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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過自新 [gǎi guò zì xīn]/白露節(13:08)初候鴻雁來(기러기 온다)初日(음7/20)癸丑

solpee 2020. 9. 7. 15:57

改過自新 [gǎi guò zì xīn]

[요약] (改: 고칠 개. 過: 허물 과. 自: 스스로 자. 新: 새로울 신)

잘못을 고쳐 스스로를 새롭게 하다.

[출전] 《史記·扁鵲倉公列傳》

 

 漢 文帝 때 齊땅에 淳于意라는 名醫가 있었는데, 그는 齊太倉長(제의 창고 장)이라 太倉公이라 불렀다. 淳于意는 젊어서부터 의술을 좋아했으며, 동향의 명의인 陽慶에게 의술을 배웠다. 양경은 늙고 아들이 없으므로 순우의에게 전설의 명의 扁鵲의 脈書등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저기 諸侯國들을 돌아다니며 자기 집을 집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사람에 따라 질병을 치료해 주지 않았으므로 많은 환자들이 그를 원망했다.

 漢文帝 4년에 어떤 사람이 순우의를 告發하여 신체를 불구로 만드는 형벌인 刑罪에 처해지게 되어 장안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순우의는 아들은 없고 딸만 다섯이었는데 따라나서며 울자, 그는 화를 내며 꾸짖었다.

“자식을 낳았으나 사내아이를 낳지 못해 긴급할 때 쓸 만한 놈이 없구나(生子不生男,緩急無可使者)!”

그러자 막내딸 緹縈이 아버지 말에 상처를 받아 아버지 따라 장안으로와 황제에게 글을 올렸다.

“소첩의 아버지가 벼슬아치로 있을 때 제나라의 모든 사람이 청렴 공평하다고 칭송하였으나, 지금은 법을 위반하여 형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매우 비통한 것은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고 형죄를 받는 자는 다시 전처럼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허물을 고쳐 새롭게 되고자 하나 그렇게 할 방법이 없으니 끝내 기회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몸이 관청의 노비가 되어 아버지의 형죄를 속죄하고자 하오니, (아버지가)행동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妾父為吏,齊中稱其廉平,今坐法當刑。妾切痛死者不可復生而刑者不可復續,雖欲改過自新,其道莫由,終不可得。妾願入身為官婢,以贖父刑罪,使得改行自新也).”

 

이 글을 본 文帝는 그 마음을 측은하게 여겨 죄를 사하고 肉刑法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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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西晉 때 皇甫謐이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 집에서 자랐다. 본래는 부귀한 집안이었으나 그 아버지 때에 와서 집안이 몰락하여 가난하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게으른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일도 하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다. 매일 놈팽이 애들과 어울려 나쁜 짓이나 하고 다녔다. 숙부나 숙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황보씨 집안 망칠 자식이 나왔네”라고 흉을 보았다.

 그래도 숙모는 그를 잘 대해 주었다. 어느 날 황보밀이 저녁에 돌아오면서 참외를 갖고 와 숙모에게 맛보라고 했다. 아마도 남의 참외를 몰래 따온 것이었다. 그 뒤에도 또 참외를 가져와 맛보라고 했다.

 점점 커 가는 조카를 이런 식으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숙모는 자극이 가도록 따끔하게 훈계를 하였다.

 

 “孝經이라는 책에, ‘매끼 세 가지 종류의 고기로 부모를 섬겨도 효도가 되지 않는다[三牲之養, 猶爲不孝]’라고 했다. 음식 잘 챙긴다고 효도가 되는 게 아니다. 참외 가져온다고 효도가 되겠느냐? 너는 열 몇 살이 되었는데, 이렇게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여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데, 내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나?”

 숙모는 탄식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孟子 어머니는 집을 세 번 옮겨가며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방법이 좋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네가 이렇게 사람이 안 되니, 내가 헛고생만 한 것 같다. 공부를 하고 덕행을 닦는 것은 너 자신이 하는 것이지, 사실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러고는 황보밀을 본 체도 안 하고, 자기 방에 가서 베 짜는 일을 계속했다. 베틀 찰까닥 찰까닥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황보밀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저렇게 한 올 한 올 애써 베를 짜서 나를 먹이고 입히는데, 내가 헛되게 살아 되겠나?” 

 지나온 자신을 돌이켜 보니 부끄러움과 뉘우침에 견딜 수가 없었다. 행실을 고치기로 단단히 결심하였다.

 

 그 다음날부터 놈팽이 친구들과 관계를 다 끊고, 인근의 큰 학자에게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학업이 날로 발전했다. 매일 이른 새벽 논밭으로 일하러 나갔다. 책을 들고 가서 농사일을 하다 쉬는 여가에 책을 보았다. 밤에도 늦게까지 읽었다. 계속 이렇게 하니 웬만한 책은 다 읽었다. 전날의 놈팽이가 착실한 청년 학자가 되었고, 마침내 서진을 대표하는 큰 학자가 되었고, 많은 제자를 길렀다. 의학에도 뛰어나 ‘鍼灸學의 시조’로 추앙되고 있다.

出後叔父,徙居新安。年二十,不好學,遊蕩無度,或以為癡。嘗得瓜果,輒進所後叔母任氏。任氏曰:「《孝經》云:『三牲之養,猶為不孝。』汝今年餘二十,目不存教,心不入道,無以慰我。」因歎曰:「昔孟母三徙以成仁,曾父烹豕以存教,豈我居不卜鄰,教有所闕,何爾魯鈍之甚也!修身篤學,自汝得之,于我何有!」因對之流涕。謐乃感激,就鄉人席坦受書,勤力不怠。居貧,躬自稼穡,帶經而農,遂博綜典籍百家之言。晉書 卷五十一 列傳第二十一

 

사람은 누구나 흠이 있고 모자라는 점이 있다. 그러나 잘못을 고쳐서 새롭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방탕한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것은 황금과도 안 바꾸어 준다.[浪子回頭金不換]’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지금까지의 잘못을 알고 고치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