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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以妾爲妻[wú yǐ qiè wèi qī]/ 處暑節中候天地始肅2日(음7/11)甲辰

solpee 2020. 8. 29. 17:17

《晉紀28 武帝 太元 11年(丙戌, 386)

 

 ⑬. 연의 주군 모용수가 어머니 난씨를 추존하여 문소황후로 하고, 문명단후를 옮기고서 난씨를 태조에 배향하고자 하여 백관에게 조서를 내려서 이를 의논하도록 하니 모두 당연하다고 여겼다. 박사 유상과 동밀이 말하였다.

 "요의 어머니는 제곡의 비가 되어서 지위가 세 번째(慶都)였음에도 귀함을 가지고 姜原(제곡의 첫 뻔째 부인이다. 제곡은 1,姜原;후직. 2,簡狄. 3,慶都. 4,常義를 두었다.)을 업신여기지 않았는데,  성인의 도를 밝히는 것은 지극히 공정한 것을 우선으로 삼는 것이니, 문소후는 의당 별도로 사당을 세워야 합니다."

 ⑬. 燕主垂追尊母蘭氏爲文昭皇后;欲遷文明段后,以蘭氏配享太祖,段氏,燕王皝之元妃;蘭氏,皝之側室也。皝廟號太祖,諡文明皇帝。詔百官議之,皆以爲當然。順垂指也。博士劉詳、董謐以爲「堯母爲帝嚳妃,位第三,不以貴陵姜原,《帝王紀》曰:帝嚳有四妃:元妃有邰氏女曰姜嫄,生后稷;次妃有娀氏女曰簡狄,生卨;次妃陳豐氏女曰慶都,生放勛;次妃娵訾氏女曰常義,生摯。嚳,苦沃翻。明聖之道,以至公爲先;文昭后宜立別廟。」

 

 모용수가 노하여 그들을 압박하자 유상과 동밀이 말하였다.

 "황상께서 하시려고 하는 것을 신들에게 묻지 마십시오. 신은 경전을 살피고 의례를 봉행하는 것이지 감히 두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모용수가 마침내 다시는 여러 유생들에게 묻지 않고 갑자기 단씨황후를 옮기고, 난씨황후로 그를 대신하였다. 또 경소가족혼후가 사직을 기울여서 엎었다고 하여서 추가로 그를 폐위시켰으며 열조의 소의 단씨를 높여서 경덕황후로 삼고, 열조의 신위에 배향하였다.

 垂怒,逼之,詳、謐曰:「上所欲爲,無問於臣。臣按經奉禮,不敢有貳。」垂乃不復問諸儒,卒遷段后,以蘭后代之。復,扶又翻。卒,子戌翻。又以景昭可足渾后傾覆社稷,追廢之;尊烈祖昭儀段氏爲景德皇后,配享烈祖。可足渾氏,燕王儁之元妃也。傾覆事見一百二卷海西公太和四年。段氏,儁之側室也。儁廟號烈祖,諡景昭皇帝。

 

 최홍이 말하였다.

 "제 환공이 재후에게 첩을 처로 삼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지아비가 처에 대해서도 오히려 첩으로 처를 대신할 수 없다고 하엿는데, 하물며 자식이 되어서 자기의 어머니를 바꾼단 말인가? 《춘추》에서 말한바 어머니가 자식 때문에 귀하게 된다고 말한 것은 군주의 어머니가 이미 죽었을 때 첩모를 소군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고, 종묘에 제사 지내는 것에 이르러서는 성풍은 끝내 장공에게 배향될 수 없었다.

 崔鴻曰:齊桓公命諸侯無以妾爲妻。《孟子》曰:齊桓公葵丘之會,初命曰:「誅不孝,無易樹子,無以妾爲妻。」夫之於妻,猶不可以妾代之,況子而易其母乎!《春秋》所稱母以子貴者,君母旣沒,得以妾母爲小君也;《春秋公羊傳》曰:桓幼而貴,隱長而卑;隱長又賢,諸大夫扳隱而立之;隱之立,爲桓立也。隱長又賢,何以不宜立?立適以長不以賢,立子以貴不以長。桓何以貴?母貴也。母貴,則子何以貴?子以母貴,母以子貴。《左氏傳》曰:惠公元妃孟子;孟子卒,繼室以聲子,生隱公。宋武公生仲子,爲魯夫人,生桓公,而惠公薨,是以隱公立而奉之。至於享祀宗廟,則成風終不得配莊公也。魯莊公夫人姜氏。成風者,莊公之妾,僖公之母也。姜氏通于共仲,弒閔公而欲立共仲,不克,遂孫于邾,齊桓公殺之。僖公旣立,請其喪,以夫人之禮葬之。

 

 임금과 아버지가 한 행위는 신하인 자식이 반드시 익히고 이를 본받아야 하는 것은 마치 형체나 소리가 그림자를 만들고 음향을 내는 것과 같은 것인데, 모용보가 그의 어머니를 압박하여 죽인 것은 모용수로부터 말미암아서 그것이 조금씩 이루어진 것이다.

 君父之所爲,臣子必習而效之,猶形聲之於影響也;寶之逼殺其母,事見後一百八卷太元二十一年。由垂爲之漸也。

 

 요임금과 순임금의 선양은 오히려 자지·희쾌의 화를 만들었거늘 하물며 예를 어기고 멋대로 사사로이 할 것이겠는가? 옛날에 문강이 환공에게 죄를 지었는데 《춘추》는 그녀를 패하지 않았다. 가족혼씨는 비록 이전의 조정에 죄를 지엇으나 소군의 예는 완성하였는데, 모용수가 사적인 감정으로 그를 폐출시키고, 또 아들도 없는 형의 첩을 세웠으니 모두 예가 아니다."

 堯、舜之讓,猶爲之、噲之禍,事見二卷周愼靚王五年。況違禮而縱私者乎!昔文姜得罪於桓公,《春秋》不之廢。魯桓公之夫人曰文姜,通于齊襄公,桓公謫之。夫人以告,襄公遂殺桓公。至莊公二十一年,《春秋》書夫人姜氏薨;二十二年書葬我小君文姜,是不之廢也。可足渾氏雖有罪於前朝,朝,直遙翻。然小君之禮成矣;垂以私憾廢之,私憾,謂譖殺垂妃段氏,又譖垂而逐之奔秦也。又立兄妾之無子者,皆非禮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