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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林七賢. 立春節 末候 魚上冰 望春花風 初日(음 정월21일).

solpee 2020. 2. 13. 11:52

 

《魏紀10 元帝 景元 3 (壬午, 262)

 

 

 4. 초군 사람 혜강은 문장과 말씨가 장려하였고, 노자·장자에 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임협(무술하는 의협집단)을 숭상하고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진류 사람 완적·완적의 조카 완함·하내 사람 산도·하남 사람 향수·낭아 사람 왕융·패국 사람 유령과 더불어 특별히 벗하며 잘 지냈는데, 죽림칠현이라 불렸다. 모두가 허무를 숭상하였고, 예법을 경멸하였으며, 멋대로 술을 마시고 취하였으며, 세상일에 대하여서는 관심을 두지 아니하였다.

 4. 譙郡嵇康,《晉書》曰:康之先姓奚,會稽上虞人,以避怨徙譙郡銍縣,銍有嵇山,家於其側,因以命氏。文辭壯麗,好言老、莊而尚奇任俠,俠,戶頰翻。與陳留阮籍、籍兄子咸、《姓譜》:殷有阮國,在岐、渭之間。《周詩》有侵阮徂共之辭,子孫以國爲姓。後漢有己吾令阮敦。河內山濤、河南向秀、向,式亮翻。琅邪王戎、沛國劉伶特相友善,號竹林七賢。皆崇尚虛無,輕蔑禮法,縱酒昏酣,遺落世事。

 

 완적은 보병교위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완적이 바야흐로 어떤 사람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대국하는 자가 그만 두자고 요구하니 완적이 만류하면서 승패를 결정짓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고 나서 술 두 말을 마시고 소리를 내어 한 번 곡을 하엿는데, 피를 몇 되나 쏟았으며, 비쩍 말라서 뼈를 세워놓은 것 같았다.

 阮籍爲步兵校尉,其母卒,籍方與人圍碁,對者求止,籍留與決賭。與決勝負也。旣而飲酒二斗,舉聲一號,吐血數升,毀瘠骨立。骨立者,言其瘠甚,身肉俱消,唯骨立也。號,戶刀翻。吐,土故翻。

 

 거상 기간 중에도 술을 마시는 것이 평일과 다르지 아니하였다. 사예교위 하증이 그를 싫어하여 사마소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완적을 질타하였다.

 "경은 감정대로 행동하여 예법을 배반하고 풍속을 파괴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충성스럽고 현명한 사람이 정권을 잡고 정치를 하면서 명분과 실제를 종합해야 하지만 경과 같은 사람들이라면 조정해서는 안 될 것이오."

 居喪,飲酒無異平日。司隸校尉何曾惡之,惡,烏路翻。面質籍於司馬昭座質,正也,面以正義責之也。曰:「卿,縱情、背禮、敗俗之人,今忠賢執政,綜核名實,若卿之曹,不可長也!」背,蒲妹翻。敗,補邁翻。長,知兩翻。

 

 이 기회를 통하여 사마소에게 말하였다.

 "공께서는 바야흐로 효도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시는데, 듣건대 완적은 중애(복상) 기간 중에도 공이 있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하니, 어찌 다른 사람에게 교훈이 되겠습니까? 마땅히 그를 물리쳐서 사예(사이)들이 사는 지역으로 보내시어 화하 지역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因謂昭曰:「公方以孝治天下,治,直之翻。而聽阮籍以重哀飲酒食肉於公座,何以訓人!宜擯之四裔,無令汙染華夏。」汙,烏故翻。

 

 사마소는 완적의 재주(사마소가 구석을 사양할 때 勸進箋을 지었다)를 아껴서 늘 그를 옹호하였다. 하증은 하기의 아들이다.

 昭愛籍才,常擁護之。昭之讓九錫也,籍爲公卿爲勸進牋,辭甚清壯,故昭愛其才。曾,夔之子也。何夔見六十三卷漢獻帝建安五年。

 완함은 평소 고모의 비녀에게 다가가자 고모가 그 비녀를 데리고 가버리니 완함이 바야흐로 손님과 마주 앉아있다가 급히 손님이 타고 온 말을 빌려 타고 쫓아가 비녀를 데리고 둘이서 말을 타고 돌아왔다.

 阮咸素幸姑婢;姑將婢去,咸方對客,遽借客馬追之,累騎而還。累,重也,兩人共馬,謂之累騎。還,音旋,又如字。

 유령은 술을 좋아하고, 항상 녹거를 탔는데, 술 한 항아리를 가지고 사람을 시켜서 삽을 잡고 쫓게 하며 말하였다.

 "죽으면 바로 나를 묻어버려라."

 당시 사대부들은 모두 그가 현명하다고 생각하였으며 다투어 흠모하고 모방하였는데 이것을 '방달'이라 하였다.

 劉伶嗜酒,常乘鹿車,賢曰:鹿車,言其小僅可容鹿也。攜一壺酒,使人荷鍤隨之,荷,下可翻。鍤,側洽翻,鍬也。曰:「死便埋我。」當時士大夫皆以爲賢,爭慕效之,謂之放達。

 

 종회가 바야흐로 사마소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혜강의 명성을 듣고 그에게 가니 혜강이 기거하고서 가다듬지 아니하며 그에게 예를 차리지 않았다.

 종회가 돌아가려고 하자, 혜강이 말하였다.

 "무엇을 들었기에 왔다가 무엇을 보고 가시오?"

 종회가 말하였다.

 "들었던 것을 듣고 왔다가 본 것을 보고 가오."

 마침내 그에게 이를 악물었다.

 鍾會方有寵於司馬昭,聞嵇康名而造之,造,七到翻。康箕踞而鍛,康性巧而好鍛。鍛,都玩翻,小冶也。不爲之禮。會將去,康曰:「何所聞而來,何所見而去?」會曰:「聞所聞而來,見所見而去!」遂深銜之。

 

 산도는 이부랑이었는데, 혜강을 추천하여 자기를 대신하게 하였다. 혜강이 산도에게 편지를 보내어 스스로 '세속적인 일을 감당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탕임금이나 무왕을 박하게 평가하지는 않소.'라고 설명하였다. 사마소가 이 소식을 듣고 화를 냈다. 

 山濤爲吏部郎,魏尚書郎有二十三員,吏部其一也。舉康自代;康與濤書,自說不堪流俗,而非薄湯、武。昭聞而怒之。湯、武革命,而康非薄之,故昭聞而怒。

 

 혜강은 동평 사람 여안과 친하게 잘 지냈는데, 여안의 형 여손이 여안이 불효하다고 무고하자 혜강이 그가 그렇지 않다고 증언하였다. 종회가 이어서 참소하였다.

 "혜강이 일찍이 관구검을 돕고자 하였으며, 또 여안과 혜강은 세상에서 명성을 드날리고 있는데, 말하는 것이 방탕하여 이 시대를 해롭게 하고 가르침을 어지럽히니 의당 이를 이용하여 그를 제거 하십시오."

 康與東平呂安親善,安兄巽誣安不孝,康爲證其不然。爲,于僞翻。會因譖「康嘗欲助毌丘儉,言毌丘儉反,而康欲助之。毌,音無。且安、康有盛名於世,而言論放蕩,害時亂敎,宜因此除之。」

 

 사마소가 드디어 혜강을 죽였다.

 혜강이 일찍이 은둔자였던 급군의 손등을 방문하였었는데, 손등이 말하였다.

 "그대는 재주가 많으나 견식이 적으니,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거 화란을 면하기가 어렵겠소."

 昭遂殺安及康。康嘗詣隱者汲郡孫登,晉泰始二年,始分河內爲汲郡,史追書也。登曰:「子才多識寡,難乎免於今之世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