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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宣公下16年(前593) 民之多幸, 國之不行也 / 小滿末候麥秋至(보리가을 온다)2日(음.윤4/9)甲戌

solpee 2020. 5. 31. 05:06

魯宣公下16年(前593) 民之多幸, 國之不行也.

 

 晉 대부 양설직이 말하였다

 "내가 들은 바로는 '우임금이 훌륭한 사람을 등용하자 악인은 스스로 멀리 떠나 버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詩經에 '조심하고 조심하여 깊은 연못을 내려다보듯 살얼음을 밟듯 하여라'라고 한 것은 훌륭한 사람이 위에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조심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위에 있으면 그 나라에는 요행을 바라는 백성들이 없게 된다. 

 羊舌職曰."吾聞之.禹稱善人.不善人遠.此之謂也.夫詩曰.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冰.善人在上也.善人在上.則國無幸民.

 

 속담에 '백성들에게 요행심이 많은 것은 나라의 불행'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훌륭한 사람이 정치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諺曰.民之多幸.國之不幸也.是無善人之謂也."

 

 여름에 성주의 연무당에 화재가 일어난 것은, 사람이 화제를 낸 것이다. 대체로 화재는, 사람이 불을 낸 것을 火라고 하고, 자연히 불이 나는 것은 災라고 하는 것이다.

 夏成周宣榭火, 人火之也. 凡火, 人火曰火, 天火曰災.

 

 가을에 담나라로 시집간 백희가 노나라에 돌아왔다고 한 것은 쫓겨난 것이다. 모씨와 소씨의 난 때문에 왕실은 다시 어지러웠다. 왕손소는 두려워하여 진나라로 달아났지만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주나라에 보내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겨울에 진후는 사뢰에게 명하여 왕실을 평정하게 하였다. 진왕은 그에게 연희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그때 주나라의 대부인 원이 양공의 향례 접대를 맡았는데 뼈가 붙은 채로 자른 돼지고기를 담아서 내놓았다.

 秋郯伯姬來歸, 出也. 為毛召之難, 故王室復亂. 王孫蘇奔晉, 晉人復之. 冬晉侯使士會平王室. 定王享之. 原襄公相禮, 殽烝.

 

 계무자는 가만히 그 까닭을 물었으나 정왕은 그 말을 듣고 무자를 불러서 말하였다.

 "계씨는 듣지 못했는가. 왕은 향례에는 커다랗게 자른 돼지고기를 권하고 연례에는 먹기 쉽도록 잘 게 자른 고기를 담아서 내어놓는데 제후에게는 향예를 쓰고 경에 대해서는 연례를 써서 대접하는 것이 왕실의 예법이다."

 무자는 돌아와서 의식의 예법을 연구하고 조사하여, 진나라의 예법을 정리하였다.

 武子私問其故, 王聞之, 召武子曰; 季氏, 而弗聞乎. 王享有體薦, 晏有折俎, 公當享, 卿當宴, 王室之禮也. 武子歸而講求典禮, 以脩晉國之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