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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士와 忠臣:곧은 선비와 충신 구별법/ 立夏節初候螻蟈鳴4日(음4/16)辛亥

solpee 2020. 5. 8. 05:44

《魏紀5 明帝 靑龍 4 (丙辰, 236)

 

 

 7. 겨울, 10월 15일에 대진성 자리에 패성이 나타났고, 또한 동쪽에 패성이 나타났다. 고당륭이 상서를 올렸다.

 "무릇 제왕이 도읍을 옮기고 성읍을 세우면서는 모두가 먼저 천지와 사직의 위치를 확정하고 공경하며 공손하게 이를 받드는 것입니다. 장차 궁실을 건축하려고 하면 종묘를 먼저 짓고, 마구간과 창고를 다음으로 세우고, 거실은 뒤에 가서 만들어야 합니다.

 7. 冬, 十月, 甲申,有星孛于大辰,《公羊傳》曰:大辰者何?大火也。何休《註》曰:大火與伐,天之所以示民時早晚,天下之所以取正,故謂之大辰。蔡邕曰:自亢八度至尾四度,謂之大火。陳卓曰:自氐五度至尾九度曰大火之次,於辰在卯。孛,蒲內翻。又孛于東方。高堂隆上疏曰:「凡帝王徙都立邑,皆先定天地、社稷之位,所謂圜丘、方澤、南北郊及社稷神位也。敬恭以奉之。將營宮室,則宗廟爲先,廐庫爲次,居室爲後。《記‧曲禮》之言。

 지금은 圜丘(하늘에 제사지내는 곳)·方澤( 사각 구덩이에 물을 마고 땅에 제사지내는곳)·南北郊(남,북 교외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明堂(제왕에 정교)·社稷(토지신과 곡식신에 제사지내는 곳)의 각 신위가 아직 확정되지 아니하였고, 종묘의 제도도 아직은 예법처럼 되지 아니하였는데, 거실을 높고 화려하게 장식하느라고 병사와 백성들이 본업에 종사할 수가 없습니다.

 今圜丘、方澤、南北郊、明堂、社稷,神位未定,宗廟之制又未如禮,而崇飾居室,士民失業。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르기를 '궁중에 사는 여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과 군국에 필요한 비용이 대략 비슷하다.' 라고 하며, 백성들은 명령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모두가 원망하고 노하고 있습니다.

 外人咸云『宮人之用與軍國之費略齊』,民不堪命,皆有怨怒。

 

《서경》에 이르기를 '하늘이 총명한 것은 우리 백성이 총명한 것으로 부터이고, 하늘이 밝고 두려움이 있는 것은 우리 백성들이 밝고 위엄있는 것으로부터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이 상벌을 내리는 것은 백성들의 말을 좇고, 백성들의 마음에 순응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書》曰︰『天聰明自我民聰明,天明畏自我民明威。』《書‧皋陶謨》之言。孔安國《註》曰:言天因民而降之福,民所歸者天命之,天視聽人君之行,用民爲聰明,天明可畏,亦用民成其威。民所叛者天討之,是天明可畏之效也。言天之賞罰,隨民言,順民心也。

 

 무릇 다듬지 않은 서까래와 낮게 지은 궁실은 唐·禹·大禹가 내려준 황실의 기풍이고, 옥으로 만든 대와 구슬로 장식한 집은 하나라의 癸(桀)와 상나라의 辛(紂)이 높은 하늘을 범접한 것입니다.

 夫采椽、卑宮,唐、虞、大禹之所以垂皇風也;采椽,卽采來之木爲椽,不加斲削也。玉臺、瓊室,夏癸、商辛之所以犯昊天也。張蘊古曰:彼昏不知,瑤其臺而瓊其室。《文選‧東都賦註》曰:紂爲瓊室,以瓊瑤飾之。

 

 오늘날 궁실을 지나치게 성대하게 지었으니, 하늘에서 혜성이 환하게 비추는 것이며 이는 자부의 간절한 교훈입니다. 마땅히 효자가 기도하고 공경하는 예의를 숭상하시고, 마땅히 소홀히 하여 하늘의 노여움을 거듭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고당륭이 자주 간절하게 간언하였으나 황제는 자못 기뻐하지 아니하였다.

 今宮室過盛,天彗章灼,彗,祥歲翻,音又見上。斯乃慈父懇切之訓。當崇孝子祗聳之禮,不宜有忽,以重天怒。」隆數切諫,數,所角翻;下同。帝頗不悅。

 

 시중 노육이 나아가서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고 하여서 옛날 성스러운 제왕은 오히려 그 자신의 허물이 있는 것을 듣지 못할까 걱정하였는데, 이는 바로 신들이 고당륭에 못 미치는 것입니다."

 황제가 마침내 노여움이 풀었다. 노육은 노식의 아들이다.

 侍中盧毓進曰:「臣聞君明則臣直,古之聖王惟恐不聞其過,此乃臣等所以不及隆也。」帝乃解。毓,植之子也。

 

 8. 12월 24일 영음정후 진군이 죽었다. 진군은 앞뒤로 자주 잘하고 잘못한 것을 진술하였는데, 매번 봉사를 올리고는 번번이 그 초고를 없애니 그 당시의 사람들과 그의 자제들도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8. 十二月,癸巳,潁陰靖侯陳羣卒。《諡法》:恭己鮮言曰靖;寬樂令終曰靖。羣前後數陳得失,數,所角翻。每上封事,輒削其草,時人及其子弟莫能知也。

 

 이것을 논평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진군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두 팔짱을 끼고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아니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정시 연간에 조서를 내려서 여러 신하들이 올린 편지를 가지고《明臣奏議》라는 책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조정의 신하들은 마침내 진군이 황제에게 간한 일들을 볼 수 있었고, 모두가 탄식하였다.

 論者或譏羣居位拱默;言拱手而已,默無一言。正始中,詔撰羣臣上書以爲《名臣奏議》,撰,雛免翻。朝士乃見羣諫事,皆歎息焉。

 

 원자가 평론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하기를 '소부 양부가 어찌 충신이 아니겠는가?  인주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벌떡 일어나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다른 사람과 말할 때에도 말하지 않는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袁子論曰:或云:「少府楊阜豈非忠臣哉?見人主之非則勃然觸之,與人言未嘗不道。」道者,言之也。

 

 대답하였다. '무릇 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아끼는데, 이를 군주에게 시행하면 충성이라 말하고, 이를 부모에게 시행하면 효도라고 말한다. 지금 사람의 신하가 되어서 인주가 도를 잃은 것을 보면 힘써 그 잘못을 막으려 하고 그 잘못을 널리 알리는 것은 '곧은 신하'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아직은 말할 수 없다.

 答曰:「夫仁者愛人,施之君謂之忠,施於親謂之孝。今爲人臣,見人主失道,力詆其非而播揚其惡,可謂直士,未爲忠臣也

 

 고인이 된 사공 진군은 그렇지 아니하였으니, 이야기를 하루 종일 하면서도 한 마디도 임금의 잘못을 말하지 아니하였고 수십 번의 편지를 올렸는데,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알지를 못하였다. 군자들은 이에 진군은 어른스럽다고 생각하였다.'"

 故司空陳羣則不然,談論終日,未嘗言人主之非;書數十上,上,時掌翻。外人不知。君子謂羣於是乎長者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