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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功不賞,有罪不誅,雖堯、舜不能爲治[yǒugōngbùshǎng, yǒuzuì, suīyáo,shùn bùnéngwèizhì]/ 處暑節中候天地始肅初日(음7/10)癸卯

solpee 2020. 8. 28. 08:49

《晉紀26 武帝 太元 5年(庚辰, 380)

 

 

 ②. 진의 정북장군·유주 자사인 행당공 苻洛은 용감하고 힘이 세어 앉아서 달리는 소를 제압할 수 있었으며, 활을 쏘아 쟁기를 뚫을 수 있고, 스스로 대국(내몽골화림격이현)을 멸망시키는데 공을 세웠다고 하여 개부의동삼사를 요구하였다가 이 자리를 얻지 못하자 이로부터 원한과 분노를 가졌다.

 3월에 진황 부견이 부락을 사지절·도독영서남이제군사·정남대장군·익주목(사천 중부)으로 삼아 이궐(낙양 남부)로부터 양양으로 나아가 한수를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였다.

 ②. 秦征北將軍、幽州刺史行唐公洛,〈洛以幽州刺史鎭和龍。行唐,戰國時趙邑,秦以爲縣,魏、晉因之。〉勇而多力,能坐制奔牛,射洞犂耳;〈犂耳之鐵厚而堅。〉自以有滅代之功,〈滅代,見上元年。〉求開府儀同三司不得,由是怨憤。三月,秦王堅以洛爲使持節、都督益‧寧‧西南夷諸軍事、征南大將軍、益州牧,〈使,疏吏翻。〉使自伊闕趨襄陽,泝(溯의 俗字)漢而上。〈趨,七喻翻。上,時掌翻。〉

 

 부락이 관속에게 말하였다.

 "고는 황제 집안의 가까운 친척이어서 장군이나 재상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며 항상 변두리 지역에 버려졌는데, 지금 또한 西裔들이 있는 곳으로 던져지니 다시 경사를 지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며, 여기에는 반드시 비밀스런 계략이 있을 것이고, 梁成(형주자사)으로 하여금 나를 한수에 빠뜨리도록 하려는 것일 뿐이다."

 洛謂官屬曰:「孤,帝室至親,洛,苻健兄子也。不得入爲將相,而常擯棄邊鄙;今又投之西裔,復不聽過京師,復,扶又翻。過,古禾翻。此必有陰計,欲使梁成沈孤於漢水耳!」【章:十二行本「耳」下有「於諸君意何如」六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梁成時鎭襄陽。沈,持林翻。

 

 유주(북경)의 치중 평규가 말하였다.

 "반역으로 빼앗았다가 순리를 지킨 사람은 탕왕과 무왕이고, 재앙을 이용하여 복으로 만든 사람은 환공과 문공입니다. 주상께서 비록 혼미하고 포악하지 않으나 군사행동을 끝까지 하고 무력을 휘두르니, 백성들 가운데는 어깨에 걸린 짐을 쉬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열에 아홉 집입니다. 만약 명공께서 신령스런 깃발을 한 번 세우시면 반드시 전 국토에서 구름처럼 따를 것입니다.

 지금 전체의 燕(하북북동부 즉 북경과 천진 요동,요서로 지금의 요령은 고구리땅이었다.)을 타고서 점거하여 동해에 이르렀고, 북으로는 오환과 선비를 총괄하며, 동쪽으로 구리와 백제(산동)를 끌어들이면 활을 쏘는 병사가 50여 만 명에서 빠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양손을 묶고 부르는 대로 나아가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으로 뛰어드십니까?"

 幽州治中平規曰:「逆取順守,湯、武是也;漢陸賈曰:湯、武逆取而順守之。因禍爲福,桓、文是也。齊桓、晉文皆因兄弟爭國,得國而霸。主上雖不爲昏暴,然窮兵黷武,民思有所息肩者,十室而九。若明公神旗一建,必率土雲從。今跨據全燕,地盡東海,北總烏桓、鮮卑,東引句麗、百濟,燕,於賢翻。句,音駒。麗,力知翻。控弦之士不減五十餘萬,柰何束手就徵,蹈不測之禍乎!」

 

 부락은 소매를 걷으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고의 계책은 결정되었으니 꾀하는 것을 막는 사람은 목을 벨 것이다."

 이에 스스로 대장군·대도독·진왕이라 칭하였다. 평규를 유주(북경) 자사로 삼고, 현토(천진) 태수 길정을 좌장사로 삼고, 요동(우안) 태수 조찬을 좌사마로 삼고, 창려 태수 왕온을 우사마로 삼고, 요서(풍윤) 태수 왕림· 북평(준화) 태수 황보걸· 목관도위 위부 등을 종사중랑으로 삼았다.

 洛攘袂大言曰:「孤計決矣,沮謀者斬!」沮,在呂翻。於是自稱大將軍、大都督、秦王。以平規爲幽州刺史,玄菟太守吉貞爲左長史,菟,同都翻。遼東太守趙讚爲左司馬,昌黎太守王縕爲右司馬,遼西太守王琳、北平太守皇甫傑、牧官都尉魏敷等爲從事中郎。漢邊郡有牧官。秦置牧官都尉。

 

 사신을 나누어 파견하여 선비(장가구)·오환(융화)·고구리(지금의 요령성과 동북부)·백제(봉래)·신라(청도)·휴인(적봉) 같은 여러 나라에서 병사를 불러 모으고, 병사 3만 명을 파견하여 북해공 부중을 도와 계를 지켰다.

 여러 나라가 모두 말하였다.

 "나는 천자를 위하여 울타리 노릇을 하고 있으니 행당공을 좇아서 반역할 수 없다."

 分遣使者徵兵於鮮卑、烏桓、高句麗、百濟、新羅、休忍諸國,遣兵三萬助北海公重戍薊。諸國皆曰:「吾爲天子守藩,爲,于僞翻。不能從行唐公爲逆。」

 

 부락이 두려워서 그만 두려고 하였지만 날짜를 미루며 결정하지를 못하였다. 왕온·왕림·황보걸·위부가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이를 고발하려고 하자 부락이 이들을 모두 살해하였다.

 길정과 조찬이 말하였다.

 "지금 여러 나라가 따르지 않아 일이 원래 계획에서 틈이 생겼으나 명공께서 만약 익주로 가는 것을 꺼리신다면 마땅히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올려 남아있기를 애걸하여야 하는데, 주상께서 또한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洛懼,欲止,猶豫未決。王縕、王琳、皇甫傑、魏敷知其無成,欲告之;洛皆殺之。吉貞、趙讚曰:「今諸國不從,事乖本圖,明公若憚益州之行者,當遣使奉表乞留,使,疏吏翻;下同。主上亦不慮不從。」

 

 평규가 말하였다.

 "지금 일의 모양이 이미 드러났는데 어찌 중간에 그만 둘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소리를 내어 조서를 받고 유주의 병사를 다하여 남쪽으로 가서 상산으로 나아가면 양평공이 반드시 교외로 마중을 나올 것인데, 이 기회를 사로잡으시고 나아가서 기주(석가장)를 점거하시고, 관동의 무리를 다 모아서 서쪽 지역을 도모하신다면 천하는 손가락을 휘둘러서도 평정할 수 있습니다."

 부락이 이 말을 따랐다. 여름, 4월에 부락이 병사 7만 명을 이끌고 화룡(盧龍의 서쪽 궁궐)을 출발하였다.

 平規曰:「今事形已露,何可中止!宜聲言受詔,盡幽州之兵,南出常山,陽平公必郊迎,因而執之,進據冀州;陽平公融以冀州牧鎭鄴,平規使洛出中山以臨鄴。總關東之衆以圖西土,天下可指麾而定也!」洛從之。夏,四月,洛帥衆七萬發和龍。帥,讀曰率;下同。

 

 진황 부견이 여러 신하를 불러서 모의하는데 보병교위 여광이 말하였다.

 "행당공 부락이 가까운 친척으로서 반역을 꾀하였으니, 이는 천하가 모두 미워하는 바입니다. 바라건대 신에게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빌려주시면 그를 붙잡는 것을 마치 물건 줍듯이 하겠습니다."

 부견이 말하였다.

 "부중과 부락의 형제는 동북쪽의 한 모퉁이를 점거하고 있는데, 군대나 모든 재물이 갖추어져 있어서 아직은 가볍게 여길 수 없다."

 秦王堅召羣臣謀之,步兵校尉呂光曰:「行唐公以至親爲逆,此天下所共疾。願假臣步騎五萬,取之如拾遺耳。」堅曰:「重、洛兄弟,據東北一隅,兵賦全資,未可輕也。」

 

 여광이 말하였다.

 "저 무리들은 흉악한 위세에 압박을 받아서 일시적으로 개미처럼 모인것일 뿐입니다. 마약 대군으로 그곳에 가까이 가게 되면 형세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니 걱정할 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부견은 이내 사신을 파견하여 부락을 꾸짖고 화룡(노룡)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유주를 영원히 대대로 봉지를 삼도록 하였다. 부락이 사자에게 말하였다.

 光曰:「彼衆迫於凶威,一時蟻聚耳。若以大軍臨之,勢必瓦解,不足憂也。」堅乃遣使讓洛,使還和龍,當以幽州永爲世封。洛謂使者曰:

 

 "너는 돌아가 동해왕(부견)에게 말하는데, 유주가 치우쳐있고 좁으니 만승을 담아 넣기가 부족하여 반드시 진중(평원)의 왕이 되어서 고조의 대업을 이으려고 한다. 만약 동관으로 수레를 마중 나온다면, 마땅히 지위는 상공으로 삼고, 작위를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부견이 화가 나서 좌장군인 무도 사람 두충과 여광에게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이끌고 그를 토벌하도록 하고, 우장군 도귀는 역참을 이용하여 빨리 달려 업에 이르러서 기주의 병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게 하였으며, 양평공 부융을 정토대도독으로 삼았다.

 「汝還白東海王,堅本封東海王。幽州褊狹,不足以容萬乘,須王秦中以承高祖之業。苻健廟號高祖。乘,繩證翻。王,于況翻。若能迎駕潼關者,當位爲上公,爵歸本國。」堅怒,遣左將軍武都竇衝及呂光帥步騎四萬討之;右將軍都貴馳傳詣鄴,都,姓;貴,名。鄭公孫閼字子都,子孫以爲氏。傳,株戀翻。將冀州兵三萬爲前鋒;將,卽亮翻。以陽平公融爲征討大都督。

 

 북해공 부중이 계의 병사를 다 합치고 부락과 만나 합쳐서 중산에 주둔하였는데, 무리가 10만 명이었다. 5월에 두충 등이 부락과 더불어 중산에서 전투하였는데, 부락의 병사는 대패하고 부락을 산채로 잡아서 장안으로 보냈다. 북해공이 도망하여 계로 돌아갔으나 여광이 추격하여 목을 베었다.

 北海公重悉薊城之衆與洛會,屯中山,有衆十萬。薊,音計。五月,竇衝等與洛戰于中山,洛兵大敗,生擒洛,送長安。北海公重走還薊,呂光追斬之。

 

 둔기교위 석월이 동래에서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화룡(노룡)을 기습하여 평규의 목을 베고 유주를 모두 평정하였다. 부견은 부락을 사면하고 주살하지 않고, 양주에 있는 서해군(내몽고 액제납기)으로 귀양 보넀다.

 屯騎校尉石越自東萊帥騎一萬,浮海襲和龍,斬平規,幽州悉平。堅赦洛不誅,徙涼州之西海郡。漢獻帝興平二年,武威太守張雅請置西海郡於居延。

 

 사마광이 말하였다.

 "무릇 공이 있음에도 상을 내리지 않고 죄가 있음에도 주살하지 않으면 비록 요임금과 순임금이라도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인 경우에야!

 臣光曰:夫有功不賞,有罪不誅,雖堯、舜不能爲治,用漢宣帝詔而略變其文。治,直吏翻。況他人乎!

 

 진황 부견이 반란한 사람을 잡고도 번번이 이를 용서해주어 그 신하들로 하여금 반역하는 일에 익숙하게 하니, 음흉한 일을 하면서도 요행을 바라게 한 것이고, 비록 힘이 꿀려서 사로잡혔어도 오히려 죽을 걱정을 하지 않게 하였으니 환난이 어찌 스스로 그치겠습니까?

 秦王堅每得反者輒宥之,使其臣狃於爲逆,狃,狎也。行險徼幸,徼,堅堯翻。雖力屈被擒,猶不憂死,亂何自而息哉!

 

 《書》에서 말하기를, '위엄이 아끼는 것을 누르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지만 아끼는 것이 위엄을 누르면 반드시 공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書》曰:「威克厥愛,允濟;愛克厥威,允罔功。《書‧胤征》之辭。

 

 《시》에서 말하였습니다. '속이거나 교활한 사람을 제멋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삼가 망극하게 하며, 노략질하고 포학한 사람을 막아야 하는데, 그에게 간특한 짓을 못하게 하라.' 지금 부견이 이러한 말들을 어겼으니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詩》云:「毋縱詭隨,以謹罔極;式遏寇虐,無俾作慝。」《詩‧民勞》第三章之辭。今堅違之,能無亡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