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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張聲勢 / 雨水節 初候 獺祭魚 菜畵風 末日(음1/30晦日)

solpee 2020. 2. 22. 21:00

 

《韓紀41 孝安帝 元 2 (乙卯, 115)

 

 10. 겨울, 시월, 마현에게 방삼을 대신하여 호강교위의 업무를 관장토록 하고, 임상을 다시 중랑장으로 삼아서 반웅을 대신하여 삼보에 주둔하게 하였다.

 회현 현령 우후가 임상에게 유세하였다.

 10. 冬,十月,以馬賢代參領護羌校尉,復以任尚爲中郎將,代班雄屯三輔。《考異》曰:《帝紀》,「冬,十月,遣任尚屯三輔。」按《西羌傳》,司馬鈞抵罪後,尚乃代雄屯三輔耳。復,扶又翻。

懷令虞詡說尚曰:說,輸芮翻。

 

 "병법에 의하면 '약한 것이 강한 것을 공격하지 않고, 뛰는 것이 나는 것을 쫓을 수 없는 것은 자연의 형세라.' 고 하였습니다. 지금 오랑캐는 모두 말을 탄 기병으로 하루에 수백 리를 갈 수 잇으니, 올 때는 바람이나 비 같고 갈 때는 활시위 끊어지듯 하니, 걸어서는 그들을 추격한다 해도 형세로 보아 미칠 수 없습니다.

「兵法:弱不攻強,走不逐飛,自然之勢也。今虜皆馬騎,日行數百里,來如風雨,去如絕弦,以步追之,勢不相及,

 

 그러므로 비록 군사 20여만 명을 주둔시킨다고 해도 쓸데없이 세월만 허비하고 공은 세울 수 없습니다.

 사군을 위하여 계책을 세운다면 여러 군의 병사를 해산하고 각 병사에게 영을 내려 수천 냥을 내서 20명이 공동으로 말 1필을 사도록 하여 1만 기의 무리를 이루어 수천 명의 오랑캐 뒤를 쫓아가서 습격하고 끊어버려 그들이 갈 길은 스스로 궁색하게 하는 것만 못하니 백성을 편리하게 하고 일을 유리하게 하며 큰 공을 세울 것입니다."

 所以雖屯兵二十餘萬,曠日而無功也。爲使君計,莫如罷諸郡兵,各令出錢數千,二十人共市一馬,以萬騎之衆,逐數千之虜,追尾掩截,賢曰:尾,猶尋也。余謂尾者,隨其後而擊之也。掩,襲也。截,邀也。其道自窮。言虜之路自窮,不能捷出而寇掠也。便民利事,大功立矣!」

 

 임상이 곧바로 그의 말을 조정에 올리자 그 계획을 채용하였으며, 경무장을 한 기병을 파견하여 정해성에서 두계공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태후는 우후가 장수의 책략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무도 태수에 임명하였다. 강족 무리 수천 명이 우후를 진창의 효곡에서 차단하자, 우후는 곧바로 군대를 정지시켜 나아가지 아니하고 선언하였다.

 尚卽上言,用其計,遣輕騎擊杜季貢於丁奚城,破之。

太后聞虞詡有將帥之略,以爲武都太守。《考異》曰:《詡傳》曰:「羌寇武都,太后以詡有將帥之略,遷武都太守。」又曰:「賊敗散,南入益州。」《本紀》,「元初元年,羌寇武都漢中。」據此,似詡以元初元年爲武都太守也。然按《西羌傳》,「龐參抵罪後,任尚屯三輔,時詡猶爲懷令,說尚用騎兵。」袁《紀》亦云懷令虞詡說尚,如范《書》所言。又云:「上問『何從發此計?』尚表之,受於懷令虞詡,由是知名,遷武都太守。」以此驗之,當在龐參抵罪後也。羌衆數千遮詡於陳倉崤谷,此崤谷當在陳倉縣界,卽今之大散關,非弘農澠池縣之崤山也。詡卽停軍不進,而宣言

 

 "편지를 올려 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군대가 도착할 때를 기다렸다가 출발할 것이다."

 강족이 그 소식을 듣고 군대를 나누어서 그 주변의 현들을 노략질하였다. 우후는 그들의 군사가 분산된 것을 이용하여 주야로 전진하여 1백여 리를 나아가서 관리와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아궁이를 각각 2개씩 만들도록 하였고 매일 그 숫자를 두 배로 늘리자 강족은 감히 다가오지 못하였다.

「上書請兵,須到當發。」羌聞之,乃分鈔傍縣。鈔,楚交翻。詡因其兵散,日夜進道,兼行百餘里,令吏士各作兩竈,日增倍之,羌不敢逼。

 

 어떤 사람이 우후에게 물었다.

 "손빈은 아궁이를 줄였는데 그대는 이를 늘렸습니다. 병법에 보면 하루에 3십 리 정도밖에 나아가지 못하게 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를 경계하기 때문인데, 오늘 또 2백 리를 전진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或問曰:「孫臏減竈而君增之;減竈事見二卷周顯王二十八年。臏,頻忍翻。兵法日行不過三十里,以戒不虞,《前書》吉行五十里,師行三十里。而今日且二百里:何也?」

 

 우후가 대답하였다.

 "오랑캐의 무리는 많고 우리 병사들은 적어서 천천히 전진하면 쉽게 적에게 따라잡히고, 빨리 전진하면 그들이 예측하지 못하게 된다. 오랑캐는 우리의 아궁이가 나날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군의 군사가 와서 맞이하였다고 생각할 것이고, 무리가 많으면서 빨리 나아가니 적은 반드시 우리를 추격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손빈이 약하다는 것을 보였고, 나는 지금 강하다는 것을 내보이는 것은 형세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詡曰:「虜衆多,吾兵少,徐行則易爲所及,易,以豉翻。速進則彼所不測。虜見吾竈日增,必謂郡兵來迎,衆多行速,必憚追我。孫臏見弱,見,賢遍翻。吾今示強,勢有不同故也。」

 

 군대가 막 군에 도착하였지만 병사는 3천 명을 넘지 않았고 강족의 무리는 1만 명을 넘어서 적정을 수십 일이나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우후가 마침내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강노는 발사하지 말고 은밀하게 소노를 발사하도록 하였다, 강족은 화살의 힘이 약하여 자기들에게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군사를 모아 급히 공격하였다.

 旣到郡,兵不滿三千,而羌衆萬餘,攻圍赤亭數十日。賢曰:赤亭故城,在今渭州襄武縣東南,有赤亭水。余按唐渭州,漢隴西郡地;漢武都,唐階、成州地。此自是武都之赤亭,非渭州之赤亭也。又按《郡國志》,武都下辨縣有赤亭,卽此。詡乃令軍中,强弩勿發,而潛發小弩;羌以爲矢力弱,不能至,幷兵急攻。

 

 우후는 이에 20기의 강노를 일제히 1명을 목표로 발사하도록 하였는데 적중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강족은 크게 놀라 후퇴하였다. 우후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성을 나와 분연히 공격하여 부상을 입히거나 죽인 자가 많았다.

 詡於是使二十强弩共射一人,發無不中,射,而亦翻。中,竹仲翻。羌大震,退。詡因出城奮擊,多所傷殺。

 

 다음날 그의 군대를 모두 늘어놓고, 동곽문을 통해서 나갔다가 북곽문을 통해서 들어오도록 하면서, 의복을 바꾸어 입고 수차례 돌아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강족은 그 군대의 숫자를 알 수 없게 되어 다시 더욱 두려워하며 동요하였다. 우후는 당연히 적이 물러날 것을 예상하고 몰래 5백여 명을 파견하여 얕은 물에 매복시켜 그들이 달아나는 길을 엿보게 하였다.

 明日,悉陳其兵衆,令從東郭門出,北郭門入,貿易衣服,回轉數周;羌不知其數,更相恐動。貿,音茂。更,工衡翻。詡計賊當退,乃潛遣五百餘人於淺水設伏,候其走路;詡知賊退,遇水必踏淺而渡,因於其處設伏以待之。

 

 오랑캐는 과연 몹시 허둥대며 달아나고 있었는데,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을 습격하여 대파하니, 죽이거나 포로로 잡은 자들이 대단히 많았고, 적들은 이로 말미암아서 패배하여 흩어졌다.

 우후는 이에 지세를 점쳐보고 군영의 성벽을 180곳에 쌓고, 흩어져 도망하는 자들을 불러 돌아오게 하여 가난한 자들을 거듭 구휼하고, 수운(악양에서 성현까지 10km)을 개통하였다.

 虜果大奔,因掩擊,大破之,斬獲甚衆,賊由是敗散。詡乃占相地勢,相,息亮翻。築營壁百八十所,招還流亡,假賑貧民,開通水運。詡按行川谷,自沮至下辨數十里,燒石翦木,開漕船道。

 

 우후가 처음 군에 도착했을 때 곡물은 1석에 1천 전, 소금은 1석에 8천 전이나 되었고, 남아 있는 호수는 1만 3천 호였다. 업무를 본 후 3년 만에 쌀은 1석에 80전, 소금은 1석에 400전이 되었고 민호는 4만여 호로 증가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 흡족하게 되니 마침내 온 군이 안정되었다.

 詡始到郡,穀石千,鹽石八千,見戶萬三千;見存之戶也。見,賢遍翻。視事三年,米石八十,鹽石四百,民增至四萬餘戶,人足家給,一郡遂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