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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善如登,從惡如崩 / 穀雨節末候戴勝降於桑楝花風初日(음4/8)癸卯

solpee 2020. 4. 30. 02:31

※. 穀雨節의 마지막 候 戴勝降於桑; 뻐꾸기 뽕나무에 앉는다 후 이자 멀구슬나무 꽃이 피고 멀구슬나무꽃샘바람이 5일간 불면 소한절 초후에 매화바람을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꽃샘바람도 120일 간을 불고 끝이 난다.

 

《魏紀3 明帝 太和 3 (戊申, 229)

 

 

 7. 9월에 오황은 건업(남경)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모두 옛날에 쓰던 관부 건물이 있었으므로 다시 증개축하지 아니하였고, 태자 손등과 상서와 9부의 관리를 무창(악성)에 남겨두었고, 상대장군 육손에게 태자를 보필하게 하였으며, 아울러 형주와 예장(남창)의 세 군의 업무를 관장하고 군사와 국가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7. 九月,吳主遷都建業,皆因故府,不復增改,復,扶又翻。留太子登及尚書九官於武昌,九官,九卿也。使上大將軍陸遜輔太子,幷掌荊州及豫章三郡事,董督軍國。吳於大將軍之上復置上大將軍。三郡,豫章、鄱陽、廬陵也。三郡本屬揚州,而地接荊州,又有山越,易相扇動,故使遜兼掌之。

 

 남양 사람 유이가 일찍이 《선형후례론》을 저술하는데, 같은 군에 사는 사경이 그를 육손에게 칭찬하였더니 육손은 그를 꾸짖어서 말하였다.

 "예라는 것이 형벌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인데, 유이가 자잘한 변론으로 먼저 돌아가신 성인들의 가르침을 어기고 있으며, 그대는 지금 동궁에서 태자를 시봉하고 있으니 의당 어짊과 의로움을 준수하여 은덕을 베푸는 소리를 드러내야 하고, 만약 저들의 말처럼 하려거든 같은 말을 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느니라."

 南陽劉廙嘗著《先刑後禮論》,廙,羊職翻,又羊至翻。同郡謝景稱之於遜,遜呵之曰:「禮之長於刑久矣長,知兩翻。廙以細辯而詭先聖之敎詭,異也,戾也。君今侍東宮,宜遵仁義以彰德音,若彼之談,不須講也!

 

 태자가 서릉 도독 보즐에게 편지를 보내 일러주고 가르쳐주기를 청하였더니 보즐은 이에 당시 형주 경계 지역에서의 일이나 업무와 여러 관리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들어서 그에게 보고하였고, 이어 상소하여 칭찬하고 권고하면서 말하였다.

 太子與西陵都督步騭書,吳保江南,凡道要之地皆置督,獨西陵置都督,以國之西門統攝要重也。杜佑曰:西陵,今夷陵郡。騭,之日翻。求見啓誨,騭於是條于時事業在荊州界者及諸僚吏行能以報之,行,下孟翻。因上疏獎勸曰:

 

 "신이 듣건대 임금은 작은 일을 가까이 하지 않고 모든 관청의 유사들에게 각기의 직책을 맡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순임금이 9현을 임명하니 마음 쓸 일이 없었으며, 묘당에 내려가지 않고도 천하는 잘 다스려졌습니다.

 

 그러므로 똑똑한 자가 있는 곳이면 만 리 밖에서도 적의 창을 꺾어놓을 수 있으니, 국가의 이로운 그릇이며,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그들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라건대 밝으신 태자께서 이러한 뜻을 거듭 거치시게 된다면 천하는 아주 다행이겠습니다."

 「臣聞人君不親小事,使百官有司各任其職,故舜命九賢,則無所用心,不下廟堂而天下治也。舜命九官:禹作司空,宅百揆,契作司徒,棄后稷,皋陶作士,益作朕虞,垂共工,夷作秩宗,龍作納言,夔典樂。治,直吏翻。故賢人所在,折衝萬里,《晏子春秋》曰:晉平公欲攻齊,使范昭觀焉,景公觴之。范昭曰:「願請君之棄爵。」景公曰:「諾。」已飲,晏子命徹尊更之。范昭歸,以報晉平公曰:「齊未可伐也,吾欲恥其君而晏子知之。」仲尼聞之曰:「起於尊俎之間,而折衝千里之外。」漢何武上封事曰:「虞有宮之奇,晉獻不寐;衞青在位,淮南寢謀。故賢人立朝,折衝厭難,勝於無形。」信國家之利器,崇替之所由也。願明太子重以經意,則天下幸甚!」

 

 장굉이 오나라로 돌아와 가족들과 만났는데, 도중에 병이 들어서 죽었다. 곤란함이 다가오자 자기 아들에게 쪽지를 남겨서 말하였다.(※.211년에 죽었으므로 사마광이 실수로 이곳에 실었다)

 張紘還吳迎家,道病卒。臨困,授子【章:毋十六行本「子」下有「靖」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留牋留牋,今遺表也。曰:

 

 "예로부터 나라를 갖거나 집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모두 덕스러운 정치를 닦아서 융성한 태평성대를 이루려고 하였지만 그 다스림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좋은 향기가 느껴지지 아니하게 되는데, 충신과 똑똑한 보좌관들이 없어서가 아니고 군주가 인정을 이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서 등용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自古有國有家者,咸欲脩德政以比隆盛世,至於其治,多不馨香,《書‧君陳》曰:至治馨香,感于神明。治,直吏翻;下同。非無忠臣賢佐也,由主不勝其情,弗能用耳。

 

 

 무릇 인정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을 꺼리고 쉬운 일을 좇게 되며, 같은 의견을 좋아하고 다른 의견을 싫어하니, 이것은 잘 다스리는 길과는 상반된 것입니다. 전해지는 말에는 '선한 것을 좇는 것은 마치 산에 오르는 것과 같고, 악한 것을 좇는 것은 마치 산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였으니, 선을 좇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 것입니다.

 夫情憚難而趨易,好同而惡異,易,以豉翻。好,呼到翻。惡,烏路翻。與治道相反。《傳》曰:『從善如登,從惡如崩』,言善之難也。

 

 임금은 선조의 기틀을 이어받아서 자연스런 형세에 의거하고 8병의 위엄을 조종하니, 쉽게 동의하는 즐거움을 달게 받으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빌릴 것이 없지만 그러나 충신들은 나아가기 어려운 방안을 부여잡고 귀에 거슬리는 말을 토해내니, 그것이 마음에 맞지 않는 것 역시 마땅하지 않습니까!

 人君承奕世之基,據自然之勢,操八柄之威,《周禮‧天官》:太宰以八柄詔王馭羣臣:一曰爵以馭其貴,二曰祿以馭其富,三曰予以馭其幸,四曰置以馭其行,五曰生以馭其福,六曰奪以馭其貧,七日曰廢以馭其罪,八曰誅以馭其過。操,千高翻。甘易同之歡,易,以豉翻。無假取於人,而忠臣挾難進之術,吐逆耳之言,其不合也,不亦宜乎!

 

 떨어지면 틈이 생기고 교묘한 변론이 중간에 끼어들어 작은 충성심에 현혹되고 은혜와 아낌에 홀려 똑똑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섞여서 내쫓는 것에서 순서를 잃게 되니, 그것이 유래되는 것은 정이 어지럽혔기 때문입니다.

 離則有釁,言納忠而不合於上,則上下之情離,釁隙由此而生也。巧辯緣間,間,古莧翻。眩於小忠,戀於恩愛,賢愚雜錯,黜陟失序,其所由來,情亂之也。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이것을 깨닫고 똑똑한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 마치 목마른 사람 같이 하여 간하는 말을 받아도 싫어하지 아니하고 정과 욕심을 억누르고 줄여서 의를 가지고 은혜를 잘라내니 위에서는 한 쪽으로 치우치고 잘못되게 수여하는 것이 없어지고, 아래로는 되고자 하는 바람을 없게 합니다."

 오황에 편지를 살펴 보고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

 故明君寤之,求賢如飢渴,受諫而不厭,抑情損欲,以義割恩,則上無偏謬之授,下無希冀之望矣!」吳主省書,爲之流涕。省,悉景翻。爲,于僞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