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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韓刻薄傷化,不足留聖心 / 立秋節末候寒蟬鳴初日(음6/28)壬辰

solpee 2020. 8. 17. 09:30

《晉紀12 元 太興 元 (戊寅, 318)

 

 ②. 3월 7일에 민제가 흉사를 당했다는 소식이 건강에 이르니 왕이 참최를 입고 여막에 살았다. 백관들이 존호를 쓰는 자리에 오르라고 청하였지만,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기첨이 말하였다.

 "晉 황실의 대통이 끊어진 지가 오늘까지 2년이 됩니다. 폐하께서 당연히 대업을 이으셔야 하며, 종실에 속한 사람들을 돌아보아도 누구에게 다시 양보하겠습니까? 만약에 대위를 빛나게 밟으신다면 신과 백성들이 의지할 곳을 갖게 되는 것이고, 만약에 하늘이 내려준 때를 어기고, 사람들이 하려는 일을 어겨서 대세가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②. 三月,癸丑,愍帝凶問至建康,王斬縗居廬。縗,倉回翻。《儀禮》:斬衰、倚廬。孟康曰:倚廬,倚牆至地爲之,無楣柱。《喪服大記》:父母之喪,居倚廬,不塗。君爲廬,宮之;大夫、士,襢之。旣葬,柱楣,塗廬,不於顯者,君、大夫、士皆宮之。《正義》曰:居倚廬者,謂於中門之外東牆下倚木爲廬。不塗者,但以草夾障,不塗之也。宮之者,謂廬外以帷障之如宮牆。襢之言袒也,其廬袒露,不帷障也。旣葬柱楣者,旣葬情殺,故柱楣稍舉以納日光;又以泥塗,辟風寒。不於顯者,塗廬不塗廬外顯處。君、大夫、士皆宮之者,旣葬,故得皆宮之。百官請上尊號,上,時掌翻。王不許。紀瞻曰:「晉氏統絕,於今二年,陛下當承大業;顧望宗室,誰復與讓!若光踐大位,則神、民有所憑依;苟爲逆天時,違人事,大勢一去,不可復還。復,扶又翻。

 

 지금 두 개의 도읍지는 불타서 없어지고 종묘에는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있는데, 유총이 서북쪽에서 황제의 칭호를 훔쳐서 가지고 있으니, 폐하께서는 바야흐로 동남 지역에서 고고하게 양보하며 계시는데, 이것이 이른바 읍양하며 불난 것을 잡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왕은 그래도 오히려 허락하지 않고 전중장군 한적에게 어좌를 철거하게 하였다.

 今兩都燔蕩,宗廟無主,劉聰竊號於西北,而陛下方高讓於東南,此所揖讓而救火也。」王猶不許,使殿中將軍韓績徹去御坐。殿中將軍,屬二衞,晉初置,朝會宴饗,則戎服直侍左右,夜開諸城門,則執白虎幡監之。坐,徂臥翻;下帝坐同。

 

 기첨이 한적을 나무라며 말하였다.

 "황제의 자리는 위로 하늘의 별자리에 대응하여 만든 것이니, 감히 이를 움직이는 사람은 목을 베겠다."

 왕이 이 때문에 낯빛을 고쳤다.

 봉조청 주숭이 상소문을 올렸다.

 "옛날에 제왕 된 사람은 온전히 한 다음에 자리를 차지하였고, 양보하는 절차를 다 벏은 다음에 제왕의 자리를 얻었으니, 이리하여서 오랜 세월 동안 황실을 향유하였고, 거듭 빛나는 일이 만년까지 갔습니다. 지금 재궁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였고, 옛날 도읍지는 깨끗하게 정리되지 못하였으며, 의로운 지아비는 피눈물을 뿌리며 남자나 여자나 당황하고 있습니다.

 瞻叱績曰:「帝坐上應列星,《天文志》,帝坐在紫宮中。敢動者斬!」王爲之改容。爲,于僞翻。

奉朝請周嵩上疏曰:王爲丞相,以嵩爲參軍,及爲晉王,拜奉朝請。《晉志》曰:奉朝請者,奉朝會請召而已。「古之王者,義全而後取,讓成而後得,是以享世長久,重光萬載也。重,直龍翻。載,子亥翻。今梓宮未返,舊京未清,義夫泣血,士女遑遑。

 

 의당 훌륭한 꾀를 널리 구하고 군사를 훈련하고 무기를 벼려 먼저 사직의 큰 수치를 깨끗이 씻어서 사해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응한다면 신기(황제의 자리)야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서 왕의 뜻을 어겼으므로 내보내 신안 태수로 삼았다. 또 다시 원망했다는 죄에 걸렸는데, 주숭은 주의의 동생이다.

 宜開延嘉謀,訓卒厲兵,先雪社稷大恥,副四海之心,則神器將安適哉!」由是忤旨,出爲新安太守,孫權分丹陽立新都郡,武帝太康元年改名新安郡。劉昫曰:新安郡,唐之歙州。忤,五故翻。又坐怨望抵罪。嵩,顗之弟也。顗,魚豈翻。

 

 10일에 왕이 황제의 자리에 나아갓고 백관들이 모두 배석하여 늘어섰다. 황제가 왕도에게 명령하여 어상으로 올라와서 함께 앉자고 하니 왕도가 굳게 사양하며 말하였다.

 "만약에 태양이 내려와서 만물과 같이 하게 된다면 창생들은 어디를 바라보고 햇볕을 쬐겠습니까?"

 황제가 마침내 그만두었다.

 

 丙辰,王卽皇帝位,百官皆陪列。帝命王導升御床共坐,導固辭曰:「若太陽下同萬物,蒼生何由仰照!」帝乃止。

 

 크게 사면하고, 기원을 고치고 문무관원들의 지위를 두 등급씩 올렸다. 황제는 여러 관원들 가운데 刺(명함)를 보내며 자리에 나아가라고 권고한 사람은 지위를 한 등급을 올려주고, 백성들 가운데 刺를 보낸 사람은 모두 관리로 임용하였는데, 그 수가 무릇 20여만 명이었다.

 산기상시 웅원이 말하였다.

 大赦,改元,文武增位二等。帝欲賜諸吏投刺勸進者加位一等,民投刺者皆除吏,凡二十餘萬人。毛晃曰:書姓名於奏白曰刺。散騎常侍熊遠曰:

 

 "폐하께서는 하늘의 뜻에 호응하시어 대통을 이으셨으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추대하엿는데, 어찌하여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리는 두텁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리는 가볍단 말입니까? 한 나라 때의 법에 의거하여 천하 사람들에게 작위를 내려주셔서 은덕을 모든 이에게 두루 주시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검사하고 조사하는 번거로움을 그만두게 하여 재주를 피우고 거짓말하는 실마리를 막았으면 좋겠습니다."

 황제는 좇지 않았다.

 「陛下應天繼統,率土歸戴,豈獨近者情重,遠者情輕!不若依漢法徧賜天下爵,於恩爲普,漢自惠帝嗣位,賜民爵一級,有官秩者以歲數爲差;其後諸帝初卽位,率賜民爵一級。且可以息檢覈之煩,塞巧僞之端也。」塞,悉則翻。帝不從。

 

 24일에 왕태자 사마소를 황태자로 삼았다. 태자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문학을 좋아하고 무예를 잘하였으며,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고 선비에게 예의 있게 대했고, 제재하고 간언하는 말을 용납해 받아들이고, 유량·온교 등 벼슬없는 사람들과 사귀었다.

 庚午,立王太子紹爲皇太子。太子仁孝,喜文辭,善武藝,好賢禮士,喜,許記翻。好,呼到翻。容受規諫,與庾亮、溫嶠等爲布衣之交。

 

 유량은 풍격이 엄정하고 가지런하였으며 노장을 잘 말하여 황제가 그를 중요한 그릇으로 생각하니, 유량의 여동생을 맞아서 태자비로 하였다. 황제는 하순을 행태자태부로 삼고, 주의를 소부로 삼고, 유량은 중서랑으로 동궁에서 황태자를 모시고 강론하게 하였다.

 亮風格峻整,善談老、莊,帝器重之,聘亮妹爲太子妃。帝以賀循行太子太傅,周顗爲少傅,庾亮以中書郎侍講東宮。

 

 황제는 형명가를 좋아하여 《韓非》책을 태자에게 하사하였다. 유량이 간하였다.

 "신불해와 한비자는 각박하여 교화하는 일을 해쳤으니 성스러운 마음으로 유념하기에는 모자라는 책입니다."

 태자가 이를 받아들였다.

 帝好刑名家,以《韓非》書賜太子。庾亮諫曰:「申、韓刻薄傷化,不足留聖心。」太子納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