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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제 사망 령제 즉위/ 草木萌動 李花風 2日(음2/7).

solpee 2020. 3. 1. 05:23

《韓紀48 孝桓帝 永康 (丁未, 167)

 

 8. 겨울, 10월에 선령의 강족이 삼보(대장안)를 침략하니, 장환이 사마 윤단과 동탁을 파견하여 방어하며 공격하여 이들을 대파하고, 그들의 추장을 목 베고 우두머리급 1만여 명을 포로로 잡으니 세 주(幽,幷,凉)가 깨끗이 평정되었다.

 8. 冬,十月,先零羌寇三輔,零,音憐。張奐遣司馬尹端、董卓拒擊,大破之,斬其酋豪,首虜萬餘人,酋,慈由翻。三州清定。時奐督幽、幷、涼三州。

 

 장환의 공적을 논하면 마땅히 열후로 책봉되어야 하나 환관들을 섬기지 않은 까닭에 결국 책봉되지 못하고, 오직 20만 전을 하사받고, 집안 사람 한 명에게 벼슬을 주어 낭으로 삼았다. 장환이 사양하여 받지 아니하고 홍농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였다. 옛 제도에 의하면 변방인은 내지로 옮길 수 없는데, 조서를 내려 장환이 공적을 세웠음을 인정하여 특별히 허락하였다.

 奐論功當封,以不事宦官故不果封,唯賜錢二十萬,除家一人爲郎。奐辭不受,請徙屬弘農。舊制,邊人不得內徙。詔以奐有功,特許之。奐,燉煌淵泉人。

 동탁에게는 벼슬을 주어 낭중으로 삼았다. 동탁은 농서 사람으로 성품이 거칠고 사나우며 꾀를 갖고 있어서, 강인과 호인들이 그를 두려워하였다.

 拜董卓爲郎中。卓,隴西人,性粗猛有謀,羌、胡畏之。董卓事始此。

 

 10. 12월, 28일에 황제가 덕양전전에서 붕어하였다. 29일에 황후를 높여 황태후라 하였다. 태후가 조회에 참석하였다.

 애초 두후가 이미 책립되었는데 황제가 찾는 일이 아주 드물었다. 오직 채녀인 전성 등만이 총애를 받았다. 황후는 평소 시기하고 잔인하여 황제의 재궁이 여전히 덕양전전에 있는 데도 마침내 전성을 죽였다.

 10.十二月,丁丑,帝崩于德陽前殿。年三十六。戊寅,尊皇后曰皇太后。太后臨朝。初,竇后旣立,御見甚稀,見,賢遍翻。唯采女田聖等有寵。后素忌忍,帝梓宮尚在前殿,遂殺田聖。

 

 성문교위 두무가 후사 세울 일을 의논하고자 하여 시어사인 하간 사람 유조를 불러 나라 안에 잇는 종실 중에서 똑똑한 사람을 물으니, 유조가 해독정후 유굉을 칭찬하였다. 유굉이라는 사람은 하간효왕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유숙이요, 아버지는 유장으로 대대로 해독정후에 봉해졌다.

 城門校尉竇武議立嗣,召侍御史河間劉鯈,鯈,式竹翻。問以國中宗室之賢者,鯈稱解瀆亭侯宏。賢曰:解瀆亭在今定州義豐縣東北。杜佑曰:義豐,漢之安國縣也。宏者,河間孝王之曾孫也,祖淑,父萇,世封解瀆亭侯。

 

 두무는 이에 들어가서 태후에게 아뢰고 궁중에서 정책하고 유조를 수광록대부로 임명하여 중상시 조절과 나란히 부절을 소지하여 중황문과 호분무사, 그리고 우림군 1천 명을 거느리고 유굉을 받들어 영접하도록 하니, 그때 나이가 12살이었다.

 武乃入白太后,定策禁中,以鯈守光祿大夫,與中常侍曹節並持節將中黃門、虎賁、羽林千人,將,卽亮翻。奉迎宏,時年十二。《考異》曰:范《書》云:「卽帝位,年十三」,袁《紀》,初立爲嗣詔書云,「年十有二」;建寧二年誅黨人時,云年十四。袁《紀》是也。

 

《韓紀48 孝靈帝 建寧 (戊申, 168)

 

 2. 봄, 정월, 20일에 해독정후가 하문정에 도착하자, 두무에게 부절과 후왕의 청개거를 가지고 가서 황궁으로 맞아들이게 하였다. 21일에 황제가 즉위하고 연호를 고쳤다.

 2. 春,正月,己亥,解瀆亭侯至夏門亭,使竇武持節,以王青蓋車迎入殿中;庚子,卽皇帝位,改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