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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亂,民莫有鬭心. 若先犯之,必奔. / 驚蟄節 中候倉庚鳴 棣堂風 初日 陰己卯(2)月16日壬子

solpee 2020. 3. 9. 15:14

 

《魯 桓公》 五年(기원전 707년)

 

 

  환왕이 정 장공의 경사 직분을 빼앗자 장공이 조근하지 않았다. 가을, 왕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정나라를 정벌했고 장공은 이에 맞섰다. 왕의 군대가 중군이었고, 괵공 林父가 우군을 지휘했으며 채나라와 위나라는 우군에 속했다. 周公黑肩이 좌군을 거느렸고 나라는 이에 속했다.

 정나라의 子元(공자돌)이 左拒(방형의 진형)를 만들어 채나라와 위나라를 상대하고, 우거를 만들어 진나라를 상대하게 하며 말하였다. “나라는 혼란스러워 군사들이 싸울 의지가 없습니다. 먼저 그들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도망칠 것입니다. 왕의 군사들은 이들을 돌아보느라 필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채나라와 위나라는 이런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로 먼저 도망칠 것입니다. 그후 군사들을 왕의 군대에 집중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자원의 의견을 따랐다.

 王奪鄭伯鄭伯不朝. 王以諸侯伐鄭伯禦之. 王爲中軍; 虢公林父將右軍·人屬焉; 周公黑肩將左軍人屬焉.鄭子元請爲左拒以當·; 爲右拒以當:

民莫有. 若先犯之必奔. 王卒顧之必亂. ·不枝固將先奔. 既而萃於王卒可以集事.”

從之.

 

 만백이 우거를 지휘하고, 채중족이 좌거를 맡았으며 原繁高渠彌에게 중군을 이끌고 장공을 따르게 하여 魚麗陳을 펼쳤다. 선두에 偏(전차 25대)을 앞세우고 뒤에 伍(부대, 원래는 병사 5명)를 배치하여 오로 하여금 편의 빈틈을 메꿨다.

 繻葛(하남성 장갈현 동북)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장공이 좌우거에 호령했다. “군기를 흔들고 북을 쳐라!” 채나라, 위나라 그리고 진나라 군사는 모두 도망쳤고, 왕의 병사들이 혼란에 빠지자 정나라 군대는 군사를 집중하여 중군을 공격하여 왕의 군사를 대파했다. 祝聃이 활을 쏴 왕의 어깨를 적중시켰지만 왕은 여전히 군사를 지휘할 수 있었다.

  曼伯爲右拒祭仲足爲左拒原繁·高渠彌以中軍奉公, 爲魚麗之陳. 先偏後伍伍承彌縫.

 戰于繻葛. 命二拒曰: “旝動而鼓!” ··皆奔王卒亂師合以攻之王卒大敗. 祝聃射王中肩王亦能軍.

 

 축담이 왕을 추격할 것을 요청하자, 장공이 말렸다. “군자는 타인을 능멸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물며 천자를 능멸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구제하여 사직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충분하다.”

밤에 정 장공이 채족을 보내 왕을 위로하였고 또 주위 신하들을 위문하였다.

  祝聃請從之. 公曰: “君子不欲多上人況敢陵天子乎? 苟自救也社稷無隕, 多矣.”

鄭伯使祭足勞王且問左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