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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帝의 사망.雨水節 仲候 鴻雁北來 杏花風 初日(음2/1朔日00;32)

solpee 2020. 2. 23. 20:43

《韓紀43 孝安帝 延光 4 (乙丑, 125)

 

 4. 3월, 4일에 황제가 완에 이르렀는데, 몸이 좋지 않았다. 8일에 황제가 완에서 출발하여 10일에 섭에 이르렀는데 승여에서 사망하였다. 나이는 32세였다.

 황후와 염현 형제, 강경 번풍 등이 모의하여 말하였다.

 "지금 안가(황제의 영구)가 길에 있으나 제음왕이 안에 있어 공경과 만나 그를 세우면 또한 큰 해가 될 것이다."

 4. 三月, 庚申,帝至宛,不豫。宛,於元翻。《書‧金縢》:王有疾,弗豫。孔安國《註》曰:不悅豫。乙丑,帝發自宛;丁卯,至葉,崩于乘輿。葉,式涉翻。乘,繩證翻。年三十二。

皇后與閻顯兄弟、江京、樊豐等謀曰:「今晏駕道次,賢曰:晏,晚也。臣下不敢斥言帝崩,猶言晚駕而出。道次,猶言路次也。濟陰王在內,邂逅公卿立之,還爲大害。」邂,下廨翻。逅,戶茂翻。

 

 이에 거짓으로 '황제의 병이 심하다.' 고 말하고 영구를 와거로 옮기고 이르는 곳에서는 음식을 올렸고 예전과 같이 문안인사를 드렸다.

 말을 4일 간 달려서 13일에 황궁으로 돌아왔다. 14일에 사도 유희를 교외의 사당과 사직에 가게 하여 하늘에 생명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그날 저녁에 발상하였다.

 乃僞云「帝疾甚」,徙御臥車,所在上食、問起居如故。上,時掌翻。驅馳行四日,庚午,還宮。自葉至雒陽六百餘里。辛未,遣司徒劉熹詣郊廟、社稷,告天請命;武王有疾,周公爲三壇同墠,因太王、王季、文王以請命于天;後世踵而行之。其夕,【章:甲十六行本「夕」下有「乃」字;孔本同。】發喪。

 

 황후를 높혀서 황태후라 하였다. 태후가 조정에 임석하였다. 염현을 거기장군 겸 의동삼사로 삼았다. 태후는 오래도록 국정을 전횡하고자 하여 어린아이를 세울 욕심을 냈고, 염현 등과 금궁 안에서 대책을 정하고, 제북혜왕의 아들인 북향후 유의를 맞이하여 후사로 삼았다.

 尊皇后曰皇太后。太后臨朝。以顯爲車騎將軍、儀同三司。太后欲久專國政,貪立幼年,與顯等定策禁中,迎濟北惠王子北鄕侯懿爲嗣。賢曰:惠王,名壽,章帝子也。濟,子禮翻。《考異》曰:《東觀記》、《續漢書》作「北鄕侯犢」,今從袁《紀》、范《書》。

 

 제음왕은 폐위되어 쫓겨났으므로 전각에 올라 몸소 제궁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슬퍼하여 통곡하며 음식을 먹지 않으니 안팎의 여러 관료 가운데 그를 애달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濟陰王以廢黜,不得上殿親臨梓宮,臨,力鴆翻。悲號不食;號,戶刀翻。內外羣僚莫不哀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