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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掎角之援也 기각의 원조를 구함/ 穀雨節中候鳴鳩拂其羽荼蘼風5日(음4/7)壬寅

solpee 2020. 4. 29. 11:48

 

《魏紀3 明帝 太和 3 (戊申, 229)

 

 

 2. 여름, 4월 13일에 오왕이 황제에 즉위하여 대사면령을 내리고 기원을 고쳐서 황룡이라고 하였다. 백관들이 다 모이자 오의 주군은 공로를 주유에게 돌렸다. 수원장군 장소가 홀을 들어서 공덕을 기리며 찬양하려고 하면서 아직 말을 하지 않았는데 오의 주군이 말하였다.

 2. 夏,四月,丙申,吳王卽皇帝位,大赦,改元黃龍。時夏口、武昌並言黃龍見,權遂以改元。百官畢會,吳主歸功周瑜。綏遠將軍張昭,舉笏欲褒贊功德,未及言,沈約《志》:魏置將軍四十號,綏遠第十四。吳主曰:

 

 "만약에 장공의 계책대로 하였다면 오늘에는 이미 밥 빌어먹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오."

 장소가 크게 부끄러워하며 땅에 엎드려서 땀을 뻘뻘흘렸다. 오의 주군이 아버지 손견을 추존하여 무열황제라고 하고, 형 손책을 장사현왕이라고 하였고, 아들 손등을 세워서 황태자로 삼고, 장사현왕의 아들 손보를 오후로 삼았다.

「如張公之計,今已乞食矣。」歸功周瑜,以能拒曹公而成三分之業也。乞食,謂張昭欲迎曹公也。事見六十五卷漢獻帝建安十三年。昭大慙,伏地流汗。吳主追尊父堅爲武烈皇帝,兄策爲長沙桓王,立子登爲皇太子,封長沙桓王子紹爲吳侯。

 .................................중략..................................

  以諸葛恪爲太子左輔,張休爲右弼,顧譚爲輔正、陳表爲翼正都尉,輔正及翼正都尉皆吳自創置之。而謝景、范愼、羊衜等皆爲賓客,衜,古道字。於是東宮號爲多士。

 

 태자가 시중 호종에게 '빈우목(賓友目:인재품평록)'을 만들게 하면서 말하였다.

 "영특한 재주가 탁월하여 보통을 다 뛰어넘은 사람은 제갈각이고, 정확하게 알면서 시기를 잘 타고 그윽한 곳과 세미한 곳까지 잘 아는 사람은 고담이다. 말을 잘하고 넓게 통달하여 말로 능히 맺어진 것을 풀어내는 사람은 사경이고, 학문을 연구하여 미세한 것을 살피는 것이 유하(子夏·子游)와 같은 품등의 사람은 범신이다."

 太子使侍中胡綜作《賓友目》目者,因其人之才品爲之品題也。曰:「英才卓越,超踰倫匹,則諸葛恪;精識時機,達幽究微,則顧譚;凝辯宏達,言能釋結,則謝景;凝,堅定也。宏,闊遠也。達,明通也。好辯者每不能堅定其所守,故以能凝辯而證據宏遠。明通者可以釋難疑之糾結也。究學甄微,游夏同科,則范愼。」究,窮竟也。甄,察別也。夏,戶雅翻。

 

 양도가 사사롭게 호종의 평론을 반박하였다.

 "원손(諸葛恪)은 재주는 있으나 성글고, 자목(顧譚)은 정확하지만 냉혹하고, 숙발(謝景)은 변론을 잘하지만 들떠있으며, 효경(范愼)은 깊지만 좁다."

 양도는 끝내 이 말 때문에 제갈각 등에게서 미움을 받게 되지만 그 뒤 이 네 사람은 모두 실패하여 양도가 한 말처럼 되었다.

 羊衜私駮綜曰:「元遜才而疏,子嘿精而狠,叔發辯而浮,孝敬深而陿。」諸葛恪,字元遜;顧譚,字子嘿;謝景,字叔發;范愼,字孝敬。狠,戶墾翻。陿,與狹同。衜卒以此言爲恪等所惡,卒,子恤翻。惡,烏路翻。其後四人皆敗,如衜所言。

 

 오황은 사신을 보내어, 두 황제를 아울러 추존하기로 의논한 것을 한에 알렸다. 한의 사람들은 그들과 교제하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고 명분으로도 순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마땅히 정의를 분명히 드러내어 그들과의 동맹우호관계를 끊자고 하였다. 승상 제갈량이 말하였다.

 吳主使以並尊二帝之議往告于漢。漢人以爲交之無益而名體弗順,宜顯明正義,絕其盟好。天無二日,土無二王,古今之正義也。好,呼到翻。丞相亮曰:

 

 "손권이 참역하려는 마음을 가진 지 오래 되었소. 국가가 그들과 틈을 내지 않으려는 까닭은 기각의 원조(사슴을 잡을 때 앞에서 뿔을 잡고, 뒤에서 다리를 잡는 것 즉 오와 협력하여 위를 도모하겠다는 뜻)를 구하려는 것 때문이오. 지금 만약 그들과 드러나게 절교를 한다면 우리를 원수로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깊을 것이고, 그들과 더불어 힘을 다투면서 그들의 영토를 합병하기까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중원 땅을 차지할 논의를 해야 할 것이오.

「權有僭逆之心久矣,國家所以略其釁情者,求掎角之援也。釁,隙也。情,欲也。《左傳》:戎子駒支對范宣子曰:「殽之師,晉禦其上,戎亢其下,秦師不復,我諸戎實然,譬如捕鹿,晉人角之,諸戎掎之,與晉踣之。」杜預《註》曰:掎其足也。今若加顯絕,讎我必深,當更移兵東戍,與之角力,須幷其土,乃議中原。

 

 또 저쪽은 똑똑하고 재주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고 장군과 재상이 화목하므로 하루아침에 평정할 수는 없소. 군사를 주둔시켜 서로 지키며 앉아서 늙기를 기다리다가는 북쪽의 도적들로 하여금 계책을 얻어내게 할 것이니, 계산해 보면 상책이 아니오. 옛날에 효문제가 흉노에게 자신을 낮추는 말을 하였고, 먼저 선황께서도 우대하면서 오와 동맹을 맺엇는데 모두 임시로 변통하는 것이며, 먼 훗날의 이익을 깊이 생각한 것이니, 필부들이 분노하는 것과는 다르오.

 彼賢才尚多,將相輯穆,未可一朝定也。頓兵相守,坐而須老,須,待也。使北賊得計,非算之上者。北賊,謂魏也。昔孝文卑辭匈奴,先帝優與吳盟,事並見前。優,饒也,今人猶謂寬假爲優饒。皆應權通變,深思遠益,非若匹夫之忿者也。言所計者大也。

 

 지금 의논하는 것을 보면 모두 손권의 이익이 세 나라가 정족의 상태에 있는 것이어서 힘을 합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그의 뜻은 이미 만족한 상태이고 강둑으로 올라오려는 생각도 없소. 하지만 이러한 의견으로 미루어 보건대 모두 옳는 것 같으나 그렇지 아니하오. 

 今議者咸以權利在鼎足,不能幷力,且志望已滿,無上岸之情,謂孫權之志在保江,不能上岸而北向也。上,時掌翻。推此,皆似是而非也。

 

 왜 그럴까? 그가 가진 지모와 힘이 위나라와 같지 못하기 때문에 장강을 한계선으로 하여 스스로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오. 손권이 장강을 넘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마치 위의 도적들이 한수를 건너지 못하는 것과 같은 양상으로 힘에서 여유가 없고, 빼앗지 않는 것이 이익이오.

 何者?其智力不侔,故限江自保;權之不能越江,猶魏賊之不能渡漢,言魏不能渡漢而圖江陵也,此漢,班《志》所謂東漢水也。非力有餘,而利不取也。

 

 만약 대군이 나아가서 토벌할 때 저들이 높은 계책을 쓴다면 마땅히 그 땅을 찢어 나누어 가지면서 훗날을 살피려 할 것이고, 낮은 계책을 쓴다 하여도 마땅히 백성을 노략질하고 경계 지역을 넓히며 안에서 무력 시위를 하지, 단정하게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오. 만약 그들이 움직이지 않고 우리들에게 화목하게 군다면 우리가 북벌한다 하여도 동쪽 지역에 대한 걱정거리를 없애는 것이며, 하남 지역의 무리들도 모두 서쪽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이익이 된다는 것은 또한 충분하오. 손권이 참역한 죄를 지은 것은 아직은 마땅히 밝히지 말아야 하오."

 若大軍致討,彼高當分裂其地以爲後規,下當略民廣境,示武於內,非端坐者也。言蜀若破魏,吳亦將分功。若就其不動而睦於我,我之北伐,無東顧憂,河南之衆不得盡西,此之爲利,亦已深矣。言蜀與吳和,則雖傾國北伐,不須東顧以備吳,而魏河南之衆,欲留備吳,不得盡西以抗蜀兵也。權僭逆之罪,未宜明也。」

 

 마침내 위위 진진을 파견하여 오에 사신으로 보내고 존호를 부르게 된 것을 축하하였다. 오황은 한의 사람들과 맹약을 하였는데, 천하를 둘로 나누어 예주(안휘 박주), 청주(산동 치박), 서주(산동 담성), 유주(북경 대흥 서남쪽)는 오에 소속시키고, 연주(산동 하택 서남부), 기주(하북 형수), 병주(산서 태원 서남쪽), 양주(감숙 영하 청해 일부)는 한에 소속시키며, 그 사주의 땅은 함곡관을 경계로 하여 나눈다고 약정하였다.

 乃遣衞尉陳震使於吳,賀稱尊號。吳主與漢人盟,約中分天下,以豫、青、徐、幽屬吳,兗、冀、幷、涼屬漢,其司州之土,以函谷關爲界。漢武帝置司隸校尉,所部三輔、三河諸郡,其界西得雍州之京兆、扶風、馮翊三郡,北得冀州之河東、河內二郡,東得豫州之河南、弘農二郡,位望隆乎牧伯,銀印青綬,在十三部刺史之上。後漢省朔方刺史以隸幷州,合司隸於十三部之數。魏以司隸所部河東、河南、河內、弘農並冀州之平陽,合五郡置司州,以三輔還屬雍州。此言司州以函谷關爲界,以漢司隸所部分之也。

 장소가 늙고 병들어서 자기의 관직과 지위와 거느리던 부대를 반환하니 다시 벼슬을 주어 보오장군으로 삼고 반열은 삼사 다음에 서게 하였으며, 누후로 고쳐서 책봉하고 식읍을 1만 호로 하였다. 장소는 조회할 때마다 말하는 기세가 웅장하였고 의로운 모습이 얼굴에 나타났으며, 일찍이 직언하여 뜻을 거역하고서는 중간에 나아가서 알현하지 아니하였다. 그 뒤 한의 사신이 와서 한의 미덕을 말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자 오황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張昭以老病上還官位及所統領,上,時掌翻。更拜輔吳將軍,更,工衡翻。班亞三司,改封婁侯,婁,古縣也,前漢屬會稽郡,東漢分屬吳郡,今蘇州崑山縣地。吳以封昭,非眞國於婁而君國子民也。食邑萬戶。昭每朝見,見,賢遍翻;下同。辭氣壯厲,義形於色,曾已直言逆旨,「已」,當作「以」,古已、以字通。中不進見。後漢使來,使,疏吏翻;不同。稱漢德美,而羣臣莫能屈,吳主歎曰:

 

 "장공을 이 자리에 앉게 하였더라면 저 사람은 굽히지 않고는 말을 못하였을 것이니 어찌 다시 스스로 자랑하였겠는가?"

 다음 날 환관을 파견하여 위로하고 안부를 물었다. 이를 계기로 장소를 보자고 청하자 장소가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피하여 사죄를 하니 오황은 무릎을 꿇고 그것을 말렸다. 장소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使張公在坐,坐,徂臥翻。彼不折則廢,安復自誇乎!」折,屈也。李奇曰:廢,失氣也。晉灼曰:廢,不收也。復,扶又翻;下同。明日,遣中使勞問,勞,力到翻。因請見昭,昭避席謝,吳主跪止之。昭坐定,仰曰:

 

 옛날에 태후(손권의 모 오씨)와 환왕(손권의 형 손책)께서 이 늙은 신하를 폐하께 부탁하지 않으시고, 폐하를 이 늙은 신하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리하여서 신하의 절개를 다하여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나 저의 뜻이 얕고 짧아서 폐하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어리석으나 마음으로는 나라를 섬기기 위한 것이엇으며, 뜻은 충성을 더하다가 목숨을 끝낼 뿐입니다. 만약 이에 마음과 뜻을 바꾸어서 영광된 자리를 훔치고 폐하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일은 신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황이 사과하는 말을 하였다.

「昔太后、桓王不以老臣屬陛下,而以陛下屬老臣,太后,謂權母吳氏也。屬,之欲翻。是以思盡臣節以報厚恩,而意慮淺短,違逆盛旨。然臣愚心所以事國,志在忠益畢命而已;若乃變心易慮以偷榮取容,此臣所不能也!」吳主辭謝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