敬民之主[jìngmínzhīzhǔ]백성을 공경하는 것이 공무원의 근본이다.
宋나라에서 맺은 盟約을 지키기 위해 襄公이 宋公‧陳侯‧鄭伯‧許男과 함께 楚나라에 갔다. 襄公이 鄭나라를 지날 때 鄭伯은 〈이미 楚나라로 떠나고〉 國內에 없었다. 伯有가 黃崖로 가서 襄公을 慰勞하였는데 態度가 공경스럽지 않자, 穆叔이 말하였다.
“鄭나라가 伯有를 誅戮[戾]하지 않는다면 鄭나라는 반드시 큰 災禍가 생길 것이다. 恭敬은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主]인데 근본을 버렸으니 어찌 先祖을 받들고 家室(家族과 財産)을 지킬 수 있겠는가?
爲宋之盟故, 公及宋公‧陳侯‧鄭伯‧許男如楚. 公過鄭, 鄭伯不在. 伯有勞於黃崖, 不敬. 穆叔曰; "伯有無戾於鄭, 鄭必有大咎.敬 民之主也, 而棄之, 何以承守.
鄭人이 그를 討伐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반드시 그 禍를 받을 것이다. 여울과 늪의 가장자리와 길에 고인 물웅덩이에 난 水草를 뜯어다가, 宗廟에 올리고, 어린 계집아이(季蘭)가 그것을 뜯어 제사에 올려도(제사를 주제하여도) 좋다는 것은 〈神이 歆饗하는 것은〉 恭敬하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는 뜻에서이다. 그런데도 공경을 버릴 수가 있단말인가?”
鄭人不討, 必受其辜. 濟澤之阿, 行潦之蘋藻, 寘諸宗室, 季蘭尸之, 敬也. 敬其可棄乎!"
一行이 漢水에 이르렀을 때 楚康王이 卒하니, 襄公이 魯나라로 돌아가고자 하자, 叔仲昭伯이 말하였다.
“우리가 楚나라를 위해 온 것이지 어찌 楚王 한 사람을 위해 온 것이겠습니까? 계속 앞으로 가소서.”
그러자 子服惠伯이 말하였다.
“君子는 먼 앞일을 헤아리는 깊은 생각이 있지만 小人은 目前의 이익만을 따릅니다. 目前의 飢寒도 구제할 수 없는데 어느 겨를에 뒷일을 걱정하겠습니까? 우선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及漢, 楚康王卒. 公欲反, 叔仲昭伯曰; "我楚國之爲, 豈爲一人? 行也." 子服惠伯曰; "君子有遠慮, 小人從邇. 飢寒之不恤, 誰遑其後? 不如姑歸也."
叔孫穆子가 말하였다.
“叔仲子는 重任을 專擔시킬 만하고, 子服子는 〈먼 앞날을 생각할 줄 모르는〉 初學者일 뿐입니다.”
榮成伯이 말하였다.
“먼 앞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忠臣입니다.”
襄公은 드디어 계속해 가기로 하였다.
叔孫穆子曰; 叔仲子專之矣. 子服子, 始學者也." 榮成伯曰; "遠圖者, 忠也." 公遂行.
宋나라 向戌이 말하였다. “우리는 楚王 한 사람을 위해 온 것이고 楚나라를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飢寒도 救濟할 수 없는데 어느 겨를에 楚나라를 걱정하겠습니까? 우선 돌아가서 백성들을 安息시키면서 楚나라가 임금을 세울 때를 기다려 對備策을 세우소서.”
宋平公은 드디어 宋나라로 돌아갔다.
宋向戌曰; "我一人之爲, 非爲楚也. 飢寒之不恤, 誰能恤楚. 姑歸而息民, 待其立君而爲之備. 宋公遂反.
楚나라 屈建이 卒하자 晉나라 趙文子가 同盟國의 例에 따라 弔喪하였으니 禮에 맞았다.
楚屈建卒, 趙文子喪之如同盟, 禮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