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遵養時晦[ zūn yǎng shí huì ]/寒蟬鳴2日(음7/1)甲午

solpee 2020. 8. 19. 08:56

《晉紀15 明 太寧 2 (甲申, 324)

 

 ⑤. 황제가 장차 왕돈을 토벌하려고 광록훈 응첨에게 물었더니 응첨이 그 일을 성공시키라고 권고하자 황제가 드디어 마음을 결정하였다.....

 ⑤. 帝將討敦,以問光祿勳應詹,詹勸成之,帝意遂決。...

 

 사도 왕도가 왕돈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제들을 인솔하고 발상하니, 무리들은 왕돈이 죽었다고 믿고, 모두가 분발할 생각을 가졌다. 이에 상서는 조서를 베껴 왕돈의 대장군부에 내려 보내서 왕돈의 죄악을 열거하였다.

 司徒導聞敦疾篤,帥子弟爲敦發哀,帥,讀曰率。爲,于僞翻。衆以爲敦信死,咸有奮志。於是尚書騰詔下敦府,下,遐嫁翻。列敦罪曰:

 

 "왕돈이 문득 형의 아들로 자신의 직위를 대신하도록 이어받게 하였는데, 계상의 자리를 왕명을 거치지 않고 임명한 일은 아직 없었다. 완고하고 흉악한 것을 서로 장려하면서도 돌아보고 거리끼는 바가 없었고,  마음속으로 흉하고 추악한 길로 달려가서 신기를 엿보았다.

 「敦輒立兄息以自承代,未有宰相繼體而不由王命者也。息,子也;謂以兄含子應爲嗣也。頑凶相獎,無所顧忌;志騁凶醜,以窺神器。

 

 하늘의 간사한 일을 더 이상 늘려주지 않아서 왕돈이 죽었는데, 전봉이 흉악한 뜻을 이어받아서 다시금 반역하도록 선동하였다. 지금 사도 왕도 등을 파견하여 호랑이 같은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열 개의 길로 함께 나아가고, 평서장군 왕수 등은 정예의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육지와 강으로 세력을 가지런히 하며, 짐은 친히 모든 군사를 통솔하여 전봉의 죄를 토벌하고자 한다. 전봉을 죽여서 그의 머리를 보내올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5천 호의 후작에 책봉할 것이다.

 天不長姦,騁,丑郢翻。長,丁丈翻。敦以隕斃;鳳承凶宄,彌復煽逆。復,扶又翻。今遣司徒導等虎旅三萬,十道並進;平西將軍邃等精銳三萬,水陸齊勢;朕親統諸軍,討鳳之罪。有能殺鳳送首,封五千戶侯。《考異》曰:《晉春秋》此詔在王導爲敦發喪前,故云「有能斬送敦首,封萬戶侯,賞布萬匹。」按此詔云「敦以隕斃」,是稱敦已死也,不應復購敦首。今從《敦傳》。

 

 여러 문관과 무관 가운데 왕돈에게 채용된 사람은 한 가지로 책임을 묻지 않겠으니 의심하거나 꺼리다가 일을 당하지 마라. 왕돈의 장사들은 왕돈을 좇아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자기 집을 떠나있었으므로 짐은 이를 대단히 가련하게 생각한다. 그들 가운데 혼자 몸으로 군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며 죽을 때까지 다시는 징발하지 않을 것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3년간의 휴가를 줄 것이니, 휴가가 끝나서 대로 돌아오게 되면 마땅히 숙위와 같은 예에 따라서 3개 반으로 편성할 것이다."

 諸文武爲敦所授用者,一無所問,無或猜嫌,以取誅滅。敦之將士,從敦彌年,違離家室,將,卽亮翻;下自將、親將同。離,力智翻。朕甚愍之。其單丁在軍,皆遣歸家,終身不調;單丁,謂家止有男丁一人,無兼次者。調,徒釣翻。其餘皆與假三年;假,居訝翻。休訖還臺,當與宿衞同例三番。」謂三番休二也。

 

 왕돈은 조서를 보자 대단히 화를 냈고, 병은 더욱 위독해져서 스스로 군사를 거느릴 수가 없었다. 장차 군사를 들어서 경사를 치려고 하면서 기실(기밀실) 곽박에게 점을 치게 하였다. 곽박이 말하였다.

 "성공하지 못합니다."

 왕돈은 평소 곽박이 온교와유량을 돕는다고 의심하였는데, 점괘가 흉하게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곽박에게 물었다.

 "경이 다시 점을 쳐서 나의 수명이 얼마인가 보시오."

 곽박이 말하였다.

 "조금 전의 점괘를 생각해 보건대, 명공께서는 일을 일으키면 반드시 화가 미칠 것이고, 만약에 무창에 그대로 있게 되면 그 수명은 추측할 수 없습니다."

 왕돈은 크게 화가 나서 말하였다.

 "경의 수명은 얼마요?"

 말하엿다.

 "제 목숨은 오늘로 다합니다."

 해가 중천에 잇는데, 왕돈이 곽박을 잡아들여 참했다.

 敦見詔,甚怒;而病轉篤,不能自將。將舉兵伐京師,使記室郭璞筮之,璞曰:「無成。」敦素疑璞助溫嶠、庾亮,及聞卦凶,乃問璞曰:「卿更筮吾壽幾何?」璞曰:「思向卦,明公起事,必禍不久;若往武昌,壽不可測。」敦大怒曰:「卿壽幾何?」曰:「命盡今日日中。」敦乃收璞,斬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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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가 여러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서 남황당에 주둔하였다. 7월 3일 밤에 장사를 모집하여 장군 단수와 중군사마 조혼 등을 파견하여 갑옷을 갖춰 입은 병졸 1천 명을 인솔하고 물을 건너서 그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습격하였다. 날이 밝자 월성에서 싸워서 그들을 대파하고 그들의 선봉장인 하강을 목베었다. 단수는 단필제의 동생이다.

 帝帥諸軍出屯南皇堂。癸酉夜,募壯士,遣將軍段秀、中軍司馬曹渾等帥甲卒千人渡水,掩其未備。平旦,戰於越城,越城,在秦淮南。帥,讀曰率;下同。大破之,斬其前鋒將何康。秀,匹磾之弟也。磾,丁奚翻。

 

 왕돈은 왕함이 패배하엿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화가 나서 말하였다.

 "나의 형님이 늙은 노비와 같을 뿐이구나! 우리 집안은 쇠퇴하고 세상일도 다 끝났다."

 돌아보며 참군 여보에게 말하였다.

 "내가 마땅히 힘껏 가보아야겠다."

 이어서 힘을 내서 일어났으나 고단하고 힘이 없어서 다시 드러누웠다.

 마침내 그의 외삼촌인 소부 양감과 왕응에게 말하였다.

 "내가 죽거든 왕응이 바로 즉위하게 하고, 먼저 조정의 백관을 만들고 그런 다음에 장례를 치르라."

 敦聞含敗,大怒曰:「我兄,老婢耳;門戶衰,世事去矣!」顧謂參軍呂寶曰:「我當力行。」因作勢而起,困乏,復臥。氣不能充體爲困,力不能舉身爲乏。乃謂其舅少府羊鑒及王應曰:少,詩沼翻。「我死,應便卽位,先立朝廷百官,然後營葬事。」

 

 왕돈이 얼마 안 있다가 죽었지만 왕응은 비밀에 붙여서 상사를 발설하지 않고 시체를 자리로 싸고 그 밖을 밀랍으로 발라서 청사 안에다 묻고서 제갈요 등과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음란한 짓을 하며 즐겼다.

 敦尋卒,應祕不發喪,裹尸以席,蠟塗其外,埋於廳事中,與諸葛瑤等日夜縱酒淫樂。樂,音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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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교가 상소문을 올렸다.

 "왕돈은 걍퍅하고 어질지 아니하며 잔인하게 살육을 자행하였는데, 조정에서도 통제할 수 없었고 골육 간에도 간하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대장군부에 있을 때에는 항상 두려움과 죽음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혀를 붙잡아 맨 듯 말을 하지 않았고, 길에서는 눈만을 사용하였으며, 진실로 현인과 군자의 길은 막히고 운수는 다하였으니, 바로 遵養時晦(난세로 물러나서 기다릴 시기)의 시기였습니다. 원래 그들의 사사로운 마음인들 어찌 편안한 곳에 있었겠습니까?

 溫嶠上疏曰:「王敦剛愎不仁,忍行殺戮,朝廷所不能制,骨肉所不能諫;處其朝者,恆懼危亡,朝,府朝也。愎,蒲逼翻。朝,直遙翻。處,昌呂翻;下晏處同。恆,戶登翻。故人士結舌,道路以目,但以目相視,不敢發言。誠賢人君子道窮數盡,遵養時晦之辰也;《周頌‧酌》之詩曰:遵養時晦。毛氏《註》云:遵,率;養,取;晦,昧也。鄭氏《箋》云:養是闇昧之君以老其惡。原其私心,豈遑晏處!晏處,猶言安處。

 

 예컨대 육완· 유윤· 곽박 같은 무리들이 항상 신과 더불어 이야기하였으므로 이러한 것을 갖추어 알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그 가운데 흉악하고 패역한 행위를 찬양하고 이끌엇던 사람이 잇다면 자연스레 당연히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옳겠지만, 만약 그 가운데 간사스러운 무리들에게 억울하게 빠져든 사람이 있다면 의당 그들은 관대하게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如陸玩、劉胤、郭璞之徒常與臣言,備知之矣。必其贊導凶悖,悖,蒲內翻,又蒲沒翻。自當正以典刑;如其枉陷姦黨,謂宜施之寬貸。

 

 신은 육완 등의 정성을 성스러운 황제께 보고하였는데, 도적과 같은 책임을 당하였으니, 만약에 잠자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마음에 짐을 지게 됩니다. 오직 폐하의 어질고 성스러움으로 이를 판단해 주십시오."

 臣以玩等之誠,聞於聖聽,當受同賊之責;苟默而不言,實負其心。惟陛下仁聖裁之!」

 

 치감은 '선왕들은 군신간의 규범을 세웠고, 절개를 위해 엎어지고 의를 위해 죽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왕돈을 보좌한 관리들은 비록 대부분이 압박을 받았지만 그러나 더 나아가서 그의 역모를 저지할 수 없었고, 물러나서 뭄을 빼 멀리 숨을 수 없었으니, 앞에 있었던 교훈에 준거하여 의당 대의를 가지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황제는 끝내 온교의 의견을 좇았다.

 郗鑒以爲「先王立君臣之敎,貴於伏節死義。王敦佐吏,雖多逼迫,然進不能止其逆謀,退不能脫身遠遁,準之前訓,宜加義責。」謂以大義責之。帝卒從嶠議。卒,子恤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