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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君者,舟也;民者,水也/임금은 배, 백성은 물./ 鴻雁北來 杏花風 4日(음2/4)

solpee 2020. 2. 27. 02:52

《韓紀44 孝順帝 建康 (甲申, 144)

 

 5. 8월,6일에 순제가 옥당전 앞 전각에서 사망하였다. 태자가 즉위하였는데 두살이었다. 황후를 높혀 황태후라 하였고, 태후가 섭정하였다. 13일에 태위 조준을 태부로 삼고, 대사농 이고를 태위로 삼아 상서에서 할 일을 처리하는데 참여하도록 하였다.

 5. 庚午,帝崩于玉堂前殿。年三十。太子卽皇帝位,年二歲。尊皇后曰皇太后。太后臨朝。丁丑,以太尉趙峻爲太傅,大司農李固爲太尉,參錄尚書事。

 

 6. 9월, 17일에 순제를 헌릉에 장사지냈는데, 묘호를 경종이라 하였다.

 6. 九月,丙午,葬孝順皇帝于憲陵,賢曰:憲陵在雒陽西十五里。廟曰敬宗。

 

 8. 16일에 조서를 내려서 현량하고 방정한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여 이들에게 대책을 물었다. 황보규가 대답하였다.

 8. 庚戌,詔舉賢良方正之士,策問之。皇甫規對曰:

 

 "엎드려 생각하건대, 선제께서 처음 제왕의 정사에 힘을 쓰시니 사방에 기강이 세워져 거의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 이후에 간사하고 거짓된 자들을 만나서 권위가 측근들에게 나누어지니, 뇌물을 받고 작위를 팔고 빈객이 끊임없이 왕래하니, 천하가 시끄럽고, 어지러움을 따라 돌아가고, 관부와 백성들이 함께 고갈되고 위아래가 텅 비었습니다.

「伏惟孝順皇帝初勤王政,紀綱四方,幾以獲安;幾,讀曰冀。後遭姦僞,威分近習,賢曰:近習,謂佞幸、親近小人也。受賂賣爵,賓客交錯,天下擾擾,從亂如歸,官民並竭,上下窮虛。

 

 폐하께서 몸소 건곤을 겸하시고, 총명하시고 순박함이 무성하시어, 섭정을 하던 초기에 충성스럽고 곧은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하시니, 그 밖의 기강은 대부분을 개정하여 멀고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일치하여 태평시대를 멀리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이가 끊이지 않고 도적이 때지어 횡행하니, 아마도 간신이 중요한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데서 온 것입니다.

 陛下體兼乾坤,以坤母臨朝,以君天下,行乾之德,故曰體兼乾坤。聰哲純茂,攝政之初,拔用忠貞,其餘維綱,多所改正,遠近翕然望見太平,而災異不息,寇賊縱橫,縱,子容翻。殆以姦臣權重之所致也。

 

 그 중에서 상시는 더욱 그 죄상을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므로 마땅히 서둘러 쫓아 내보내시고, 흉악한 무리를 헤쳐 내어 쓸어버리시며, 뇌물로 받은 재물은 몰수하시어 백성들의 고통과 원한을 막아서 하늘의 경고에 응답을 하십시오.

 其常侍尤無狀者,賢曰:無狀,謂無善狀。宜亟黜遣,披掃凶黨,披,開也;掃,除也。收入財賄,以塞痛怨,塞,悉則翻。以答天誡。

 

 대장군 양기와 하남윤 양불의는 또한 마땅히 겸양과 절도를 더욱 수양하여야 하오니, 유학에서 도움을 받게 하고, 급하지 않은 일인 유흥이나 오락은 줄여 없애며, 무익한 저택의 치장은 삭감해야 합니다.

 大將軍冀、河南尹不疑,亦宜增脩謙節,輔以儒術,省去遊娛不急之務,去,羌呂翻。割減廬第無益之飾。

 

 무릇 군왕이 배라면 백성은 물이며 여러 신하들은 배에 타고 있는 자이며, 장군의 형제들은 노를 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의지를 평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서 힘을 다해 백성들을 건너게 한다면 이른바 복이라 할 것입니다. 만약에 나태하고 해이하다면 장차 파도에 빠지게 될 것이니,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夫君者,舟也;民者,水也;《家語》:孔子曰︰君者,舟也;民者,水也。水可載舟,亦以覆舟。君以此思危,則危可知也。羣臣,乘舟者也;將軍兄弟,操檝者也。操,千高翻。檝,與楫同。若能平志畢力,以度元元,所謂福也;如其怠弛,將淪波濤,可不愼乎!

 

 무릇 사람의 품덕이 작록에 걸맞지 않는다면 마치 담 아래 구멍을 뚫으면서 담 높이를 한층 더 높이고자 하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힘을 헤아리고 공력을 심사하는 것이 안전하고 견고한 길이겠습니까?

 夫德不稱祿,猶鑿墉之趾以益其高,豈量力審功,安固之道哉!稱,尺證翻。量,音良。

 

 무릇 여러 숙활(태생적으로 교화한 사람)과 주도와 희객은 모두 마땅히 깎아내리고 배척하여서 법도에 어긋난 자는 징치해야 하며, 양기 등에게 현명한 인재를 선발해서 얻는 복록과 인재를 잃어서 오는 피해를 심사숙고하도록 하십시오."

 凡諸宿猾、酒徒、戲客,皆宜貶斥,以懲不軌;令冀等深思得賢之福,失人之累。」累,良瑞翻。

 

 양기가 이를 분해하면서 황보규의 등급을 낮춰 낭중에 임명하니 병을 핑계로 면직되어 귀향하였는데, 주와 군에서는 양기의 뜻을 받들어 거의 죽음에 몰아넣었던 것이 두 세 차례였고 마침내 집에 숨어 엎드려 있은 것이 십여 년이나 되었다.

 梁冀忿之,以規爲下第,拜郎中;託疾,免歸,州郡承冀旨,幾陷死者再三,遂沈廢於家,積十餘年。幾,居希翻。沈,持林翻。《考異》曰:《規傳》云:「沖、質之間,規對策免歸,積十四年。」檢《帝紀》,此後別無舉賢良事,或者此時規舉賢良,其至對策時已在質帝世也,故云沖、質之間。自明年數至梁冀誅,亦整十四年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