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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의 질제 독살과 환제의 즉위./ 鴻雁北來 杏花風 4日(음2/4)

solpee 2020. 2. 27. 10:21

《韓紀45 孝質帝 本初 (丙戌, 146)

 

 5. 6월, 황제는 어리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웠는데, 일찍이 조호ㅔ에서 양기를 쏘아보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발호장군이군!"

 양기가 이를 듣고 몹시 싫어하였다. 윤6월 1일에 양기가 황제의 주위 사람을 시켜 자병(삶은 국수)에 독을 넣어 이를 올리게 하였다. 황제가 고통과 답답함이 심하여 급히 태위 이고를 불렀다. 이고가 입궁하여 앞으로 나아가 황제에게 병을 얻은 연유를 물으니, 황제가 연전히 말을 할 수 있어서 말하였다.

 5. 六月,帝少而聰慧,少,詩照翻。嘗因朝會,目梁冀曰:目者,眨目而注視之。朝,直遙翻。「此跋扈將軍也!」賢曰:跋扈,猶強梁也。余按《爾雅》,山卑而大,扈。跋者,不由蹊隧而行。言強梁之人行不由正路,山卑而大,且欲跋而踰之,故曰跋扈。蜀本《註》甚鄙淺,茲不復錄,詳見《辨誤》。冀聞,深惡之。惡,烏路翻;下同。閏月,甲申,冀使左右置毒於煑餠而進之;煑餅,今湯餅也。《釋名》:餅,幷也,溲麥麪使合幷也。束晢曰:《禮》,仲春之月,天子食麥;而朝事之籩,煑麥爲麪。《內則》諸饌不說䴵。䴵之作也,其來近矣。湯䴵,煮麪也。黃庭堅文:煑麥深注湯。帝苦煩盛,【章:乙十六行本「盛」作「甚」;乙十一行本同;張校同。】使促召太尉李固。固入前,問帝得患所由;帝尚能言,曰:

 

 "자병을 먹었소. 지금 뱃속이 아프고 답답하여 물을 마실 수 있다면 오히려 살 것 같소."

 이때 양기도 역시 곁에서 말하였다.

 "토할까 두려우니 물을 마셔서는 아니 됩니다."

 말이 끝나지 않았느데 이미 붕어하였다. 이고가 시신 앞에 엎드려 소리 내 통곡하고 나서 시의를 추궁하고 조사하려고 하자, 양기가 그 일이 누설될까 염려하여 이고를 몹시 증오하였다.

「食煑餠。今腹中悶,得水尚可活。」時冀亦在側,曰:「恐吐,不可飲水。」吐,土故翻,嘔也。語未絕而崩。年九歲。固伏尸號哭,言伏地而號哭,其狀如尸也。號,戶高翻。推舉侍醫;冀慮其事泄,大惡之。推舉者,劾舉其侍疾無狀,而推究其姦也。設於此時固能窮冀弒君之罪,儻不能正其誅,以身死之,豈不忠壯!卽不能然,又且俛首於其間,欲以立長之議矯而正之,卒死於兇豎之手,可謂忠有餘而才不足矣。惡,烏路翻。

 장차 후사를 세우는 것을 의논하게 되자, 이고가 사도 호장과 조계와 함께 우선 양기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였다.

 "천하는 불행하게도 몇 년 사이에  나라의 후사가 3차례나 단절되었습니다. 지금 의당 황제를 세워야 하는데, 천하의 중기이니 진실로 태후께서 마음 두고 계신 것과 장군께서 수고롭게 생각하시는 것을 알아서 그에 합당한 사람을 신중히 선택하여 그 성명을 보존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將議立嗣,固與司徒胡廣、司空趙戒先與冀書曰:「天下不幸,頻年之間,國祚三絕。賢曰:順帝崩,沖帝立,一年崩。質帝立,一年崩。凡三絕。今當立帝,天下重器,誠知太后垂心,將軍勞慮,詳擇其人,務存聖明;

 

 그러나 어리석은 우리의 마음으로 뒤돌아 보니 가만히 마음속에 유독 생각되는 바가 있습니다.

  멀리는 옛날에 황제를 폐위하고 등극하엿던 구제도를 살펴보고, 가까이는 국가가 천조하엿던 전의 일을 본다면 일찍이 공경들을 찾아 자문을 구하지 아니한 일이 없었으며, 널리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구하여 위로는 하늘의 뜻에 부응하고 아래로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에 부합하도록 하였습니다.

  然愚情眷眷,竊獨有懷。遠尋先世廢立舊儀,近見國家踐祚前事,未嘗不詢訪公卿,廣求羣議,令上應天心,下合衆望。

 

 전해오는 말에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쉬우나 천하를 위하여 합당한 사람을 얻기란 어렵다.' 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창읍왕을 세웟는데, 혼란이 날로 더해지자 곽광이 근심과 부끄러움으로 분노가 치밀어 이를 후회함이 뼈를 깎았습니다. 박육의 충성과 용기, 전연년의 분발함이 없었더라면 위대한 한나라의 종묘사직은 거의 기울어졌을 것입니다.

《傳》曰:『以天下與人易,爲天下得人難。』《孟子》之言。爲,于僞翻。昔昌邑之立,昏亂日滋;霍光憂愧發憤,悔之折骨。折,而設翻。自非博陸忠勇,延年奮發,大漢之祀,幾將傾矣。事見二十四卷昭帝元平元年。幾,居希翻。

 

 지극히 근심스럽고도 지극히 중요하니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많고 많은 일 중에 오직 이 일만이 큰 것이니 국가의 흥망성쇠가 이 한 번의 일에 달려 있습니다."

 至憂至重,可不熟慮!悠悠萬事,唯此爲大;就冀而言,萬事皆可付之悠悠,至於立嗣,關天下國家之大。國之興衰,在此一舉。」

 

 양기가 편지를 받자 마침내 삼공과 중이천석의 관리, 열후를 솢딥하여 후사 세운즌 일을 대대적으로 논의하였다. 이고, 호광, 조계와 대홍려 두교 등 모두는 청하왕 유산이 밝은 덕을 행하여 소문이 자자하고, 또 가장 가까운 존친이라고 생각하며 마땅히 그를 세워 후사로 삼아야 한다고 하니, 조정에서는 그에게 마음을 두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冀得書,乃召三公、中二千石、列侯,大議所立。固、廣、戒及大鴻臚杜喬皆以爲清河王蒜明德著聞,又屬最尊親,蒜於質帝爲兄,尊也。同出樂安王寵,親也。臚,陵如翻。宜立爲嗣,朝廷【章:乙十六行本「廷」作「臣」;乙十一行本同;孔木同;張校同。】莫不歸心。

 

 그러나 중상시 조등이 일찍이 유산을 알현하였을 떄 유산이 그를 예로 대하지 아니하였는데, 환관들은 이로 말미암아서 그를 싫어하였다.

 애초 평원왕 유익이 이미 강등되어 하간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아버지 여오현을 나누어서 그를 열후로 삼아줄 것을 청하였고, 순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유익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유지가 뒤를 이었다. 양태후가 여동생을 유지의 처로 삼고자 하여 불러서 하문정으로 오게 하였다. 때마침 황제가 붕어하자 양기가 유지를 황태자로 세우고자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논의한 것이 이미 다르고,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여 분한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아직은 억지로 중론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았다. 조등 등이 이 소식을 듣고 밤중에 양기를 설득하였다.

 而中常侍曹騰嘗謁蒜,蒜不爲禮,宦者由此惡之。惡,烏露翻。初,平原王翼旣貶歸河間,事見五十卷安帝建光元年。其父請分蠡吾縣以侯之;蠡吾縣,前漢屬涿郡,時屬河間國。賢曰:蠡吾故城在今瀛州博野縣西。蠡,音禮。翼父,河間孝王開也。順帝許之。翼卒,子志嗣;梁太后欲以女弟妻志,妻,七細翻。徵到夏門亭。會帝崩,梁冀欲立志。衆論旣異,憤憤不得意,而未有以相奪。賢曰:未有別理而易奪之。曹騰等聞之,夜往說冀曰:

 

 '장군이 여러 세대 동안 초방의 근친으로 만기를 잡고 있었는데, 빈객들이 제멋대로 날뛰어서 많은 허물과 과실이 있었습니다. 청하왕은 엄숙하고 분명하여, 만약 결과적으로 그를 세운다면 장군이 화를 입게 되는 것이 멀지 않습니다. 여오후를 세워 부귀를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만 못합니다."

 양기가 그러할 것이라고 여겼다. 다음날 다시 공경을 모아 회합을 가졌는데, 양기의 기세가 흉악하고 말씨가 격절하자 호광과 조계 이하의 관료들은 두려움에 떨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모두 말하였다.

 "오직 대장군께서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將軍累世有椒房之親,說,輸芮翻;下同。累世淑房,謂恭懷后及太后也。秉攝萬機,賓客縱橫,橫,戶孟翻。多有過差。清河王嚴明,若果立,則將軍受禍不久矣!不如立蠡吾侯,富貴可長保也。」冀然其言,明日,重會公卿,重,直用翻,再也。冀意氣凶凶,凶凶,言意氣惡暴也。言辭激切,自胡廣、趙戒以下莫不懾憚,懾,之舌翻。皆曰:「惟大將軍令!」

 

 이고와 두교만이 오직 원래 건의한 내용을 굳게 지켰다. 양기가 성난 목소리로 말하였다.

 "회의를 끝내시오."

 이고는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사람이 세워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시 편지로 양기에게 권고하자, 양기가 더욱 분노하였다. 4일에 양기가 태후를 설득하여 먼저 이고의 관직을 면직시켰다. 5일에 사도 호광을 태위로 삼고,  사공 조계를 사도로 삼아서 대장군 양기와 더불어 상서의 일에 참여하도록 하였고, 태복 원탕을 사공으로 삼았는데, 원탕은 원안의 손자이다.

 獨李固、杜喬堅守本議。冀厲聲曰:「罷會!」固猶望衆心可立,以衆心屬於清河王,猶望可立也。復以書勸冀,復,扶又翻。冀愈激怒。丁亥,冀說太后,先策免固。爲殺李固、杜喬張本。戊子,以司徒胡廣爲太尉;司空趙戒爲司徒,與大將軍冀參錄尚書事;太僕袁湯爲司空。湯,安之孫也。

 

 7일에 대장군 양기에게 부절을 가지고 왕이 사용하는 청개거로 여오후 유지를 영접하여 남궁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날로 황제에 즉위하였으니, 나이 15이었다. 양태후는 여전히 조정에 임석하여 정치를 하였다.

 庚寅,使大將軍冀持節以王青蓋車迎蠡吾侯志入南宮;其日,卽皇帝位,時年十五。太后猶臨朝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