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廢興命也[fèi xìng mìng yě]/白露節中候玄鳥歸(재비 강남 간다)初日(음7/25)戊午

solpee 2020. 9. 11. 17:14

《晉紀37 安 義熙 6年》〈庚戌, 410

 

 ④. 봄, 정월, 남연의 모용하뢰노와 공손오루가 땅굴을 만들고 나가서 晉의 군대를 공격하였으나 물리치지 못하였다. 성문은 오랫동안 닫혀있고, 성 안의 남녀들은 다리에 병들어서 약한 사람들이 태반이었고, 나가서 항복하는 사람이 서로 계속되었다. 모용초가 연을 타고 성에 오르니, 상서 열수가 모용초에게 유세하였다. 

 "지금 하늘이 오랑캐를 도와 포학하게 되었으며, 전쟁하는 군사들은 초췌하여 오직 궁색한 성만 지킬 뿐 외부에서 구원하는 것도 절망적이니, 천시와 인사 역시 알만 합니다. 진실로 역수에는 끝이 있어서 요와 순도 자리를 피해주었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변통의 계획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④. 春, 正月, 南燕賀賴盧、公孫五樓爲地道擊晉兵,不能卻。城久閉,城中男女病腳弱者太半,出降者相繼。降,戶江翻。超輦而登城,尚書悅壽說超曰:說,輸芮翻。「今天助寇爲虐,戰士凋瘁,瘁,秦醉翻。獨守窮城,絕望外援,天時人事亦可知矣。苟曆數有終,堯、舜避位,陛下豈可不思變通之計乎!」超歎曰:「廢興,命也。吾寧奮劍而死,不能銜璧而生!」

 

 5일에 유유가 모든 무리들을 데리고 성을 공격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오늘 왕망일(2월 驚蟄 후 14일이다. 이 날을 앞서서 가면 반드시 망한다 라는 속설이 있다)이라서 군사를 움직이는 데는 이롭지 못합니다."

 유유가 말하였다.

 "내가 가서 저들을 망하게 하는데, 어찌 이롭지 못하겠는가?"

 사방에서 급히 공격하였다.

 丁亥,劉裕悉衆攻城。或曰:「今日往亡,不利行師。」《曆書》二月以驚蟄後十四日爲往亡日。裕曰:「我往彼亡,何爲不利!」四面急攻之。

 

 열수가 문을 열고 晉軍을 받아들이고, 모용초가 주위에 있는 수십 기변과 함께 성을 넘어 포위를 뚫고 나가서 도주하였으나, 그들을 추격하여 붙잡았다. 유유가 항복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자 남연황제 모용초는 정신과 안색이 태연해하며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오직 어머니만 유경선(일찍이 남연에서 진으로 도망쳤다)에게 부탁할 뿐이었다.

 유유는 광고(산동 청주)가 오랫동안 함락되지 않은 것에 화를 내며, 그들을 모두 파묻고 처와 딸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상으로 주고자 하였다.

 悅壽開門納晉師,超與左右數十騎踰城突圍出走,追獲之。裕數以不降之罪,數,所其翻。降,戶江翻。超神色自若,一無所言,惟以母託劉敬宣而已。敬宣先嘗奔燕,故超以母託之。夫孝莫大於寧親,超以母之故,屈節事秦,竭聲伎以奉之,旣又掠取晉人以足聲伎,由是致寇,至於母子並爲俘虜,乃更欲以託劉敬宣,何庸淺也!

裕忿廣固久不下,欲盡阬之,以妻女賞將士。

 

 한범이 간하였다.

 "晉의 황실이 남쪽으로 옮기면서 중원은 솥의 물이 끓듯이 소란하여 병사들과 백성들이 도움 받을 곳이 없게 되자 강한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귀부하였고, 이미 군신이 되었으면 반드시 그를 위하여 힘을 다해야 합니다. 저들은 모두가 의관을 제대로 갖춘 옛날의 족속이며, 선황께서 남겨둔 백성들인데, 지금 왕의 군대가 이들을 조위하며 정벌하고서 그들을 다 파묻으면 어디로 돌아가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서북의 사람들이 다시 와서 소생할 희망을 갖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韓範諫曰:「晉室南遷,中原鼎沸,士民無援,強則附之,旣爲君臣,必須爲之盡力。爲,于僞翻。彼皆衣冠舊族,先帝遺民;今王師弔伐而盡阬之,使安所歸乎!竊恐西北之人無復來蘇之望矣。」湯征諸侯,東面而征西夷怨,南面而征北狄怨,曰:「奚爲後我?」攸徂之民,室家胥慶,曰:「傒我后,后來其蘇。」

 

 유유가 얼굴을 고치고 그에게 사죄하였지만 그러나 오히려 왕공 이하 3천 명의 목을 베었고, 몰입한 가구가 1만여 명이었으며, 그들의 성황을 없애고, 모용초를 호송하여 건강에 도착하자 그의 목을 베었다.

 裕改容謝之,然猶斬王公以下三千人,沒入家口萬餘,夷其城隍,送超詣建康,斬之。隆安二年,慕容德建國,號南燕,二主,十三年而亡。

 

 사마광이 말하였다.

 "晉이 강을 건너온 이래로 위령이 경쟁하지 못하여 융적이 멋대로 질주하며 호랑이 같이 중원을 삼켰습니다. 유유가 비로소 왕의 군대를 거느리고 東夏(산동)를 가위 자르듯 평정하였지만, 이때에는 현자와 준걸을 예의로 대하고 장려하며 피로에 지친 백성들을 위무하며, 화락하고 단아한 기풍을 널리 펴고, 잔혹하고 더러운 정치를 씻으며, 여러 선비들에게 그 기풍을 인도하도록 하여 유민들에게 발뒤꿈치를 치켜들고 바라보게 하는 일을 아니 하고, 더욱이 도륙을 멋대로 자행하면서 분통한 마음을 달랬으니, 그가 시행했던 일들을 추적하여 보면, 일찍이 부견과 요흥과 같지 않고 의당 천하를 깨끗이 통일하여 아름답고 큰 업적을 이를 수 없었던 것이니, 어찌 비록 지혜와 옹기가 있었을지라도 인의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臣光曰:晉自濟江以來,威靈不競,戎狄橫騖,虎噬中原。劉裕始以王師翦平東夏,騖,音務。夏,戶雅翻。不於此際旌禮賢俊,慰撫疲民,宣愷悌之風,滌殘穢之政,使羣士嚮風,遺黎企踵,而更恣行屠戮以快忿心;迹其施設,曾苻、姚之不如,宜其不能蕩壹四海,成美大之業,豈非雖有智勇而無仁義使之然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