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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蛟龍潛伏,魚蝦褻之/白露節初候鴻雁來2日(음7/21)甲寅

solpee 2020. 9. 7. 17:55

《晉紀35 安 元興 3年》〈甲辰, 404

 

 ③. 유유가 경구를 함락시키고 주작의 아들 주령석을 건무장군부의 참군으로 삼았다. 3월 1일 유유의 군대가 오보지와 강승에서 만났다.

 장차 교전하려할 즈음에 주령석이 유융에게 말하였다.

 "저 주령석은 대대로 환씨의 깊은 은혜를 입었기에 무기의 칼날을 서로 마주치고 싶지 않으니, 후위로 있게 해주십시오."

 유유는 옳다고 생각하여 허락하였다.

 ③. 劉裕克京口,以綽子齡石爲建武參軍。裕本爲建武將軍,以齡石參軍事。三月,戊午朔,裕軍與吳甫之遇於江乘。江乘,漢舊縣,屬丹楊郡。成帝咸康元年,桓溫領琅邪太守,鎭江乘之蒲州,奏割丹楊之江乘立南琅邪郡,江乘縣屬焉。將戰,齡石言於裕曰:「齡石世受桓氏厚恩,不欲以兵刃相向,乞在軍後。」裕義而許之。

 

 오보지는 환현의 용장이기에 그의 군대는 대단히 날카로웠다. 유유가 손수 장도를 잡고 크게 소리 지르며 그들을 치자, 무리들이 모두 쓰러지고 즉각 오보지의 목을 베고는 나아가 나락교에 이르렀다. 황보부가 수천 명을 거느리고 맞아 싸우니 영원장군 단빙지가 패하여 죽었다. 유유가 앞으로 나아가 더욱 맹렬하게 싸웠지만, 황보부가 그를 몇 겹ㅇ로 포위하므로 유유는 큰 나무에 의지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甫之,玄驍將也,驍,堅堯翻。將,卽亮翻。其兵甚銳。裕手執長刀,大呼以衝之,衆皆披靡,呼,火故翻。呼,普彼翻。卽斬甫之,進至羅落橋。羅落橋在江乘縣南,蓋緣水設羅落,因以爲名。皇甫敷帥數千人逆戰,帥,讀曰率。寧遠將軍檀憑之敗死。裕進戰彌厲,敷圍之數重,裕倚大樹挺戰。重,直龍翻。挺戰,挺身獨戰也。挺,他鼎翻,直也。

 

 황보부가 말하였다.

 "너는 어떻게 죽으려고 하느냐?"

 창을 빼어 그를 찌르려고 하는데 유유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그를 꾸짖자, 황보부가 물러났다. 유유의 무리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황보부에게 활을 쏘아 이마 한 가운데를 맞추어 쓰러뜨리자, 유유가 칼을 잡아서 똑바로 나아갔다.

 황보부가 말하였다.

 "그대에게는 천명이 있으니 자손들을 부탁한다."

 유유가 그를 칼로 베었으나, 그의 남은 자식들은 후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유유는 단빙지가 거느리던 병사들을 참군 단지에게 배속시켰다. 단지는 단빙지의 조카이다.

 敷曰:「汝欲作何死!」拔戟將刺之,裕瞋目叱之,敷辟易。刺,七亦翻。瞋,七人翻。辟,讀曰闢。易,如字。裕黨俄至,射敷中額而踣,射,而亦翻。中,竹仲翻。踣,蒲北翻。裕援刀直進。援,于元翻。敷曰:「君有天命,以子孫爲託。」裕斬之,厚撫其孤。裕以檀憑之所領兵配參軍檀祗。祗,憑之之從子也。從,才用翻。

 

 환현이 두 명의 장군이 죽엇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며, 여러 도술하는 사람들을 불러 앞날을 미루어 헤아리게 하고 엽승을 하였다.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짐이 그들에게 패하겠는가?"

 이부랑 조정지가 대답하였다.

 "백성이 원망하고 신령이 분노하였으니 신은 실로 두렵습니다."

 환현이 말하였다.

 "백성은 혹 원망할 수 있겠으나, 신령이 어째서 분노하는가?"

 대답하였다.

 "晉의 종묘가 장강의 강가에 떠다니고 있고 위대한 초의 재사도 위로 할아버지에게도 미치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 분노의 원인입니다."

 玄聞二將死,大懼,召諸道術人推算及爲厭勝。將,卽亮翻。厭,於叶翻,又一琰翻。問羣臣曰:「朕其敗乎?」吏部郎曹靖之對曰:「民怨神怒,臣實懼焉。」玄曰:「民或可怨,神或可怨,神何爲怒?」對曰:「晉氏宗廟,飄泊江濱,謂遷晉宗廟主於琅邪國,尋又隨帝上尋陽也。大楚之祭,上不及祖,謂止祭桓溫於太廟。此其所以怒也。

 

 환현이 말하였다.

 "경은 어찌하여 간하지 않았는가?"

 대답하였다.

 "연을 위에 있는 군자들이 모두 요·순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신이 어찌 감히 말하겠습니까?"

 환현이 잠자코 있었다.

 환겸과 유격장군 하담지에게 동릉에 주둔하도록 하고, 시중·후장군 변범지에게는 복주산의 서쪽에 주둔하도록 하니, 무리는 합하여 2만 명이었다.

 玄曰:「卿何不諫?」對曰:「輦上君子皆以爲堯、舜之世,臣何敢言!」玄默然。使桓謙及游擊將軍何澹之屯東陵,游擊將軍,漢雜號將軍也,魏置爲中軍,及晉,以領、護、左‧右衞、驍騎、游擊爲六軍。建康之西有西陵,其東有東陵,東陵在覆舟山東北。澹,徒覽翻。侍中、後將軍卞範之屯覆舟山西,衆合二萬。

 

 2일 유유는 식사를 마친 후, 남아잇는 식량을 모두 버리고, 복주산 동쪽으로 나아가서 약하고 마른 병사들은 산으로 몰라가게 하여 기치를 늘어놓아서 군대가 있는 것으로 의심나게 하고, 몇 길로 나누어 나란히 앞으로 나아가니 병사들이 산과 계곡에 가득하게 되었다. 환현의 염탐꾼이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유유의 군대가 사방에 꽉 차서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환현이 더욱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무위장군 유색지를 파견하여 정예의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여러 군대를 돕도록 하였다.

 己未,裕軍食畢,悉棄其餘糧,進至覆舟山東,使羸弱登山,張旗幟爲疑兵,羸,倫爲翻。幟,昌志翻。數道並前,布滿山谷。玄偵候者還,云「裕軍四塞,偵,丑鄭翻。塞,悉則翻。不知多少。」玄益憂恐,遣武衞將軍庾賾之帥精卒副援諸軍。魏文帝踐阼,置領軍將軍,主五校、中壘、武衞等三營,後遂各置將軍。賾,士革翻。

 

 환겸 등의 병사들은 대부분 북부에서 소속되었던 사람이어서 평소부터 유유를 두려워하며 굴복하여 싸울 의지를 갖지 않았다. 유유는 유의 등과 함께 나누어 몇 개의 부대로 만들어서 환겸의 진지로 돌격하는데, 유유가 몸소 앞장서자 장수들과 병사들이 결사적으로 싸우니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대적하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고함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때마침 북동풍이 급하게 몰아치자, 이 기회를 타고 불을 놓아서 태우니 연기와 화염이 하늘을 뒤덮고, 북을 치는 소리가 경읍을 뒤흔드니 환겸 등의 여러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謙等士卒多北府人,素畏伏裕,莫有鬬志。裕與劉毅等分爲數隊,進突謙陳;裕以身先之,陳,讀曰陣。先,悉薦翻。將士皆殊死戰,無不一當百,呼聲動天地。時東北風急,因縱火焚之,煙炎熛天,呼,火故翻。炎,讀曰燄。熛,必遙翻。鼓噪之音震動京邑,謙等諸軍大潰。

 

 환현은 당시에 비록 군대를 파견하여 유유를 막게 하였으나 달아나려는 생각을 이미 결정하고, 몰래 영군장군 은중문에게 석두에 배를 준비해놓도록 하였는데, 환겸 등이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하거나 믿는자 수천 명을 거느리고 겉으로는 나아가서 싸울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마침내 그의 아들 환승과 형의 아들 환준을 거느리고 남액문을 나섰다. 이전에 상국부의 참군 호반과 마주쳤는데, 그가 말고삐를 붙잡고 간언하였다.

 "지금 우림군의 사수는 여전히 800 명인데, 모두 의리있는 옛 친구들이고, 서쪽 사람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은혜를 받았는데 내몰아서 한 번 싸우게 하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이곳을 버리시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玄時雖遣軍拒裕,而走意已決,潛使領軍將軍殷仲文具舟於石頭;聞謙等敗,帥親信數千人,聲言赴戰,帥,讀曰率;下同。遂將其子昇、兄子濬出南掖門。遇前相國參軍胡藩,執馬鞚諫曰:「今羽林射手猶有八百,皆是義故,西人受累世之恩,鞚,音控,馬勒也。桓氏世居荊楚,西人皆其義舊,此蓋從玄東下,玄旣篡,因以爲羽林。不驅令一戰,一旦捨此,欲安之乎!」

 

 환현은 대꾸하지 않고 다만 채찍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항우의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다.'는 뜻) 이어서 말에 채찍질하여 달려서 서쪽으로 석두까지 내달아서 은중문 등과 함께 배를 띄워 남쪽으로 달아났다. 하루가 지나도록 먹지 않아서 좌우 사람들이 거친 밥을 올리니, 환현은 목구멍에서 내려가지 않으므로 환승이 그의 가슴을 안아 어루만지자 비통함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였다.

 玄不對,但舉策指天;玄舉策指天,亦項羽所謂天之亡我之意。因鞭馬而走,西趨石頭,與仲文等浮江南走。經日不食,左右進粗飯,趨,七喻翻。粗,與麄同。玄咽不能下,昇抱其胸而撫之,玄悲不自勝。咽,於甸翻。勝,音升。

 

 유유가 건강에 들어가자, 왕중덕이 왕원덕의 아들 왕방희를 안고 나와서 유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유가 말 위에서 왕방희를 안고 왕중덕과 함께 마주보며 소리내 울었으며, 유유는 왕원덕을 급사중에 추증하고, 왕중덕을 중병참군으로 삼았다. 유유는 환겸의 옛 군영에 도착하자, 유종을 파견하여 동부를 점거토록 하였다.

 裕入建康,王仲德抱元德子方回出候裕,裕於馬上抱方回與仲德對哭;追贈元德給事中,以仲德爲中兵參軍。裕止桓謙故營,遣劉鍾據東府。

 

 3일에 유유가 석두성에 주둔하고, 유대와 백관을 세우고, 선양문 밖에서 환온의 신주를 불사르고, 晉의 새로운 신주(황제가 심양으로 쫓겨가면서 신주도 옮겨졌다.)를 만들어서 태묘에 넣었다. 유유는 여러 장군들을 보내어 환현을 추격하도록 하고, 상서 왕하는 백관을 거느리고 승여를 받들어 맞이하도록 하고, 건강에 잇던 환현의 종족을 모두 죽였다.

 庚申,裕屯石頭城,立留臺百官,焚桓溫神主於宣陽門外,造晉新主,納于太廟。桓玄初篡,遷七廟神主于琅邪國,旣而遷帝於尋陽,宗廟主祏皆隨帝西上,故權造新主。遣諸將追玄,尚書王嘏帥百官奉迎乘輿,乘,繩證翻。誅玄宗族在建康者。

......................................중략.....................................

 

 애초에, 유유는 명망이 미미하고 지쥐가 낮으며, 가볍고 교활하여 품행이 없었기에, 盛流(고위층)들은 모두 그와 서로 알지 못하였고, 오직 왕밀만이 홀로 그를 특별나고 귀하게 여기면서, 유유에게 말하였다.

 "경은 당연히 한 시대의 영웅이 될 것입니다."

 유유는 일찍이 조규와 함께 도박을 하였는데, 때맞추어 빚을 갚지 못하자, 조규가 그를 말뚝에 묶었다. 왕밀이 그것을 보고 조규를 꾸짖고 풀어주고, 그를 대신하여 빚을 갚아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유유는 조규를 마음 깊이 서운해 했고, 왕밀에게는 은덕을 느꼈다.

 初,裕名微位薄,輕狡無行,盛流皆不與相知,行,下孟翻。謂當時貴盛之流。惟王謐獨奇貴之,謂裕曰:「卿當爲一代英雄。」裕嘗與刁逵樗蒲,不時輸直,樗蒲不勝而不卽納其所負之直,此亦博徒輕狡之常態。逵縛之馬枊。枊,魚浪翻,繫馬柱也,又五剛翻。謐見之,責逵而釋之,代之還直。由是裕深憾逵而德謐。

 

 소방등이 말하였다.
 "무릇 교룡이 잠복하면 물고기와 새우가 그것을 더럽힌다. 이는 한의 고조도 옹치를 사면하였고, 위의 무제도 양곡을 사면하였는데, 어찌하여 평민 시절의 불평을 천자가 된 후에 틈새로 만들 수 있겠는가? 이제 왕밀은 공의 신분이 되었지만 조규는 종족이 멸망하였는데, 은덕을 갚고 원한을 갚았으니 얼마나 그 속이 좁은가?"

 蕭方等曰:蕭方等,梁元帝之嫡長子,撰《三十國春秋》。夫蛟龍潛伏,魚蝦褻之。是以漢高赦雍齒,魏武免梁鵠,雍齒事見十一卷漢高帝十一年。漢靈帝時,梁鵠爲選部尚書,魏武欲爲洛陽令,鵠以爲北部尉。董卓之亂,鵠奔劉表。魏武破荊州,鵠懼而自縛詣門,使在祕書,以勤書自効。雍,於用翻。安可以布衣之嫌而成萬乘之隙也!乘,繩證翻。今王謐爲公,刁逵亡族,醻恩報怨,何其狹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