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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제의 사망, 질제의 즉위./鴻雁北來 杏花風 4日(음2/4)

solpee 2020. 2. 27. 02:59

 

《韓紀44 孝沖帝 永嘉 (乙酉, 145)

 

 1. 봄, 정월 6일에 황제가 옥당의 전전에서 붕어하였다. 양태후는 양주와 서주에서 도적들이 바야흐로 왕성하자 징소한 여러 왕과 제후가 도착하기를 기다려서 국상을 발표하고자 하였다. 태위 이고가 말하였다.

 1. 春,正月,戊戌,帝崩于玉堂前殿。年三歲。梁太后以揚、徐盜賊方盛,欲須所徵諸王侯到乃發喪。太尉李固曰:

 

 "황제가 비록 어리고 연소하였으나 오히려 천하의 군부이셨습니다. 오늘 붕어하셔서 사람과 신이 감동하였는데 어찌 자식 된 사람이 도리어 다 같이 감추고 숨길 수 있겠습니까? 옛날 진시황제가 사망한 후 사구에서 음모를 꾸민 것과 최근의 북향후 사건에서 모두 비밀에 붙여 국상이 난 것을 발표하지 아니하였는데, 이는 천하에서 가장 크게 금기로 하는 일 가운데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태후가 이 말을 좇아서 즉시 저녁에 황제의 상사를 발표하었다.

「帝雖幼少,猶天下之父。今日崩亡,人神感動,豈有人子反共掩匿乎!人子,當作臣子。昔秦皇沙丘之謀及近日北鄕之事,皆祕不發喪,沙丘事見七卷秦始皇三十七年。北鄕事見上卷安帝延光四年。此天下大忌,不可之甚者也!」太后從之,卽暮發喪。

 

 청하왕 유산과 발해효왕 유홍의 아들 유찬을 징소하니 모두 경사에 도착하였다. 유산의 부친은 청하공왕 유연평이고, 유연평과 유홍은 모두 낙안이왕 유총의 아들이여, 천승정왕 유항의 손자이다. 청하왕은 사람됨이 엄격하고 무거웠고 행동거지가 법도에 맞아서 공경들이 모두 마음을 그에게 돌렸다. 이고가 대장군 양기에게 말하였다.

 徵清河王蒜及渤海孝王鴻之子纘皆至京師。蒜父曰清河恭王延平;延平及鴻皆樂安夷王寵之子,千乘貞王伉之孫也。千乘貞王伉,章帝建初四年封;薨,子寵嗣。和帝永元七年,改千乘國曰樂安。薨,子鴻嗣,是生質帝。帝旣立,梁太后以樂安國土卑溼,租委鮮薄,改封鴻渤海王。清河王慶子虎威嗣國,三年而薨,無子;鄧太后立延平爲清河王。《諡法》:安心好靜曰夷。蒜,蘇貫翻。伉,音抗。清河王爲人嚴重,動止有法度,公卿皆歸心焉。李固謂大將軍冀曰:

 

 "지금 황제를 세움에 있어 마땅히 나이가 많고, 고명함을 가져서 스스로 정사를 돌볼 수 있는 분을 선택해야 합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 큰 계책을 상세하게 조사해보십시오. 주발과 곽광이 문제와 선제를 세운 바를 살피시고, 등씨와 염씨가 유약한 자를 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 것을 경계하십시오."

「今當立帝,宜擇長年,高明有德,任親政事者,長,知兩翻。任,如林翻,堪也。願將軍審詳大計,察周、霍之立文、宣,戒鄧、閻之利幼弱!」周勃事見十三卷高后八年。霍光事見二十四卷昭帝元平元年。鄧氏事見四十八卷和帝元興元年、四十九卷殤帝延平元年。閻氏事見上卷安帝延光四年。

 

 양기가 이 말을 따르지 않고 태후와 더불어 궁중에서 계책을 결정하였다. 24일에 양기는 부절을 지니고 왕이 사용하는 덮개가 푸른 수레를 가지고 나가 유찬을 영접하여 남궁으로 들어왔다. 25일에 유찬을 건평후로 봉하였다. 그날로 황제에 즉위하였는데 나이가 8살이었다. 유산은 일이 끝나자 그의 봉국으로 돌아갔다.

 冀不從,與太后定策禁中。丙辰,冀持節以王青蓋車迎纘入南宮。丁巳,封爲建平侯。其日,卽皇帝位,年八歲。蒜罷歸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