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苻氏嘗季夏思凍魚[xiàsīdòngyú](늦여름에 언 생선을 먹고 싶어 하고, 한 겨울에 살아있는 생지황을 기다리다)/白露初候鴻雁來3日(음7/22)乙卯

solpee 2020. 9. 9. 11:04

《晉紀36 安 義熙 3年》〈丁未, 407

 

 ⑥. 연왕 모용희가 그의 황후 부씨(苻娀娥 언니는 苻訓永)를 위하여 승화전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북문에 흙을 실어 나르게 되면서 흙이 곡식과 같은 가격이 되었다. 宿軍의 전군 두정이 관을 싣고 대궐로 가서 극진히 간하였으나 모용희가 그의 목을 베었다.

 ⑥.燕王熙爲其后苻氏起承華殿,爲,于僞翻。負土於北門,土與穀同價。宿軍典軍杜靜載棺詣闕極諫,熙斬之。北燕營州刺史鎭宿軍。

 

 부씨는 일찍이 늦여름에 언 생선을 먹고 싶어 하고, 한 겨울에 살아있는 생지황을 기다리므로, 모용희가 유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얻지 못한 것에 대해 혹독한 책임을 묻고 그들의 목을 베었다.

 苻氏嘗季夏思凍魚,煎魚爲凍,今人多能之;季夏六月暑盛,則不能凍。仲冬須生地黃,《本草》曰:地黃葉如甘露子,花如脂麻花,但有細斑點,北人謂之牛嬭子;二月、八月,採根陰乾;解諸熱,破血,通利月水。熙下有司切責不得而斬之。下,遐稼翻。

 

 여름, 4월 계축일에 부씨가 죽자, 모용희가 통곡하다가 울분으로 혼절하였는데 오랫동안 있다가 다시 소생하였으며, 마치 부모가 죽은 것 같이 그녀를 장사지냈는데, 참최의 복을 하고 죽을 먹었다. 모든 관료들에게 명령을 내려 궁궐 안에 위패를 설치하여 곡하도록 하고, 사람을 시켜 곡하는 사람을 조사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에게 죄를 주니, 많은 신하들이 모두 매운 것을 입에 물고서 눈물을 흘리려고 하였다.

 夏,四月,癸丑,苻氏卒,熙哭之懣絕,久而復蘇;懣,音悶。喪之如父母,服斬衰,食粥。喪,息郎翻。衰,倉回翻。命百官於宮內設位而哭,使人按檢哭者,無淚則罪之,羣臣皆含辛以爲淚

 

 ⑭. 7월 26일에 모용희가 그의 황후 부씨를 휘평릉(용성 서쪽 20여리 였으니까 용성이 밀운현 연락촌 연락성에서 서쪽 20여리 부근)에 장사지냈는데, 상여를 끄는 수레가 높고 커서 북문을 무너뜨리고 나갔다. 모용희는 머리를 풀고 신을 신지 않은 채 걸어서 20여 리를 따라갔다. 27일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⑭.癸亥,燕王熙葬其后苻氏于徽平陵,喪車高大,毁北門而出,熙被髮徒跣,步從二十餘里。被,皮義翻。從,才用翻。甲子,大赦。

 

 애초에, 중위장군 풍발과 그의 아우인 시어랑 풍소불이 모두 모용희에게 죄를 지어서 모용희가 그들을 죽이려고 하자, 풍발이 산택(북경 밀현)으로 망명하였다. 모용희가 부역을 번잡스럽게 자주 일으키니 백성들이 그 명령을 견뎌낼 수가 없었는데, 풍발과 풍소불이 그의 사촌동생 풍만니와 모의하며 말하였다.

 初,中衞將軍馮跋及弟侍御郎素弗皆得罪於熙,熙欲殺之,跋亡【章:甲十一行本「亡」上有「兄弟」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命山澤。熙賦役繁數,民不堪命;數,所角翻。跋、素弗與其從弟萬【張:「萬」作「万」。】泥謀曰:

 

 "우리들은 스스로 돌아가서 자수할 길이 없으니, 이는 백성들의 원한을 빌미로 삼아서 함께 큰일을 일으켜서 공작과 후작의 대업을 세우는 것만 못하며, 일이 승리하지 못하여서 죽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함께 수레를 타고 부인들을 시켜 몰도록 하여 몰래 용성에 들어가서 북부사마 손호지의 집에 숨었다.

 「吾輩還首無路,還首,自歸請罪也。首,式救翻。不若因民之怨,共舉大事,可以建公侯之業;事之不捷,死未晚也。」遂相與乘車,使婦人御,潛入龍城,匿於北部司馬孫護之家。

 

 모용희가 나와서 장례행렬을 보낼 때 풍발 등이 좌위장군 장흥과 부진의 남은 무리와 함께 난을 일으켰다. 풍발은 평소 모용운과 사이가 좋아서 마침내 모용운을 추대하여 주군으로 삼았다. 모용운이 병이 들었다며 사양하자 풍발이 말하였다.

 "하간(모용희가 제위에 오르기 전 하간왕이었다)은 음란하고 포학하여 사람과 신이 함께 분노하니, 이는 하늘이 그를 멸망하게 하는 때입니다. 공은 고씨(高麗姓)의 이름있는 가문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양자가 될 수 있으며, 얻기 어려운 운을 포기하려 하십니까?"

 그를 부축하여 나갔다.

 及熙出送葬,跋等與左衞將軍張興及苻進餘黨作亂。跋素與慕容雲善,乃推雲爲主。雲以疾辭,雲稱疾見上年。跋曰:「河間淫虐,人神共怒,此天亡之時也。公,高氏名家,何能爲人養子,爲養子事見一百九卷隆安元年。而棄難得之運乎?」扶之而出。

 

 풍발의 아우 풍유진 등이 무리를 거느리고 홍광문을 공격하면서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나아가니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이 모두 흩어지면서 달아났으며, 마침내 궁궐로 들어가서 갑옷을 나누어주고 궁궐의 문을 닫고 막으며 지켰다.

 중황문 조낙생이 달아나서 모용희에게 알리자, 모용희가 말하기였다.

 "쥐새끼와 같은 도둑놈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짐이 마땅히 돌아가서 그들을 죽이리라."

 跋弟乳陳等帥衆攻弘光門,帥,讀曰率。鼓噪而進,禁衞皆散走;遂入宮授甲,閉門拒守。中黃門趙洛生走告于熙,熙曰:「鼠盜何能爲!朕當還誅之。」

 

 마침내 황후의 영구를 남원(북경성 남 10km에 잇다. 元·明·淸代 황제들의 사냥터였다.)에 놓아두고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갑옷을 입고 급하게 돌아와서 어려움이 벌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밤에 용성(밀운 연락촌)에 도착하여 북문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여 문 밖에서 잤다. 28일에 모용운(高雲;고구리 왕족의 지손)이 천황에 즉위하여, 대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정시로 고쳤다.

 乃置后柩於南苑,柩,巨救翻。收髮貫甲,馳還赴難。難,乃旦翻。夜,至龍城,攻北門,不克,宿於門外。乙丑,雲卽天王位,雲,字子雨,祖父高和,句麗之支庶,慕容寶養以爲子。大赦,改元正始。

 

 모용희가 물러나서 용등원(龍騰苑:北京昌平)에 들어가니, 상방 병사 저두가 성을 넘어와서 모용희를 좇아와, 군영 중의 병사들이 한 마음으로 본받고 순종하며 오직 군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모용희는 그 사실을 듣자 놀라 달아나 나갔으나 주위 사람들은 감히 압박할 수 없었다. 모용희는 도랑 밑으로 숨어버렸고, 오래 되어서 지나니 주위 사람들이 그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서로 함께 그를 찾았으나 오직 옷과 모자만을 얻었을 뿐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熙退入龍騰苑,尚方兵褚頭踰城從熙,稱營兵同心效順,唯俟軍至。熙聞之,驚走而出,左右莫敢迫。熙從溝下潛遁,良久,左右怪其不還,相與尋之,唯得衣冠,不知所適。

 

 중령군(황제친위대총사령관)모용발이 중상시 곽중에게 말하였다.

 "큰일이 거의 이기게 되었는데 황제께서 이유 없이 스스로 놀라 달아나니 대단히 이상합니다. 그러나 성 안에서는 기다리기로 하고 있으므로 가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니 머무르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마땅히 먼저 성으로 갈 것이니 경은 여기에 머물면서 황제를 기다렸다가 황제를 찾게 되면 속히 오고, 만약 황제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내가 뜻대로 되어 성 안의 사람들을 안전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게 됨다면 천천히 황제를 맞이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中領軍慕容拔謂中常侍郭仲曰:「大事垂捷,而帝無故自驚,深可怪也。然城內企遲,遲,直利翻,待也。至必成功,不可稽留。吾當先往趣城,趣,七喻翻。卿留待帝,得帝,速來;若帝未還,吾得如意安撫城中,徐迎未晚。」

 

 이에 건장한 병사 2천여 명을 나누어 거느리고 북쪽의 성으로 올라갔다. 장령과 병사들이 모용희가 도착했다고 말하자 모두 무기를 내던지고 항복하기를 요청하였다.

 이미 그렇게 하고서도 모용희가 오랫동안 도착하지 않고 모용발의 군대도 뒤를 잇는 군대가 없자, 무리들은 마음 속으로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다시 성을 내려가서 용등원으로 가니, 마침내 모두 무너져 가버렸다.

 모용발은 성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해되었다.

 乃分將壯士二千餘人登北城。將士謂熙至,皆投仗請降。將,卽亮翻。降,戶江翻。旣而熙久不至,拔兵無後繼,衆心疑懼,復下城赴苑,復,扶又翻;下復貳、可復同。遂皆潰去。拔爲城中人所殺。

 

 29일에 모용희가 미복으로 숲에 숨어 잇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모용운에게 보내지고, 모용운이 죄상을 열거하고 그를 죽였으며, 아울러 여러 아들들도 죽였다. 무용운은 성을 고씨로 회복하였다.

 丙寅,熙微服匿於林中,爲人所執,送於雲,雲數而殺之,年二十三。史言慕容熙淫虐,天奪其魄,身死國滅。《載記》曰:自垂至熙四世,凡二十四年而滅。數,所具翻。幷其諸子。雲復姓高氏。

 

 유주 자사인 상용공 모용의가 영지(치소 하북 천안현)를 들어 위에 항복하니, 위에서는 모용의를 평주목(영지)·창여왕으로 삼았다. 모용의는 모용평의 손자이다.

 幽州刺史上庸公懿以令支降魏,令,音鈴,又郎定翻。支,音祁。魏以懿爲平州牧、昌黎王。懿,評之孫也。前燕之亡,慕容評之罪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