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狐死正丘首[hú sǐ zhèng qiū shǒu]/ 鷹乃祭鳥5日(음7/9)壬寅

solpee 2020. 8. 27. 05:39

《晉紀24 海西公 太和 5年(庚午, 370)

 

 ②. 의 왕맹이 연의 형주자사인 무위왕 모용축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였다.

 "국가는 지금 이미 성고의 험한 지역을 막고 맹진에 있는 길도 끊었으며, 대가의 호랑이 같은 1백만 대군은 지관에서부터 업도를 빼앗으니, 금용에 있는 궁색한 수비는 밖으로 구원해 줄 세력이 없고, 성 아래에 있는 군사들은 장군이 본 바이고, 어찌 300명의 지친 병졸들이 지탱할 수 있겠소?"

 ②. 秦王猛遺燕荊州刺史武威王筑書遺,于季翻。燕荊州治洛陽。筑,張六翻。曰:「國家今已塞成皋之險,塞,悉則翻。杜盟津之路,盟,讀曰孟。大駕虎旅百萬,自軹關取鄴都,金墉窮戍,外無救援,城下之師,將軍所監,監,視也。猶言目所見也。豈三百弊卒所能支也!」

 

 모용축이 두려워하여 낙양을 들어 항복하였다. 왕맹이 군사를 늘어 놓고 이를 받아 들였다. 연의 위대장군인 낙안왕 모용장이 신낙에 성을 쌓고 의 군사를 석문에서 격파하고 의 장수 양맹을 잡았다.

 筑懼,以洛陽降;降,戶江翻。猛陳師受之。燕衞大將軍樂安王臧城新樂,破秦兵于石門,石門在滎陽;新樂亦當在滎陽界。宋白曰:衞州新鄕縣治古新樂城。新樂城,十六國時,燕將樂安王臧所築。執秦將楊猛。

 

 왕맹이 장안을 출발할 때 모용령에게 그의 군사적 업무에 참여하도록 청하여 향도로 삼고서 장차 출발하려고 할 즈음 모용수에게 가서 술을 마시다가 조용히 모용수에게 말하였다.

 "지금 멀리 가느라고 이별하게 되었는데, 무엇을 저에게 주겠습니까? 저에게 물건을 보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게 해주십시오."

 모용수가 패도를 풀어서 그에게 주었는데, 왕맹이 낙양에 도착하자 모용수가 가까이 하는 금희에게 뇌물을 주어 그에게 거짓으로 모용수의 사자가 되게 하여 모용령에게 말하였다.

 王猛之發長安也,請慕容令參其軍事,以爲鄕導。將行,造慕容垂飲酒,從容謂垂曰:鄕,讀曰嚮。造,七到翻。從,千容翻。「今當遠別,何以贈我?使我覩物思人。」垂脫佩刀贈之。猛至洛陽,賂垂所親金熙,使詐爲垂使者,謂令曰:

 

 "우리 부자가 여기에 온 것은 죽음에서달아나려는 것이었다. 지금 왕맹이 사람을 질투하기를 마치 원수처럼 하는데, 참소하고 헐뜯는 것이 날로 깊어지고 있으며, 秦王이 비록 겉으로는 후하고 선하지만 그 마음을 알기 어렵다. 장부가 죽음에서 도망치려고 하다가 끝내 면하지 못하면 장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듣건대 동조에서는 최근에 다시 후회하여 깨달아서 주군과 태후가 서로 책망하고 있다. 내가 동쪽으로 돌아가는데 그러므로 사람을 보내어 너에게 알리는 것이며, 나는 이미 출발하였으니, 바로 속히 출발하라."

 「吾父子來此,以逃死也。今王猛疾人如讎,讒毀日深;秦王雖外相厚善,其心難知。丈夫逃死而卒不免,卒,子恤翻。將爲天下笑。吾聞東朝比來始更悔悟,朝,直遙翻。比,毗至翻。主、后相尤。主、后,謂燕主暐及可足渾后也。相尤,言相責過。吾今還東,故遣告汝;吾已行矣,便可速發。」

 

 모용령이 이를 의심하고 주저주저하면서 종일 있다가 또 사실 자체를 살펴볼 수도 없었다. 마침내 옛날 기병을 거느리고 거짓으로 사냥을 나간다고 하고서 드디어 석문에 있는 낙안왕 모용장에게로 달아났다. 왕맹이 표문을 올려 모용령이 반란한 상황을 알리니, 모용수가 두려워서 달아났다가 남전에 이르러서 추격하는 기병들에게 잡혔다. 秦皇 부견이 불러들여 동당에서 만나보고 그를 위로하며 말하였다.

 令疑之,躊躇終日,躊,直留翻。躇,陳如翻。猶豫,住足之意。又不可審覆。乃將舊騎,舊騎,自燕奔秦所從者。騎,奇寄翻;下同。詐爲出獵,遂奔樂安王臧於石門。猛表令叛狀,垂懼而出走,及藍田,爲追騎所獲。秦王堅引見東堂,勞之曰:勞,力到翻。

 

 경의 집안과 나라가 화목을 잃어서 몸을 짐에게 위탁하였소. 그대의 현명한 아들은 마음속으로 근본을 잊지 못하여 오히려 고향을 품고 있으니, 역시 각자의 뜻이므로 깊이 허물로 하기에는 부족하오. 그러나 연은 장차 망할 것이어서 모용량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 무리들이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애석할 뿐이오. 또한 부자와 형제 사이에는 죄가 서로 연좌되지 않는 것이니 경은 어찌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이처럼 낭패한단 말이오?"

 「卿家國失和,委身投朕。賢子心不忘本,猶懷首丘,《禮記‧檀弓》曰:太公封於齊,五世皆反葬於周。君子曰:樂樂其所自生,禮不忘其本。古之人有言曰:「狐死正丘首,仁也。」首,式又翻。亦各其志,不足深咎。然燕之將亡,非令所能存,惜其徒入虎口耳。且父子兄弟,罪不相及,晉臼季薦冀缺於晉文公,公曰:「其父有罪,可乎?」對曰:「舜之罪也,殛鯀;其舉也,興禹。」《康誥》曰:父不慈,子不祗,兄不友,弟不共,不相及也。卿何爲過懼而狼狽如是乎!」狼,進則跋其胡,退則疐其尾。狽,狼屬也。生子,欠一足。二者相附而後能行,故世謂進退不可而不能行者爲狼狽。

 

 그를 마치 옛날처럼 대우하였다. 연인들이 모용량이 배반하였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그의 아버지가 秦의 후대를 받으니 모용령이 반간하는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를 사상으로 귀양보냈다. 용도의 동북쪽으로 600리에 있었다.

 待之如舊。燕人以令叛而復還,其父爲秦所厚,疑令爲反間,復,扶又翻。間,古莧翻。徙之沙城,在龍都東北六百里。沙城,在沙野。龍都,卽龍城。

 

 신 광이 말하였다.

 "옛날에주에서 微子를 얻어서 상 왕조의 운명을 개혁하였고, 秦은 由余를 얻어서 西戎의 패자가 되었고, 吳는 伍員을 얻고 나서 강한 초나라를 이겼으며, 漢은 陳平을 얻은 다음에 項籍의 목을 베었고, 魏는 許攸를 얻은 다음에 袁紹를 깨뜨렸으니, 저들은 적국의 재주 있는 신하지만 와서 자기를 위하여 이용하였으며, 나아가서 이것을 훌륭한 밑천으로 만들었습니다.

 臣光曰:昔周得微子而革商命,殷紂暴虐日甚,微子抱祭器而奔周。武王乃告諸侯曰:「殷有重罪,不可不伐。」遂伐紂,殺之,而革殷命。秦得由余而霸西戎,《史記》:戎使由余使於秦,繆公留由余而遺戎王女樂,戎王受而說之,繆公乃歸由余。由余數諫不聽,繆公使人間要由余,由余遂降秦。繆公問以伐戎之形,幷國十二,開地千里,遂霸西戎。吳得伍員而克強楚,楚殺伍奢,其子員奔吳,吳王闔閭用其謀而伐楚,破楚入郢。漢得陳平而誅項籍,事見九卷漢高帝二年至四年。魏得許攸而破袁紹;事見六十三卷漢獻帝建安五年。彼敵國之材臣,來爲己用,進取之良資也。

 

 왕맹은 모용수의 마음은 오래 되면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만 연이 아직 멸망되지 않았고, 모용수는 재주가 높고 공로가 왕성하며 죄를 지은 일이 없는데 의심을 받게 되어 궁색하고 어려워져서 秦으로 귀부하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아직은 다름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 갑자기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니, 이는 연을 도와서 무도한 짓을 하여 오려는 사람들의 문호를 막으려는 것이었으니, 어찌 그것이 옳단말입니까?

 王猛知慕容垂之心久而難信,獨不念燕尚未滅,垂以材高功盛,無罪見疑,窮困歸秦,未有異心,遽以猜忌殺之,是助燕爲無道而塞來者之門也,塞,悉則翻。如何其可哉!故秦王堅禮之以收燕望,親之以盡燕情,寵之以傾燕衆,信之以結燕心,未爲過矣。

 

 그러므로 진황 부견이 그를 예로 대하여 연인들의 희망을 거둬들이고, 그를 가까이하여 연인들의 마음을 다하게 하였으며, 그를 총애하여 연의 무리들을 기울게 하고, 그를 믿어서 연인들의 마음을 맺도록 하였으니 아직은 허물을 짓지 아니하였습니다. 왕맹이 어찌하여 모용수를 죽이는데 급급하여 마침내 시장에서 죽 파는 사람의 행동을 하여 마치 총애를 질투하여 그를 참소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어찌 훌륭한 덕을 지닌 군자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었겠습니까?"

 猛何汲汲於殺垂,乃爲市井鬻賣之行,行,下孟翻。有如嫉其寵而讒之者,豈雅德君子所宜爲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