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游褒禅山记 - 王安石

solpee 2020. 9. 21. 16:03

游褒禅山记 - 王安石

 

 《游褒禅山記》는 北宋 정치가・사상가 王安石이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褒禅山(華山)을 유람한 후, 追憶하는 형식으로 쓴 여행기이다. 이 여행기는 사건으로 이치를 발견하고, 서술을 하기도 하고 논술하기도 하였는데, 그중에서 논술한 많은 思想은, 당시에 신통할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도 지극히 심원한 현실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世之奇偉、瑰怪、非常之觀,常在險遠(세상에서 기묘하면서도 웅장하거나 진기하면서도 특이하거나 보통이 아닌 광경은, 늘 위험하면서도 편벽된 곳에 있다)”는 세상 사람들이 늘 쓰는 名言이 되었다.

이글은 王安石이 34세(1054년) 舒州 通判 자리를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褒禅山을 유람하고, 3개월 후 추억하는 형식으로 쓴 것이다. 4년 후(1058年) 그는 宋 仁宗에게 萬言書를 올렸는데, 改革政治를 주장하였다. 12년 후(1070年) 재상의 관직에서 파면되었다. 그는 保守派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新法을 밀고나갔다. “天變不足畏,祖宗不足法,人言不足恤(하늘의 기상변화는 두려워할 것이 못되고, 조상의 규율이라고 해서 반드시 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비평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의 觀点을 제기하였는데, 이는 본문의 관점과도 유사한 곳이 있다.

游褒禅山记

褒禅山亦谓之华山,唐浮图慧褒始舍于其址,而卒葬之;以故其后名之曰“褒禅”。今所谓慧空禅院者,褒之庐冢也。距其院东五里,所谓华山洞者,以其乃华山之阳名之也。距洞百余步,有碑仆道,其文漫灭,独其为文犹可识曰“花山”。今言“华”如“华实”之“华”者,盖音谬也。

유포선산기

褒禅山은 华山이라고도 하는데, 唐代 승려 慧褒가 처음 포선산의 산기슭에 집을 지어 살다가, 죽은 후에 또 그곳에 묻혔고 ; 그와 같은 까닭으로 후세의 사람들은 이 산의 이름을 “褒禅”이라고 불렀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慧空禅院은, 바로 慧褒 和尚의 무덤을 지키던 움막이다. 그 禅院의 동쪽 5 리 떨어진 곳이, 사람들이 말하는 华山洞인데, 그것이 华山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화산 동굴로부터 백여 보 떨어진 곳에, 비석이 길가에 누워있는데, 上面의 글자는 이미 닳아서 희미해졌지만, 억지로 알아볼 수 있는 곳에 “花山”이라는 글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의 “华”를 “华实”의 “华”처럼 읽는 것은, (글자가 같아서 생긴) 读音上의 错误이다.

* 浮图:梵(fàn)语(古印度语)音译词,也写作“浮屠”或“佛图”,本意是佛或佛教徒,这里指和尚。

* 慧褒:唐代高僧。

* 舍:名词活用作动词,建舍定居。

* 址:地基,基部,基址,这里指山脚。산기슭.

* 而:连词,并且。卒:死后。之:指褒禅山麓。

* 以故:因为(这个)缘故,译为“因此”。名:命名,动词。禅:梵语译音“禅那”的简称,意思是“静思”,指佛家追求的一种境界。后来泛指有关佛教的人和事物,如禅师、禅子、坐禅、禅房、禅宗、禅林、禅杖等。褒禅,慧褒禅师。

* 慧空禅院:寺院名。

* 庐冢(zhǒng):古时为了表示孝敬父母或尊敬师长,在他们死后的服丧期间,为守护坟墓而盖的屋舍,也称“庐墓”。这里指慧褒弟子在慧褒墓旁盖的屋舍。

* 庐 움막 려:屋舍。(一说指慧褒生前的屋舍。)

* 冢:坟墓。禅院:佛寺。

* 华山洞:南宋王象生《舆地纪胜》写作“华阳洞”,看正文下出应写作“华阳洞”。以:因为。乃:表示判断,有“为”、“是”的意思。阳:山的南面。古代称山的南面、水的北面为“阳”,山的背面、水的南面为“阴”。名:命名,动词。

* 仆道:“仆(于)道”的省略,倒在路旁。

* 华山洞(화산동)

* 文:碑文,与下文“独其为文(碑上残存的文字)”的“文”不同。

* 漫灭 [mànmiè] (문자·도형 등이) 닳아서 희미해지거나 없어지다. 마멸되다.漫灭:指因风化剥落而模糊不清。

* 独:唯独,只有。其:指代石碑。文:文字,这里指的是碑上残存的文字。犹:还,仍。

* 今言“华”(huā)如“华(huá)实”之“华(huá)”者,盖音谬也:汉字最初只有“华(huā)”字,没有“花”字,后来有了“花”字,“华”“花”分家,“华”才读为huá。(王安石认为碑文上的“花”是按照“华”的古音而写的今字,仍应读huā,而不应读“华(huá奢侈、虚浮)实”的huá。按,这里说的不是五岳中的“华(huà)山”)。

* 言:说。

* 盖:承接上文,解释原因,有“大概因为”的意思。

* 谬:错误。

其下平旷,有泉侧出,而记游者甚众,所谓前洞也。由山以上五六里,有穴窈然,入之甚寒,问其深,则其好游者不能穷也,谓之后洞。余与四人拥火以入,入之愈深,其进愈难,而其见愈奇。有怠而欲出者,曰:“不出,火且尽。” 遂与之俱出。盖余所至,比好游者尚不能十一,然视其左右,来而记之者已少。盖其又深,则其至又加少矣。方是时,予之力尚足以入,火尚足以明也。既其出,则或咎其欲出者,而余亦悔其随之而不得极夫游之乐也。

그것으로부터 아래로 향한 그 동굴은 평탄하면서도 넓고, 한 줄기 샘물이 옆으로 솟아나오고, 여기를 유람하고 시나 글을 쓴 자가 매우 많은데, (이것이 바로) “前洞”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山路을 지나 위로 향하여 五六 里되는 곳에, 洞穴이 있는데, 깊숙하면서도 고요하고, 들어가면 차가운 기운이 사람을 억누른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고, 그 깊이를 알아보면, 유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끝까지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后洞”이다. 나와 네 사람이 횃불을 들고 들어갔는데,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갈수록 어려워졌지만, 보이는 광경은 갈수록 기묘하였다. 싫증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자가, 말하기를 : “나가지 않으면, 횃불이 곧 꺼질 것이야.”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모두 그와 함께 나왔다. 아마도 우리가 들어간 깊이는, 유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었지만, 좌우의 石壁을 보니, 여기에 와서 글을 쓴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대체로 동굴 속의 더 깊은 곳은, 유람하러 들어온 사람은 더욱 적었다. 동굴 내에서 나오려고 결정하였을 때, 나의 체력은 더 들어가기에 충분하였고, 횃불은 계속해서 밝히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들이 동굴을 나오고, 바로 어떤 사람이 나오자고 주장한 사람을 원망하였고, 나 또한 그를 따라 나온 것을 후회하였고 동굴을 유람하는 즐거움을 다 누릴 수 없었다.

* 侧出:从旁边涌出,记游:指在洞壁上题诗文留念。

* 上:名词活用作动词,向上走。

* 窈然 [yǎo rán] : 深远貌;幽深貌。 (산수(山水)·수림(樹林)·궁전 따위가) 깊숙하고 고요하다.

* 问:探究,追究。

* 深,形容词活用作名词,深度。

* 则:副词,用于判断句表示肯定,相当于“就”。

* 穷:穷尽。

* 拥火:拿着火把。拥,持,拿。以:连词,连接状语与中心词。

* 见:动词活用作名词,见到的景象。

* 怠 [dài] 1. 태만하다. 게으르다. 나태하다. 2. 싫증나다. 피로하다. 3. 게으름을 피우다. 게을리 하다. 소홀히 하다.怠:懈怠。

* 且:副词,将,将要。

* 盖:表猜测的发语词,大概。

* 尚:还。

* 不能十一:不及十分之一。不能:不及,不到。

* 而:表递进的连词,并且,而且。

* 则:表假设的连词,那么。至:动词活用作名词,到达的人。加:更,更加。

* 方是时:正当这个时候。方:当,正在。是时:指决定从洞中退出的时候。

* 以:相当于“而”,连词,连接状语与中心词。明:形容词或用作动词,照明。

* 既:已经,……以后。其:助词。

* 则:副词,就,便,表示前后两事紧密相承或时间相距很近。或:有人。咎(jiù):责怪。其:那,那些。

* 其:第一人称代词,指自己。而:连词,表结果,以致,以至于。不得:不能,极:尽,这里有尽情享受的意思,形容词活用作动词。夫:这,那,指示代词。

于是余有叹焉。古人之观于天地、山川、草木、虫鱼、鸟兽,往往有得,以其求思之深而无不在也。夫夷以近,则游者众;险以远,则至者少。而世之奇伟、瑰怪,非常之观,常在于险远,而人之所罕至焉,故非有志者不能至也。有志矣,不随以止也,然力不足者,亦不能至也。有志与力,而又不随以怠,至于幽暗昏惑而无物以相之,亦不能至也。然力足以至焉,于人为可讥,而在己为有悔;尽吾志也而不能至者,可以无悔矣,其孰能讥之乎?此余之所得也!

그 일에 대해서 나는 탄식하는 바가 있었다. 古人은 天地・山川・草木・虫鱼・鸟兽를 관찰하고, 종종 이익을 얻는 바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探究나 思考가 심오해지고 광범해지기 때문이다. 평탄하고 가까운 곳은, 유람하러 오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 위험하고 먼 곳은, 유람하러 오는 사람이 더 적었다. 다만 세상에서 기묘하면서도 웅장하거나 진기하면서도 특이하거나 보통이 아닌 광경은, 늘 위험하면서도 편벽된 곳에 있고, 적은 사람이 이르는 곳인데, 왜냐하면 뜻이 있지 않은 사람은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뜻이 있고,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라 멈추지 않더라도, 체력이 부족하여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뜻과 체력이 있고, 다른 사람을 따라 멈추지 않더라도, 깊숙하고 어두컴컴한 곳인데도 필요한 물건의 도움이 없다면, 또한 도달할 수가 없다. 그러나 힘이 충분하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데도 (도달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비웃을 수 있고, 스스로 보기에도 다소 후회가 남고 ; 자기의 주관적인 노력을 다하고도 도달하지 못하는 자는, 후회가 없을 것이고, 그것을 누가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내가 이번 유람에서 얻은 것이다.

* 于是:对于这种情况,因此。焉:句末语气词。

* 虫鱼 [chóngyú] 1. 벌레와 물고기. {전용} 하등 동물. 2. 자질구레하다.

* 之:用于主谓之间,取消句子的独立性,可不译。得:心得,收获。

* 以:因为。求思:探求、思索。而:连词,表递进,而且。无不在:无所不在,没有不探索、思考的,指思考问题广泛全面。

* 夫:表议论的发语词。夷:平坦。以:连词,表并列,而且,并且。则:表假设的连词,那么。

* 而:可是。观:景象,景观。险远,形容词活用作名词,险远的地方。

* 而:因而。焉:兼词,相当于“于此”。

* 随:跟随(别人),“随”字后面省略“之”。以:连词,表结果,以致,以至于。

* 至于:这里是抵达、到达的意思,不同于现代汉语用在下文开头,表示提出另一话题。

* 幽暗昏惑:幽深昏暗,叫人迷乱(的地方)。

* 幽暗 [yōu’àn] 깊숙하고 어둡다. 어두컴컴하다. (=昏暗)

* 昏惑 [hūnhuò] 우매하고 분별력이 없다. 흐리멍덩하다. 迷乱。

* 以:连词,表目的。

* 相 [xiàng] :帮助,辅助。

* 以:相当于“而”,连词,连接状语与中心词。焉:兼词,相当于“于此”。这一句在“焉”后面省略了“而不至”。

* 于人:在别人(看来)。为:是。

* 其:加强反问语气的副词,难道。孰:谁。

* 得:心得,收获。

* 谬其传:把那些(有关的)传说弄错。谬,使……谬误,把……弄错。莫能名:不能说出真相(一说真名)。

* 何可胜道:怎么能说得完。胜,尽。

* 所以:表示“……的原因”。慎取:谨慎取舍。

* 以:以(之),因此。悲:叹息

* 庐陵:今江西吉安。萧君圭,字君玉。

* 长乐:今福建长乐。王回,字深父。父:通“甫”,下文的“平父”“纯父”的“父”同。

* 安国平父、安上纯父:王安国,字平父。王安上,字纯父。

* 至和元年:公元1054年。至和:宋仁宗的年号。临川:今江西临川。王某:王安石。古人作文起稿,写到自己的名字,往往只作“某”,或者在“某”上冠姓,以后在誊写时才把姓名写出。根据书稿编的文集,也常常保留“某”的字样。

余于仆碑,又以悲夫古书之不存,后世之谬其传而莫能名者,何可胜道也哉!此所以学者不可以不深思而慎取之也。

나는 넘어져 있는 石碑에 대하여, 또 옛날 새긴 문헌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을 슬퍼하고, 후세에 讹传되어 그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말 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学者가 사고를 깊이 하고 신중하게 자료를 援用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四人者:庐陵萧君圭君玉,长乐王回深父,余弟安国平父、安上纯父。至和元年七月某日,临川王某记。

같이 놀러간 네 사람은 : 庐陵사람 萧君圭,字는 君玉 ; 长乐사람 王回,字는 深甫 ; 나의 동생 王安国,字는 平甫 ; 王安上,字는 纯甫이다. 至和 元年 7月, 临川사람 王安石이 적다.

白话译文

褒禅山也称为华山。唐代和尚慧褒当初在这里筑室居住,死后又葬在那里;因为这个缘故,后人就称此山为褒禅山。如今人们所说的慧空禅院,就是慧褒和尚的墓舍。距离那禅院东边五里,是人们所说的华山洞,因为它在华山南面而这样命名。距离山洞一百多步,有一座石碑倒在路旁,上面的文字已被剥蚀、损坏近乎磨灭,只有从勉强能认得出的地方还可以辨识出“花山”的字样。如今将“华”读为“华实”的“华”,是(因字同而产生的)读音上的错误。

由此向下的那个山洞平坦而空阔,有一股山泉从旁边涌出,在这里游览、题记的人很多,(这就)叫做“前洞”。经由山路向上五六里,有个洞穴,一派幽深的样子,进去便(感到)寒气逼人,打问它的深度,就是那些喜欢游险的人也未能走到尽头——这是人们所说的“后洞”。我与四个人打着火把走进去,进去越深,前进越困难,而所见到的景象越奇妙。有个懈怠而想退出的伙伴说:“再不出去,火把就要熄灭了。”于是,只好都跟他退出来。我们走进去的深度,比起那些喜欢游险的人来,大概还不足十分之一,然而看看左右的石壁,来此而题记的人已经很少了。洞内更深的地方,大概来到的游人就更少了。当决定从洞内退出时,我的体力还足够前进,火把还能够继续照明。我们出洞以后,就有人埋怨那主张退出的人,我也后悔跟他出来,而未能极尽游洞的乐趣。

对于这件事我有所感慨。古人观察天地、山川、草木、虫鱼、鸟兽,往往有所得益,是因为他们探究、思考深邃而且广泛。平坦而又近的地方,前来游览的人便多;危险而又远的地方,前来游览的人便少。但是世上奇妙雄伟、珍异奇特、非同寻常的景观,常常在那险阻、僻远,少有人至的地方,所以,不是有意志的人是不能到达的。(虽然)有了志气,也不盲从别人而停止,但是体力不足的,也不能到达。有了志气与体力,也不盲从别人、有所懈怠,但到了那幽深昏暗而使人感到模糊迷惑的地方却没有必要的物件来支持,也不能到达。可是,力量足以达到目的(而未能达到),在别人(看来)是可以讥笑的,在自己来说也是有所悔恨的;尽了自己的主观努力而未能达到,便可以无所悔恨,这难道谁还能讥笑吗?这就是我这次游山的收获。

我对于那座倒地的石碑,又感叹古代刻写的文献未能存留,后世讹传而无人弄清其真相的事,哪能说得完呢?这就是学者不可不深入思考而谨慎地援用资料的缘故。

同游的四个人是:庐陵人萧君圭,字君玉;长乐人王回,字深甫;我的弟弟王安国,字平甫;王安上,字纯甫。至和元年七月,临川人王安石记。

创作背景

이글 후반에는 “至和元年七月某日,临川王某记”라는 글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이글은 작자가 宋 仁宗(赵祯) 至和 元年 즉 서기 1054년에 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해 4월 王安石은 舒州(今安徽潜山县) 通判 직무를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褒禅山을 유람하고, 같은 해 7월 추억하는 형식으로 이글을 지었다. 작자는 몇몇 동행자들과 褒禅山을 유람하고 본 경물과 산을 유람한 과정을 서술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비유를 하고, 그 큰 理想을 실현하려고 설명하고, 연구하는 학문에 있어서 사색을 깊이하고 신중하게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우리들은 王安石이 变法을 주장하였다는 것을 아는데, 청년시절 그는 北宋의 “积贫积弱(오랜 기간 동안 쌓인 가난과 나약함)” 국면을 바꾸데 뜻을 두어, 富国强兵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개혁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쉽지 않고, 반드시 심한 저항을 만날 것이고, 성공하려면 “志・力・物”이 하나라도 모자라면 안 되지만, “物”과 “力”은 억지로 구할 수 없고, 개인이 사회를 위하여 공헌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尽吾志(일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尽吾志”思想은 바로 王安石이 훗날 끊임없이 变法을 실행하려고 한 思想적 기초이고, 또한 그의 문장은 “有补于世(세상에 유익하다)”・“以适用为本(적용을 근본으로 삼다)”思想에 응한 具体적인 体现이다.

[출처] 游褒禅山记 - 王安石 (유포선산기 - 왕안석)|작성자 dlwnde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