扣槃捫籥(燭)[kòu pán mén yuè(zhú)]
잘못 생각하다. 오해하다. 比喻认识片面,未得要领。同“扣槃捫燭”。
구반문약의 출전은 송 소식의 『日喩』에서 유래하였다. 扣槃捫烛과 같은 뜻이다. 이것은 "구리 쟁반을 두드리고 피리를 만져 본다"는 것으로, 즉 어떤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것만으로 잘못 판단하여 오해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옛날에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이 있었는데, 태양이 어떤 모양인지 궁금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 형태를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이 '태양은 구리쟁반 같은 모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구리쟁반을 두드려 보고 그 소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어느날 종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태양이라고 여겼다. 또 어떤 사람이 '태양은 촛불처럼 빛이 난다.'라고 하였다. 그는 촛대를 만져보고 그 형태를 알게 되었다. 그는 어느날 피리를 만져보고는 그것이 태양이라고 여겼다."
宋·苏轼《日喻》:“生而眇者不识日,问之有目者。或告之曰:‘日之状如铜槃。’扣槃而得其声。他日闻钟,以为日也。或告之曰:‘日之光如烛。’扪烛而得其形。他日揣籥,以为日也。”
《日喩[rì yù]》
生而眇(miǎo)者不识日,问之有目者。或告之曰:“日之状如铜盘。”扣盘而得其声。它日闻钟,以为日也。
(백화문) 一出生就双目失明的人不认识太阳,向有眼睛的人问太阳是什么样子。有的人告他说:“太阳的样子像铜盘。”敲铜盘就听到了它的声音。有一天(他)听到了钟声,把发出声音的钟当 日喻作太阳。
태어나면서부터 장남인 사람이 해를 알지 못해, 눈이 있는 사람에게 해에 대해 물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해의 모양은 구리 쟁반과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구리 쟁반을 두드려 그 소리를 들었다. (어느날 그는) 종소리를 듣고는 해라고 생각했다.
或告之曰:“日之光如烛。”扪烛而得其形。它日揣龠,以为日也。日之与钟、龠亦远矣,而眇者不知其形,以其未尝见而求之人也。
(백화문)有的人告诉他说:“太阳的光像蜡烛。”用手摸蜡烛就晓得了它的形状。有一天,(他)揣摩一支形状像蜡烛的乐器龠,把它当作太阳。太阳和敲的钟、吹奏的龠差别也太远了,但是天生双眼失明的人却不知道它们之间有很大的差别,因为他不曾亲眼看见而是向他人求得太阳的知识啊。
어떤 사람이 그에게 "햇빛은 초와 같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초를 만져 보고는 그 형태를 알게 되었다. (어느날) 피리를 만져 보고는 해라고 생각했다. 해는 종, 피리와 거리가 먼데, 장님은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이는 직접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정보를)얻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道之难见也甚于日,而人之未达也无异于眇。达者告之,虽有巧譬善导,亦无以过于盘与烛也。自盘而之钟,自钟而之龠(yuè),转而相之,岂有既乎?故世之言道者,或即其所见而名之,或莫之见意之,皆求道之过也。
(백화문)抽象的“道”(道理、规律等)难认识的情况比太阳难认识的情况严重,而人们不通晓道的情况比生来就不认识太阳的瞎子没有什么不同。通晓的人告诉他,即使有巧妙的比喻和很好的启发诱导,也无法使这些比喻或教法比用铜盘和用蜡烛来说明太阳的比喻或教法好。从用铜盘比喻太阳而到把铜钟当作太阳,从把铜钟当作太阳而到把乐器龠当作太阳,像这样辗转连续地推导它,难道还有个完吗?所以人世上的大谈“道”的人,有的就他自己的理解来阐明它,有的没有理解它却主观猜度它,这都是研求道的弊病。
도를 아는 것은 장님이 해를 아는 것 보다 어려우며, 사람이 도에 이르지 못함도 장님이 해를 보지 못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도를 아는 사람이 온갖 비유를 들어 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일반 사람이 장님에게 해를 구리 쟁반과 촛불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과 똑같다. 구리쟁반을 종으로 생각하고 촛불을 피리로 생각했듯이 비슷한 것들끼리 서로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세상에서 도에 대해 말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한 것으로 도를 밝히며, 어떤 이는 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제맷대로 생각한다.이는 모두 도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다.
然则道卒不可求欤?苏子曰:“道可致而不可求。”何谓致?孙武曰:“善战者致人,不致于人。”子夏曰:“百工居肆,以成其事;君子学,以致其道。”
(백화문) 既然如此,那么这个“道”最终不可能求得吗?苏先生说:“道能够通过自己的虚心学习,循序渐进使其自然来到,但不能不学而强求它(道)。”什么叫做“致”?孙武说:“会作战的将军能招致敌人,而不被敌人所招致(处于被动的境地)。”子夏说:“各行各业的手艺人坐在店铺作坊里,来完成他们制造和出售产品的业务;有才德的人刻苦学习,来使那道自然到来。”不是强求它而是使它自己到来,这就是“致”啊!”
그렇다면 도는 끝내 알 수 없단 말인가? 소식은, "도는 자신이 겸허하게 공부를 해서, 점차 발전시켜 나가면 자연스럽게 알수 있다. 그러나 배우지 않거나 억지로 알려고 하면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치(도달하다)'란 무엇인가?" 손무는, "전쟁을 잘하는 장군은 적을 제압 할 수 있지만, 적에게 제압당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하는, "여러 장인들은 공방에서 자신의 일을 이루고, 군자는 학문으로써 그 도를 이룬다." 라고 말했다.
南方多没人,日与水居也。七岁而能涉,十岁而能浮,十五而能没矣。夫没者岂苟然哉?必将有得于水之道者。日与水居,则十五而得其道;生不识水,则虽壮见舟而畏之。故北方之勇者,问于没人而求其所以没,以其言试之河,未有不溺者也。故凡不学而务求道,皆北方之学没者也。
(백화문) 南方有很多能潜水的人,天天与水生活在一起。七岁就能涉水,十岁就能浮水,十五岁就能潜水了。潜水的人能长时间的潜入水里,哪能是马虎草率而能这样的呢?一定是对水的活动规律所领悟的。天天与水生活在一起,那么十五岁就能掌握它的规律。生来不识水性,那么即使到了壮年见到了船就害怕它。所以北方的勇士,向南方的潜水的人询问来求得他们能潜入水里的技术,按照他们说的技术到河里试验它,没有不淹死的。
무릇 잠수부가 어떻게 그렇게 (잠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昔者以声律取士,士杂学而不志于道;今世以经术取士,士知求道而不务学。渤海吴君彦有志于学者也,方求举于礼部,作《日喻》以告之。
(백화문) 所以凡是不老老实实地刻苦学习而专力强求道的,都是像北方的学潜水的一类的人。从前以讲究声律的诗赋择取人才,所以读书人合儒家墨家还兼及名家法家而不是立志在求儒家之道;现在以经学择取人才,所以读书人只知道强求义理,而不是专力踏踏实实地学。渤海人吴彦律,是有志对经学作实实在在地学习的人,正要到京城接受由礼部主管的进士考试,我写《日喻》来勉励他。
《曹冏上書 中에서》
효경제 시대에 이르러서 조조의 계책을 굽혀서 채용하여 제후들의 땅을 삭감하거나 쫓아내자 드디어 7국의 근심거리가 생겨났습니다. 대개 그 징조는 고제 때 싹텄고, 문제와 경제 시대에 틈이 모이게 되었으니, 관대하다가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며 그것을 급하게 처리하고 점차적으로 하려 하지 않았던 연고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至於孝景,猥用鼂錯之計,削黜諸侯,遂有七國之患。〈事見十六卷漢景帝三年。〉蓋兆發高帝,釁鍾文、景,〈鍾,聚也。〉由寬之過制,急之不漸故也。
이른바 '끄트머리가 커지면 반드시 꺾이고, 꼬리가 커지면 반드시 흔들기 어려워진다.' 고 하였는데, 꼬리가 몸체에 같이 붙어 있음에도 오히려 간혹 몸통을 좇지 않는데, 하물며 몸통에 붙어 있지 않은 꼬리가 그것을 흔들 수 있겠습니까?
所謂『末大必折[mòdàbìzhé],尾大難掉[wěi dànán diào]』,〈《左傳》田無宇之言。折,而設翻。掉,徒弔翻。〉尾同於體,猶或不從,況乎非體之尾,其可掉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