋燾가 16세롤 등극)하였고, 대사면령을 내렸다. 12월 8일에 위는 금릉에 명원제를 장사지냈다. 묘호를 태종이다.

 ㉗. 11月, 己巳,魏太宗殂。年三十二。壬申,世祖卽位,世祖,諱燾,明元皇帝之長子也。蕭子顯曰:燾,字佛貍。大赦。十二月,庚子,魏葬明元帝于金陵。此雲中之金陵。據《北史》,道武帝葬盛樂金陵,蓋魏諸陵皆曰金陵。杜佑曰:後魏盛樂縣在雲中郡。廟號太宗。

 

 위의 주군이 그의 어머니 두귀빈을 추존하여서 밀황후(자식이 황제에 오르면 그 어머니를 죽였다)로 삼았다. 사도 장손고로부터 그 이하는 두루 봉작과 지위를 높혔다. 양성공 노로원을 중사감으로 삼고, 회계공 유혈을 상서령으로 삼으며, 사위감 울권·산기시랑 유고인 등 8명이 4부를 나누어 담당하도록 하였다. 울권은 울고진의 조카이다.

 魏主追尊其母杜貴嬪爲密皇后。密,諡也。自司徒長孫嵩以下普增爵位。以襄城公盧魯元爲中書監,會稽公劉絜爲尚書令,會,工外翻。司衞監尉眷、散騎侍郎劉庫仁等八人分典四部。司衞監,蓋魏所置,以掌宿衞。此又一劉庫仁,非什翼犍所用之劉庫仁也。尉,音紆勿翻。散,悉亶翻。騎,奇寄翻。四部,東、西、南、北四部也。眷,古眞之弟子也。尉古眞見一百六卷晉孝武太元十年。

 

 하내의 진장인 대 사람 나결을 시중·외도대관으로 삼고 36조의 일을 총괄하도록 하였다. 나결은 이때 나이가 107세였지만 정신이 맑고 쇠퇴하지 않았는데, 위의 주군이 그가 충성스럽고 성실하다고 여겨서 그에게 친히 일을 맡겼고, 장추경(후궁 관장)을 겸하게 하여서 후궁을 감독하고 관장하며 침실에 출입하도록 하였고, 나이가 110세가 되니 이에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보내도록 허락하였으며, 조정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말을 달려가서 찾아 묻게 하였다. 또 10년이 지나서 마침내 죽었다.

 以河內鎭將代人羅結爲侍中、外都大官,《魏書‧官氏志》:內入諸姓,叱羅氏爲羅氏。魏有外都大官、內都大官。將,卽亮翻。總三十六曹事。結時年一百七,精爽不衰,杜預曰:爽,明也。魏主以其忠慤,親任之,使兼長秋卿,監典後宮,出入臥內;監,工銜翻。年一百一十,乃聽歸老,朝廷每有大事,遣騎訪焉。騎,奇寄翻。又十年乃卒。

 

 좌광록대부 최호가 경술을 갚이 연구하고 제도를 익혔는데, 무릇 조정의 으례와 군국서조에 관여하여 관장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최호가 노자와 장자의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말하였다.

 "이는 矯誣之說(矯는 성현에 의탁하여 자기의 주장을 세우는것, 誣는 성현에 빗대어 주장을 세우거나 흉을 보는 것)이어서 인정에 가깝지 않다. 老聃이 예를 익혔고 중니가 스승으로 삼았다면 어찌 성현의 법을 무너뜨리는 글을 써서 선왕의 치도를 어지럽히겠는가?"

 左光祿大夫崔浩硏精經術,練習制度,魏、晉以來,左、右光祿大夫在光祿大夫上,假金章紫綬。硏精者,窮其精力。凡朝廷禮儀,軍國書詔,無不關掌。浩不好老、莊之書,曰:「此矯誣之說,不近人情。」託聖賢以伸其說謂之矯;聖賢無是事,寓言而加詆謂之誣。好,呼到翻。近,其靳翻。老耼習禮,仲尼所師,《史記》及《大戴記》皆云仲尼問禮於老耼。耼,他甘翻。豈肯爲敗法之書以亂先王之治乎!」敗,補邁翻。治,直吏翻。

 

 더욱이 불법을 믿지 않으며 말하였다.

 "어찌 胡族의 신을 섬기는가?"

 세조가 즉위하자 좌우의 신하들이 대부분 그를 헐뜯으니,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최호에게 명령하여 공의 작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여으나, 평소 그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아서 매번 의심되는 의견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그를 불러서 물었다. 최호는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희고 깨끗하기가 아름다운 여인과 같았으며, 항상 스스로 재주를 장량에 비견하고,옛것을 상고하는 것은 그보다 낫다고 말하였다. 이미 집으로 돌아가서는 복식과 양성의 기술을 수련하였다.

 尤不信佛法,曰:「何爲事此胡神!」及世祖卽位,左右多毀之;帝不得已,命浩以公歸第,然素知其賢,每有疑議,輒召問之。浩纖姸潔白如美婦,孅,細也;姸,美好也。常自謂才比張良而稽古過之。旣歸第,因脩服食養性之術。

 

 애초에, 숭산에 사는 도사 구겸지는 구찬지의 동생으로 장도릉의 술법을 닦았는데, 스스로 말하길, 일찍이 노자가 강림한 것을 만났다고 말하면서 구겸지에게 장도릉을 이어서 천사가 되도록 명령하고, 그에게 辟穀輕身의 술법과 《科戒》二十卷을 주고 그로 하여금 도교를 깨끗하게 정리하도록 시켰다고 하였다. 또한 신인 이보문을 만났는데 노자의 현손이라고 하였다. 《圖籙眞經》六十餘 卷을주고 구겸지로 하여금 북방태평진군을 보좌하도록 하였으며, 천궁정륜의 법술을 냈는데 그 가운데 몇 편은 이군(이보문)이 손수 쓴 것이다.

 初,嵩山道士寇謙之,讚之弟也,修張道陵之術,自言嘗遇老子降,命謙之繼道陵爲天師,張道陵,後漢人,修五斗米道,俗所謂天師也。授以辟穀輕身之術及《科戒》二十卷,今道家《科戒》蓋始於此。使之清整道敎。又遇神人李譜文,譜,博古翻。云老子之玄孫也,授以《圖籙眞經》六十餘卷,使之輔佐北方太平眞君;出天宮靜輪之法,其中數篇,李君之手筆也。

 

 구겸지는 그 책을 위의 주군에게 헌상하였다. 조정과 재야에서는 대부분 그것을 믿지 않았으나 최호는 홀로 그를 스승으로 섬기고 그 법술을 좇고 받았으며 또 상서하여 그 일을 칭찬하고 밝혔다.

 "신이 듣건대, 성스런 왕께서는 천명을 받았는데, 반드시 하늘에 호응한 것이며, 《河圖》、《洛書》는 모두 벌레와 짐승의 무늬에서 말을 기탁하였고, 아직은 지금처럼 인간과 신이 대면하여 직접 써서 분명하지는 않으나, 말과 뜻의 깊고 오묘함이 예로부터 비견할 수 없으니, 어찌 세속에 사는 사람이 항상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천상의 명령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까! 신은 가만히 그것을 두렵게 여깁니다."

 謙之奉其書獻於魏主。朝野多未之信,朝,直遙翻。崔浩獨師事之,從受其術,且上書贊明其事曰:「臣聞聖王受命,必有天應,《河圖》、《洛書》皆寄言於蟲獸之文,河出圖,伏羲象以畫八卦;洛出書,禹得之以敍九疇,故曰:「龍圖授羲,龜書畀姒。」又《尚書中候》曰:「堯沈璧於洛,玄龜負書,背中赤文朱字,止於壇畔。舜禮壇于河畔,黃龍負卷舒圖出于水。」未若今日人神接對,手筆粲然,辭旨深妙,自古無比;豈可以世俗常慮而忽上靈之命!臣竊懼之。」

 

 황제는 기뻐하며 알자를 시켜서 옥과 비단, 희생을 받들어 숭악에서 제사를 지내고, 구겸지의 제자로 산속에 있는 사람을 맞아들여서 천사를 받들고 신법을 드러내어 떨쳤으며, 천하에 선포하였다. 천사도장을 평성의 동남 지역에 세우는데, 단을 5층으로 겹쳤으며, 도사 120명에게 옷과 먹을 것을 주었고, 매달 주방을 설치하고서 수천명을 모았다.

 帝欣然,使謁者奉玉帛、牲牢祭嵩嶽,迎致謙之弟子在山中者,以崇奉天師,顯揚新法,宣布天下。起天師道場於平城之東南,重壇五層;《水經註》:濕水南逕平城之東,水左有大道壇,寇謙之所建也。濕水卽灅水。給道士百二十人衣食,每月設廚會數千人。

 

 사마광이 말하였다.

 "노자와 장자의 책이 크게 가리키는 것은 생사를 동일시하고 가거나 오거나 하는 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신선이 된 사람은 약을 먹고 수련하여서 허공에 가볍게 올라가기를 바라고, 풀과 돌을 연마하여서 금과 은을 만든다고 하니,  그 술법이 바로 서로 어그러지고, 이 때문에 유흠의 《七略》(유흠의 아버지 유향이 장서를 정리한 도서 목록으로 총 6편에 총류를 하나 덧붙혔다.)에서 도가를 제자에 집어넣었고 신선을 방기(의약의 한 분야)에 넣었습니다.

 臣光曰:老、莊之書,大指欲同死生,輕去就。而爲神仙者,服餌修鍊以求輕舉,鍊草石爲金銀,谷永說漢成帝曰:「諸言世有仙人服食不終之藥,遙興輕舉,登遐倒景,覽觀縣圃,浮游蓬萊,黃冶變化,皆姦人惑衆,挾左道,懷詐僞,以欺罔世主。」服餌修鍊以求輕舉,卽谷永所謂服食不終之藥遙興輕舉者也;鍊草石以爲金銀,卽谷永所謂黃冶變化者也。其爲術正相戾矣;是以劉歆《七略》敍道家爲諸子,神仙爲方技。以其相戾,故《七略》不得合爲一。

 

 그 후 다시 符水, 禁呪의 술법을 갖게 되었는데, 구겸지에 이르러서 마침내 합하여 하나로 만들었으며 지금에 이르러 그것을 따르니, 그 잘못됨이 심합니다!

 최호는 부처와 노자의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구겸지의 말을 믿엇으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옛날에 장문중이 원거조에게 제사를 지냈고, 공자는 그것을 지혜롭지 못하다고 여겼는데, 구겸지와 같은 사람은 원거조의 경우보다 역시 큽니다. 《詩》 300편을 한 마디로 전체를 덮는다면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군자가 법술을 택하는데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其後復有符水、禁呪之術,符水、禁呪,卽張道陵之術。至謙之遂合而爲一;至今循之,其訛甚矣!崔浩不喜佛、老之書而信謙之之言,其故何哉!喜,許記翻。昔臧文仲祀爰居,孔子以爲不智;海鳥爰居避風,止於魯東門之外,臧文仲使國人祀之。孔子以爲臧文仲不智者三,祀爰居其一也。如謙之者,其爲爰居亦大矣。「《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君子之於擇術,可不愼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