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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擧의 稱帝! / 草木萌動 李花風 末日(음2/10).

solpee 2020. 3. 4. 05:49

《漢紀50 孝靈帝 中平 4 (丁卯, 187)

 

5. 애초에, 장온이 유주의 오환족의 돌격기병 3천명을 발동하여 양주를 토벌하였는데, 예전에 중산의 재상이었던 어양 사람 장순이 이들을 거느리겠다고 청하였으나, 장온이 듣지 않고 탁현 현령인 요서(풍윤) 사람 공손찬에게 거느리도록 하였다. 군대가 계중에 도착하자 오환족은 현에서 군량을 주지 아니하자 대부분 배반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5. 初,張溫發幽州烏桓突騎三千以討涼州,故中山相漁陽張純請將之,溫不聽,而使涿令遼西公孫瓚將之。涿郡,治涿縣。瓚,藏旱翻。軍到薊中,烏桓以牢稟逋縣,縣,讀曰懸。牢,價直也。稟,給也。賢曰:《前書音義》:牢,廩食也。古者名廩爲牢。多叛還本國。

 

 장순이 군사를 거느리지 못하게 된 것을 분하게 여겨 이내 같은 군 사람인 태산 태수 장거와 오환족의 대인인 구력거 등과 연맹을 맺고 계중을 위협하며 침략하여 호오환교위 공기조와 우북평 태수 유정, 요동(건창) 태수 양종 등을 살해하였고, 무리가 10여만 명에 이르자 비여에 주둔하였다.

 張純忿不得將,將,卽亮翻。乃與同郡故泰山太守張舉及烏桓大人丘力居等連盟,劫略薊中,殺護烏桓校尉公綦稠、公綦,複姓。右北平太守劉政、遼東太守陽終等,衆至十餘萬,屯肥如。肥如縣,屬遼西郡。應劭曰:肥子奔燕,燕封於此。賢曰:故城今平州。

 

 장거는 천자라 칭하고, 장순은 미천장군이며, 안정왕이라 칭하였다. 주와 군으로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장거가 한을 대신한다고 이르고 천자에게 자리에서 피하라고 알리고, 칙서를 공경에게 내려서 자기를 받들어 맞아들이라' 고 하였다.

 舉稱天子,純稱彌天將軍、安定王,移書州郡,云舉當代漢,告天子避位,敕公卿奉迎。 

 

6. 겨울, 10월에 장사의 도적인 우성이 스스로 장군이라 칭하였는데 무리가 1만여 명이었다. 조서를 내려 의랑 손견을 장사 태수로 삼아 이들을 토벌하여 쳐서 평정하니, 손견을 책봉하여 오정후(오군)로 삼았다.

6. 冬,十月,長沙賊區星自稱將軍,區,烏侯翻,姓也;又如字。《考異》曰:范《書》作「觀鵠」,今從陳壽《吳志》。衆萬餘人;詔以議郎孫堅爲長沙太守,討擊平之,封堅烏程侯。烏程縣,屬吳郡。爲堅以長沙兵討董卓張本。

 

10. 옛 태구 현장 진식이 죽자 전국에서 조문하려고 온 사람이 3만여 명이었다. 진식은 고향에 있으면서 공평한 마음으로 사물을 통솔하였는데 그 중에서 고소하고 다투는 일이 있으면 번번이 올바로 해석하여서 구부러지고 똑바른 것을 분명히 깨우쳐 주니 물러가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찬탄하기에 이르렀다.

10. 前太丘長陳寔卒,長,知兩翻。海內赴弔者三萬餘人。寔在鄕閭,平心率物,其有爭訟,輒求判正,判,分也,剖也。剖析而見正理也。曉譬曲直,退無怨者;至乃歎曰:

 

 "차라리 형벌을 더 받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진군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

 양사와 진탐은 매번 공경을 벼슬로 받을 때마다 여러 관료들이 축하하였지만 번번이 진식이 높은 자리레 오르지 못한 것을 탄식하였고, 진식보다 앞서서 직위에 오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寧爲刑罰所加,不爲陳君所短!」楊賜、陳耽,每拜公卿,羣僚畢賀,輒歎寔大位未登,愧於先之。先,悉薦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