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于禁降伏之狀/우금의 항복도./穀雨節中候鳴鳩拂其羽荼蘼風2日(음4/3)戊戌

solpee 2020. 4. 25. 15:43

《魏紀1 文帝 黃初 2 (辛, 221)

 

 

 15. 애초 황제가 여러 신하들에게 조서를 내려서 유비가 응당 관우 때문에 나와서 손권에게 보복할 것인가를 헤아려 보도록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논하고서 모두 말하였다.

 "촉은 작은 나라일 뿐이고, 명장은 오직 관우뿐이었습니다. 관우는 죽고 군대도 파괴되었으니 그 나라 안에서는 걱정하고 두려워하여서 다시 출병할 만한 연고가 없습니다."

 15. 初,帝詔羣臣令料劉備當爲關羽出報孫權否,爲,于僞翻;下同。衆議咸云:「蜀小國耳,名將唯羽;羽死軍破,國內憂懼,無緣復出。」復,扶又翻。

 

 시중 유엽만이 홀로 말하였다.

 "촉은 비록 좁고도 약하지만 유비가 도모하고자 하는 것은 위력을 가진 무력으로 스스로 강해지고자 하니, 형세는 반드시 많은 무리를 동원하여 아직도 여유가 있음을 보이려고 할 것입니다. 또 관우와 유비는 의로는 군신 관계이지만 은혜로는 부자관계와 같습니다. 관우가 죽었는데 군사를 일으켜서 적에게 보복할 수 없다면 시종의 명분에 부족합니다."

 侍中劉曄獨曰:「蜀雖陿弱,陿,卽狹字。而備之謀欲以威武自強,勢必用衆以示有餘。且關羽與備,義爲君臣,恩猶父子;羽死,不能爲興軍報敵,於終始之分不足矣。」分,扶問翻。

 8월에 손권이 사신을 파견하여 칭신하고 자신을 낮추는 말씨로 주장을 올리고 아울러 우금 등을 돌려보냈다. 조정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경하하였지만 유엽만이 홀로 말하였다.

 八月,孫權遣使稱臣,卑辭奉章,幷送于禁等還。權破南郡得于禁事,見上卷獻帝建安二十四年。朝臣皆賀,朝,直遙翻。劉曄獨曰:

 

 "손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항복하겠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내부적으로 급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손권은 앞서 관우를 습격하여 죽였으니 유비가 반드시 크게 군사를 일으켜서 그를 정벌할 것입니다.

 밖에서 강한 침구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할 것이며, 또한 우리 중국이 가서 그 빈틈을 탈까 두려워하니 그러므로 땅을 베어주면서 항복을 받아달라고 요구한 것인데, 첫 번째로는 우리 중국의 군사를 물리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우리 중국의 원조를 빌려서 그들의 무리들을 강하게 하여 적들을 의심하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權無故求降,降,戶江翻;下同。必內有急。權前襲殺關羽,劉備必大興師伐之。外有強寇,衆心不安,又恐中國往乘其釁,故委地求降,一以卻中國之兵,二假中國之援,以強其衆而疑敵人耳。劉曄之言,曲盡權之情僞。

 

 천하를 셋으로 나누었지만 우리 중국은 열에 여덟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와 촉은 각기 한 주만을 보존하고 있지만 산으로 막고, 물에 의지하여 급한 일이 생기면 구해주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이 작은 나라들의 이로움입니다. 지금은 또한 그들 스스로 서로 공격하니 이는 하늘이 그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크게 군사를 일으켜 지름길로 강을 건너서 습격해야 합니다.

 天下三分,中國十有其八。吳、蜀各保一州,約而言之,謂吳保揚,蜀保益也。阻山依水,有急相救,此小國之利也;今還自相攻,天亡之也,宜大興師,徑渡江襲之。

 

 촉에서 그들의 밖을 공격하고 우리가 그들의 아녹을 습격한다면 오가 망하는 데는 열흘이 넘지 않을 것입니다. 오가 망하면 촉은 외로워지니 만약 오를 반으로 나누어 촉에게 준다고 하여도 촉은 정말로 오래 존재할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촉이 그 변경을 차지하고 우리가 그 안쪽을 차지하는 경우에야 어떠하겠습니까?"

 蜀攻其外,我襲其內,吳之亡不出旬日【章:甲十六行本「日」作「月」;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矣。吳亡則蜀孤,若割吳之半以與蜀,蜀固不能久存,況蜀得其外,我得其內乎!」

 

 황제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이 칭신하겠다고 하면서 항복해왔는데, 이를 정벌한다면 천하 사람들 가운데 우리에게 오려고 하는 자들의 마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니 또한 오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촉의 배후를 습격하는 것만 못하오."

 帝曰:「人稱臣降而伐之,疑天下欲來者心,不若且受吳降而襲蜀之後也。」

 

 대답하였다.

 "촉한은 먼 곳에 있고 오는 가까우며, ㄸ오한 우리 중국이 그들을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군대를 돌려온다면 그들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이제 유비는 이미 화가 잔뜩 나 있어서 병사를 일으켜서 오를 공격하지만, 우리가 오를 정벌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것이고, 장차 기뻐하면서 진격하여 우리와 오의 따을 나누어 가지려고 할 것이며, 반드시 원래의 계획을 고쳐서 화가 난 마음을 누르고 오를 구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對曰:「蜀遠吳近,又聞中國伐之,便還軍,不能止也。今備已怒,興兵擊吳,聞我伐吳,知吳必亡,將喜而進與我爭割吳地,必不改計抑怒救吳也。」抑,按止也。

 

 황제는 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드디어 오의 항복을 받았다.

 우금의 수염과 머리카락은 전부 희어졌고, 겉모습도 초췌하여 황제를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는 순림부와 맹명시의 고사①를 말하면서 위로하고 그를 안원장군으로 삼고 북쪽 업으로 가서 고릉에 배알하게 하였다.

 帝不聽,遂受吳降。若魏用劉曄之言,吳其殆矣。

于禁須髮皓白,形容憔顇,顇,與悴同,秦醉翻。見帝,泣涕頓首。帝慰諭以荀林父、孟明視故事,晉大夫荀林父與楚戰,敗于邲,晉景公復用之以取赤狄。秦大夫孟明爲晉禽于殽,秦穆公復用之以霸西戎。父,音甫。拜安遠將軍,安遠將軍號,亦前此未有也。令北詣鄴謁高陵。

 

 황제는 미리 고르의 능옥에다 '관우의 전승도'와 '방덕의 분노도', '우금의 항복도'를 그려놓게 하였다. 우금이 이것을 보고 수치스럽고 한스러워서 병이 나서 죽었다.

 帝使豫於陵屋畫關羽戰克、龐德憤怒、禁降伏之狀。畫,古?字通。禁見,慙恚發病死。恚,於避翻。

 

 사마광이 말씀드렸다

 "우금은 수만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싸우다가 패하였으나 죽을 수 없었고, 산 채로 적에게 항복하였다가 이미 다시 돌아왔으니 문제가 버리는 것도 가능하였고, 그를 죽이는 것도 가능하였는데, 끝내는 능묘에 있는 집에다가 그림을 그려서 그를 욕되게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임급답지 않은 행위입니다."

 臣光曰:于禁將數萬衆,敗不能死,生降於敵,旣而復歸;文帝廢之可也,殺之可也,乃畫陵屋以辱之,斯爲不君矣!賞慶刑威曰君。

 

 ①.帝慰諭以荀林父、孟明視故事: 춘추시대 晉 대부 순림부는 초나라와 邲(하남 정주)에서 싸우다가 패하였으나(前597), 후에 晉 景公이 그를 다시 채용하여 赤狄(산서 남부)을 빼아게 하였다. 또한 秦의 대부 맹명시는 晉을 습격하다가 郩山에서 포로가 되었었는데(前627), 후에 秦의 목공이 다시 그를 채용하여 서융지역에서 패권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