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夙興夜寐와 제갈량의 사망.東風解凍迎春風4日(음1/14).

solpee 2020. 2. 6. 16:53

 

《魏紀4 明 青龍 2 (甲寅, 234)

 

 

 10. 사미의와 제갈량이 서로 대치한 지 100여 일이 지났는데, 제갈량이 자주 도전하엿으나 사마의는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제갈량이 이에 사마의에게 건괵(巾幗:공경,열후 부인들의 머리 치장품)과 부인의 복장을 보냈다. 사마의가 화가 나서 표문을 올려 싸우게 하여 달라고 청하자 황제가 위위 신비에게 부절을 가지고 군사가 되어 그를 제지하게 하였다. 호군 강유가 제갈량에게 말하였다.

 10. 司馬懿與諸葛亮相守百餘日,亮數挑戰,數,所角翻。挑,徒了翻。懿不出。亮乃遺懿巾幗婦人之服;《字書》:幗,古獲翻,婦人喪冠也;又古對翻。據劉昭註補《輿服志》,公卿、列侯夫人紺繪幗。蓋婦人首飾之稱,不特喪冠也。遺,于季翻。懿怒,上表請戰,帝使衞尉辛毗杖節爲軍師以制之。護軍姜維謂亮曰:

 

 "신좌치가 부절을 가지고 도착하였으므로 적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제갈량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본래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굳이 싸우게 해달라고 청한 까닭은 그들의 무리에게 강한 힘을 보여주려는 것일 뿐이오. 장군이 군대에 있을 때에는 군주의 명령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이오. 정말로 나를 제압할 수 있었다면 어찌 천리까지 가서 싸우게 해달라고 청하였겠소?"

「辛佐治杖節而到,賊不復出矣。」治,直吏翻。復,扶又翻。亮曰:「彼本無戰情,所以固請戰者,以示武於其衆耳。將在軍,君命有所不受,孫武子及司馬穰苴之言也。將,卽亮翻。苟能制吾,豈千里而請戰邪!」

 

 제갈량이 사자를 파견하여 사마의의 진영으로 보냈더니, 사마의는 그가 잠자고 먹고 일하는 것이 많은지 저은지만 묻고 전쟁에 관하여서는 묻지를 않았다.

 사자가 대답하였다.

 "제갈공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는데, 하루에 20판 이상의 징벌 문제를 모두 친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먹는 양은 몇 승에 이르지 못합니다."

 사마의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제갈공명은 밥을 조금씩 먹으면서 일은 많이 하고 있으니, 그가 능히 오래 버틸 수 있겠소?"

 亮遣使者至懿軍,懿問其寢食及事之煩簡,不問戎事。懿所憚者亮也,問其寢食及事之煩簡,以覘壽命之久近耳,戎事何必問邪!使者對曰:「諸葛公夙興夜寐,罰二十以上,皆親覽焉;所噉食不至數升。」懿告人曰:「諸葛孔明食少事煩,其能久乎!」噉,徒濫翻。少,詩沼翻。

 제갈량의 병이 위독하게 되자, 한에서는 상서복야 이복에게 살펴보게 하였고, 이 기회를 통하여 국가의 대계에 대한 자문을 얻도록 하였다. 이복이 도착하여 제갈량과 함께 말을 마치고 이별을 하였다가 며칠 만에 다시 돌아왔다. 제갈량이 말하였다.

 亮病篤,漢【章:甲十六行本「漢」下有「主」字;乙十一行本同。】使尚書僕射李福省侍,省,悉景翻。因諮以國家大計。福至,與亮語已,別去,已,竟也,語竟而別也。數日復還。復,扶又翻;下同。亮曰:

 

 "고는 그대가 다시 돌아온 의미를 알고 있는데, 근자에 같이 말을 한 것이 비록 하루종일 걸렸다고 하여도 다하지 못한 바가 있어서 다시 와서 결정해 주기를 요구하는 것이오. 공이 물으려는 바, 거기에는 공염(장완)이 마땅할 것이오."

 이복이 사과하며 말하였다.

 "전에 실제 내버려두고 자문하여 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만약 공께서 백년 후라고 한다면 누가 국가의 큰일을 맡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빌며 다시 청하건대, 장왕의 뒤에는 누가 이 일을 맡을 수 있을까요?"

「孤知君還意,近日言語雖彌日,有所不盡,更來求決耳。公所問者,公琰其宜也。」福謝:「前實失不諮請,如公百年後,誰可任大事者,故輒還耳。乞復請蔣琬之後,誰可任者?」亮曰:

 

 제갈량이 대답하였다.

 "문위(불의)가 그를 이을 수 있을 것이오."

 또 그 다음 사람을 물으니, 제갈량은 대답을 하지 아니하였다.

 이 달(9월)에 제갈량이 군중에서 죽었다. 장사 양의가 군사를 정돈하여 나갔다. 백성들이 달려가서 사마의에게 알렸더니 사마의가 그 뒤를 쫓았다. 강유가 양의에게 정기를 돌리고 북을 울리면서 마치 곧 사마의를 향하여 나아갈 것처럼 하게하니, 사마의가 군사를 거두어서 물러가고 감히 압박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양의는 군진을 만들어 떠났고 야곡으로 들어간 다음에 제갈량의 상사를 발표하였다. 백성들이 이것을 속담으로 말하였다.

「文偉可以繼之。」又問其次,亮不答。費禕,字文偉。亮不答繼禕之人,非高帝「此後亦非乃所知」之意,蓋亦見蜀之人士無足以繼禕者矣。嗚呼!

是月,亮卒于軍中。長史楊儀整軍而出。百姓奔告司馬懿,懿追之。姜維令儀反旗鳴鼓,若將向懿者,懿斂軍退,不敢偪。猶恐亮未死也。於是儀結陳而去,陳,讀曰陣。入谷然後發喪。入斜谷也。百姓爲之諺曰: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도망가게 하였다."

 사마의가 이 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그가 살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었지만 죽었다고는 헤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영루가 있던 곳을 가보고 감탄하며 말하였다.

 "천하의 기이한 재주꾼이다."

 뒤를 쫓아가서 적안(야곡의 남쪽 입구)에 이르렀지만 따라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死諸葛走生仲達。」司馬懿,字仲達。以當時百姓之諺觀之,時人之於孔明何如也!懿聞之,笑曰:「吾能料生,不能料死故也。」懿按行亮之營壘處所,歎曰:「天下奇才也!」方亮之出也,懿以爲若西上五丈原,諸將無事矣。及亮旣死退軍,懿按行其營壘處所,以爲天下奇才。觀此,則知懿已料亮之必屯五丈原,而力不能制,姑爲此言以安諸將之心耳。行,下孟翻。追至赤岸,不及而還。還,從宣翻。又如字。....................중략..................................

 

 여러 군대가 성도로 돌아오니 대사면령을 내리고, 제갈량에게 시호를 내려서 충무후라고 하였다. 애초 제갈량이 한의 주군에게 표문을 올렸다.

 

 "성도에는 뽕나무 800그루와 척박한 밭 15경(頃: 100畝,畝:240步, 步:사방 6尺, 尺:23.5cm) 이 있어서 자제들이 입고 먹는 데는 스스로 여유가 있습니다. 신은 별도로 살아가려고 척촌이라도 늘리지 아니하였습니다. 만약에 신이 죽는 날이라도 안으로 남는 포백이 있게 하거나 밖으로도 남는 재물이 있게 하여, 폐하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諸軍還成都,大赦,諡諸葛亮曰忠武侯。初,亮表於漢主曰:「成都有桑八百株,薄田十五頃,子弟衣食,自有餘饒,臣不別治生以長尺寸。治,直之翻。長,知兩翻。若臣死之日,不使內有餘帛,外有贏財,以負陛下。」

 

 죽었는데, 그가 말한 것과 같았다.

 

 승상부의 장사 장예는 늘 제갈량을 칭찬하여 말하였다.

 "공은 상을 주면서 멀리 있다고 남겨두지 아니하였고, 벌을 주면서 가까이 있다고 아부하지 아니하였으며, 작위를 주면서 공로를 세우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었고, 형벌을 주면서 귀하고 세력이 있다고 하여 면제해 주지 않았으니 이렇게 하였기에 현명한 사람이든지 어리석은 사람이든지 모두가 그 자신의 몸을 잊었던 것이다."

 

 卒如其所言。卒,子恤翻。

丞相長史張裔常稱亮曰:「公賞不遺遠,罰不阿近,爵不可以無功取,刑不可以貴勢免,此賢愚所以僉忘其身者也!」

 

 진수가 평론 하였다.

 

 "제갈량이 상국이 되어서는 백성들을 어루만져주고, 법제를 보여주었으며, 관직을 줄였고, 함부로 쓰는 권력을 제한했으며, 성심을 열고 공도를 공표하였다. 충성을 다하여 당시를 유익하게 하였고, 비록 원수라도 반드시 상을 주었고, 법을 범하고 게으른 사람은 비록 친하다고 하여도 반드시 벌주었으니 죄 지은 것을 자복하고 그 정성을 보낸 사람은 비록 죄가 중하지만 반드시 석방시켰고, 말을 돌리고 교묘하게 수식하는 사람은 비록 죄가 가볍지만 반드시 처형하였다.

 陳壽評曰:諸葛亮之爲相國也,撫百姓,示儀軌,儀,度也。軌,法也。約官職,從權制,開誠心,布公道;盡忠益時者,雖讎必賞,犯法怠慢者,雖親必罰,服罪輸情者,雖重必釋,游辭巧飾者,雖輕必戮,

 

 

 선한 일을 하면 미미하다고 하여도 상을 주지 않는 일이 없었고, 악한 일을 하면 실오라기 같아도 깎아내리지 않은 일이 없었으니 여러 가지 일들은 정확하게 처리하였고, 모든 사물의 이치는 그 근본에서 풀어갔으며, 이름을 좇아서 내실을 기하도록 하였으며, 거짓은 같이하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善無微而不賞,惡無纖而不貶;庶事精練,物理其本,言事事物物必從其本而治之。循名責實,虛僞不齒;

 

 

 끝내 방역 안에서는 모두가 그를 경외하면서도 아껴주었고, 형정은 비록 준엄하지만 원망을 사는 일이 없었던 것은 그가 마음을 쓰는 것이 고르고 권고하고 경계하는 것이 분명하엿던 때문이니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훌륭한 인재라고 말할 수 있고, 관중이나 소하에 버금가는 정도로 비슷하다."

 終於邦域之內,咸畏而愛之,刑政雖峻而無怨者,以其用心平而勸戒明也。可謂識治之良才,管、蕭之亞匹矣。治,直吏翻。亞,次也。匹,偶也。